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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범하게 살고 싶다-7화 (7/135)

7화

“안녕, 미스터 호. 좋은 아침… 은 아닌 것 같고, 반갑네.”

“아… 그, 그래. 나도 반갑네.”

언덕 위의 미카엘라는 이쪽으로 손을 흔들며 아침 인사를 건넸다.

어떡하지? 되도 않는 설명을 해야 하나? 아니면 도망쳐야 되나?

설명은 말이 좋아 설명이자 십중팔구 뽀록날 변명에 불과하고, 도망치는 것은 시간을 조금 늦출 뿐이었다. 오히려 다른 사람 귀에도 들어가 돌이킬 수 없게 되버릴 수도 있었다.

‘나는 대체 왜 정신계 마법을 배워두지 않은 걸까…!!’

아니, 어차피 기억에 간섭하는 수준의 마법을 사용하면 주시자들 때문에 또 다른 문제가 생겨났을 것이다. 결국은 똑같았다.

다행인 것은, 일단 미카엘라는 언덕 위에 있었고, 언덕은 꽤나 경사가 가팔라서 바로 내려오는 것은 무리라는 것이다. 여기까지 내려오려면 저 쪽으로 빙 돌아서 와야 할 것이다.

‘그래도 잠시 고민할 시간은 충분히… 있…….’

그 때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던 미카엘라의 두 발이 은은한 황금빛으로 둘러싸였다. 그녀의 에테르는 황금빛이었다.

‘겠네…?’

준비를 마친 미카엘라는, 언덕을 살짝 뛰어내리더니, 조금씩 미끄러져 내리며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망했잖아!!’

속도는 조금 느렸지만 그래도 최단거리였다. 내가 생각했던 여유시간은 단숨에 초단위로 줄어들어버렸다.

하지만 이렇게 상황이 급박하게 흘러버리자, 머리는 오히려 냉정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일단 지금 상황부터.’

자기 앞에 있는 건 고블린 세 마리.

그것자체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고블린은 민간인한테도 맞아죽었다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려올 정도로 약한 몬스터였다.

아무리 이제 막 각성한 풋내기 에스퍼라고 해도, 고블린 세 마리 정도는 정신만 차리면 충분히 이길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내가 지나치게 깔끔하게 죽였다는 것. 무기도 없는 맨 손으로 말이다.

한 명은 깔끔하게 목이 떨어져 나가있었고, 나머지 둘은 최소한 절제된 공격으로 급소만을 노렸다.

심지어 몸에는 피 한 방울 묻히지도 않았다.

‘엉? 몸에 피 한 방울 묻지 않아?’

갑자기 길이 열리는 느낌이었다.

그렇다, 나에게는 고블린의 피가 한 방울도 묻어있지 않았다!!

게다가 나는 무기도 없이 맨손으로 처리했다. 저 깔끔한 절단면을 봤을 때, 누가 맨손으로 처리한 흔적이라고 생각하겠는가.

나에게는 살해의 흔적이 조금도 남아있지 않았다.

즉, 이 고블린들을 처치한 것은 나라고 보기가 힘들었다.

그렇다면,

나는 어젯밤 동굴에서 잠을 잤고,

아침햇빛에 기분 좋게 일어나 밖으로 나왔더니,

나온 순간 이미 죽어있던 고블린들의 시체를 보고 깜짝 놀랐다,

와, 대체 누가 이랬을까, 라는 스토리.

나쁘지 않았다.

좋아, 채용.

0.1초 단위로 급박하게 돌아가던 나의 두뇌가 결말을 내놓았을 때, 때마침 미카엘라도 언덕을 다 내려와 내 앞에서 멈춰 섰다.

“이, 이야~ 이것 봐, 미카엘라!! 고블린이야!!”

됐다. 자연스러웠어. 흠잡을 구석을 찾기 힘든 연기였다.

하지만 미카엘라는 그런 나를 묘한 눈빛으로, 마치 못 볼 걸 봤다는 듯한 눈빛으로 쳐다보고서 나를 지나갔다. 음, 반응이 오묘하군.

그리고 그녀는 고블린 시체 앞에서 한 쪽 무릎을 꿇고 앉더니, 시체 하나하나를 천천히 살펴봤다.

“와, 어떻게 하면 이렇게 깔끔하게 갈라놓을 수가 있지?”

“그, 그러게 말이야. 하하, 프로 헌터들이라도 왔다 간 건가?”

“그것도 맨손으로.”

“그러게, 맨손으로…….”

맨손으로?

“아니, 아니지. 이게 어떻게 맨손으로 가른 거야. 당연히 날붙이로…….”

“뭔 소리야. 본인이 해놓고선.”

“…….”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내가 짜낸 대책은 지극히 근시안 적이고 멍청한 생각이었음을.

‘아우… 이런 병신같은 놈아…….’

내가 지어낸 변명은 그녀가 일이 끝난 후에 도착했다는 가정 하에만 유효했다. 만약 그녀가 중간과정부터 봤다면 통할 수가 없는 변명이었다.

이런 지극히 간단하고 당연한 사실을 왜 이제야 떠올렸을까.

냉정하게 돌아가는 줄 알았는데, 사실은 그냥 폭주하고 있었을 뿐이었나.

“미카엘라, 별 의미는 없는 질문인데, 언제부터 보고 있었어?”

“꽤 됐지?”

“그 꽤가 언제부터냐고.”

“고블린 세 마리가 왜 여기서 얼쩡대고 있나, 했을 때부터?”

이런 젠장.

그녀가 말하는 내용은 나도 모르는 프롤로그에 해당되는 부분이었다.

핏자국이고 맨손이고 나발이고 이미 다 들통이 나있는 상황이었다.

“야이, 씨! 있으면 있다고 말을 해줘야 될 것 아니야!”

“아, 갑자기 소리는 지르고 난리야.”

어린애 투정 같은 화풀이가 저절로 튀어나왔다.

이에 미카엘라는 표정을 찡그리며 말했다.

“나도 처음에는 도와주려고 했었지. 근데 네가 너무 태평해 보이더라?”

그녀는 고블린을 발견한 후, 혹시 모르니 처리해둘지, 아니면 에테르를 아낄지 고민을 하면서 잠시 쉬고 있었다고 한다.

그 때 동굴에서 내가 나타나자 고블린들이 나에게 달려들었고, 바닥에 앉아있던 그녀는 나를 돕기 위해 다급하게 일어났다.

하지만 고블린들을 마주하는 나의 모습에서 두려움이나 공포는 조금도 찾을 수 없었고, 그 때문에 잠시 멈칫한 사이에 이미 상황은 끝나있었다고 한다.

“뭐, 상당히 훌륭한 움직임이었어. 훈련장에는 안 나와도 개인훈련은 계속 하고 있나봐?”

그녀는 보기 드문 미소를 지으며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도 훈련장에는 나와. 혼자 하는 거랑 다 같이 하는 건 다르니까. 팀워크가 필요하다고, 팀워크.”

‘뭐지, 이 반응은.’

내가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반응이었다.

‘허억, 저리 꺼져, 이 괴물!!’

같이 주인공에게 트라우마를 남기는 전개나,

‘귀인을 몰라 뵈었습니다!’

같은 무협지 전개까지는 아니더라도,

뭔가 어색한 분위기가 감돌면서, 두려움과 놀라움이 반씩 담긴 시선을 받게 될 것이라 생각했는데, 미카엘라는 조금 호의적으로 보인다는 것만 빼면 그냥 평소와 같았다.

“…야, 뭐 할 말 없냐?”

“할 말? 무슨 할 말?”

“그러니까… 뭐 신기하다던가, 왜 이렇게 강하냐던가…….”

“…네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는데?”

몸을 일으킨 그녀는, 어딘가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 앞에는 허벅지 두께 정도 되는 나무가 한 그루 서있었다.

나무 앞에 선 그녀의 오른손이 황금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단 일격에 나무는 절단되어 요란한 소리와 함께 쓰러졌다.

“다른 애들은 몰라도, 나나 너 정도면 다 할 수 있는 거잖아?”

미카엘라는 오른손을 살짝 털어내면서 그렇게 말했다.

“뭐 솔직히 여태 보아온 네 평소 모습이 있으니까 조금 의외이긴 했는데, 놀랄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해.”

“아…….”

잊고 있었다.

이 녀석은 진정한 엘리트였다는 것을!!

그녀에게 저 정도는 당연히 할 수 있는 수준에 불과했던 것이다.

여태동안 고민하던 내 모습이 우습게 느껴졌다.

“야, 솔직히 말해봐. 너 친구 없지?”

그녀는 비록 간단하게 해냈다만, 저건 단순한 신체강화가 아니라 에테르를 형상화시키는 것이었다. 손을 강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손에 에테르로 만들어진 작은 검을 씌우는 것이다.

비슷해보이지만 이 둘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단순한 기술이라고도 할 수 있었지만 에테르에 대한 감각과 이해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아무리 에테르가 많더라도 재능이 없다면 도달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무협지의 검기와 비슷한 개념이랄까.

하지만 정작 그녀는 그게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하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상당히 재수없게 보였다.

내가 봐도 재수 없게 보이는 마당에, 다른 녀석들이 보면 얼마나 짜증나고 열등감이 느껴질 것인가.

“뭐? 아, 아니거든??”

말은 부정이었지만 당황하는 꼬라지는 긍정을 말하고 있었다.

“그, 그러는 너도 친구 없잖아!”

“아니, 난 일부러 피하는 건데…….”

“그럼 나도 일부러 피하는 거거든!!”

“아, 그러시겠죠. 알겠습니다.”

평소에 혼자 다니는 이유가 있었구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주변에서 잡은 토끼로 아침식사를 마친 우리는 그녀의 제안으로 서로 가진 정보를 공유하기로 했다.

“일단 종합해서 정리해보자. 이 나침반이 가리키는 곳이 도착 지점이고, 학생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져있어. 그리고 주변에는 몬스터들이 돌아다니고 있지.”

그녀는 나뭇가지로 바닥에 동그란 원을 그리고, 가운데에 점 하나를 찍었다.

“내가 어제 확인한 부분은 그리 넓지 않지만, 저 결계가 원모양으로 둘러져있는 건 확실해. 그렇다면 일반적으로 목적지는 이 가운데 지점이겠지.”

미카엘라는 어제 이곳으로 소환되었을 때, 나침반의 반대방향으로 걸어가 이 공간이 제한된 공간이며, 그 둘레를 따라 결계가 쳐져있는 것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어쩐지 미카엘라의 눈이 좀 퀭하다 싶었는데, 밤을 새운 야간산행의 결과였나보다.

“근데 넌 왜 반대방향으로 걸어가고 난리냐? 사춘기?”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는데 무턱대고 그걸 따라가? 일단 이 주변 지형이 어떤 지라도 파악해둬야지.”

그녀는 약간의 한심함을 담은 눈빛으로 이쪽을 쳐다봤다. 음, 이미 익숙해진 눈빛이다.

“결론을 말하자면, 여긴 일종의 훈련시설인 것 같아. 아마 신입생 특훈 같은 거겠지. 뭐, 사실 나침반 뒤만 봐도 알 수 있는 거고.”

나침반 뒷면에는 <24년도 신입생 MT> 라고 적혀 있었다.

MT는 멤버십 트레이닝으로 알고 있었는데, 내가 모르는 사이에 뜻이라도 바뀐 것일까. 이건 MT라기보다는 ST(서바이벌 트레이닝)에 가깝지 않은가.

“그래서 미카엘라, 넌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어떻게고 자시고, 목적지가 주여졌으니 당연히 목적지로 향해야지.”

바닥에 그려진 원 가운데를 나뭇가지로 짚으면서 미카엘라가 말했다.

“이렇게 만났으니, 같이 동행하기로 하자. 어때?”

올 게 왔다.

목적지는 하나였고 따라서 서로의 목적지도 같으니, 저 녀석 성격이면 당연히 이런 제안을 할 것이라 생각했다.

미카엘라는 우수했다. 저 녀석과 동행하면 내가 얻을 귀찮음과 스트레스를 떠나서 목적지에 상당히 빠른 속도로 도착할 게 뻔했다. 상위 성적을 얻어버린다.

게다가 과 내 최고 유명인인 미카엘라와 함께 도착. 쓸데없는 관심들이 집중될 포인트가 많아도 너무 많았다.

하지만 나에게는 저 녀석도 납득시킬만한 그럴듯하고 훌륭한 변명거리가 있었다.

“아니, 난 목적지로 가지 않겠어.”

“뭐?”

그녀는 약간 당황한 기색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면 뭐, 결계라도 뚫고서 돌아가게?”

“그런 건 아니야. 하지만 내가 목적지로 향하는 건 나중이다.”

나는 최대한 진지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나는 혹시 낙오되는 사람이 있지는 않은지 둘러보다가 목적지에 가겠어.”

그래, 이 변명에는 이유, 명분, 목적이 모두 분명하고 타당했다. 특히 평소에 약간 기사도 정신 비슷한 것을 갖고 사는 미카엘라에게는 충분한 변명이었다.

이대로 나는 미카엘라에게서 떨어져 나와, 주시자들을 피해 다니며 적당히 지내다가 골인하면 해피엔딩인 것이다.

하지만.

“…미카엘라?”

미카엘라는 감동한 눈빛으로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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