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평범하게 살고 싶다-81화 (81/135)

81화

“네놈, 감히 잘도, 잘도!!!”

한 쪽 날개를 잃고서 한동안 꼴사납게 추락하던 루시퍼는, 비행마법으로 다시 몸을 바로 고쳐 세운 후 조원호를 바라보며 고통에 찬 고함을 내질렀다.

‘조금 얕았나.’

조원호도 방금 전의 일격으로 끝을 낼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치명상 정도는 입힐 수 있을 거라 기대했었다.

자고로 옛말에 선빵은 필승이라 하지 않았는가. 그 격언이 오랫동안 전해 내려오면서 아직까지도 남아있는 것은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조원호는 기습적으로 선제공격을 가하기로 결심했고, 그 선제공격으로는 자신의 패 중에서도 나름대로 비장의 패였던 것을 꺼내들었다.

다만 그 결과는 생각했던 것보다 만족스럽지 못했다. 물론 그의 날개를 베어내기는 했지만, 그 정도로 치명상이라고 하기에는 애매했다.

다른 마족들의 뿔처럼 날개가 마나의 저장소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지도 않았고, 공중에 멀쩡히 떠있는 지금의 모습을 보면 비행에 큰 영향을 주는 것 같지도 않았으니까.

“이 갈아먹어도 시원찮을 녀석!! 감히 인간주제에!! 인간주제에―!!”

‘…뭐, 저렇게 화를 내는 걸 보면 나름 소중한 부위인 것 같기는 하지만 말이야.’

물론 조원호는 그 시끄러운 고함을 얌전히 끝까지 듣고 싶은 생각이 없었고, 가만히 지켜볼 생각도 전혀 없었다.

그는 곧바로 발판을 박차며 루시퍼를 향해 쇄도했다.

카아아아앙!!

“크으으윽!!”

루시퍼의 대낫과 조원호의 검이 서로 맞부딪히며 묵직한 금속음이 크게 울려 퍼졌다.

아직 재정비도 제대로 마치지 못했던 루시퍼는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뒤로 물러섰고, 조원호는 물러서는 그를 집요하게 뒤쫓았다.

조원호는 자신과 상대의 힘에 꽤나 큰 격차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지금 자신이 상대를 몰아붙일 수 있는 건 어디까지나 선제공격이 성공적으로 들어갔기 때문이었고, 상대방의 전투 경험이 부족한 덕택일 뿐이었다.

“이 빌어먹을 자식!! 기필코 네놈의 목을 따버리겠다!! 따버린 후에는 좀비로 만들 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썩어문드러져갈 뿐인 좀비로!!”

‘시끄러운 녀석이네.’

정신없이 공방이 오고가는 와중에도 녀석은 눈깔에 핏줄까지 세운 채로 시끄럽게 떠들어대고 있었다.

오늘 처음, 그것도 방금 전에 처음 만난 녀석에 불과했지만, 조원호는 루시퍼라는 녀석이 대충 어떤 성격일 것이라 짐작할 수 있었다.

중2병 걸린 애새끼.

루시퍼에 대해서는 딱 이 정도의 평가가 어울릴 것이다.

‘왜 마왕 놈들 중에는 나잇값을 못하는 놈들이 많을까.’

그런 마왕들만 골라서 만났을 뿐일지도 모르겠지만, 자신이 만났던 마왕들은 죄다 나사가 하나씩 빠져있는 놈들이었다.

발자크도 그랬고, 포르네우스도 그랬다. 그나마 마왕다운 녀석은 바르바토스 하나뿐이었다.

“감히 한눈을 파는 것이냐!!”

잠시 조원호가 딴 생각을 하고 있던 사이, 그 빈틈을 포착한 루시퍼가 대낫으로 크게 호를 그리며 참격을 휘둘렀다.

묵직한 무게가 그대로 실린 그 참격은, 눈앞에 서있는 재수 없는 인간의 목을 끊어놓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루시퍼의 움직임을 바라보면서 조원호는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역시 전투경험이 부족하다.

루시퍼는 눈앞에 나타난 기회를 급하게 쫓느라 오히려 자신의 빈틈을 잔뜩 드러내고 있었다.

하긴, 대낫 같은 걸 무기로 쓰는 녀석이 제대로 된 백병전을 벌일 수 있을 리가 없다.

‘내 무기? 그냥 멋있으니까 쓰는 거지.’

언젠가 ‘왜 하필 대낫을 쓰냐’는 질문을 던졌을 때의 크리스의 대답을 떠올리면서, 조원호는 참격을 휘두르는 루시퍼의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대낫의 특성상 휘두르는 동안 그 안쪽은 텅 비어있을 수밖에 없다.

“…!!”

루시퍼가 당황한 모습을 조원호는 코앞에서 볼 수 있었다. 두 눈은 동그랗게 뜬 상태였고, 얼굴에는 핏기가 사라져있었다.

조원호는 갑작스런 상황에 겁에 질린 소년의 얼굴을 바라보며, 그 목을 향해서 검을 밀어 넣었다.

* * *

[헤인, 록슬리 쪽으로 광역마법 지원을 부탁해. 그동안 유선이 헤인의 영역을 커버.]

이소연은 조금 급하게 헤인에게 전음을 보냈다.

헤인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지만, 그의 시선은 9시 방향에 있던 록슬리를 향해 돌아갔다.

그는 곧 이소연의 지시대로 광역마법을 시전하기 시작했다.

[얀, 펠트 쪽을 도와줘. 밀리고 있어.]

얀 또한 이소연의 지시대로 움직였지만, 이번에도 그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갑작스럽게 전투가 시작된 상황이었고, 그 떄문에 네트워크 디바이서를 착용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네트워크 시스템의 보조 없이 전음을 주고받을 수 있을 정도로 전투 상황은 한가롭지 않았다.

때문에 지금은 각자의 소통을 배제하고 이소연의 일방적인 지휘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저번 데모닉 게이트 사건 때처럼 말이다.

물론 그녀의 옵저버 능력은 압도적으로 뛰어났으며, 상황을 분석하고 지휘하는 판단력 또한 훌륭했다.

다만, 데모닉 게이트 때와 달리 지금은 그녀 혼자서 전장의 상황들을 전부 체크할 여유가 없었다.

“크르륵, 네놈이 지휘관인 모양이로구나!!”

“크윽!!”

[로이드, 정면에 크림슨 레드급이 나와요!]

이소연은 보내려던 전음을 마저 보낸 후, 자신을 향해 내리 찍히는 망치를 피해 몸을 날렸다.

땅바닥에서 한차례 구른 후, 이소연은 몸을 일으키며 허리춤에 메어뒀던 레이피어를 꺼내들어 적을 향해 겨눴다.

현재 S급 헌터 전원은 협회 건물 밖으로 나와, 광장에서 각자 일정 영역을 담당하며 둥근 원진의 형태로 적들을 막아내고 있는 상황이었다.

지휘관의 역할을 맡고 있는 이소연은 당연히 팀원들의 보호를 받는 위치인 원진의 한 가운데에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처럼 하늘에서부터 몬스터들과 마족들이 계속해서 습격해오고 있었기에, 그녀는 옵저빙에만 집중할 수가 없었다.

“케르르르륵.”

땅에 내리꽂혔던 망치를 들어 올리며 이소연과의 거리를 재고 있는 상대는, 마치 거대한 도마뱀이 판금갑옷을 두른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드레이크 계열의 마족이었다.

이소연은 그 모습을 보고 꽤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했지만, 고작해야 A급 헌터 수준의 전투력밖에 없는 그녀가 상대할 수 있는 녀석이 아니었다.

[크리―]

이소연은 S급 헌터들 가운데서 가장 기동성이 좋은 크리스를 호출하려다 말을 멈췄다.

분석 결과, 눈앞의 마족은 저번에 상대했던 바리트라는 녀석과 거의 동일한 수준에 있는 마족이었다. 즉, 백작급에 해당되는 마족이었다.

그리고 이소연의 머릿속에는 바리트와의 전투에서 압도적으로 밀렸던 크리스의 모습이 스치듯이 지나갔다.

크리스는 백작급의 마족을 상대할 수 없었다.

이건 사실이었다. 지금 그녀를 부르는 건 적절한 인선이 아니었다.

때문에 이소연은 지금 그나마 담당 영역이 한가하며, 백작급과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상대를 찾았다.

[마슈. 잠시 이쪽 커버를 부탁해.]

“알았어요!”

다른 사람들과 달리, 마슈는 기운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꽤나 먼 거리가 떨어져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목소리는 이소연이 있는 곳까지 생생하게 들려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푸른빛을 뿜어내는 두 개의 에테르 구가 눈앞의 마족을 향해 포탄처럼 날아왔다.

“케륵, 케륵.”

드레이크는 비웃음 같은 웃음소리를 내며, 앞서 날아오는 에테르 구를 향해 망치를 휘둘렀다. 우선 앞에 오는 걸 가볍게 쳐내며 몸을 피한 후, 그 뒤를 쫓아오는 에테르 구도 쳐낼 생각이었다.

“크르르르륵?!?”

하지만 망치와 에테르 구가 서로 맞부딪힌 순간, 드레이크는 자신이 상대방을 너무 얕봤음을 깨달았다.

에테르 구를 튕겨내기는 했지만, 생각지도 못한 위력에 자신의 망치도 함께 멀리 튕겨져 나가버렸다.

그리고 그 충격으로 몸이 한껏 뒤로 재껴져있을 때, 두 번째 에테르 구가 비어있는 복부를 강타했다.

“크륵…!!”

하지만 그의 갑옷은 미스릴로 만들어진 미스릴제 갑옷으로, 어지간한 공격으로 깨질만한 물건이 아니었다.

에테르 구에 얻어맞은 자리가 크게 찌그러지고 속이 뒤틀리는 느낌이기는 했지만, 그는 조금의 상처도 입지 않았다.

그러나 마슈의 공격은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포메이션 코퍼레이션(Formation Corporation).”

이소연의 지시를 듣고 두 개의 에테르 구를 쏘아낸 마슈는, 곧바로 네 개의 에테르 구를 각각 양손과 양발에 불어넣어 강화시켰다.

잠시 후 그녀의 손발은 당장이라도 터질 것처럼 찬란한 푸른빛을 내뿜기 시작했고, 직후 마슈는 이소연의 앞에 있는 드레이크에게 달려들었다.

마슈가 도착한 것은 드레이크가 두 번째 에테르 구에 얻어맞고 이제 막 자세를 추스르려던 순간이었다.

마슈는 달려들던 기세를 그대로 살려 빈틈투성이인 복부를 향해 주먹을 쥔 오른손을 곧게 뻗었다.

투콰아아아앙!!“

“크럭…!!”

자그마한 소녀의 주먹에서 났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마치 거대한 포탄이라도 터진 것 같은 폭발음이 울려 퍼졌다.

하지만 그 충격을 그대로 받아낸 드레이크의 몸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눈앞에 멈춰있는 드레이크의 몸통에 마슈는 다음 공격을 퍼부었다.

오른발은 정면으로 꽂히듯 뻗어나가는 발차기.

왼손은 허리에서부터 들어가는 정권.

그리고 위를 향해 걷어차는 왼발까지 들어갔을 때, 마치 시간이라도 멈춘 듯 가만히 서있던 드레이크의 몸통이 하늘을 향해 솟구쳤다.

마슈는 마치 사격명령을 내리는 듯한 손짓으로 하늘에 떠오른 드레이크를 가리켰고, 강화에 사용됐던 에테르 구를 포함한 네 개의 에테르구가 손짓을 따라 드레이크에게 달려들었다.

네 개의 에테르 구는 땅에 떨어질 때까지 드레이크의 주위를 맴돌며 계속해서 그를 내리쳤고, 결국 지상에 내려온 드레이크는 너덜너덜한 넝마조각이나 다름없게 되었다.

“이걸로 된 거야?”

“…그래, 고마워 마슈.”

마슈는 조금 지친 것 같았지만 여전히 미소를 지으며 물었고, 이소연은 그런 마슈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럼 이만 가볼―”

그 때, 마슈의 표정이 긴박감에 물드는 것을 이소연은 생생하게 지켜보았다.

마슈는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았고, 그곳에는 칠흑빛의 갑옷이 그녀를 향해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끄으읏!!”

아직 드레이크를 처리하기 위해 보내뒀던 에테르 구들이 도착하지 않았던 상황이었기에, 마슈는 아직 강화를 풀지 않았던 왼손으로 쳐낼 수밖에 없었다.

키이잉!!

“…피.”

마슈는 검을 쳐내는 데 성공했지만, 검을 쳐냈던 팔에서 피가 흘러내리는 것을 조금 놀란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피를 보고 놀란 것은 아니었다.

아무리 어린 소녀라고 하지만, 그녀 또한 S급 헌터로써 수많은 전장을 누벼왔다. 피를 보는 것은 익숙하다.

하지만 에테르로 강화시킨 신체에 상처가 나는 것은 처음 겪는 일이었다. 그녀로써는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포메이션 코퍼레이션(Formation Corporation).”

드레이크에게 붙여뒀던 에테르 구가 도착하자, 마슈는 다시 양손과 양발을 강화시켰다.

그리고 남는 에테르 구를 주변에 대기시켜, 그녀가 끌어올릴 수 있는 힘을 모두 끌어올렸다.

“소연 언니, 멀리 떨어져요.”

눈앞에 서있는 저 칠흑빛의 갑옷은, 결코 쉽게 상대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그렇게 판단한 마슈는 자신의 뒤에 서있던 이소연에게 그렇게 말했다.

“…소연 언니?”

하지만 이소연은 물러서지 않았다.

아니, 물러서지 않았다기보다는 그 자리에 멈춰 서있었다.

“…이게, 무슨.”

이소연은 방금 전 그 자리에 그대로 선 채, 혼란으로 가득 찬 표정을 짓고 있었다.

“미카엘라 언니…?”

그럴 리가 없다.

그럴 리가 없음에도,

이소연은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리듯 말했다.

(다음 화에서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