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이 변명은 지나치게 훌륭했다.
내가 그걸 왜 생각하지 못했을까.
내가 독심술을 익히고 있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저 눈빛만 봐도 지금 미카엘라가 하고 있을 생각과 앞으로 벌어질 전개에 대해서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나도 같이 갈래!!”
역시나.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였다.
“…그럴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은데.”
미카엘라는 두 눈동자에 진지함을 가득 담은 채로 말했다.
진지함과 감동, 그리고 열정이 담긴 에메랄드 빛의 맑은 눈동자.
마음에 일말의 가책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저 눈을 마주하기가 힘들 것이다.
실제로 내가 지금 그랬으니까.
“부끄러워. 다른 사람들은 까맣게 잊어버린 채 나 혼자만 살아남으려는 생각을 했다니, 여기에는 아직 각성도 못한 애들도 있을 텐데 말이야.”
‘아니. 딱히 네가 움직이지 않는다고 그 사람들이 죽는 건 아닐 텐데.’
애초에 이딴 짓거리를 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 때문이겠는가. 그 각성도 못한 녀석들을 각성시키려고 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걸 지켜주고 도와줘버리면 어떻게 하냐.
하지만 애초에 말을 꺼냈던 것은 나였기 때문에, 그 부분을 지적할 수는 없었다.
“하아…….”
“일단 출발하자. 다른 사람들도 슬슬 움직이기 시작했을 거야.”
결국 별다른 핑계는 찾아내지 못한 채, 영웅심에 불타오르는 미카엘라와 함께 순찰 구조대 비슷한 짓을 하게 되었다.
역시 사람은 말조심을 해야 한다.
세 번 생각하고 한 마디를 뱉어야한다 했던가. 옛부터 어른들 말씀은 틀리지를 않는다더니 그 말이 사실인가보다.
‘큽…….’
코어에서 느껴지는 갑작스런 통증에 잠시 멈춰 섰다.
별건 아니다. 평소에도 자주 있는 일이었다.
이렇게 유난히 예민하게 반응할 때가 종종 있을 뿐이었다.
“미스터 호, 뭐해? 슬슬 출발해야지.”
“…그래.”
날뛰려는 코어를 진정시킨 후,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로 답했다.
“그리고 몇 번이고 말하지만, 내 성은 호가 아니라 조다. 마이 라스트 네임 이즈 조. 아 유 언더 스탠?”
그리고 평소와 같은 적당한 대꾸를 하며, 앞에서 못마땅하게 이쪽을 바라보는 미카엘라를 뒤따라서 걷기 시작했다.
* * *
류환은 불가시의 마법을 걸어둔 채 나무 위에 앉아있었다.
그의 눈에는 점심식사를 하고 있는 원호와 미카엘라가 보이고 있었다. 고기를 굽는 모닥불 연기가 하늘로 피어오르고 있던 덕분에 찾기가 굉장히 편했다.
다른 녀석들이 이렇게 대놓고 불을 피우고 있으면 자살행위로 취급받았겠지만, 저 둘에게는 저 정도 자신감은 표출해도 될 만한 실력이 있었다.
실제로 고블린 몇 마리가 연기를 보고 찾아왔지만 둘을 보자마자 줄행랑을 쳤다.
‘뭐, 고블린이 도망간 건 미카엘라 때문이겠지만…….’
조원호는 평소처럼 에테르를 감추고 있었다. 그에게서는 허접할 정도의 에테르만 느껴지고 있었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그냥 풋내기 신입정도로만 보이리라. 고블린 같은 약골 몬스터도 시비를 걸기에 충분한 수준이었다.
반면 미카엘라는 자신의 기운을 감출 생각이 없는 듯했다.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녀가 평범하지 않다는 것 정도는 단번에 알 수 있는 정도였다.
사실 어딘가 켕기는 구석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저게 정상적인 모습이겠지.
“근데 저 둘이 왜 같이 있는 거지?”
류환은 아침으로 챙겨 온 편의점 샌드위치를 한 입 베어 물면서 혼잣말로 의문을 토했다.
류환은 챙겨왔던 자료를 꺼냈다. 유선의 지시로 다른 사람이 조원호를 관찰한 내용을 모아둔 자료였다.
자료를 살펴보니 원호와 미카엘라 사이에 접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저 둘은 같은 조의 조장과 조원이라는 관계가 있었다.
하지만 거기에는 ‘사이 안 좋음’이라는 말이 덧붙여 있었다.
‘한 쪽은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고, 한 쪽은 되도록 무시하고 지낸다…….’
자료를 훑어본 류환은 고개를 들어 다시 둘을 살폈다.
“야, 그거 내가 먹으려고 했던 건데.”
“내가 잡아온 거니까 나한테 선택권이 있지.”
둘은 누가 무슨 고기를 먹느냐를 놓고 한참 다투고 있었다.
“이게 더 먹음직스러워 보이지 않냐?”
“어머, 뒷면 다 태운 걸 내가 모를 줄 알았어?”
“…손질이랑 요리는 내가 다했으니까 나에게 선택권이 있지 않을까?”
“음식 태운 사람이 탄 음식을 처리할 책임이 있지 않을까?”
‘음… 아무리 봐도 사이가 나빠 보이지는 않는데.’
류환의 생각을 저 둘이 들었다면 둘 다 정색을 하면서 반박을 했으리라. 하지만 당사자들의 시점을 배제한 객관적 관점으로만 봤을 때, 저 둘의 사이는 굉장히 친밀하게 보였다.
어쩌면 저 두 사람에게는 이번 훈련이 진짜 MT가 될 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면서 류환은 자료에 덧붙여있던 ‘사이가 안 좋음’이라는 말에 엑스표를 그었다.
엑스표를 그은 류환은 자료를 덮은 후, 그걸 배게 삼으며 앉아있던 몸을 옆으로 눕혔다. 얄팍한 나뭇가지 위에 누워있었음에도 그 모습은 굉장히 편안하고 안정적으로 보였다.
점심식사는 한동안 이어질 것 같았다. 또 다른 고기가 불 위에 방금 올려진 참이었다. 그렇다면 힘주고 있다가 지치는 것보다는 자신도 이렇게 쉬고 있는 게 더 나을 것이다.
“아, 그러고 보니 오늘부터 이벤트 시작이었지.”
그 말과 함께 류환은 안쪽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X스X니 차일드. 그가 요즘 즐기는 모바일 게임이었다. 그는 휴대폰 음량을 제일 작게 줄여놓은 다음에 누워있는 상태로 게임을 하기 시작했다.
“역시 교내 근무보다는 출장이 좋구만!”
학교 안에서는 유선이 언제 나타날지 모르기 때문에 방심의 끈을 놓을 수가 없다. 근무 시간 중에 게임 같은 건 꿈속에서나 가능한 일!
하지만 여기엔 유선이 없었다. 어쩌면 이번 출장은 느긋하게 게임 이벤트나 참가하라는 하늘의 배려가 아닐까.
류환은 마음 놓고 편안하게 게임에 집중할 수 있었다.
* * *
‘눈이 하나 붙었군…….’
고기를 굽고 있던 원호는 이쪽을 바라보는 시선을 느꼈다. 곳곳에 깔려있는 주시자의 것이 아니었다. 이건 사람의 시선이었다. 하지만 시선이 느껴지는 쪽을 살펴봐도 아무것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불가시의 마법인가… 꽤나 정교한데?’
상대가 눈치 채지 못하도록 은밀하게 에테르를 흘려보내서 감지망을 펼쳐내자 그제서야 상대방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다. 그마저도 희미한 느낌이었다.
제대로 에테르를 사용한다면 정확한 위치는 물론 얼굴 생김새까지도 파악할 수 있겠지만, 그랬다가는 상대방이 눈치를 챌 것이 뻔했다. 상대의 실력은 무시할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미카엘라 이 녀석, 역시 성가시구만…!!’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자신에게는 감시가 붙을 리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의 대외적인 이미지는 약골 그 자체니까!!
주시자에 대한 감시도 여태동안 잘 피해왔다. 저번과 같은 실수가 있을 까봐 사냥과 전투는 이런저런 핑계로 모두 미카엘라에게 맡겨왔다. 자신에게 별도로 미행이 붙을 이유는 없었다. 저 정도 실력자를 붙일 일은 더더욱.
그렇다면 답은 하나, 엘리트이자 가장 빛나는 신입생인 미카엘라를 지켜보기 위해서, 혹은 보호하기 위해서 사람을 붙여놓은 것이다.
역시 이 녀석이랑 같이 있으면 좋은 일이 없다.
‘아, 탔다.’
뭔가를 구우면서 자주 딴청을 피우는 사람이라면 한 번씩은 느껴봤을 감각.
딴 생각에 지나치게 빠져 있다가 고기를 불 위에 올려놨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오랫동안 방치해두고 있었다.
뒤늦게 그 사실을 깨닫고서 고기를 살펴봤지만 아니나 다를까, 불에 가깝게 놓여있던 고기 의 한쪽 면이 새까맣게 변해있었다.
‘음…….’
“미카엘라, 앞으로는 어떻게 움직일 생각이야?”
“음, 글쎄…….”
미카엘라는 옆에 있던 나뭇가지를 주워들었다.
“일단은 이렇게 움직이려고 하는데.”
미카엘라는 주워들은 나뭇가지로 바닥에 원을 그리며 설명을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그 틈을 타 잽싸게 고기의 탄 부분을 미카엘라가 볼 수 없는 쪽으로 돌려놓았다. 좋아, 목표는 달성했다.
“이런 식으로 움직이는 게 우리 목적에 가장 적합하지 않을까.”
“뭐?? 진심이냐??”
단지 시선을 끌기 위해서 던졌던 질문이었지만, 그녀가 그려놓은 경로는 내가 대꾸를 하지 않을 수 없는 경로였다.
미카엘라가 그려놓은 경로는 원 안을 꼼꼼하게 메꾸는 회오리 모양이었다.
아니, 이건 꼼꼼함을 떠나서 촘촘한 수준이 아닌가.
“…이렇게 돌다간 한 달 뒤에나 집에 갈 수 있겠는데?”
“그래? 좀 빨리 걸으면 되지 않을까?”
아니, 산에서 마라톤이라도 할 생각이세요?
하지만 그녀는 내가 한참을 반대해도 말을 듣지 않았다.
그렇다고 내가 마라톤을 할 생각은 없었기에 난 세 가지 이유를 들어가며 그녀에게 반대했다.
이미 목적지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해서 외곽을 돌아봤자 비효율적이다,
이 훈련 자체가 일정 기간으로 제한되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상태가 영 좋지 않은 낙오자들은 관리자들이 따로 챙길 것이다.
이 장황한 설명을 듣고 나서야 그녀의 마음을 바꿔놓을 수 있었다.
그래봤자 촘촘했던 회오리가 달팽이 껍질 수준으로 바뀌었을 뿐이었지만.
그리고 미카엘라는 고기 하나가 복구할 수 없을 정도로 타버렸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탄 고기는 태운 사람이 책임져야한다는 그녀의 논리를 깨트리지 못해, 결국 내가 탄 고기를 먹게 되면서 내 계획은 다시 한 번 물거품이 되었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