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화
흠칫.
그 때, 누군가가 내 손을 붙잡는 감각이 느껴졌다.
어딘가 익숙한 듯하면서도 낯설은.
손이 메마른 탓에 윤기가 없어 거친 감촉이었지만, 그와 별개로 부드러움이 느껴지는 손길이었다.
나는 갑작스런 그 감촉에 깜짝 놀라 고개를 숙여 내 손을 바라봤다.
카를라는 내 손을 조심스럽게 붙잡은 채로, 내 손등을 엄지손가락으로 천천히 쓰다듬고 있었다.
“아직도 헤매고 있는 건가요.”
그리고, 그녀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뭔가 그리운 감정이 들게 하는, 그런 목소리였다.
“당신은 항상 그렇게 지내왔었죠. 마치 자신의 행동이 우리들에 대한 배신이라도 되는 것처럼. 자신은 용사가 아니라는 것처럼…….”
“…그랬었나.”
지금이라면 모를까, 그 당시에는 딱히 그런 생각을 갖고 있지 않았던 것 같은데.
그 때는 내 앞길을 간수하기도 바쁘던 시절이었으니까. 내 목숨 하나 부지하기도 힘들었고, 앞만 보고 달려가기도 힘들었던 시절이었으니까.
“후훗, 그랬었어요.”
하지만 카를라는 조심스럽게 입가를 가린 채로 웃음을 지었다.
“뭐라고 할까요. 뭐든지 조심스러웠고, 뭐든지 일단은 거절하고 보는 사람이었죠. 누군가는 그런 당신을 보고 성격이 더러운 사람이라고 했었지만, 제게는 당신이 꽤나 믿음직스러워보였답니다.”
예, 그래요. 믿음직스러웠어요.
카를라는 조그만 목소리로 중얼거리듯이 다시 한 번 말했다. 그 말이 중요한 말이라는 듯, 강조라도 하려는 것처럼.
“대부분 그런 사람들은 자신이 상처입고 싶지 않아서 타인을 멀리하는 거죠. 하지만 당신은… 남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아서 타인을 멀리하고 있었습니다. 그 둘은 미묘한 차이지만, 큰 차이이기도 하지요.”
“…그렇지는―”
“사소한 자랑거리입니다만, 이래봬도 사람 보는 눈 하나만으로 여제라는 칭호를 얻어낸 여자랍니다. 당신은 자신을 너무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어요. 가끔 겁쟁이처럼 보일 정도로 말이죠.”
나에 대한 그녀의 평가는 터무니없었다.
그렇기에 반박을 하려 했지만, 그녀는 내 말을 자르면서까지 내 말을 부정했다. 온화한 것 같으면서도 단호한 목소리로 말이다.
“당신은― 콜록, 콜록. 쿨룩.”
그녀는 뭔가를 말하려다가 기침을 하더니, 곧 깊은 기침을 내뱉었다. 안쪽에서부터 뭔가가 끌려올라오는 듯한 기침이었다.
그 기침 소리에 좌우에 있던 시녀들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다가왔지만, 그녀는 손을 들어 올려서 시녀들을 저지했다.
“당신은 제국을, 아니, 이 세계를 구한 영웅입니다. 그 사실은 바뀌지 않아요. 당신은 좀 더 자신을 자랑스럽게 여길 필요가 있습니다.”
카를라는 끝까지 말을 마치고 나서야 시녀가 들어 올리고 있는 수건을 잡고 입안에 있던 것을 뱉어내고 입 주변을 훔쳐냈다.
그녀는 수건에 묻은 흔적을 감추려는 듯 손을 빠르게 움직였지만, 선명하게 묻어난 붉은 핏빛을 완전히 감춰낼 수는 없었다.
“…나는.”
그리고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황성 앞의 대로 위에 서서 관중들의 환호를 들었을 때부터, 이름도 모를 노파가 내 손목을 붙잡았을 때부터 갖고 있던 생각을 털어놓았다.
“나는 영웅 따위가 아니야.”
내 목소리는, 생각했던 것보다도 처절한 목소리로 나왔다.
“나는 그저 내 갈 길을 걸어갔을 뿐이고, 그저 살아남기 위해서 미친 듯이 검을 휘둘렀을 뿐이야. 나에게 영웅이란 말은―”
어울리지 않다.
지나치게 과분하다.
나는 그 말을 하려고 했지만, 입에 담지는 못했다.
문득 마주친 그녀의 눈빛이 너무나도 진지했기 때문이다.
“당신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서로 눈을 마주친 채로 잠깐 동안의 침묵이 흘렀고, 잠시 후 그녀는 단호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당신이 정말로 영웅에 어울리는 사람인지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
“중요한 건, 당신이 영웅이라 불리기에 충분한 일을 해냈다는 것이고, 그렇기에 저희에게 이런 대접을 받기에 충분한 사람이라는 것이죠.”
카를라는 다시 한 번 내 손을 붙잡고서는 그렇게 말했다. 부드럽게 쥐었던 방금 전과 달리 힘을 담아 꼭 쥐고 있었다.
“당신이 응당 받아야할 보상을 거부하지 말아주세요. 저희에게서, 당신에게 감사를 표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지 말아주세요.”
저는 이 날을 40년 동안 기다렸답니다.
작은 목소리로 그 말을 덧붙이며, 카를라는 다시 미소를 지었다.
* * *
‘또 이 꿈인건가.’
미카엘라는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장면을 멍하니 바라보면서, 또 그 꿈을 꾸고 있다는 걸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다름 사람의 기억을 자신이 엿보기라도 하는 것처럼 기묘한 꿈.
내용이 매번 바뀌기는 했지만 거의 매일같이 꾸고 있는 꿈이었다.
그 꿈에서는 항상 조금 나이가 들어 보이는 자신이 나타났고, 원래의 모습보다는 약간 어려보이는 원호가 나타났었다.
하지만 오늘의 꿈은 조금 달랐다.
지금 자신의 눈앞에 보이는 원호는 꿈속에서 보아왔던 원호의 모습보다는 지금 자신이 알고 있는 원호와 거의 똑같은 모습이었다.
그리고 꿈속의 자신 역시 마찬가지로 지금의 자신과 거의 똑같은 모습이었다.
애초에 배경부터가 바뀌어 있었다.
여태동안 이 꿈의 배경은 중세느낌이 물씬 풍기는 판타지 풍의 배경이었고, 꿈속의 자신 역시 중세 기사 같은 판금갑옷을 껴입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배경은 자신도 익히 알고 있는 곳이었다. 주변의 빌딩들이 죄다 무너지고 불타고 있다는 점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물러서 있어. 미카엘라.”
원호는 그렇게 말하고서는, 꿈속의 자신에게 손을 내밀어 뒤로 물러나게 했다.
지금 그의 모습은 굉장히 낯설었다.
그녀가 알고 있는 그는 언제나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귀찮아하는 걸 대놓고 보일 때도 있기는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의 넘쳐나는 자신감의 부작용일 뿐이었다.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얼마나 늦게 움직이더라도 자신이 모든 것을 해결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 지극히 오만한 생각이지만, 그에게는 그 자신감을 뒤받쳐줄 만한 힘이 있었다.
그런 불량한 태도는 그녀가 싫어하는 것이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자존심 상하게도 그녀는 그런 그의 모습에 호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가 가지고 있는 그런 자신감은 그녀에게 없는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그가 지금은 굉장히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평소의 자신감 같은 것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그런 얼굴이었다.
분노와 슬픔.
각오와 고뇌.
여러 감정들이 뒤섞여 있는 그의 얼굴은, 당장이라도 소리라도 지르면서 터져버릴 것처럼 보이는 동시에 당장이라도 울음을 쏟아낼 것처럼 불안해보였다.
“허억, 허억, 허억…….”
평소대로의 자신이었다면, 여기서 물러서지 않고서 앞으로 한 걸음 내딛었으리라. 불안한 그를 두고 뒤로 물러서는 일 따위는 없었으리라.
두려운 상황에서도 옳은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건 그녀가 생각하는 자신의 가장 큰 장점 중에 하나였다.
하지만 꿈속의 자신은 그의 손에 힘없이 밀린 채로 얌전히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그녀는 아무런 대처도 하지 못한 채로 거친 숨만 몰아쉬고 있을 뿐이었다.
그녀의 숨은 거칠었고, 눈동자는 사정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온몸에서는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꿈속의 자신은 말 그대로 패닉 상태에 빠져있었다.
“Grrrrrrrrr…….”
그 때, 기괴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꿈속의 그녀가 떨리는 눈동자로 쳐다보고 있는 방향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그 앞에서는 흉측한 몰골로 뒤틀린 괴수가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괴수의 몸은 뒤틀린 검은 금속들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그 주위에는 불길한 검은 기운이 안개처럼 드리워져 있었다.
그리고 그 눈은 흉흉하게 붉은 빛은 뿜어내고 있었으며, 그 두 눈은 선명한 살기를 뿜어내며 꿈속의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낮게 깔리는 음산한 울음소리는 노골적인 적대감의 표시였다.
‘…아니, 저건.’
아니, 괴수가 아니다.
미카엘라는 그 사실을 직감적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비록 네발로 기고 있고, 짐승과도 같은 울음소리를 내뱉고 있었지만.
원래의 모습은 도저히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뒤틀려있는 모습이었지만.
그 괴수는 분명 인간이었다.
눈앞에 있는 저 기괴한 모습은, 한 사람이 뭔가를 끝까지 견뎌내고 견뎌낸 끝에 부서져버린 모습이라는 걸, 그녀는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저건…….’
그러다 문득, 그녀는 그 괴수의 모습이 낯설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럴 리가 없음에도 말이다.
‘…나?’
저건 자신이었다.
저런 흉측한 몰골로 전락한 인간은 다름 아닌 자신이었다.
“GrrrrrrrAAAA!!!”
혼란스러운 생각을 정리하기도 전에, 웅크리고 있던 괴수는 마치 용수철처럼 몸을 쭉 피면서 이쪽으로 달려들었다.
빠드득.
그 모습에 원호는 소리가 울려 퍼질 정도로 이를 갈더니,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로 검을 뽑아들어 달려드는 괴수를 휘둘러 쳐냈다.
망설임이 느껴지는, 예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둔탁한 공격이었다.
“KuAhhhhh!!”
“크윽!!”
쳐내졌지만 이내 재정비를 마친 괴수는 다시 한 번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고, 망설임 탓인지 제 때 공격을 휘두르지 못한 원호는 옆구리에 상처를 입고 말았다.
‘…어지러워.’
지금 여기에는 세 명의 자신이 있었다.
겁에 질린 채로 원호의 뒤쪽에 숨어있는 자신.
괴성을 지르며 달려드는, 이성은 물론이고 인간으로서의 본성조차도 잃어버린 자신.
그리고,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 자신.
한 명은 다른 한 명을 미칠 듯이 죽여 버리고 싶어 했다. 그야말로 눈에 보일 정도로 형형한 살기를 뿜어낼 정도로 말이다.
한 명은 다른 한명에게 미칠 듯한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마치 자신의 존재 그 자체를 위협받는 듯한, 극한의 공포에 빠진 모습으로 말이다.
그리고 그 둘을 지켜보는 자신은 혼란스러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애초에 이 꿈에서 자신은 구경꾼에 불과하다. 방관자에 불과하다. 자신이 이 꿈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은 전혀 없었다.
다른 자신의 과거를 바꿀 방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후우.”
조원호는 허리를 곧게 세우며 잠시 숨을 골랐다. 낮게 낮춰져 있던 몸이 일자로 세워졌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그리고는, 그는 뭔가를 결심한 것처럼 비장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건, 이것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는 두 손으로 검을 쥐더니, 가슴높이까지 검을 들어올렸다. 경건해보이기까지 하는 조심스러운 동작이었다.
직후, 검은 하얀빛을 뿜어내기 시작했으며, 그는 검을 머리 위로 들어올렸다.
빛은 점차 강렬해졌으며, 이윽고 그의 몸은 하얀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손으로 만지면 만져지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선명한 빛이었다.
잠시 후, 주변은 온통 그가 뿜어내는 빛으로 물들었다.
이번 꿈은 여기까지였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