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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범하게 살고 싶다-54화 (54/135)

54화

평범하게 살아간다.

옛날에는 그게 무엇을 말하는 건지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것 같았지만, 지금의 나는 그 의미를 알지 못했고, 어떻게 해야 알 수 있는지 그 방법도 몰랐다.

그렇기에 나는 무작정, 일반적으로 평범하다고 여겨지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하는 행동들을 따라하고, 목표로 삼는 것을 쫓아다녔다.

괜찮은 대학을 나와서 괜찮은 직장을 구하고, 그 다음에는 괜찮은 가정을 뀔고서 안정적인 삶을 유지하면서 여유롭게 사는 것.

사실대로 말하자면, 나 자신은 그러한 삶에 진심으로 매력을 느끼지는 못했다.

그저,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장 평범하게 여기는 삶이었기에 나 또한 그것을 추구해봤을 뿐.

평범한 삶이라 여겨지는 것들을 뒤쫓으며 살아가다보면, 나도 언젠가는 평범하게 산다는 것의 의미를 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던 평범하게 산다는 것의 의미를.

하지만,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자신의 한계를 깨달았다.

다른 사람들은 저마다 지켜야할 소중한 것들을 가지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그것은 가족이었고, 누군가에게 그것은 꿈이었다.

그들의 평범한 삶에는, 그들의 평범한 일상에는 그게 무엇이든 간에 저마다의 소중한 것들이 존재했다.

그러나 나에게는 그런 게 남아있지 않았다.

지켜야할 소중한 사람은 이미 죽어버렸고, 믿고 쫓아왔던 이상은 뿌리까지 꺾여버린 상태였다.

나에게 남아있는 것은 그저 과거의 파편들 뿐이었다.

나는 그들과 같아질 수 없었다.

어느 순간, 나는 그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래도―’

크리스에게 후방의 상황에 대해 전해들은 순간, 나는 그 때 모두의 앞에서 싸워야 한다는 점을 먼저 걱정했었다.

하지만, 그래도 그와 동시에 가슴 깊은 곳에서는 또 다른 의지가 고개를 내밀었다.

그리고 나는 그 의지를 도저히 무시할 수가 없었다.

‘모두를 구해내야만 한다.’라는, 그 의지를.

그것은 이미 잊은 줄 알고 있었던, 같잖은 영웅 심리이자 싸구려 위선이었다.

나는 그 의지의 정체를 이미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억지로 애써 억누르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목숨을 걸어가면서까지 나에게 명령을 내리던 유선을 보았을 때, 나는 결국 나도 모르는 사이에 움직이고 있었다.

그녀는 기아스의 계약을 위반하면서까지 나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 명령은 내가 얼마든지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아무런 효력이 없는 명령임을 알고 있었음에도 말이다.

그녀는 어째서 그런 쓸모없는 짓을 한 것일까.

어째서 그런 무모한 짓을 한 것일까.

기아스의 부작용은 코어를 안쪽에서부터 망가트리기 시작하고, 곳곳의 에테르 회로들을 비틀어버린다.

그것은 딱히 비교할만한 다른 느낌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기묘하면서도 끔찍한 고통이었다.

게다가 그녀는 등을 베여 안 그래도 치명적인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그 상태에서 기아스가 깨졌다간, 페인이 되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그 자리에서 즉사해버릴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멈추려고 하지 않았다.

사실 그 답은 간단했다. 나 자신도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목숨을 버려서라도 지키고 싶은 게 있으니까, 그런 행동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내가 알 리가 없었지만, 그녀 역시 지키고 싶은 소중한 것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건, 그다지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딱히 특별하지는 않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고 또한 지극히 평범한 일이었다.

나는 내 자신과 그녀의 차이가 무엇인지까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나 역시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을 지키고 싶다고 생각했다.

미카엘라도, 이소연도, 유선도, 김세율도, 실습 동아리의 팀원들도.

그들 모두를 지켜내고 싶었다. 내 새로운 일상을 만들어준, 내 일상의 일부가 된 그들을.

이게 허황된 영웅 심리에서 비롯된 위선일 뿐인지, 아니면 그냥 지극히 평범한 바람일 뿐일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조금이라도 빠르게 발을 움직이기로 결심했다.

‘한 발자국 늦어서 상황은 이미 끝나버렸다―’ 같은 무기력한 상황은, 두 번 다시 느끼고 싶지 않은 경험이었기에.

“…?”

그 때, 나는 특이한 광경을 목격했다.

전방의 상황을 무시한 상태로 빌딩 하나를 넘어 후방에 거의 도착했을 때였다.

그곳에는 아직까지도 나를 괴롭히던 악몽에 등장하던,

그리고 두 번 다시는 볼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었던 광경이 펼쳐져있었다.

“…말도 안 돼.”

눈앞에 펼쳐져있는 둥근 모양의 황금빛 결계막을 바라보며, 나는 속삭이듯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 * *

“하아… 하아…….”

미카엘라는 가쁘게 숨을 몰아쉬며 시체에 박혀있던 자신의 검을 뽑아들었다.

방금 꿰뚫었던 오크의 복부에 박혀있는 검을 빼내는 느낌은 그다지 좋은 느낌이 아니었다.

오랫동안 이어진 전투로 날도 거의 다 상해있는 상태였기에, 검은 마치 톱질이라도 하는 느낌으로 뽑혀 나왔다.

“크으읏!”

그 때, 목 뒤쪽에 펼쳐뒀던 배리어가 깨져나가는 것을 감지한 미카엘라는, 그 즉시 빠르게 한 발 앞으로 내디디며 뒤로 돌아서 대각으로 올려 베었다.

“꾸이이이익!!”

방금 전까지 자신이 있던 곳을 도끼로 내리찍고서 빈틈을 드러내고 있던 오크는, 허리의 절반 정도를 검에 베인 상태로 듣기 싫은 비명소리를 내고 있었다.

“칫!”

날이 상한 탓일까, 자신이 지친 탓일까.

원래는 단번에 베어낼 생각으로 휘둘렀던 검이 도중에 막힌 것을 보고, 미카엘라는 조금 당황했다.

하지만 이내 그녀는 냉정을 되찾고, 천천히 검에 에테르를 불어넣은 다음 그 상태로 폭발시켰다.

내부에서부터 터진 폭발에 오크는 산산조각이 나서 사방에 흩뿌려졌다.

그녀의 주위에는 이미 수많은 오크들의 시체가 곳곳에 널부러져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오크의 숫자가 줄어든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자신이 곧 죽는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었고, 각오도 되어있을 터였다.

그래도 이 지나치게 부조리한 상황에, 그녀는 절망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오크들은 순서대로 돌아가며 끝도 없이 그녀를 덮쳐왔고, 결국 미카엘라는 육체와 정신의 한계에 부딪혔다.

파칵.

미카엘라의 검이 힘없이 바닥에 꽂혔고, 그녀는 그 검에 몸을 기댄 채로 서있었다.

“…취이익.”

검에 몸을 기댄 채로 고개를 숙이고서 미동도 하지 않는 미카엘라에게 오크 하나가 천천히 다가가, 그녀를 건드려 보았다.

철푸덕.

그리고 미카엘라는 오크가 건드린 방향으로 아무런 힘없이 쓰러져 바닥에 넘어졌다.

그럼에도 그녀에게서는 어떠한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하하하하!! 선 채로 기절했는가!! 과연 대단한 여기사로다!”

그 광경을 보면서, 바리트는 굉장히 즐거워하며 박수를 치고 있었다.

“무장한 오크 80기를 혼자서 쓰러트리다니. 아무리 1:1전투였다고는 하더라도 대단하지 않느냐. 안 그런가, 요엘?”

“그렇군요. 역시 레지스터 가문이라는 건가. 으음… 죽기에는 너무 아까운데.”

요엘은 진심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물론 나도 아쉽네. 이런 인재가 이리 허무하게 죽는다는 게 얼마나 슬픈 일인가.”

정작 바리트의 표정에는 아쉬운 감정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의 얼굴에는 반쯤 장난 끼가 서려있는 미소만 살짝 드리워져있을 뿐이었다.

바리트는 자신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는 오크에게 시선을 보냈다.

그 오크는 쓰러진 여기사의 옆에서 처형용 도끼마냥 거대한 배틀 액스를 들어 올린 채로 명령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절대계약의 결계 안에서 평생을 보낼 마음 같은 건 없네.”

바리트는 오른손을 내뻗었고, 옆으로 눕힌 상태에서 엄지손가락을 세웠다.

“섣부르게 절대계약 같은걸 펼쳐낸 그녀의 잘못이지. 뭐, 묵념은 해주도록 하마.”

그리고 엄지손가락을 밑으로 향했다. 죽음을 상징하는 제스쳐였다.

그걸로 여기사의 운명은 결정되었다.

오크는 들고 있던 배틀 액스를 그녀의 목을 향해 힘껏 내리 찍었다.

그 무식하게 생긴 배틀 액스에 담긴 힘은, 무방비하게 쓰러진 가녀린 여자아이의 목 정도는 단숨에 끊어내고도 남을 것이다.

그녀의 죽음은 결계가 펼쳐지는 순간 결정되어있었고, 지금 이 순간 확정되었다.

잠시 후에는 변치 않을 결과로 남게 될 것이다.

아니, 남게 될 터였다.

“멈춰라!!”

갑자기 들려온 남자의 목소리가 결계 안에 메아리치듯 울려 퍼졌다.

그 목소리는, 다급하게 외쳤음에도 불구하고 절대적인 힘을 가진 절대자의 존재가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그리고 결계 안의 모든 것들이 그 상태로 멈춰버렸다.

하고 있던 행동을 그만뒀다거나 하는 수준이 아니었다.

마치 시간이라도 정지시킨 것처럼, 말 그대로 멈춘 것이다.

있는 힘껏 밑으로 내리 찍히고 있던 배틀액스까지도 말이다.

배틀액스로 여기사의 목을 내리찍고 있던 오크는, 온 힘을 다해 내리찍고 있었던 도끼를 강제로 멈춘 상태였다.

그 덕분에 온몸의 근육들이, 특히 팔뚝의 근육들이 찢어질 것같이 고통스러웠지만 그 오크는 조금도 움직일 수가 없었고, 비명조차도 지르지 못했다.

그가 멈추라고 말했기에.

그리고 그건 여유롭게 처형식의 순간을 지켜보고 있었던 바리트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바리트는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드래곤 피어…? 아니, 이건 기아스다.’

그는 순간적으로 드래곤 피어의 가능성을 생각해봤지만, 그건 아니었다.

드래곤 피어는 기본적으로 용에 대한 공포를 기반으로 한 마법이기에, 두려움에 떨게 하거나 패닉상태로 만드는 것은 가능하더라도 이렇게 완벽하게 멈춰 세우는 것은 불가능했다.

자신의 행동을 속박하고 있는 이것은 다름 아닌 기아스였다.

코어가 위협을 받는다는 본능적인 공포에 따라, 그 역시 자기도 모르게 몸이 굳어버린 것이다.

바리트는 눈알만 겨우 돌려 눈앞의 하늘에서 천천히 내려오고 있는 남자를 바라봤다.

대체 언제, 아니, 대체 어떻게 기아스를 걸었다는 말인가.

그보다, 저 자는 어떻게 이 절대계약의 공간 안에 들어온 거지?

“크흐, 크하하하하하…….”

“닥쳐라.”

기아스를 조금씩 풀고서 이제 겨우 웃음소리를 내뱉고 있던 바리트에게, 또 하나의 기아스가 더해졌다. 바리트는 얌전히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천천히 하늘에서 내려와 쓰러진 여기사의 옆에 내려온 남자는, 복잡한 표정으로 그녀를 소중히 감싸 안았다.

그의 얼굴은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면서도 있는 힘껏 울음을 참고 있는, 모순된 얼굴이었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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