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화
남자는 다시 한번 검을 든다
나는 쓰러져있던 미카엘라를 소중히 끌어안았다.
“…리제네레이션(Regeneration).”
북받쳐 오르는 기쁨과 당장이라도 흘러내릴 것 같은 눈물을 가까스로 참아내면서, 나는 부상을 입고서 쓰러진 그녀에게 회복마법을 걸었다.
그녀의 상처들이 서서히 아물고, 출혈이 멎어가고 있었다.
그녀가 회복되는 것을 확인한 순간에 느껴진 기아스의 변화로, 나는 다시 한 번 그 사실에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미카엘라가 바로 선생님이었던 것이다. 바로 그녀였던 것이다.
결계의 안으로 들어오기 전까지는 막연한 기대를 갖고 있었을 뿐이었고, 차원석으로 결계 안에 들어와 시전자가 미카엘라였음을 확인했을 때는 ‘설마’ 싶은 기분일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미카엘라의 옆에 있으니 그 사실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다른 기아스들로 임시방편삼아 막아두었을 뿐인, 언제 깨져도 이상하지 않을 과거의 기아스들이 지금은 잠잠히 가라앉아 있었다.
그에 따라 코어와 회로가 뒤틀리던 고통들도 점차 사라지고 있었다.
「나는 선생님의 곁을 지킨다.」
「나는 그녀를 치료해낸다.」
오랫동안 내 몸을 괴롭혀왔던 그 기아스들의 고통들은, 지금 거짓말처럼 사라져있었다.
그 사실이, 나는 조금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 사실이 진실이라고 말하려는 듯, 코어는 그 어느 때보다도 힘차게 돌아가기 시작했고, 회로를 타고 움직이는 에테르들은 마치 윤활유라도 발라놓은 것처럼 부드럽고 빠르게 회전했다.
나를 이십여 년 간 속박하고 있었던 과거의 족쇄에서 풀려난 해방감에, 나는 온몸에 전율이 흐르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아니 어쩌면 처음으로 느껴보는 감각이었다.
‘하지만… 어째서?’
선생님이 살아있다.
지나치게 희망적인 지금의 상황에서, 나는 그만큼의 불안감을 동시에 느꼈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이 광경이, 느끼고 있는 이 감각들이 전부 거짓일 수도 있다는, 그런 불안감이었다.
지금 상황이 절대로 있을 수가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그 불안감은 더더욱 커져만 갔다.
그녀는 죽었다. 그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녀가 빛나는 입자로 나뉘면서 허무하게 허공으로 흩어지는 장면을 나는 눈앞에서 직접 지켜봤다.
그리고, 아스트레아에서 죽은 용사들은 이 세계에서 존재자체가 지워진다.
말 그대로 존재가 사라지는 것이다.
심지어 부모가 자기 자식에 대한 기억을 잊어버릴 정도로, 말끔하게.
그것은 ‘다른 세계에서 영혼과 육신을 잃어버려 돌아올 수 없게 된 존재’들이 발생함으로써, 원래 세계에서 나타나게 될 모순점을 감추기 위해 이 세계가 직접 가한 수정이었다.
그것은 절대적인 것이었으며, 번복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선생님이 이 세계에 아직 살아있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미 그녀의 과거도, 그녀의 미래도 전부 이 세계에서 지워져버린 후였으니까.
하지만 그렇다면 지금 눈앞에 있는 미카엘라는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여태동안은 알 수 없었지만, 그녀가 선생님이라는 사실을 인지한 후에는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미카엘라가 바로 선생님이었다.
나의 본능적인 감각이, 희미해져있었던 나의 기억들이, 그리고 나의 기아스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과연 있을 수 있는 존재인 것인가?
애초에 지금 이곳이 현실은 맞는 것인가?
‘아니,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나는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게 현실이 아니라 그저 꿈속의 한 장면에 불과할 지라도, 혹은 누군가가 만들어낸 환상 속 거짓에 불과하더라도, 지금 이 상황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었다.
나는 그녀를 지킨다.
그건 언제가 됐건, 어디가 됐건, 지금 상황이 무슨 상황이건 결코 변하지 않을 사실이었다.
비록, 과거에는 지키지 못했던 약속이라 할지라도.
코어에서 에테르를 활성화시키자, 예전과 달리 맑고 순수한 에테르가 마치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회로를 타고서 몸 안을 돌아다니는 것이 느껴졌다.
회로의 곳곳이 막혀있던 탓에 일렁거리듯 에테르가 밖으로 새어나오던 예전과 달리, 지금은 은은한 빛이 희미하게 새어나올 분, 그런 낭비가 거의 없었다.
“굉장하군…….”
나는 여태동안 내가 느끼고 있었던 에테르에 대한 감각들이 전부 왜곡되어있었음을 깨달았다.
물론 예전에도 에테르를 활성화 시킬 때면 약간의 고통과 함께 상쾌함, 그리고 개운함이 찾아왔었다. 하지만 그때의 감각들도 지금의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차원이 다른 느낌이었다.
마치 환골탈태라도 하여 새로운 몸을 얻은 듯한 엄청난 충족감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나는 미카엘라를 살며시 밑에 내려놓고서, 자리에서 일어나며 아공간을 열어 미스틸테인을 뽑아들었다.
* * *
“크륵, 크륵… 크르르르르르…….”
“취익!! 취이이이이익!!”
남자의 기아스에 온몸이 굳어버렸던 몬스터들이 이제 슬슬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고 있었다.
아직까지는 몸에 마비라도 온 것 마냥 부자연스럽고 느려터진 움직임이었지만,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오는 것은 어디까지나 단순한 시간문제였다.
제대로 맺어진 기아스가 아니라, 한 쪽에서 일방적으로, 그리고 강제적으로 부여했을 뿐인 반쪽짜리 기아스였기에 당연한 결과였다.
기아스를 깨트리는데 약간의 정신력 정도만 소모되었을 뿐, 몬스터들에게는 별다른 어떤 부작용도 남지 않았다.
이제 잠시 후면 몬스터들은 다시 정신을 차리고서 자신들이 둘러싸고 있는 저 남자를 단숨에 도륙낼 터였다.
하지만 남자는 상당히 여유로워보였고, 심지어 입가에는 미소까지 짓고 있었다.
그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허공에 손을 집어넣더니 그곳에서 검을 뽑아들었다.
‘개인이 사용하는 아공간이라니, 지구는 미쳐 돌아가는 곳이냐?’
아공간을 열어 잠시 그곳을 활용하는 것과, 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아공간을 만들어내고 유지하는 것은 수준이 다른 영역의 이야기였다.
아공간을 다루는 마법들은 전부 다 최고 수준의 높은 단계의 마법이었지만, 그 둘 사이에도 명백한 차이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저 남자는 그 영구적 아공간을 고작 검을 수납하는 용도로 활용하고 있었다.
아니, 그뿐 아니라 저 남자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은 심상치 않았다.
‘위험하다, 지금 상태로는, 너무 위험해…!!’
이 상태로는 아무것도 못해보고 죽는다. 바리트는 본능적으로 그 사실을 깨달았다.
본체로 돌아가지도 못하고서 무기력하게 죽어버린다니, 망신살 뻗치는 것도 정도가 있다.
하지만 기아스 두 개가 중첩되어버린 탓에, 그의 코어는 물론이고 몸뚱이조차도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이 상태로는 본체로 돌아가기는 커녕 몸을 피하는 것도 힘들었다.
애초에 바리트는 이 세계에 찾아올 때, 자신이 전력을 다해 싸울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이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당연히 없었다.
이 세계에 찾아온 것은 어디까지나 가벼운 마음으로, 새롭게 발견한 세계에 대한 탐사에 가까운 느낌으로 찾아왔을 뿐이었다. 실제로 방금 전까지는 그런 가벼운 기분으로 싸움을 지켜보고 있었다.
어쩌다가 일이 이렇게 돼버렸는가. 저 남자는 대체 뭐란 말인가.
대체 어떻게 외부에서 절대계약의 결계를 뚫고 들어온 것이란 말인가.
그 때, 남자의 검이 하얗게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고, 그는 그걸 높이 들어올렸다.
검에 새겨져있는 섬세한 문양들이 에테르를 받아들여 선명하게 드러나 있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는 그 검을 바닥에 꽂아 넣었다.
그가 검을 꽂아 넣은 순간, 주변에는 눈 깜빡할 정도의 순간동안 정적이 흘렀다.
그 정적은 굉장히 짧은 시간동안 이어졌을 뿐이었지만, 그를 바라보고 있던 몬스터들은 그 시간이 굉장히 길게, 그리고 선명하게 느껴졌다.
잠시 후, 그 검을 중심으로 퍼져나간 에테르의 충격파가 단숨에 결계 안을 휩쓸었다.
“크으으윽!!”
남자와 바리트의 거리는 꽤 먼 거리였지만, 충격파의 여파는 바리트가 있는 곳까지 닿았다.
이제 겨우 기아스에서 벗어나 제대로 된 소리를 말할 수 있게 된 바리트는 고개를 숙이고서 충격파에 견디며 신음소리를 내뱉었다.
그리고 바리트가 숙였던 고개를 들었을 때, 그곳에 서있는 것은 그 남자뿐이었다.
작은 크레이터처럼 동그랗게 패여 있는 그 주변의 흔적은, 이 일대를 휩쓸었던 충격파의 위력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조금이나마 보여주고 있었다.
검이 꽂혀있던 그 주변만이 멀쩡했으며,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던 몬스터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있었고 거리가 떨어져있던 몬스터들은 사방으로 나가떨어진 상태였다.
다시 일어선 남자는 바닥에 검을 꽂아둔 채로 허리춤에 메여있던 검을 뽑아들었다.
그리고 남자의 시선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죽는다.’
바리트는 공포를 느꼈다.
“샤아아아아악!!”
몸이 조금 밀려났을 뿐,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았었던 바실리스크가 남자에게 달려들었다.
타락한 용의 일족이라는 말까지도 전해지는 상위종의 몬스터, 바실리스크.
그 거대한 도마뱀은 육중한 몸을 부풀리더니 입에서 독의 안개를 뿜어내었다.
“꺼져.”
남자는 검을 들어 허공에 에테르의 참격을 뿌렸다.
단숨에 독의 안개를 흩어놓으며 앞으로 나아간 에테르의 참격은, 순식간에 바실리스크의 몸통을 두 토막으로 갈라버렸다.
‘이대로라면, 죽는다.’
바실리스크의 허무한 죽음을 보고, 바리트의 공포는 더더욱 커져버렸다.
“켈룩, 켈룩, 으으. 이게 뭐랍니까. 기아스? 저 남자는 대체… 엉? 저거 유선 비서로 따라왔던 사람이잖아?”
그 때, 바리트에게 이제 막 기아스에서 풀려난 요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바리트는 자신이 이곳에서 살아나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다.
“바리트 씨? 저 남자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는 것 같은데요?”
하지만 바리트는 요엘의 말을 듣지 않고 있었다.
그는 이쪽으로 다가오는 남자에게 정신이 팔린 요엘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푸우우욱!!
“…아?”
그리고 다음 순간, 바리트의 팔뚝은 등 뒤에서 요엘의 심장을 꿰뚫은 채 가슴으로 튀어나와있었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