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최강 자연인이다-146화 (146/175)

146화 인간계와 마계가 서로 합심하여

성난 시위대 앞에 나타난 것은 가이아와 민하였다.

가이아는 우아한 걸음으로 조심스레 시위대 앞으로 다가갔다.

불같이 화난 표정을 짓던 시위대는 가이아가 풍기는 찬란한 아름다움에 움찔 움츠러들고 말았다.

“무, 물러서지 마. 요망한 몬스터의 수작임이 분명해.”

시위대의 리더로 보이는 남자가 접근해오는 가이아를 잔뜩 경계하며 굳건하게 버티고 섰다.

하지만 가이아는 더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걸음으로 점점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저는 엘프 마왕 가이아라고 합니다. 놀라셨죠? 겁먹을 필요 없답니다. 저희는 인간계의 황무지에 숲을 조성하러 왔습니다.”

“숲? 마계의 흉물스러운 식물들을 심으려는 건가. 인간을 잡아먹는 식물이라도 심어서 우리 땅을 정복하려는 거냐?”

“저희가 숲을 가꾸는 이유는 여러분들이 작물을 수확할 수 있는 과수원이나 쉬었다 가실 수 있는 휴양지를 만들어 드리고자 함입니다. 다른 불순한 의도는 없으니 안심하시기 바랍니다.”

생글생글 웃으며 말하는 가이아에게 시위대는 홀린 듯 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쐐기를 박듯 민하가 달려와 그들과 마주했다.

시위대는 알고 있었다.

이 소녀는 여건이 안 되어 치료받지 못하는 환자들을 치료하고 다니던 마계 의료 봉사단의 아이라는 것을.

“안녕하세요. 저는 가이아의 딸 강민하라고 합니다. 멋진 숲을 가꾸어서 새들도 날아다니고 다람쥐도 다니고 토끼도 뛰어노는 예쁜 공간으로 만들어 드릴게요. 여러분들도 맑은 공기를 마시면서 산책할 수 있는 공간으로 이용해주세요.”

그런 말만으로는 마족에 대한 경계심과 나쁜 마음이 사그라들지는 않았지만, 아무런 대가도 없이 인간 환자들을 치료해준 저 소녀가 그렇게 말하니 시위대는 그들이 하고자 하는 바를 저지할 수가 없었다.

시끄럽게 외쳐대던 시위대는 팻말을 내려놓고 저들이 어떻게 하려는지 지켜보기 시작했다.

시위대와 마족간의 충돌을 기대했던 설로번은 아무런 트러블도 없이 끝나자 조금 실망했다.

“젠장. 무슨 수를 쓴 거지?”

“진심이 통했을 뿐이다. 게다가 민하가 그동안 인간들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 열심히 힘낸 덕분이네.”

머리를 쓰다듬으며 칭찬해주는 엄마의 손길에 민하는 엣헴 하며 뿌듯해했다.

설로번은 투덜대며 등을 돌렸다.

“자, 그럼 민하야. 시작해볼까?”

“네!”

가이아와 민하는 손을 잡았다.

민하는 정신을 집중해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힘을 끌어올렸다.

그러자 땅 밑에서 지맥의 흐름이 요동치더니 민하의 힘에 반응하기 시작했다.

땅이 울리자 시위대가 혼란에 빠졌다.

“역시! 몬스터 녀석들은 흉계를 꾸미고 있었어!”

“지진이야! 다들 피해!”

“진정해. 뭔가 달라. 가만히 있어 봐.”

몸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흔들리는 와중에 시위대가 본 장면은 두 눈으로 보고도 믿기 어려운 광경이었다.

그것은 바로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에서 비옥한 흙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광경이었으니까.

흙은 끝이 안 보일 정도로 광활한 대지 위를 풍족하게 덮었다.

이 작은 소녀의 힘이 거의 산 하나를 이룰 정도로 넓은 땅을 개간지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흙이…….”

“돋아났어.”

“세상에. 이런 힘이 있단 말이야?”

“신이다. 신이 아니고서야 말이 안 돼.”

시위대는 다른 의미로 놀라기 시작했다.

너무 경외감이 들 정도의 엄청난 힘이었기 때문이었다.

“이거 완전 미친 힘이잖아.”

설로번조차 바닥에 주저앉아 민하의 힘에 입이 딱 벌어질 정도였다.

가이아는 힘을 많이 써서 지친 민하를 안아 들었다.

그녀가 하늘을 올려다보니 마침 준비를 마친 그들이 오고 있었다.

“가이아님!”

설로번도 하늘을 올려다보자 창공을 빼곡히 메운 드래곤 무리가 이쪽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그들을 이끄는 키켈과 드래곤의 등에 타고 있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인간이 현장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이봐, 저들은 누구지?”

“평범한 인간들이네. 민하에게 치료받은 이들도 있고, 그 이야기를 전해 듣고 감동한 이들도 있고, 또 마계와의 화합을 바라는 이들도 있다네.”

“대체 왜 여길 오는 거지?”

“그들에게는 깊은 심력이 있다네. 그들의 심력으로 심은 모종은 마력이 없어도 풍족히 자랄 수 있을 것이야.”

“뭐? 마계의 식물에서 마력을 제거한 뒤에 인간계에서 자라게 한다고? 그게 가능한가?”

“말했지 않느냐. 심력이 있다면 가능 하느니라.”

“대체 그 심력이 뭔데?”

“후후. 그건 함께 나누는 마음의 힘이라네.”

“젠장, 아까부터 대화가 안 통하잖아!”

결국 제 성질에 못 이긴 설로번은 씩씩 댈 뿐이었다.

가이아는 마족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모종을 심는 것은 인간들의 일, 마족들은 땅을 파거나 흙을 덮는 일까지만 돕기로 말이다.

“민하야!”

드래곤의 등에서 내린 중년 부부가 가이아에게 안겨 있는 민하를 향해 달려왔다.

“어디 아프니?”

“힘을 많이 써서 지친 것뿐이에요. 안심하세요.”

진심으로 걱정하는 중년 부부에게 가이아가 미소와 함께 답했다.

민하는 이 금실 좋은 중년 부부를 위해 아저씨의 위암을 치료해준 적이 있었다.

그 이후 이 부부는 봉사활동을 하며 새로운 삶을 살며 축복을 나누며 살아가고 있었다.

“민하네 어머님이신가요? 정말 민하에겐 감사하다는 말을 얼마나 해도 부족한지 모르겠습니다.”

“아니에요. 이렇게 와주셔서 감사할 따름이에요. 멋진 숲을 가꾸는데 힘을 보태주세요.”

“네, 그럼요. 민하 덕분에 되찾은 건강입니다. 민하의 꿈에 얼마든지 협력하겠습니다.”

사람들은 본격적으로 작업에 들어갔다.

마족들이 흙을 파면 인간들이 모종을 심었다.

합을 맞춰 일하면서 그들은 어느새 서로 사담을 나누며 친해져 있었다.

설로번도 땅을 파며 맡은 일을 묵묵히 해나가고 있었다.

녀석의 파트너는 앳되어 보이는 인상으로 고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남자였다.

“어이, 너. 우리 마족들이 무섭지 않냐?”

“무서울 게 뭐가 있어.”

“도시를 파괴하고 인간들을 잡아 먹는 우리들이 안 무서워?”

“꼴사납긴 하지.”

“뭐? 이 녀석이.”

순간 욱해서 한 대 쥐어박으려 했으나 멀리서 가이아의 날카로운 눈빛이 날아와 꽂히자 몸이 얼어붙고 말았다.

“크윽. 넌 우리가 안 밉냐?”

“미워 죽을 것 같아. 그야 우리 부모님을 죽였으니까.”

순간 설로번은 심장이 뜨끔한 통증을 느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잡념을 떨쳐내고 이것을 기회로 여겼다.

여기서 이 아이를 자극해서 마족과 인간의 갈등을 빚어내 보자고.

“마족은 부모님의 원수인데 왜 서로 화합하려고 하는 건데? 마계에 테러를 해도 모자랄 판인데.”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어. 그런데 그러면 끝이 없잖아. 내가 누군가를 상처입히면 그땐 내가 그 녀석의 원수가 되는 거니까. 내가 먼저 이 의미 없는 싸움을 멈춰야만 증오의 연쇄를 끊어내고 평화를 되찾을 수 있는 법이야.”

순간 설로번은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 머리가 멍해졌다.

가만히 아이를 바라보며 흙을 파는 일을 멈추고 있을 때 아이가 재촉하여서야 다시 작업을 이어갈 수 있었다.

작업은 늦은 오후까지 이어졌고 초저녁이 되어서야 작업을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사실 가이아는 며칠씩이나 걸릴 대규모 프로젝트로 예상하고 있었건만 생각 이상으로 많은 사람이 도와주러 와주어 하루 만에 끝마칠 수 있었다.

작업을 마치며 모든 인간과 마족 앞에 가이아가 섰다.

가이아는 따뜻한 미소로 그들을 향해 웃어주며 입을 뗐다.

“이제 이곳은 비가 오고 햇볕이 쬐면 새싹이 돋아날 겁니다. 그러면 머지않아 숲이 되겠죠. 저는 이 숲이 마족과 인간이 서로에게 선물한 하나의 작은 화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을 계기로 우리는 서로 한 걸음 더 다가설 수 있게 된 것이죠. 아직은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할 겁니다. 당연한 겁니다. 우리는 서로 모르고 자랐어요. 마족은 인간계를 정복해도 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되었죠. 그 속죄는 평생에 걸쳐 갚아나가야 합니다. 우리는 동등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인간에게 배울 점이 많습니다. 그들을 스승으로 삼아 배우며 잘못을 뉘우쳐 나가고자 합니다. 마족들이 탐욕스럽게 인간계를 두고 싸울 때 인간들은 위기의 순간에 서로 힘을 합쳐 싸웠습니다. 합심. 우리 마족은 인간과 비교하면 훨씬 더 오래 살아왔으면서도 그 함께 살아간다는 힘의 가치를 모르고 살아왔습니다. 그렇기에 어울려 살 수 있다는 생각조차 못 했던 것이겠죠. 이제는 인간들로부터 그 위대한 힘을 배우려고 합니다. 그리고 어제보다 더 나은 존재가 되고자 합니다. 서로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을 정도로 떳떳한 존재가 말이죠. 우리는 인간들이 우리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일들을 하고자 합니다. 다친 자를 보살피고, 무너진 건물을 세우고, 황폐해진 땅을 되살리면서 말이죠. 우리도 그 ‘함께’에 포함해주신다면 기쁠 것입니다. 오늘 모여주신 여러분들이 저희와 나눴던 동질감을 더 많은 사람과, 더 많은 마족과 함께 나누길 원하신다면 이 이야기를 널리 공유해주시길 바랍니다.”

가이아의 연설을 끝으로 그날의 수목화 작업은 끝이 났다.

“엄마, 끝났어?”

“응, 이제 집에 가자.”

잠에서 깨어난 민하는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며 작별 인사를 보내주었다.

설로번은 한참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렇게 멍때리고 있다가 하마터면 마계로 떠나는 부적의 술식 발동을 놓칠 뻔했다.

그렇게 피곤했던 하루가 저물었다.

* * *

크레톤의 마왕성에 강철남이 커피를 마시고 있다.

커피 맛이 이상한지 강철남의 표정이 안 좋은 반면 키켈은 아주 흡족한 표정이었다.

“키켈. 이 커피 맛, 안 이상하냐?”

“좋은데요?”

“매번 드는 생각이지만 마계 커피 맛은 최악이야. 인간계에서 사절단을 파견한다면 바리스타부터 불러야 해.”

“커피가 맛있어 봤자 얼마나 맛있겠어요?”

그 말에 강철남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키켈. 네가 진짜 맛있는 커피를 마셔 보면 지금 아가리에 처넣고 있는 건 청산가리처럼 느껴질 거다.”

마셨던 커피 맛을 음미하려 입맛을 쩝쩝 다셔보는 키켈은 여전히 지금 커피 맛이 충분히 좋은 것만 같았다.

똑똑똑―

“왔나보군.”

문을 두드리고 나타난 자들은 MMM단의 간부들이었다.

설로번, 칼론, 라온.

셋은 각자 인간계와 마계의 화합 프로젝트에 동참하면서 어떤 감정들을 느꼈을까.

강철남은 굳이 물어보지 않았다.

그저 단 한 가지 통보만을 할 뿐이었다.

“약속대로 MMM단을 마계 정식 단체로 인정하겠네.”

그 말이 떨어지자 설로번이 한 발 앞으로 나왔다.

“마황제님. 죄송하지만 그 약속을 철회해주실 순 없으신가요?”

강철남은 속으로 낚싯대에 입질이 왔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결코 내색하지 않고 엄근진 하게 나갔다.

“무슨 심경의 변화라도 생겼나?”

설로번은 칼론과 라온을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인간과의 관계를 좀 더 지켜보고 싶습니다.”

“정말 후회 없겠나?”

“저희가 한 선택입니다.”

“그래, 그렇다면야.”

강철남은 키켈에게 신호를 보냈다.

키켈은 고개를 끄덕이고 박수를 두 번 쳤다.

그러자 시종들이 서류 뭉치를 들고 나타났다.

“이게 뭡니까?”

“말을 들어보니 MMM단은 끝인 것 같군. 그렇다면 새 일자리가 필요하겠지? 여기 있는 자들이 일자리를 알선해줄 거야. 너희가 원하는 곳에서 일해 보라고.”

“마황제님…….”

“물론 마왕성에서 일하고 싶다면 그리해도 돼. 면접은 봐야 하겠지만.”

강철남은 바쁜 일이 있는 듯 뒤 돌아서 나갔다.

밖으로 나가는 그의 등 뒤에 설로번, 칼론, 라온은 고개를 숙였다.

* * *

몬스터 시장에 있는 헌터 본부.

강철남의 말을 들은 홍태진이 살짝 어이가 없는 표정을 지었다.

“인간계에서 사절단이요?”

“그렇소.”

“그런데 필요한 인력이라는 게 정말 그겁니까?”

“레알 진심이요.”

그를 몰랐다면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노릇이었겠지만, 이제는 그를 너무나 잘 알기에 홍태진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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