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화 복면 멍구의 활약
[최만근]
레벨: 32
마력: CC
힘: B
맷집: B
속도: B
이것이 최만근의 상태창이었다.
‘눈’으로 확인하던 최형권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업계 탑 티어인 홍태진과 백진섭도 처음 상태창이 이 정도에는 못 미쳤다.
그가 아는 한 가장 높은 초기 상태창일 것이다.
아무런 훈련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이 정도 힘을 가졌다니.
“저, 선생님께서는 원래 무슨 일을 하셨나요?”
“딱히 아무 일도 안 했습니다.”
“이거 참 놀랍군요. 이런 상태창을 보유하고 계셨으면서 그동안 두각을 드러내지 않으시다니.”
인터넷에 떠도는 헌터들의 상태창을 보면 처음에는 대부분 F와 E 랭크로 시작한다고 했다.
그리고 다년 간의 수련을 겪어야 바로소 C 랭크에 근접할 수 있다고 들었다.
강철남에게 소원을 빌어 숨어 있던 잠재 파워를 모조리 끌어올린 힘.
최만근 본인도 이 정도 힘을 가지고 있을 거라곤 꿈에도 몰랐다.
“선생님은 대단한 힘을 가지셨습니다. 헌터 협회에 등록하여 정식 헌터로서 활동해주신다면 인류에 큰 힘이 될 겁니다.”
최형권은 들뜬 목소리로 회유했다.
아무런 트레이닝을 받지 않은 일반인이 이 정도 힘을 가졌다.
만약 단련을 한다면 얼마나 더 강해질 것인가.
이런 인재를 놓친다는 건 직무유기이자 인류의 실수일 것이다.
비록 헌터들의 수요가 예전에 비하면 적긴 하여도 훌륭한 인재가 헌터가 되어준다는 건 분명 든든한 일이다.
“저도 꿈이 헌터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부디 가입하고 싶습니다.”
“좋습니다!”
최형권은 서둘러 인사과로 전화를 연결해 헌터 등록 절차를 준비하도록 했다.
직원의 안내를 따라 최만근은 정식 헌터로서 계약을 마치고 장비도 지급 받았다.
“저, 지금부터 저는 어떻게 되나요?”
장비를 받고 최만근인 아직 감이 안 잡혀 직원에게 물었다.
“4주간의 기초 훈련을 거치고 각 지방의 헌터 본부로 배정될 겁니다. 하지만…….”
“하지만?”
“최형권 감별사님의 특별 추천서가 있으니 바로 서울에서 근무하시게 될 겁니다.”
“그 추천서가 그렇게 대단한 건가요?”
“그럼요. 여태 그 추천서를 받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으니까요.”
직원도 최만근을 마치 대단한 사람을 우러러 보듯 대했다.
이런 대접이 처음이라 얼떨떨하던 최만근은 그렇게 헌터 훈련소로 입소하게 되었다.
* * *
즐겁던 희망 테마파크에서의 소풍도 잘 다녀왔고 민하는 다시 평범한 초등학생의 삶으로 돌아왔다.
늘 그러하듯 엄마, 아빠, 멍구에게 인사를 하고 집을 나섰다.
시원한 가을 바람을 맞으며 교문 앞에 다 와 갈 무렵, 한율을 만났다.
가만히 벽에 기대어 신발 앞코를 바닥에 톡톡 두드리고 있는 것이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듯 보였다.
“한율아.”
“민하. 왜 이렇게 늦게 와.”
“혹시 나 기다렸어?”
“당연하지. 오늘부터 스파이 작전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테니까.”
“스파이 작전?”
민하는 고개를 갸웃했다.
스파이 작전이라는 게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의가양양한 한율의 표정을 보아하니 뭔가 대단해 보였다.
“민하. 너희 가족의 임무는 인간이 마족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아보는 거라고 했지?”
“응, 맞아.”
“그러면 아이들에게 직접 물어보면 되겠지.”
“아이들에게는 이미 다 물어봤는걸.”
“…….”
한율은 뻘쭘한 듯 침묵만 지켰다.
“설마 작전이라는 게 그거였어?”
“아, 아니! 설마 그뿐이겠어? 하하하. 그래! 앙케이트야! 설문조사를 해보면 되잖아!”
당황한 듯 한율의 목소리가 커졌다.
민하는 앙케이트가 뭔지 몰라 또 갸웃했다.
“으이그. 그러니까 지나가는 사람들한테 물어보는 거야. 마족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라고.”
“사람들이 대답해줄까?”
“걱정하지 마. 이렇게 귀여운 내가 붙잡고 물어보면 누군들 대답 안 해 주겠어?”
한율은 고개를 바짝 쳐들고 당당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감이 넘치는지 한율의 표정에는 불안감이라곤 보이지 않았다.
“그래, 좋아! 한율이 너만 믿을게.”
“그리고 큰일을 하려면 돈이 필요한 법. 내가 가진 용돈을 전부 가져왔어.”
한율은 동전 지갑을 꺼내어 묵직하다는 걸 보여주려 흔들었다.
“한율아, 괜찮겠어?”
“흥. 세계 평화를 위해서인데 이 정도야. 그나저나 민하 넌 얼마나 가지고 있어?”
아빠가 마황제이고 엄마가 마왕인 민하는 두둑하다 못해 터질 듯한 지갑을 꺼내보였다.
“너… 다이아 수저였구나…….”
한율은 짤랑짤랑 동전 소리가 나는 지갑을 가방에 넣어버렸다.
그리고 마침내 방과 후.
민하와 한율은 사람들이 많이 오고 가는 시내 중심에 자리를 잡았다.
문방구에서 산 커다란 도화지에 색연필로 알록달록하게 질문을 적어서 세워두었다.
[마족을 좋아하는 이유, 좋아하지 않는 이유를 적어주세요♡]
그리고 교무실에서 잔뜩 얻어온 종이를 오려 메모지 크기로 만들었다.
크고 튼튼한 음료수 박스에 구멍을 뚫어 메모지를 담을 상자를 만들었다.
조잡해 보였지만 어린아이들의 순수한 마음이 드러나 보이는 이 작품들은 오히려 행인들의 이목을 끌었다.
“마족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앙케이트를 조사하고 있어요. 참여해주시면 감사할 거예요.”
“1분만 시간을 내어주세요.”
민하와 한율이 본격적으로 사람들을 불러모으기 시작했다.
한율은 자기가 환하게 웃어 주면 사람들이 홀린 듯 끌려올 거라 생각하고 방긋방긋 웃음을 흘렸다.
하지만,
“앗! 감사합니다!”
별 노력을 하지도 않는 민하 쪽으로 사람들이 우르르 몰렸다.
한율이 심통이 난 표정으로 민하를 노려보자 민하는 오히려 한율을 보고 싱긋 웃어 주었다.
그 미소를 보자니 한율은 왜 사람들이 그쪽으로 이끌리는지 알 것 같았다.
“정말 치사하다니까.”
저녁은 깊어갔고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가고 있었다.
어두워지기 전에 돌아가야 하니 이제 정리를 해야할 때다.
많은 사람이 앙케이트에 참여해 준 덕분에 메모를 담은 상자는 묵직했다.
“한율아, 오늘은 정말 고마웠어.”
“역시 동료가 있으니까 좋지?”
“완전 좋아!”
민하는 한율을 꽈악 끌어안았다.
“그럼 돌아가서 메모 내용 확인해봐. 어떤 결과가 나왔는지 톡으로 알려주고.”
“그래!”
민하는 집으로 돌아와 앙케이트 결과가 담긴 박스를 엄마에게 보여주었다.
“이게 뭐니?”
“히히히. 앙케이트! 사람들이 마족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조사해왔어!”
가이아는 민하의 이야기를 듣고 기특하여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철남, 멍구. 오늘 민하가 대견한 일을 해왔다.”
희망 테마파크에서 순찰을 마치고 돌아온 둘.
가이아의 말을 듣고 민하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민하 대단한데?”
“정말 잘했어.”
“에헤헤.”
민하는 기분 좋게 웃으며 상자를 뜯었다.
그러자 안에서는 수북한 메모가 흘러넘쳤다.
강철남은 기대되는 한편 걱정도 되었다.
익명에 기댄 인간들의 마음이 혹여나 냉혹하지는 않을까 우려가 되었기 때문이다.
“우와, 마족에 대해 좋게 생각한대요! 난치병에 힘겨워하는 환자들을 치료해준 걸 고맙게 생각한대요.”
“여기에도 의료 봉사에 감명 깊었다는 이야기가 적혀 있구나. 이게 다 민하 덕분이야.”
확인해본 몇몇 메모는 다행히 좋은 내용이 적혀 있었다.
하지만 모든 내용이 좋을 수는 없는 법.
당연히 안 좋은 의견도 있었다.
“우으… 언제 돌변해서 인간을 덮칠지 몰라 무섭대요.”
“아무리 노력해봐도 치열하게 다투었던 몇 년 전이 떠올라 불안하다고 하는구나.”
역시 과거는 지울 수 없는 법.
역사가 무겁고 어두웠던 만큼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도 험난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철남이, 무슨 수가 없을까?”
강철남은 생각에 잠겼다.
희망 테마파크로 인간계와 마계의 교류는 원활히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심력을 다루는 인간들이 마계로 넘어와 맛 좋은 인간계 특산품을 만들어내고 있으며 인간계에는 마계의 식물을 개량 재배하여 수목은 물론이고 농경지마저 개발하고 있다.
인간과 마족은 충분히 긍정적인 교류를 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마족이란 인간들에게 두려운 존재.
그렇다면,
“마족들이 인간의 구세주가 되면 되겠군.”
“뭐?”
“범죄자를 잡는 마족 특채 경찰 제도를 실시하겠다.”
세상이 평화로 접어들자 인간들 사이에서 또다시 범죄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증오 범죄, 혐오 범죄.
도저히 같은 인간이 인간에게 저지를 수 없는 못된 사건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인간들 사이에서도 용서할 수 없는 중범죄자들.
그들을 잡는데 마족들이 힘을 보태어주면 마족은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조력자로 이미지를 탈피할 수 있지 않을까.
“좋은 생각인 것 같다.”
“나도 인정.”
“마족 경찰이라니. 멋져요!”
강철남이 낸 의견에 가이아도 민하도 멍구도 찬성의 뜻을 보내주었다.
그렇다면 망설일 이유가 있겠나.
곧바로 실행이다.
* * *
어두운 골목길.
한 남자가 바닥에 입을 맞추고 어깨 관절이 뒤틀려있다.
“아! 아! 아!”
“닥쳐, 이 범죄자 새끼야!”
남자의 팔을 능숙하게 꺾고 있는 것은 바로 눈에 복면을 두른 개 한 마리.
“이 몸의 이름은 복면 멍구다. 마족 경찰대의 일원이지. 너희 같은 썩어빠진 인간들의 정신머리를 참교육해주러 마계에서 왔도다.”
“씨X! 왜 마족이 인간들 문제에 끼어들고 난리야?”
“범죄자의 별 개 같은 논리로군. 자기 잘못은 인정 안 하고 처벌자를 비난하는 건가. 에라이 개만도 못한 새끼!”
멍구는 앞발로 남자의 뒤통수를 거듭 후려갈겼다.
남자는 골목길에서 흉기를 들고 혼자 걸어가는 여성을 위협하고 있었고 마침 멍구가 현장을 덮친 것이었다.
“고, 고마워요.”
“별 거 아니야.”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은 여자는 힘겹게 일어나며 멍구에게 감사를 표했다.
“경찰에 전화해. 보다시피 내가 개라 전화기가 없어.”
“네. 물론이에요.”
“그리고…….”
“네?”
“싸움 좀 하냐?”
“…전혀요.”
“물러 터졌구만.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데 자기 몸 하나 지킬 줄 몰라서야 되겠나? 물론 나쁜 짓 하는 놈들이 잘못이긴 하지만 욕한다고 그런 나쁜 놈들이 사라지진 않는다. 여차할 때 자기를 방어하는 수단을 익혀야 한다.”
“아, 네!”
“당장 내일부터 가방에는 전기 충격기를 넣고 다니고 주짓수 도장에 등록하도록 해라.”
“그, 그럴게요.”
“그리고 인터넷에 마족 경찰대가 도와줬다고 시끄럽게 도배를 하도록 하거라!”
“네, 네. 알겠어요.”
“이 복면 멍구의 이름도 잊지 말고!”
“넵!”
여자는 뭔가에 홀린 듯 멍구의 말에 대답하고 있었다.
마침 경찰이 도착했고 멍구는 높이 도약하여 순식간에 사라졌다.
다음 날, 복면 멍구에 대한 기사가 뉴스를 뜨겁게 달구었다.
하룻밤 사이에 다섯 건의 범죄를 예방한 의인, 아니 의견으로 화제의 중심이 된 것이다.
언론은 앞다투어 복면 멍구의 정체를 찾아 헤맸고 기자들은 복면 멍구를 찾기 전까지 사무실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헌터 연합의 서필도는 뉴스를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소파에 앉아 커피를 홀짝이는 강철남을 향해 말했다.
“이겁니까? 강철남씨가 제안한 마족 경찰대라는 프로젝트가?”
“그렇소. 말하자면 나쁜 놈들 잡는 히어로라고나 할까.”
“물론 대원들을 더 뽑으실 예정이죠? 멍구야 검증된 개라 인정할 수는 있지만 실력과 성향이 검증된 마족이 있습니까?”
“그건 면접을 통해 차차 모집할 생각이라오. 우리 쪽에서 부탁하고 싶은 건 헌터 중에서 마족 경찰대와 함께 일할 인재가 필요하다는 것이오.”
그 말에 서필도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지 않아도 훌륭한 인재가 들어와서 말이오. 내가 얼굴 좀 보자고 불렀는데 마침 잘 되었군요. 곧 마계 수송단을 통해 이곳으로 올 것이오.”
똑똑똑―
“제때에 온 것 같군요.”
마침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문이 열리고 방문자가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