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화
“길게 말하지는 않도록 하지.”
잔뜩 흥분한 채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던 방금 전의 모습과 달리, 루시퍼는 마치 해탈한 것처럼 침착하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나지막이 말했다.
“죽어라.”
“!!!”
루시퍼가 손을 내뻗음과 동시에 루시퍼의 날개들은 각각 새하얀 마나와 칠흑빛 마나에 물들었으며, 그 주위에는 수많은 빛의 창들이 형성되었다.
‘라이트 스피어(Light Spear)…?? 아니야, 달라. 이건…!!’
궁니르(Gungnir).
조원호 자신도 간혹 사용하는 신성계 최상위 공격마법으로, 막대한 마나가 소모되기 떄문에 마나 효율은 바닥을 기지만 그 위력만큼은 확실한 마법이었다.
근거리에서 직격으로 적중시킨다면, 백작급 미만의 마족 정도는 일격에 날려버릴 수 있을 정도.
그리고 루시퍼의 주위에는 어림잡아도 수십 개는 되어 보이는 빛의 창들이 늘어서있었다.
일반적인 궁니르와 비교하면 비록 그 크기가 왜소했지만, 저 수많은 빛의 창들은 하나하나가 모두 궁니르였다.
명색이 마왕이라는 작자가 신성계 최상위 마법을 쓰다니.
그 부조리한 광경에 조원호는 고함이라도 내지르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그럴 틈은 주어지지 않았다.
루시퍼는 마법의 시전이 끝나자마자 내뻗었던 손을 밑으로 꺾었고, 그게 신호가 되어 수십 개의 궁니르들이 조원호를 향해 쏟아지기 시작했다.
“크윽!!”
조원호는 이렇다 할 대책도 준비하지 못한 채 디디고 있었던 발판을 박차고 하늘로 뛰어올랐다.
하지만 루시퍼의 사격은 한 곳만을 노리는 일점 사격이 아니라, 상대가 도망칠 곳까지 예측하여 광역으로 퍼붓는 탄막의 형태였다.
굳이 한 곳에 화력을 집중시킬 필요는 없다.
단 한 발만 맞추더라도 막대한 피해를 입힐 수 있기 때문이다.
신성계 최상위 공격 마법인 궁니르에는 그 정도의 위력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루시퍼의 공격은 조원호에게 닿지 못했다. 수많은 궁니르들이 조원호의 잔상만을 꿰뚫은 채로 의미 없이 하늘의 저편으로 사라졌다.
“흥.”
하지만 루시퍼는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코웃음을 쳤다. 그리고 그의 주위에는 방금 전보다 2배는 가뿐히 뛰어넘어 보이는 궁니르들이 나타났다.
맞지 않는다면, 맞을 때까지 쏘면 되는 문제다.
그래도 맞지 않는다면 숫자를 늘리고, 숫자를 늘려도 안 된다면 사출속도를 올리면 된다.
전술이라고도 할 수 없는 억지스럽고 말도 안 되는 공격이었지만, 루시퍼에게는 상관 없는 일이었다.
지금의 루시퍼에게는 그런 억지스러운 전술을 강제로 밀어붙일 수 있을 만큼 마력이 넘쳐나고 있었으니까.
“나를 여기까지 몰아붙인 걸 후회하게 해주마.”
신에게 창조되어 찬란하게 빛을 발하는 대천사의 날개와, 마신의 축복으로 새롭게 돋아난 마족의 날개.
신의 손길과 마신의 축복이 서로 뒤엉켜있는 그의 본 모습은, 배신자의 증표라고 불러도 반박할 수가 없는 추악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지금의 루시퍼는 신의 힘과 마신의 힘을 모두 사용할 수 있었으며, 본모습을 억누르기 위해 할당되어있더 마력들까지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상태였다.
일곱 군주라고 해도 거의 말석에 가까운 6석이라고는 하지만, 본 모습을 드러낸 루시퍼는 전투력에 있어서만큼은 상상을 초월한다.
제 1석에 해당되는 그 바알조차도 상대하기를 꺼려할 정도로 말이다.
* * *
“이런 미친!!”
조원호는 자신을 향해 솟구치는 빛의 창들을 피해 하늘 위로 달려 나가며 욕설을 내뱉었다. 욕이라도 한 마디 내뱉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는 심정이었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저 수많은 빛의 창들은, 사실 대부분이 환각인 게 아닐까.
저 중에 몇 개만 진짜고, 나머지는 건드리면 안개처럼 사라져버리는 가짜가 아닐까.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하나같이 본능적인 경고가 울리는 필살의 일격들이었다.
이 말도 안 되는 광경에, 조원호는 억하심정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지간한 고위 프리스트가 최후의 일격이나 비장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이 바로 궁니르라는 마법이었다.
그걸 저따위로 남발하다니, 이쯤 되면 사기적인 수준이었다.
‘설마 일곱 군주라는 작자들이 죄다 저러는 건 아니겠지.’
루시퍼는 자신을 6석이라고 소개했었다.
만약의 이야기지만, 마왕들 사이에 순위를 정하는 기준이 전투력이라면?
‘…아니, 그렇게 생각하기엔 리리스가 너무 약해.’
제 2석, 탐욕의 군주 리리스.
물론 리리스도 일곱 군주라는 자리에 결코 부족하지 않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게 저 루시퍼라는 놈을 제치고 2석까지 차지할만한 수준이냐고 묻는다면, 그 정도까지는 아니라고 조원호는 즉시 대답해줄 수 있었다.
‘그렇다면 마왕의 순위는 전투력만을 정해지지는 않는다는 거겠군.’
그 사실에 조금 안도하고 있는 사이, 조원호는 정면에서 궁니르 하나가 직격으로 솟구치고 있는 걸 발견했다.
이건 피할 수 없다.
그 사실을 조원호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이미 사선(死線)으로 포위되어있는 상황에서 내리꽂히는 외통수였다.
“흐읍!!”
재빨리 몇 겹이나 되는 배리어들을 겹쳐서 펼쳐보았지만, 애초에 공중전을 펼치기 위한 발판으로나 쓰는 수준의 배리어였다.
제대로 된 방어능력도 없는 배리어 따위는 단번에 산산조각이 나 사방으로 흩날렸다.
배리어들을 깨부순 궁니르는 순식간에 안쪽으로 파고들어왔고, 조원호는 미스틸테인을 앞세우고 충격에 대비했다.
“크으윽!!”
몸에 그을린 자국들이 남기는 했지만, 미스틸테인의 수호의 축복으로 별다른 피해 없이 막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미스틸테인으로 버틸 수 있는 건 앞으로 많아봤자 네다섯 번에 불과하다. 조원호는 그 사실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게다가 방어에 집중하느라 잠시 회피기동을 멈출 수밖에 없었고, 때문에 상황은 더욱 심각해져 사지에 몰린 상황이 되었다.
지금 당장은 피할 길이 있었지만 다시 방금 전처럼 외통수에 걸려드는 것도 시간문제였다. 그리고 그 주기는 점차 짧아지게 될 것이다.
“나는…….”
상황이 긴박할수록 결정은 신중해야하지만, 결정을 내렸을 경우 행동은 신속해야한다.
루시퍼와 멀어지기 위해 솟구치던 몸을 거꾸로 세운 후, 그는 잠시 멈춰 서서 계약의 룬을 맺었다. 일정기간 동안만 해당되는 기간제한 기아스의 룬이었다.
“누구보다 빠르다.”
그 다음, 조원호는 정면을 바라보며 루시퍼에게 도달할 수 있는 틈을 찾았다.
있다.
몸뚱이 하나만 겨우 비집고 들어갈 수 있는 좁은 틈에 불과했지만, 확실한 틈이 있었다.
그리고, 일보(一步).
새로운 기아스가 코어에 자리 잡는 것을 느끼며, 조원호는 곧바로 발판을 박차고 루시퍼를 향해 쏘아져 나갔다.
또 다시, 이보(二步).
속도가 줄어들어갈 무렵, 조원호는 다시 한 번 발판을 디디며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어느새 육안으로 루시퍼의 얼굴을 들여다볼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져, 조원호는 루시퍼의 표정까지도 들여다볼 수 있었다. 루시퍼는 갑작스러운 상황변화에 당황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연달아 삼보, 사보, 오보.
갑작스럽게 짧은 시간 안에 이뤄지는 세 차례의 가속에 조원호는 다리가 꼬일 것 같은 느낌을 받았지만, 덕분에 단시간에 엄청난 가속을 이뤄냈다.
“하아아아앗!!”
속도는 그대로 힘이 된다.
엄청난 속도로 내리꽂히는 그의 일격은, 그 자체만으로도 필살의 일격이 되었다.
“크으으으으윽!!”
방금 전까지도 대량의 궁니르를 시전하고 있던 탓에 루시퍼의 반응은 늦었고, 그는 급한 대로 여섯 장의 날개를 겹쳐 조원호의 일격을 받아내야 했다.
여섯 장을 겹친 덕분인지, 아니면 힘을 개방하면서 날개의 강도도 증가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루시퍼의 날개는 꿰뚫리지 않고 조원호를 막아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쪽으로 달려들던 그 기세까지 어떻게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흐아아아아아!!”
조원호는 찌르고 들어가던 기세 그대로 루시퍼를 밀어붙였고, 날개가 꿰뚫리지 않도록 버티는 것이 고작이었던 루시퍼는 조원호와 함께 땅으로 추락했다.
“크으윽, 꺼져라!!”
루시퍼가 조원호를 뿌리쳐낸 것은 육지에 닿기 일보직전이었지만, 가까스로 날개를 펼쳐내고 날아올라 흙먼지 범벅이 되는 것만은 막을 수 있었다.
그리고 뿌리쳐진 조원호는 수십m를 날아갔고, 수차례 땅을 구른 후에야 몸을 일으킬 수 있었다.
“원호 오빠, 괜찮아요??”
갑자기 들려온 소연이의 목소리에 조원호는 고개를 돌렸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이소연이 서있었다.
‘하필이면 이 주변인가.’
본래 생각했던 건 그대로 일직선으로 내리꽂아, 주변에 민가도 사람도 없는 숲 속으로 떨어질 예정이었다.
하지만 루시퍼의 발버둥이 생각보다 격렬했고, 무엇보다 마지막에 뿌리쳐진 탓에 예상이 많이 뒤틀려버렸다.
‘협공이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저쪽도 마찬가지지.’
다른 헌터들은 몰라도 이태현이나 로이드, 그리고 유선 정도라면 충분한 전력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당연히 저쪽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다. 그리고 되도록이면 다른 헌터들을 지켜가며 싸워야하는 이쪽과 달리 저쪽은 아무런 망설임 없이 부하들을 일회용으로 소모시킬 수가 있었다.
이쪽이 불리한 전장이다.
원호는 지긋이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가장 이상적인 답안은, 속전속결.
하지만 그 가능성에 대해서는 확답을 내릴 수 없었다.
그 때, 갑작스럽게 느껴진 경고에 조원호는 본능적으로 몸을 움직였다.
아니, 본능이라기보다는 기아스에 의한 움직임이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기아스에 따라 몸을 움직이면서도, 조원호는 자신을 움직이고 있는 기아스의 정체 때문에 혼란에 빠졌다.
「나는 선생님의 곁을 지킨다.」
지금 몸을 움직이고 있는 건, 다름 아닌 선생님과 관련된 기아스였다.
어째서.
주변에 미카엘라가 오기라도 한 건가?
키이이잉!!
하지만 생각을 마치기도 전에, 조원호는 마슈의 앞으로 끼어들어, 허점을 노리고 들어가던 마슈의 주먹을 가로막았다.
“…오빠, 사실은 적이야?”
뜻밖의 방해로 공격이 막힌 마슈는 거리를 벌린 채 물었다. 그녀는 방금 전과 달리 냉정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명백히 조원호를 적대하는 모습이었다.
“…어째서.”
하지만, 조원호는 그런 것 따위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그는 자기 등 뒤에 있는 칠흑빛의 갑옷, 할로우 나이트를 바라보며 넋을 잃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