소설리스트

노오력의 투수-2화 (2/325)

[2]

다음 날.

동팔은 새벽 전철을 타고 서울 외곽에 있는 시민 야구장에 왔다.

비록 어제 상사에게 시달리고, 야근까지 했지만 야구장에 온 동팔은 절로 힘이 나고 있었다.

스트레칭을 하고 있을 때, 그에게 한 사람이 다가왔다.

"동팔이 왔구나. 역시 제일 빨리 와."

그는 동팔이 속한 사회인 야구팀의 감독이자 포수로 있는 김민철이었다.

"네. 민철이 형. 몸이 쑤셔서 먼저 와서 풀고 있었어요."

"역시 프로였던 사람은 다르다니까? 다른 애들도 본받아야 하는데."

그 말을 하는 사이, 그가 속한 팀 그리고 이번에 상대할 팀에 속한 사람들이 속속들이 도착했다.

가볍게 몸을 푼 그들은 속히 시합을 시작했다.

홈과 어웨이 구분이 없는 사회인 야구.

그래서 양 팀 감독 사이에서 가위바위보를 하거나 동전을 던져서 선공을 정했다.

이번에 먼저 공격하는 팀은 동팔의 상대팀이었다.

"자, 우리 수비 먼저 한다. 가자."

"네. 형."

민철의 말에 그의 팀은 전부 필드로 올라갔다. 그리고 동팔은 다른 필드보다 높은 마운드를 향해 올라갔다.

항상 가던 마운드였지만 이젠 일주일에 한 번 올라가는 마운드. 그래서인지 마운드에 다가갈수록 동팔의 심장이 점점 뛰기 시작했다.

동팔의 왼손에는 오래 사용해서 낡아진 투수용 글러브가 끼워져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 있는 투박한 야구공.

동팔은 이전엔 닳은 글러브를 바꾸고, 낡은 야구공은 그립감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던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젠 동팔에게 남은 것은 이것밖에 없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을 같이했기에 각별했다.

자신과 같이 퇴물이 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버릴 수 없는 그의 인생처럼 느껴졌기에 더욱 버릴 수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떠나도 너는 떠나지 않네. 아, 그냥 내가 버리지 않은 건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동팔에게는 아직 글러브가 있었고, 던질 공도 있었다. 그리고 던질 곳도 있었다.

그는 글러브 안에 있는 거친 야구공을 오른손에 쥐었다. 굵은 실밥이 군데군데 끊어져 있어 제대로 긁을 수 없었다.

하지만 한때 고교 괴물 투수에게 이 정도면 충분했다.

상대팀 타자가 자리에 들어왔다. 포수를 보고 있는 민철의 사인은 스트라이크 존 안에서 바깥쪽 아래로 향하는 변화구.

그것은 동팔의 마음대로 하라는 의미였다.

하지만 여기선 그 정도 사인이면 충분했다.

동팔은 왼다리를 살짝 들어 올린 다음, 앞으로 내밀고 빠르게 팔을 휘둘렀다. 동시에 그의 손가락은 정확하게 야구공을 훑으며 공의 회전을 만들었다.

쉬익~ 퍽!!

공은 홈 플레이트 앞에서 타자의 바깥쪽으로 휘어졌다.

타자의 방망이가 따라 갔지만 변화의 폭을 따라가지 못해 헛돌았다.

"스트~라이크!!"

심판의 외침에 타자는 별수 없이 인상만 쓰며 중얼거렸다.

"와… 씨바. 이걸 어떻게 쳐……."

동팔을 처음 상대하는 타자라면 그리고 그와 상대했던 타자들도 하나같이 하는 말이었다.

그의 말에 포수를 보는 민철은 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우리 팀의 결전 병기야. 이 친구야.'

그리고 상대팀에서는 감탄이 흘러나왔다.

"와, 마. 저걸 어떻게 친대? 구속은 그렇다 쳐도, 거의 바로 앞에서 변하는 걸."

"어깨 부상으로 방출되었다지만 역시 프로는 프론가?"

"직구는 아니더라도 변화구가 무섭다, 무서워. 작년보다 제구력이 더 좋아진 것 같은데?"

"직구는 안 되니, 변화구만 죽어라 연습했겠죠."

"그럼 프로에는 왜 안 간대?"

"안 가는 게 아니라 못 가는 겁니다. 느린 변화구만으로는 한계가 있잖아요. 그리고 어깨 부상이란 낙인도 있는데, 어느 구단이 받아줍니까?"

그의 말에 스피드건으로 구속을 재던 사람이 말했다.

"그러네요. 구속이 작년과 같이 120을 못 넘고 있어요. 프로에서 통하려면 적어도 130은 넘어야 하잖아요. 그것도 변화구를……."

"그렇지. 던질 수 있는 공에 한계가 생기면 무시무시한 타자들의 좋은 먹잇감밖에 안 될 테니까……."

"하지만 그건 프로 이야기입니다. 여기는 아마리그예요. 그것도 1부가 아닌 2부 리그예요. 동팔이 공이면 우리들 쌈 싸 먹죠. 이렇게……."

그런 말을 하고 있을 때, 자신의 팀의 첫 타자가 결국 삼진으로 아웃되었다.

"지훈아. 다음에 너다. 당하고 와라."

"같은 팀 맞아요? 형? 그리고 어차피 못 칠 거라면… 눈 감고 칠 겁니다. 잘하면 얻어 걸리겠죠, 뭐……."

두 번째 타자가 나간 다음, 그들의 말은 이어졌다.

"그런데 동팔이 혹사시킨 감독은 지금 뭐 한대?"

"그 인간이요? 듣자하니… 잠시 물러났다가 다시 현역에 복귀했답니다. 다른 학교 감독하고 있다던데요? 동팔이 혹사시킨 건 쏙 빼고, 청룡기 우승이란 경력만 내밀어서요."

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이 혀를 차며 말했다.

"와아… 진짜 인간 못 됐다. 선수 미래를 갈아서 자신의 경력으로 만드는 건 미안해서라도 그렇게 못 하겠다."

"여기에 계속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그걸 누가 알겠습니까? 학교에서도 경력이 좋으니 그것만 보고 그냥 받아들인 거겠죠."

한편, 첫 타자를 깔끔하게 처리했지만 동팔은 웃지 못했다.

'느려…….'

힘이 실리지 않았다. 다행히 손가락은 멀쩡해서 그립을 잡거나 긁는 건 잘되었다.

하지만 어깨와 팔에 힘을 제대로 실을 수 없었다.

같은 공을 던지고 있지만 전과 확연이 달랐다. 빠르고 강하게 던지며 느껴지는 묵직함이 없었고, 가벼워도 너무 가벼웠다.

힘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날아가는 공은 타자 앞에 도달할 때엔 속도가 많이 줄어들었다.

그래서 자신이 방금 전에 던진 슬라이더는 더욱 급격한 움직임을 가질 수 있었다.

'구속은 120정도. 전에는 150까지 던졌는데…….'

고교생임에도 직구의 속도가 150을 종종 넘겼다. 그리고 직구만이 아니라 변화구의 제구력도 뛰어났다. 그래서 그의 공을 칠 수 있는 타자는 거의 없었다.

가끔 얻어 걸리는 경우가 있었지만 대부분이 땅볼이나 플라이 볼로 끝났다.

전성기 때 안타를 맞은 건 손에 꼽았다. 어쩌다 한 번 홈런을 허용했지만 그건 사고에 가까운 경우였다.

지금도 그때처럼 동팔의 공을 칠 수 있는 타자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전에는 상대가 훈련에 훈련을 거듭한 고교 선수들이었고, 지금은 취미삼아 야구를 하는 사람들이었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그리고 포수가 원하는 대로 정확하게 공을 꽂아 넣었다.

하지만 공을 던질 때마다 자신의 한계를 명백하게 느꼈다.

'동팔이… 또 저러네…….'

그리고 다른 팀 선수와 달리, 투수의 바로 앞에 있는 민철은 동팔의 표정을 누구보다 잘 볼 수 있었다.

마운드에 올라갈 때는 무언가 흥분하면서 들떠 오른다.

하지만 공을 던질 때마다 기분은 점점 가라앉고, 시합을 마칠 때가 되면 어두워진다.

동팔과 오래도록 아는 사이였기에 그가 왜 그러는지 모를 수 없는 민철.

'이번에도 시합 끝나면 나중에 따로 뭐라도 사줘야지…….'

하지만 그가 해줄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5이닝의 시합이 끝나자 선수들이 서로 인사를 하고 마무리했다.

민철은 같은 팀원들과 물건을 정리하면서 말했다.

"어떻게 점수 1점을 못 내서 비기냐. 니들이 그러고도 2부 리그의 강호인 스틸러스의 선수들이야?"

웃으며 하는 그의 말에 다른 사람도 웃으며 말했다.

"히야(형)도 다 아시면서 그 말씀인교. 솔직히 우리 실력이 3부 리그에서 중간 정도 아닙니꺼? 동팔이가 있어서 2부 리그에 있는 기지, 안 그라믄 우리 바로 추락입니더. 추락."

있는 사실을 지적하는 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크게 웃었다.

애초에 승패에 연연하지 않는 사람들이라 비겼어도 속상해하지 않았다. 물론 이기면 기분은 좋겠지만 그들은 그저 야구를 하고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좋아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라고 동팔이도 욕 마이 봤다. 이번에도 거의 제대로 못 치고 끝나부렀네. 우리만 제대로 했으면 1부 리그에 갈 수 있었는데. 그라믄 진짜 제대로 된 시합을 할 틴디 말이여."

다만 그들은 동팔에게 미안했다.

사실상 양민학살을 하고 있는 동팔이었지만 1부 리그의 선수들은 준프로에 해당하는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럼 긴장감도 더 올라갈 것이고, 흥미진진하게 야구를 할 수 있을 터였다. 비록 프로에서 뛰진 못해도, 시합을 한다는 느낌은 꽤나 흥을 오르게 하기 때문이다.

"그건 그렇고. 동팔이 제구력이 장난 아니던데? 처음 왔을 때도 좋았지만 지금은 완전 쩔어."

"처음엔 좀 흔들렸다는 느낌이라면 지금은 고수의 날카로운 검 같은 느낌이지? 샤샤샥!!"

"솔직히 지금 동팔이 제구력이라면 1부 리그에서도 에이스일걸?"

그들의 칭찬에 동팔은 몸 둘 바를 모르며 말했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그게 전부니까요. 패스트 볼은 이제 무리겠지만… 변화구라면 더 발전시킬 수 있는 여지가 있잖아요."

동팔의 말을 들은 같은 팀원들은 순간 몸이 굳었다.

하지만 이내 일부러 밝게 웃으며 말했다.

"이야. 동팔이 어린 줄 알았는데 어른 다 됐네."

"하모. 진짜 인간 다 됐네. 이제 20대 중반인디 자세가 됐어. 자세가."

그리곤 정말로 귀엽다는 듯이 동팔의 머리를 거칠고 격하게 쓰다듬어주었다. 그 사이 몸과 몸이 부딪혔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적어도 동팔은 여기에 있어서만큼은 회사 안에서와 달리 눈치를 보지 않고 야구를 할 수 있었다.

그러던 중,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기… 동팔 씨?"

여자라고 야구를 하지 않는 건 아니었다.

실제로 아마리그에서도 여자들의 리그가 따로 있었다. 남자 리그처럼 활성화가 안 되었을 뿐, 응집력이 강하기에 그녀들의 실력은 남자들도 한 수 접고 들어가야 했다.

하지만 여기는 남자의 리그. 그리고 주말 새벽부터 서울 외곽에 오는 건 쉽지 않았다. 있다면 애인이나 남편을 정말로 사랑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니 보통 시합이 있으면 남자들만 우글거리는 것이 현실.

그런 상황에 여성의 목소리가 들리자 왁자지껄한 분위기는 사라졌고, 한순간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동팔은 여기에 찾아온 의외의 여인을 보며 말했다.

"어? 민희 씨가 여긴 왜……?"

"톡 보낸 거 못 보셨어요? 시합하는 곳으로 갈 테니 거기서 업무에 대해 가르쳐 드리겠다고 했는데……."

그녀의 말에 동팔이 서둘러 스마트폰을 보자 그녀의 말대로 자신이 아직 보지 못한 톡이 있었다.

[죄송합니다. 내일은 사회인 야구 시합이 있어서요.]

[그럼 내일 찾아가도 되죠? 동팔 씨 공 던지는 것도 보고 싶고. 시합이 끝난 다음에 이야기해요.]

그러자 동팔은 서둘러 민희에게 말했다.

"죄송해요. 민희 씨. 제가 빨리 확인했어야 했는데."

"괜찮아요. 그런데… 시합도 끝났는데 시간 되세요?"

"그건……."

보통 시합이 끝나고 난 다음에는 뒤풀이가 있었다.

물론 강제적인 모임은 아니었고, 별로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대부분 참석해 왔다.

동팔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하자 같은 팀원들이자 형들이 그를 챙겨주었다.

"아이고… 할 일이 있어서 오늘은 빨리 가봐야겠네."

"뒤풀이는 나중에 하지?"

"동팔아. 여기까지 오셨는데 그냥 가시게 하면 안 되지. 내 차 타라. 그리고 괜찮으시다면 제 차 타고 서울까지 가시겠어요?"

형들의 폭풍 같은 지원에 동팔은 민희와 같이 민철의 차를 타고 서울로 편하게 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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