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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범하게 살고 싶다-128화 (128/135)

128화

“…어라.”

마지막 남아있던 헌터의 머리통까지 터트려 버리고, 그들의 피를 마지막 한 방울까지 흡수한 벨제부브가 어이가 없다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벌써 끝이야?”

벨제부브는 시뻘건 안광을 빛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자신의 욕구를 채워줄 인간을 찾기 위해. 하지만 인간의 기척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고, 냄새조차도 감지해낼 수 없었다.

“부족해, 부족해!! 완전 부족해!!”

그가 원하는 것은 인간들의 피였다. 그것들을 흡수할수록 자신은 강해질 수 있었고, 강해진다는 것은 더 위대한 존재가 된다는 것을 의미했으니까.

더욱 강한 피를, 더 자신을 강하게 만들어줄, 위대한 전사의 피를.

그렇기에 벨제부브는 언제나 전투를 갈망해왔고, 그 갈망의 끝은 보이지 않았다. 특히나 지금처럼 어중간한 전투로 잔뜩 달궈져있는 상태에서는 더더욱.

마치 귀여운 소년과도 같았던 방금 전의 모습은 온 데 간 데 없이, 지금 그의 주둥이는 날짐승의 것처럼 불뚝 튀어나와 있었고, 원래 몸을 찢고 튀어나온 새로운 팔다리에는 거친 비늘이 덮여있었다.

신체 곳곳이 일그러지고, 왜곡되어있는 그 기괴한 모습에서, 방금 전에 소년처럼 보이던 그 모습은 희미하게 남아있을 뿐이었다.

“…인간. 인간이다.”

그런 그에게, 인간의 기척이 느껴졌다. 이곳과는 상당히 먼 곳에서 어렴풋이 느껴지는 것이었지만, 지금 그에게 그것은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가 먹어치울 먹잇감을 발견했다는 것만이 중요한 사실이었다.

벨제부브는 팔다리를 구부린 채, 바닥에 엎드렸다. 그의 온몸의 근육이 팽팽하게 부풀어 올랐으며, 격한 운동에 대비하며 푸른 혈관들이 불룩하게 튀어나왔다.

그리고 그 몸은 탄력적으로 튕겨지며, 단숨에 앞으로 튀어 올랐다. 어지간한 동체시력 보유자가 아니라면, 그 움직임은 마치 그 자리에서 사라진 것처럼 보였으리라.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 앞에는 최후의 보루로 구축된 요새도시가 존재하고 있었다.

‘죽인다, 죽인다, 죽인다―’

이제 곧 있으면 잔뜩 죽일 수 있다.

잔뜩 강해질 수 있다.

도약이 끝나자마자 다시 땅을 디디며, 한 번 더 하늘로 솟구친 벨제부브는 더욱 빨라진 속도로 요새도시를 향해 달려들었다.

넉넉하게 잡아도, 앞으로 네 번.

단 네 번의 도약만으로, 벨제부브는 수많은 민간인이 모여있는 요새도시에 도착하고, 모든 것을 유린할 것이다.

“케에에엥!!”

하지만, 그 도약은 도중에 멈추고 말았다.

그 도약을 멈춘 것은, 느닷없이 하늘에서 쏘아진 쐐기꼴의 섬광이었다.

백색의 섬광은 벨제부브의 도약에 못지않는 엄청난 속도로 내리꽂혔고, 그 섬광에 등짝을 직격으로 얻어맞은 벨제부브는 볼썽사나운 모습으로 내리꽂혔다.

하지만, 그 정도의 공격에 직격 당했음에도 벨제부브의 등짝은 꿰뚫리지 않았다. 비늘이 꿰뚫리고 꽤 깊은 상처가 생기기는 했지만, 상처는 금세 메꿔지고 비늘은 재생되어 평소처럼 말끔한 빛을 내고 있었다.

벨제부브는 지상에 내리꽂히기 얼마 직전, 몸을 바로잡고 네 발로 착지하는 안정적인 모습으로 착지했다. 그리고 그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아직도 새하얀 마나를 온몸으로 내뿜고 있는 아크가 떠올라 있었다.

아크는 강한 상대.

그렇다는 것은, 강렬한 전투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뜻.

그 생각에, 벨제부브는 광기어린 미소를 지었다.

* * *

‘맞추기는 맞췄는데…….’

빗나갈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추격을 준비하고 있었지만, 다행히도 훌륭하게 명중했다.

파죽지세(破竹之勢).

마나를 끌어올려, 쐐기꼴의 모양으로 한 점에 집중시켜 쏘아내는 기술.

지금은 그 위력을 중시하기보다는, 상대를 명중시키고 밀쳐내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그렇기에 큰 타격을 줄 줄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눈앞의 상대는 지나치게 멀쩡해보였다.

[조심해요, 아크. 방금 전에도 말했지만… 벨제부브의 능력에 대해서는, 저도 자세히 알지 못해요.]

리리스는 다시 한 번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전음을 보냈다. 나는 그녀의 전음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벨제부브는 흙먼지가 피어오르는 한 가운데에 있었다.

“카하하하하!!”

“…저거 미친놈 아니야?”

갑작스러운 기습에 얻어맞았음에도, 벨제부브라는 녀석은 나를 올려다보면서 오히려 웃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물론 마족이라는 놈들은 허세를 피울 때 흔히 저렇게들 처웃고는 했지만, 저건 허세가 아니라 그의 흥분과 광기가 담긴, 진정으로 우러나오는 광소였다.

“쿠워어어어어!!”

나를 바라보며 고함을 내지르는 녀석의 모습에서는 더이상 인간의 형상을 찾아볼 수 없었다.

녀석은 네 발로 땅 위에 서있었으며, 하늘을 향한 주둥아리는 늑대의 것처럼 길게 뻗어 나와 있었다.

“시끄러운 새끼일세.”

녀석은 방금 전처럼 도약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방금 전과 달리 지금의 도약은 정면이 아니라 하늘 위에 떠올라있는 나를 향하고 있었다.

‘그렇게 대놓고 준비하고 있으면, 맞아주고 싶은 생각이 들다가도 맞아주기 싫어지겠다.’

나는 벨제부브의 도약을 견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허공에 궁그닐 세 정을 띄워두었다. 하나는 정면을 대비하여, 나머지 두 개는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서.

“크아아아아!!”

벨제부브는 준비를 마치자마자 그 아가리를 벌리고, 거친 기세로 튀어 올랐다. 루시퍼 때를 생각하고 있었다면 순식간에 제압당했을 지도 모를, 비교조차 되지 않을 그런 속도였다.

쿠지지직.

“쿠워어!!”

‘…하나로는 부족하군.’

미리 준비해뒀었던 궁그닐을 아가리에 처박았지만, 그 기세를 조금 누그러트렸을 뿐 공격을 저지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내 양 옆에 떠올라 있는 궁그닐은, 바로 이런 경우를 대비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는가.

쐐애액!!

“쿠어억!!”

두 자루의 빛의 창은 공기를 가르는 소리를 울리며, 나를 향해 쇄도하고 있는 벨제부브의 양 옆 갈비뼈에 내리꽂혔다.

아무리 괴물이라 할지라도 세 방향에서 가해진 충격에 버티기는 힘들었는지, 그는 다시 땅바닥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기가 그래비티(Giga Gravity).”

그리고, 벨제부브의 추락 속도는 갑자기 누군가에게 끌어당겨진 것처럼 빨라졌다.

그 거대한 몸뚱이는 거칠게 땅바닥에 내팽개쳐졌지만, 그 몸뚱이가 다시 튀어 오르는 일은 없었다. 벨제부브는 마치 땅바닥에 붙은 것처럼 달라붙어있었다.

염동력을 다루는 헌터, 펠트.

그녀는 사전에 이야기를 했던 대로 중력을 강화시켜, 벨제부브를 속박시켜두고 있는 상태였다.

물론 그 시간이 그리 길지는 못할 것이다. 아무리 그녀가 강해졌다고 하더라도, 움직임을 방해하는 것이라면 모를까 군주급의 마왕을 완전히 속박시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녀가 저 괴물을 속박할 수 있는 시간은 잠시 뿐.

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지금이에요!!”

그것이 신호가 되어, 사방에서 수많은 공격들이 퍼붓기 시작했다.

“블러디 스톰(Bloody Storm)!”

“아이스 블래스트(Ice Blast).”

이태현과 유선의 공격. 그리고 거기에 고은소의 마탄들이 쏟아져 내렸고, 레이크는 마치 탭댄스라도 추는 것처럼 쉴 새 없이 발을 굴러, 계속해서 폭발을 일으켰다.

그리고 나 또한 하늘 위에서 궁그닐을 계속해서 쏘아내었고, 헤인은 지상에 모여있는 헌터들의 마나운용을 보조하고 있었다.

이태현과 유선, 로이드, 펠트, 고은소, 레이크, 헤인, 그리고 나.

곳곳에 산발적으로 나타난 하위 마왕들을 처리하기 위해 차출된 인원들을 제외한 모든 인원은 벨제부브 하나를 상대하기 위해 이곳에 모였고, 우리는 미리 계획했던 대로 총공격을 퍼붓고 있었다.

“…….”

“…….”

어느새 벨제부브가 있던 곳에는 거대한 구덩이가 패여 있었고, 그 주위에는 한치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짙은 흙먼지가 뿌옇게 올라와 있었다.

시야가 제한됨에 따라 쏟아 붓던 공격들도 서서히 사그라들기 시작했고,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우리들은 거의 동시에 공격을 멈췄다.

“…어떻게 된 거지.”

구덩이의 안쪽은 고요했다. 그저 파괴활동으로 인해 부서져 내린 파편들이 굴러다니는 소리만 간혹 가다 울려 퍼질 뿐이었다.

나는 다시 세 정의 궁그닐을 띄운 채로 지상 가까이 천천히 내려왔다. 지상의 헌터들은 방벽을 세워둔 로이드의 뒤에서 각자 공격태세를 갖춘 채 대기하고 있었다.

“해치운 건가?”

“…이 정신 나간 놈아. 그런 불길한 대사를―”

이태현은 흔한 클리셰를 대표하는 대사를 생각 없이 읊었고, 유선은 그런 그를 바라보며 얼굴을 구겼다.

“키아아아아아아아!!!!”

그런 이태현에게 호응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구덩이 속에서는 귀가 찢어질 듯한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쿠우우웅.

다음 순간, 건물이라도 무너지는 것처럼 거칠게 땅이 울렸고.

쿠우우웅…

[좋아, 아주 좋아!!]

뿌연 흙먼지를 가르고, 흉측하게 생긴 거대한 짐승의 얼굴이 튀어나왔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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