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화 하극상 한번 해봅시다
선공을 시작한 건 자칼의 도적단원들이었다.
놈들은 위협적인 표정을 지으며 저마다 개성적인 무기를 들고 달려들었다.
손에 꽉 쥔 것들은 손도끼, 망치, 클로, 중식도 등 무기라기보다는 연장에 가까운 도구들이었다.
“얘네들 재밌네.”
이에 질 새라 슈발 보물 사냥꾼들도 마주 달려들기 시작하는데.
반면에 그들의 무기는 칼과 창, 화살과 같은 제대로 갖춘 무기였다.
농기구와 창칼의 싸움.
템발로 싸우면 당연히 슈발 보물 사냥꾼들이 유리해 보였으나,
“으아악!!”
무기가 제대로 된 것이건 어떻건 상관없이 전투력에서 압도적인 차이가 나고 있었다.
자칼 도적단은 압도적인 실력으로 슈발 보물 사냥꾼들을 탈탈 털어버리고 있었다.
슈발은 보물 탐사를 목적으로 꾸려진 팀인 반면, 자칼 도적단은 살육을 위해 조직된 팀 같았다.
이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자니 멍구는 속에서 열불이 올라왔다.
“아니, 이 답답이 새끼들이 뭐 하는 거야?”
자기를 개무시한 자칼이 싸움에서 우세하고 있자 멍구는 속이 뒤틀리고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이 약해 빠진 녀석들! 출입 금지 구역에 들어온 네놈들의 근성은 겨우 그 정도냐?”
멍구는 슈발 보물 사냥꾼들에게 욕을 한 바가지로 끼얹으며 채근해봤지만 얻어 맞기만 할 뿐, 도저히 상대가 안 되고 있었다.
“에잇! 못 미더운 녀석들!”
참다못해 전장에 뛰어든 멍구.
직접 나서서 자칼 도적단원들의 대가리를 앞발로 때려잡기 시작했다.
그때 자칼 도적단의 마법사들이 멍구의 앞을 가로막았다.
[마인 소환]
주변의 얼음을 이용해 얼음 마인을 소환해내는 기술로 하나당 S 랭크는 족히 넘는 얼음 마인이 20마리 나타난 것이다.
한 마리마저 위협적인데 20마리라니.
“대장님, 저건!”
“이런, 위험하겠어! 후퇴!”
슈바는 위기를 느끼고 대원들을 모조리 뒤로 물렸다.
그 기세를 놓치지 않고 얼음 마인들은 무섭게 달려오기 시작했다.
“이 쫄보 새끼들. 다 꺼져. 내가 처리할테니.”
[신수의 빛]
슈바의 뒤통수를 밟고 펄쩍 뛰어오른 멍구.
입에서 도력 광선을 뿜어내 얼음 마인들을 모조리 녹여버렸다.
[빙결탄]
[얼음 화살]
[고드름 낙하]
마법사들은 얼음 마인들이 순식간에 녹아버리자 당황하여 닥치는 대로 공격 마법을 퍼부었다.
동굴이 뒤흔들 정도로 마력이 넘실거려 넘쳐났다.
[포효]
하지만 멍구가 크게 한번 짖자 그 진공파에 마법은 무력화되고 뒤쪽까지 전해지는 충격에 마법사들의 뼈가 으스러지고 말았다.
그때,
“역시 썩어도 준치라고 마왕은 마왕인가 보군.”
[광속]
멍구가 공격의 딜레이로 멈칫 한 사이 자칼이 멍구의 뒤를 잡았다.
“죽어라!”
날카롭게 멍구의 척추를 향해 기습 찌르기를 날리는 자칼.
하지만,
태앵―!
꼬리로 간단히 자칼의 샴쉬르를 막아 버리는 멍구였다.
“이 여우년이 치사하게 꼼수나 부려? 그거 알아? 내가 천년 만 년 먹고 놀아도 너는 절대 나 못 이겨.”
칼 손잡이를 쥔 자칼의 손목이 부들부들 떨렸다.
“젠장, 무슨 힘이!”
와작―!
결국 자칼의 샴쉬르가 부러지고 말았다.
멍구는 폴짝 뛰어올라 동굴 천장을 발로 딛고 뻥 찼다.
수직 낙하하는 멍구가 머리에 신력을 담고는,
[뚝배기 to 뚝배기]
콰앙!!
자기 머리통으로 자칼의 머리통을 냅다 박아버렸다.
당연히 자칼의 두개골은 완전 가루가 되어 버렸고 그대로 혀를 축 늘어뜨리고 쓰러져버리고 말았다.
“후우, 몸풀기도 안 되는군. 야, 너구리.”
“네, 네! 멍구님.”
압도적으로 강한 멍구의 실력을 목도하고 바짝 얼어버린 슈발.
부하 대원들이 보고 있음에도 체면도 잊은 채 군기가 바짝 든 모습으로 차려 자세를 취했다.
“네 생각엔 여기에 뭔가 있는 것 같냐?”
이곳을 향해 몰려드는 보물 사냥꾼들의 감을 간과할 수 없었던 멍구는 직설적으로 물어봤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런 것 같습니다.”
“하 씨. 여기에 뭐 놔두라는 얘기는 한 적이 없는데. 대체 뭐야?”
멍구도 이해가 안 되었다.
정말 아무것도 숨긴 것이 없기 때문이다.
대체 이 설산 동굴에는 무슨 비밀이 있는 걸까.
* * *
한편 한율과 민하는 말없이 걷다가 반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친구들은 남은 시간 동안 보물찾기는 포기했는지 웃고 떠들며 천진난만하게 놀고 있었다.
“한율아, 우리도 가서 놀자.”
용기를 낸 민하가 먼저 한율에게 말을 걸었다.
하지만 한율은,
“나 잠시 화장실.”
그러고는 민하를 두고 숲길로 빠져나가는 것이었다.
여전히 자기를 무서워하나 싶어 시무룩해진 민하였다.
오해를 풀고 싶었지만 자기와 떨어져 있고 싶어 하는 한율을 따라갈 수는 없었다.
한율은 자리를 벗어나 큰 나무에 기대었다.
아까 봤던 그 무시무시한 장면이 잊히지 않았다.
그 작고 귀여운 민하가 무시무시한 오우거들을 단숨에 날려버리고 강철 골렘까지 주먹으로 때려 부수었다.
가장 친한 친구 민하는 마족인 걸까.
“내가 왜 이러지.”
한율은 이제껏 마족에 관해 편견이 없다고 생각했건만 가장 믿고 의지하는 절친의 정체가 마족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머리가 혼란스러워졌다.
머리가 어질어질해 나무에 등을 기댄 채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
그때,
“어?”
뭔가가 한율의 어깨를 콕콕 찌르는 것이었다.
설마 민하가 따라온 걸까.
“미안하지만 지금은 얘기할 기분이 아니야.”
콕콕―
“아이 참. 그럴 기분이 아니래두.”
콕콕―
“야! 사람이 이렇게까지 말했으면 눈치껏 물러나야 하는 거 아니니?!”
한율은 버럭 소리를 지르며 몸을 돌렸다.
그런데 보이는 것은 민하가 아니라,
“공룡?!”
풀을 뜯어 먹는 목이 긴 아파토사우르스가 머리를 들이밀고 한율의 어깨를 콕콕 찌르는 것이었다.
“너, 왜 이래?”
콕콕―
“설마 나 위로해 주는 거니?”
한율은 맑은 호수 같은 아파토사우르스의 눈을 들여다보니 한결 마음이 차분해졌다.
“그래, 고마워. 위로해줘서. 난 이제 괜찮아.”
그런데 여전히 계속해서 머리를 들이미는 것이었다.
“왜 그래, 자꾸? 나한테 할 말 있니?”
뭔가 메시지라도 전하려는 듯 머리를 들이미는 아파토사우르스.
한율은 무심결에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때,
사락―
“응?”
손에 무언가 종이 같은 것이 만져졌다.
아파토사우르스의 정수리에 무슨 종이 같은 것이 붙어 있는 것이었다.
“이게 뭐지?”
한율은 그 하얀 종이를 떼어 내어 정체를 확인해보았다.
세로가 길고 가로가 짧은, 마치 부적 같이 생긴 그 종이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당첨]
그러자 부적에서 푸른 빛이 번쩍하더니 작은 소용돌이가 굽이치기 시작했다.
* * *
한편 강철남은 정신없이 공간 이동으로 여기저기 쏘다니며 보물 사냥꾼들을 때려잡고 있었다.
“새끼들, 하여간 맞아야 말을 들어요.”
“히익! 마황제다!”
1시간 동안 잡은 보물 사냥꾼들만 1,000여 명.
마음 같아서는 고생한 게 괘씸해서라도 형량을 만 년으로 올리고 싶은 마음이었다.
정작 보물이 있는 곳만 빼고 엉뚱하게 멀쩡한 땅만 헤집고 있으니 환장할 노릇이었다.
빨리 아무라도 좋으니 보물을 찾아갔으면 좋겠다.
“누가 보물 좀 안 찾냐?”
그때,
강철남의 몸에서 빛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이것은,
“누가 보물을 찾은 모양이로군.”
강철남은 보물이 보내는 신호를 따라 공간 이동 도술을 부렸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엄마야!”
허공에서 나타난 강철남을 보고 깜짝 놀란 한율과 만나게 되었다.
“축하한다. 네가 처음으로 보물을 찾았구나.”
인자하게 웃으며 한율을 일으켜 준 강철남.
한율은 아직 어안이 벙벙하기만 하다.
“아저씨는 누구세요?”
“나는 마황제란다. 이 부적은 내가 숨겨둔 보물 가운데 하나로 찾으면 내가 나타나기로 되어있지.”
“마황제라구요?”
한율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마계의 최고로 강하고 높은 사람이 그저 이렇게 잘생기고 따뜻해 보이는 사람이라니.
“하하. 아직 얼떨떨한가 보구나.”
강철남은 멍한 눈으로 자기를 바라보는 한율을 번쩍 안아 들었다.
“잠시 머리 좀 식히자꾸나.”
[비행술]
강철남은 천천히 바닥에서 발을 띄워 하늘로 치솟았다.
한율을 안고 하늘 높이 올라가 끝도 없이 드넓게 펼쳐진 열대우림의 풍경을 한눈에 담았다.
아까 보았던 아파토사우르스가 장난감처럼 작아 보였다.
마치 비행기를 타고 나는 듯한 꿈같은 기분에 한율의 눈이 땡그랗게 커졌다.
“어떠니? 아름다운 곳이지 않니?”
“정말 예뻐요.”
“내가 보물을 숨겨둔 이유는 마계의 친절을 베풀어주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사람들의 꿈과 바람을 이루어주고 싶어서란다.”
“보물이 뭔데요?”
한율의 질문에 강철남은 씨익 웃어보였다.
“무슨 소원이든 하나 들어주마.”
마황제의 선물에 한율은 입이 벌어진다.
소원이라니.
꼭 동화책 속에서나 읽어 봤던 이야기다.
“평소에 이루고 싶었던 소원 없니?”
“저, 그…….”
“부담 가질 것 없단다. 편히 말해보렴.”
그러자 한율은 침을 꼴깍 삼키고 용기를 짜내어 말했다.
“가장 친한 친구가 있는데요. 좀 전에 그 친구가 숨겨왔던 비밀을 알게 되었어요.”
“그러니? 섭섭하겠구나.”
“저는 그 친구에 대해 잘 알고 싶어요.”
“그게 네 소원이니?”
“네!”
강철남은 참으로 순수한 아이라고 생각했다.
처음 이 보물을 숨겨두었을 때 못된 욕망을 이루어달라는 소원이 나오면 어쩌나 고민도 했었다.
하지만 이처럼 인간관계에 고민하는 성실한 마음이라니.
또 타인의 마음을 조종하는 것이 아닌, 어디까지나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여지는 남겨두는 예쁜 마음이 고마웠다.
“그래, 좋다. 그 친구에 대해 잘 알도록 도와주마.”
[신력 개방]
강철남은 신력을 개방했다.
큐브 모양의 신력 덩어리가 응축되더니 이내 빛을 터트리며 넓게 퍼졌다.
그 힘은 소원을 이루어줄 수 있는 환경으로 상황을 안내하는 힘이었다.
그런고로 한율의 소원인 친구에 대해 잘 알 수 있는 상황으로 초대하는 것이다.
번쩍―
빛이 한 줄기가 되어 길게 퍼지고 난 뒤 강철남과 한율은 부셨던 눈을 다시 떴다.
그리고 눈앞에 있는 것은,
“민하?”
“한율아… 어, 아빠?”
“민하야?”
민하의 말에 한율은 뇌가 멈춰버렸다.
강철남도 그제야 한율이 말했던 친구가 누군인지 알아챈 모양이었다.
이렇게 일이 돌아갈 줄이야.
“아빠, 이게 어떻게 된 거야?”
“한율이가 보물을 찾았단다. 무엇이든 소원을 들어주기로 했지. 한율이는 소원으로 가장 친한 친구에 대해 잘 알고 싶다는 소원을 빌었단다.”
“그래서 이렇게 아빠랑 내가 한 자리에 있는 거구나.”
민하도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자기에 대해 설명해주려면 마황제의 딸이라는 걸 보여주기만 해도 80%는 이해가 가지 않을까.
이렇게 된 이상 한율에게 자기가 숨겨 온 모든 걸 말해줄 때가 온 것 같다.
“한율아, 정신 차려!”
얼이 빠져 그대로 입에서 침이 줄줄 흐르는 한율을 민하가 흔들어 깨웠다.
“우으.”
침을 닦은 한율이 강철남과 민하를 번갈아보며 상황을 머릿속으로 정리해봤다.
“그러니까 민하가 마황제의 딸이라 이거지?”
“응. 맞아.”
“그럼 인간이야, 마족이야?”
“엄마는 엘프셔. 나는 인간과 엘프 사이에서 태어난 하프 엘프야.”
“왜 인간인 척하고 있는 거야?”
“우리 가족은 인간의 모습으로 인간들과 섞여 지내면서 마족에 대한 인간의 인식을 확인해보려 하고 있어.”
정리하자면 인간계에 잠입한 비밀 특파원 같은 것이랄까.
민하네 가족의 입장을 이해하게 된 한율.
이제 결정을 내려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