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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범하게 살고 싶다-127화 (127/135)

127화

‘벨제부브와 1:1로 조우하게 된다면… 지원을 요청하고, 최대한 오래 버티도록 해요.’

헌터 중에 한 명이 벨제부브와 조우하게 되었을 때 어떻게 하면 좋냐고 물었을 때, 리리스는 그렇게 대답했다.

단순히 이길 수 없는 상대를 만났을 때 가장 좋은 대처법은, 도망치는 것이다. 승산이 없다면 도망쳐서, 전력을 아끼고 차후를 도모한다. 그런 상대와 교전을 벌이는 것은 지켜야할 것이 있거나, 궁지에 몰려 어쩔 수 없을 때나 택하는 하책이다.

그걸 모를 리리스가 아니다.

하지만 그녀는, 도망치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최대한 오래 버티라고 했다.

마치 애당초 도망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처럼.

당시 그 자리에 있었던 S급 헌터들 중에 그녀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사람은 없었고, 때문에 방 안에는 침묵이 흘렀다.

하지만, 그 침묵은 전투를 앞에 둔 헌터의 고요한 긴장에서 비롯된 것일 뿐, 거기서 공포의 기색을 찾아낼 수는 없었다.

[벨제부브 뿐만이 아니에요. 군주급은 아니지만, 다른 마왕들 역시 차례대로 소환되고 있습니다.]

리리스의 목소리는 어느새 다급해져 있었다. 더 이상의 대기는 없다. 이 자리에서 일어선다면, 다시 휴식을 취하는 것은 전쟁에서 승리했을 때나, 죽었을 때가 될 것이다.

“뭐, 어쨌거나 이제야 여기서 나갈 수 있다는 뜻이네.”

얀은 가벼운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며, 몸을 기대고 있던 창대를 짚고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군.”

그와 함께, 그 옆에 앉아있던 록슬리도 함께 자리에서 일어섰다. 둘은 잠시 눈을 마주치고, 서로 작게 미소를 지었다.

[…아마 군주급은 한 명씩 이동해 올 거에요. 그러니… 이쪽의 군주들에게 전력을 집중시켜 각개격파를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됩니다.]

“각개격파라. 가장 기초적인 전략이자, 이상적인 전략 중 하나지.”

그녀의 말에 로이드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래서, 그 벨제부브라는 놈이 나타난 곳에는 누구누구가 가게 되는 것이지?”

[우선은―]

리리스는 게이트가 열리는 규모를 실시간으로 확인하며, 마침내 결론을 내린 후 헌터들을 배치하기 시작했다.

* * *

“본부, 본부!! 젠장, 왜 응답이 없어?”

현지의 지휘를 맡고 있던 그는 신경질적으로 먹통이 된 무전기를 집어 던졌다.

“썅. 아무래도 큰 놈이 오려나보다. 각오 단단히 하라고 전해둬.”

이미 그는 네트워크가 먹통이 된 이유를 알고 있었다. 요즘에 있어서 잦아진 일이다.

보통 이상의 강력한 마족의 등장.

하지만 그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그의 모습에서는 쓸데없는 두려움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를 비롯한 주변의 부대원들에게서 느껴지는 것은, 팽팽하지만 여유로운 긴장감과 자신감이었다.

그들은 이번 사태를 막기 위해 아공간에서 수행을 쌓았고, 불과 며칠 전보다 몇 배는 강해져 있었다.

그리고 그 힘에 대한 자신감은, 방금 전까지 치뤘던 교전에서 하늘 끝까지 솟구친 상태였다.

그들은 카오스 게이트에서 나타난 몬스터 무리를 자신들의 힘만으로 전멸시켰고, 마지막에 나타난 백작급의 마족과 공작급의 마족까지 목을 쳐냈다.

자신들은 강해졌다. 과거에는 막연하게 바라보기만 했었던 영웅들. S급 헌터들과 엇비슷한 위치까지 올라섰다. 그렇다면,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자신들의 도시는, 자신들의 손으로 지켜낸다.

그들의 가슴은 영광과 자긍심으로 가득 차있었다.

“거기서 뭐 해?”

그 팽팽하던 긴장감을 단숨에 끊어낸 것은, 한 어린아이의 목소리였다.

그곳에는 성인 남성의 허리춤을 겨우 넘는 크기의 작은 소년이 서있었다.

“민간인?!”

아직 대피하지 못한 민간인이 있었단 말인가. 부대원들은 난감한 기분으로 서로 눈빛을 교환했고, 부대원 중에서 가장 발이 빠른 헌터가 앞으로 나서서 소년에게 다가갔다.

“꼬마야. 부모님은 어디 가셨니?”

“부모님…?? 없어.”

소년은 잠시 동안 고개를 갸웃거리며 생각하다, 즉각적으로 대답했다.

‘고아인가.’

아이가 양쪽 부모를 모두 잃는 것은, 이 시대에서 그리 찾아보기 힘든 일은 아니었다. 안타깝게도 말이다.

“그래… 일단 여기는 위험하니까, 형이랑 같이 가자.”

헌터는 소년에게 다가가, 그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말했다. 방금 전까지 몬스터들을 학살하던 헌터의 목소리라고는 상상하기 힘든 상냥한 목소리였다.

“형이랑…? 형이 나랑 같이 놀아줄 거야?”

소녀는 해맑은 표정으로, 그 두 눈을 초롱초롱 빛내면서 헌터를 올려다보고 말했다.

‘…동생과 닮았어.’

왠지 그 눈을 마주치고 있자니, 자신의 동생의 모습이 떠올랐다. 오래 전, 게이트가 열리고 몬스터가 나타나기 시작했을 무렵에 행방불명되었던 동생의 모습이.

“그래. 같이 놀자. 일단은 형이랑 같이―?”

그는 그 소년을 품에 안아들어 올렸다. 들어 올리려 했다.

하지만, 들어지지 않았다. 소년은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무거웠다. 힘껏 들어 올리려 했을 터였는데, 소년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눈앞의 소년은, 비상식적으로 무거웠다.

마치, 거대한 뭔가를 압축시켜놓기라도 한 것처럼.

“그럼, 그럼 있잖아.”

그 와중에, 소년은 해맑은 목소리로 말했다.

다만, 방금 전과 달리 그 목소리는 뭔가 사악하게 느껴졌다.

“우리. 사냥놀이하자.”

흠칫.

순간적으로 전신에 퍼지는 섬뜩한 기분에, 그는 뒷걸음질 쳐 소년과 거리를 벌렸다.

하지만, 거리는 조금도 벌어지지 않았다. 소년은 정확히 그가 물러난 만큼, 앞으로 다가왔다.

슈칵!!

그리고 그 사실을 깨닫기도 전에, 헌터의 목은 단숨에 날아가 버렸다.

깔끔히 잘려나간 목은 거칠게 땅바닥을 나뒹굴었고, 목을 잃은 절단면은 하늘 높이 피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 모든 과정까지 걸린 시간은, 눈 깜빡할 순간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찰나의 순간에 지나지 않았다. 다른 부대원들이 모두 경직된 채 멍하니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을 정도로 말이다.

“저…전원―”

지휘를 맡고 있던 헌터는 황급히 지시를 내리려했지만, 그보다는 소년의 움직임이 더 빨랐다.

소년은 가볍게 손가락을 휘저었고, 그 손가락의 끝에는 다급하게 지시를 내리고 있는 헌터의 머리통이 있었다.

푸콰아악!!

그 손가락이 지휘자의 지휘봉처럼 강하게 내쳐진 순간, 소년의 발밑에서는 뾰족한 가시와도 같은 핏빛의 뭔가가 튀어나왔다.

그 가시는 당연하다는 듯이 그 앞에 있던 머리통을 꿰뚫었고, 머리통은 꿰뚫리다 못해 산산조각으로 터져나가, 피안개만을 남긴 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하하, 하하하하!!”

소년의 눈동자는 어느새 붉게 물들어, 붉은 안광을 뿜어내고 있었다.

“젠장, 칼스!!”

“돌격!! 전원 돌격!!”

어이없게 동료들을 잃은 분노일까, 자신의 상식을 뛰어넘은 말도 안 되는 광경에 대한 공포일까.

어느 쪽이건, 주변에 있던 헌터들은 모두 판단력을 상실한 채 소년의 목을 노리고 앞으로 달려들었다.

어쩌면 그게 오히려 더 옳은 판단일 수도 있었다. 아무리 도망쳐봤자, 그들의 죽음은 이미 확정되어있었으니까.

그들이 달려들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아나든, 전자가 더 명예로운 죽음이라는 차이만 있을 뿐, 죽는다는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카하하하하!!”

붉은빛의 안광을 뿜어내며, 소년은 한 차례 크게 손을 휘저었다.

그것으로 교전은 끝이 났다. 소년의 손을 따라, 거대한 핏빛의 칼날이 형성되었고, 형성된 칼날은 크게 횡을 그리며 거대한 참격을 그었다.

다음 순간, 그곳에는 아무도 남지 않았다.

“아아, 부족해, 부족해!!”

쿠웅, 쿠웅―

벨제부브는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분하다는 듯 발을 굴렀다. 그 작은 발을 구르는 모습은 꽤나 귀여웠지만, 대지는 마치 거대한 뭔가가 떨어지는 것처럼 소란스럽게 울렸다.

“허억, 허억― 흡―”

그 와중에도 아직 살아남아있는 헌터가 있었다. 그는 내장이 터져 나오기 직전인 복부를 감싸 쥔 채, 엄폐물에 등을 기대고 있었다.

그는 방금 전까지의 자신감과 자긍심은 모두 잃어버린 채, 행여 숨소리가 저 소년에게 들릴까봐 그저 공포에 질린 얼굴로 자신의 호흡을 억누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기괴한 장면을 목격했다.

“히익―!!”

자신의 동료들의 시체가 서서히 문드러지더니, 뭉글뭉글한 핏빛의 무언가로 변하기 시작했고, 그것은 곧 액체가 되어 땅바닥으로 스며들었다.

그리고 그 핏빛의 액체는 눈앞의 소년에게 모여들고 있었다. 그 액체들이 바로 방금 전 자신의 복부를 갈라놓았던 칼날과 같은 것임을, 그는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아직 살아있었네?”

다음 순간, 그는 머리통이 깨질듯한 고통을 느낌과 동시에 어린 소년의 간드러진 목소리를 들었다.

“끄허억…….”

그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려 했지만, 단단하게 붙잡혀 있는 머리통은 조금도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결국 그는 눈동자만 겨우 돌릴 수 있었고, 그 시야의 끝에서 섬뜩한 핏빛 안광을 뿜어내는 눈과 마주칠 수 있었다.

세로로 길게 찢어진, 마치 파충류의 것과 비슷한 그 눈동자.

그것이 그가 마지막으로 바라본 광경이었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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