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화 대민지원 나왔습니다
강철남은 MMM단의 간부를 마계와 인간계의 화합 프로젝트에 동참시켰다.
먼저 사자 수인 라온이 따라간 곳은 인간계의 피해복구 현장이었다.
라온은 그곳에서 몬스터들의 횡포로 부서지고 무너진 인간계의 땅과 건물을 복구하는 작업을 도울 것이다.
현장의 작업을 주도하는 담당자는 홍태진.
강철남에게 사연을 듣고 라온과 동행하였다.
“반갑다. 나는 헌터 홍태진이라고 한다.”
“라온이다. 유감이지만 인간과는 악수하지 않는다.”
“솔직해서 마음에 드는군. 등 뒤에 칼을 숨기는 부류보다 훨씬 좋아.”
홍태진의 쿨한 반응에 라온은 한 방 먹은 기분이었다.
“오늘 우리가 할 일은 무너진 다리 현장으로 가서 잔해를 치우고 새 다리를 놓는 일이다.”
“미리 말해 두는데 나는 인간들을 위해서 이 일을 하는 게 아니다. MMM단을 정식으로 인정받기 위해 동참한 것이라고.”
“알고 있어. 대신 오늘 할 일은 제대로 하라고.”
대체 마황제도 그렇고 인간들도 그렇고 MMM단을 너무 우습게 보는 것이 아닌가 싶다.
MMM단은 인간은 배척하고 마족을 절대적으로 찬양하는 극단적 단체다.
그런 단체가 정식적으로 인정 받으면 인간과 마족의 관계는 끝이나 다름없을 텐데 지금 그들의 태도는 너무나 태연하지 않은가.
“자, 그럼 무너진 다리의 잔해를 치우는 일부터 시작하겠습니다.”
홍태진의 지시 아래 헌터들이 작업을 시작했다.
[강화]
스킬을 이용해 신체를 강화하여 커다란 돌덩이를 치우고 그것들을 잘게 부수었다.
상위 마법을 부릴 줄 아는 자들은 물을 뿌려 먼지를 가라앉혔다.
“흥, 이쯤이야.”
라온은 스킬을 쓰지 않고도 거대한 바윗덩어리를 번쩍 들었다.
주변의 헌터들은 감탄하며 라온에게 박수를 보냈다.
“한심한 녀석들. 이 정도에 놀라다니.”
라온은 툴툴거리며 바위를 저 멀리 던졌다.
“자네 힘이 좋구만.”
웬 중년의 헌터가 라온에게 말을 걸어왔다.
라온은 하등한 인간이 말을 걸어오는 것이 불쾌했지만 이 작업에서만큼은 트러블 없이 성실하게 임하겠다는 약속을 했기에 어쩔 수 없이 적당히 받아주기로 했다.
“마족에게 이 정도는 기본이다. 너희 인간은 대체 마족보다 나은 게 뭐지?”
결국 인간을 깔보는 말이 튀어나오긴 했지만 이것도 라온에게는 굉장히 부드럽게 순화한 말씨였다.
“마족보다 나은 점이라. 아무래도 사람 냄새가 아닐까?”
“뭐? 사람 냄새? 장난하는가? 하긴 마족들 가운데 체취가 지독한 녀석들이 많기는 하지만.”
“하하하. 그런 의미가 아니야. 사람 냄새가 뭐냐면… 아, 마침 저기 오는군.”
중년 헌터는 어딘가를 향해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곳에는 마을 주민들이 새참을 가지고 다가오고 있었다.
“다들 고생이 많으셔요.”
“새참들 들고 해요.”
“쉬었다 합시다.”
새참이 도착하자 헌터들은 하던 일을 내려놓고 장갑을 벗었다.
얼굴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옹기종기 모여드는 그들을 향해 중년 헌터도 라온의 팔을 잡고 끌었다.
“같이 가세. 주민들의 성의야.”
“주민들? 저들은 고용된 자들이 아닌가?”
“당연하지. 좋은 마음으로 봉사활동을 하시는 분들이야.”
“대체 왜 그러는 건데? 무슨 이득이 있다고?”
“이득? 굳이 따지자면 서로 웃을 수 있는 거지.”
라온은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듯 툴툴대며 그를 따라갔다.
“아이고, 건장한 청년이 도우러 와줬네.”
“힘 잘 쓰게 생겼네. 잘 부탁해요.”
“고마워요. 이렇게 고생해줘서.”
아주머니들은 라온에게도 음식을 권하며 그를 북돋아 주었다.
라온은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막 어색하면서도 썩 불쾌하지만은 않은 기분이었다.
“이보슈들. 나는 마족이야. 여길 이렇게 쑥대밭으로 만든 녀석들하고 같은 마계에서 왔지. 그런데 내가 원망스럽지 않아?”
일부러 사람들을 자극 시켜볼 심산으로 까칠하게 대하는 라온이었다.
하지만 아주머니들은 호호호 웃을 뿐이었다.
“사람도 마찬가지야. 나쁜 사람, 착한 사람 다 저마다 다른 법이지. 멀쩡한 다리를 부숴놓고 가는 나쁜 몬스터도 있는 반면에 부서진 다리를 고쳐주러 온 몬스터도 있는 거지.”
“젊은 양반이 그렇게 색안경 끼고 살면 사는 게 인생 피곤해질 텐데.”
“인생이 아니라 몬생 아니야?”
“그런가? 오호호.”
헌터들과 아주머니들은 서로 농담을 하며 웃었다.
라온은 진지하게 던진 질문이 가벼운 농담거리가 된 것이 언짢았지만 그들의 답변에 트집을 잡을 만한 내용은 없었다.
“일은 할 만하나?”
홍태진이 어쩐지 얼굴이 붉어진 라온의 곁으로 와 앉으며 말을 걸어왔다.
“일은 식은 죽 먹기다. 다만 인간들과 어울리려니 두드러기가 날 것 같군.”
“멋진 존재들이지 않나, 인간들은?”
“웃기는 소리. 마족인 나라면 이런 것쯤은 혼자서 뚝딱 처리할 수 있는 일이다.”
“물론 혼자서 돌을 옮기고 도시락을 싸 와서 먹으며 작업을 마무리 할 수 있겠지. 하지만 함께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격려하고 때로는 우스갯소리도 하면서 함께 완성을 향해 달려가는 이 존재들이 나는 무척이나 멋지다고 생각한다.”
흐뭇한 눈길로 사람들을 바라보는 홍태진의 말을 라온은 또 툴툴대며 무시하려 했다.
그러나 자기의 잔에 막걸리를 채워주며 이런저런 말을 걸어오는 인간들과 말을 섞으며 어느새 동화되어 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귀찮구만.’
그렇게 툴툴대면서도 어느새 시간이 가는 줄도 잊은 라온이었다.
* * *
칼론은 하림 선생을 따라 의료 봉사활동에 동참했다.
민하가 방학 동안 함께 했던 마계 의사단의 활동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자 그 2기 활동은 좀 더 큰 규모로 진행될 수 있었다.
마황제 강철남은 마계에서 실력 있는 의사들을 모집해 모았고 하림 선생을 필두로 인간계에 커다란 의료 봉사 부스를 설치해 그곳에서 봉사활동을 할 수 있게 조성해주었다.
“이것 봐. 다 죽어가는 인간들 뿐이잖아. 100년도 채 안 되어서 신체 기능이 모두 못 쓸 정도로 망가지다니. 인간이란 이렇게 나약한 존재인 거야.”
칼론은 의료 봉사를 본격적으로 시작도 하기 전부터 인간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았다.
“호호호. 칼론이야 말로 나약한 존재군요.”
“뭐야?”
“타인의 강점을 보지 못하고 무시하는 태도는 추해 보일 뿐이죠. 그 정도로 자기 이미지 메이킹을 못하는 것도 나약하게 보인답니다.”
하림 선생이 우아한 말투로 정곡을 찌르자 칼론은 부들부들 댔다.
화가 나 그 건방진 부리를 부러뜨리고 싶었지만 마황제와의 약속이 있기에 참기로 했다.
“입조심 하는 게 좋을 거야. 안 그래도 인간들에게 구경거리가 되는 것 같아 기분이 더럽거든.”
“그래도 일은 착실히 해주세요. 오늘 하루만큼은 환자들의 수송 드래곤이 되어주셔야 하니까요.”
칼론이 맡은 일은 환자들을 집에서 현장으로, 현장에서 집으로 데려다주는 일.
약속도 했겠다 자존심이 있기에 일을 대충 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와, 드래곤이다!”
“파란색이야. 짱 강해보여.”
아이들이 칼론을 보며 눈이 반짝반짝해졌다.
칼론은 흥, 하며 눈길을 거두었다.
그 사이 의료 봉사가 시작되었다.
“자, 다 됐습니다.”
“고마워요, 의사 양반. 정말 고마워. 내가 이 마음을 다 표할 길이 없네.”
휠체어를 타고 와 걸어서 돌아가는 할머니는 연신 하림 선생에게 고개를 숙였다.
“힘이 없으니 저렇게 고개를 숙이며 사는 거다.”
할머니가 사라지고 난 뒤 칼론이 비아냥거렸다.
“자존심을 세우는 것과 감사를 표하는 마음은 다른 거예요. 선의에 제대로 인사조차 하지 못한다면 그거야말로 자존심이 없는 것 아닐까요.”
“흥, 항상 궤변이군.”
의료 봉사는 계속 되었다.
칼론은 환자들을 현장으로 이송하기 위해 아픈 자들을 등에 태웠다.
“내가 살다 살다 드래곤을 다 타 볼 줄이야.”
“나도 인간을 태우게 될 줄은 몰랐다.”
뇌에 종양이 있는 환자는 언제 쓰러질지 몰라 조심스레 칼론의 등에 설치된 의자에 몸을 기대어 앉았다.
“정말 고마워. 너희는 내 생명의 은인이야.”
“나는 빼줘. 나는 그저 짐을 옮기는 택배원일 뿐이야.”
“세상 모든 일은 작은 힘들이 모여서 만들어지는 법이야. 네 수고를 빼놓을 수는 없어.”
“하나 물어보지. 너희는 자존심도 없느냐. 아무런 대가도 주지 않고 목숨을 저들에게 구원받기만 하지 않느냐.”
“당장은 그렇지. 그 빚은 우리가 평생에 걸쳐 세상을 향해 갚아야 하는 거야.”
“세상을 향해 갚아야 하는 빚? 그게 무슨 소리지?”
“우리가 받은 도움을 가슴에 품고 다른 사람들을 도우며 살아가는 거지. 인간의 선행은 그렇게 퍼져 나가는 거야.”
“웃기는군. 거래는 1:1 당사자 간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엉뚱한 곳에 은혜를 갚다니. 궤변이군.”
“하하.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 하지만 인류는 알게 모르게 그런 작은 친절과 나눔 속에서 살아왔어.”
칼론은 자기 논리로 이해할 수 없는 환자의 말에 대꾸를 하지 않았다.
그저 빨리 이 하루가 지나고 MMM단이 정식 단체로 인정받길 바랄 뿐이었다.
“이봐, 하림. 얼마나 남았나?”
“오늘 수송은 이만 끝났어. 자네는 옆에서 지켜보기나 해.”
“흥. 싱겁군, 벌써 끝인가.”
“이제 사람들은 하루를 마칠 시간이니까.”
“밤이 되면 무력해지는 건가. 역시 나약해.”
칼론은 투덜거리며 환자들을 돌보는 하림 선생을 지켜보았다.
“할아버지 이제 어떠세요?”
“이제 잘 보이는구먼. 앞이 뿌옇게 흐려져서 할멈 얼굴도 못 알아봤는데 이젠 알아볼 수 있어. 정말 고맙네, 선생.”
할아버지는 눈물을 흘리며 연신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그때 갑자기 저 멀리서 노인들이 우르르 몰려오는 게 아닌가.
“아이고, 빨리들 오시게. 왜 이렇게 오래 걸렸어?”
“선생님. 늦게 와서 미안해유. 이건 우리 성의니까 받아주세요.”
노인들은 각자 집에서 챙겨온 금반지나 산삼, 패물들을 모아 하림 선생에게 건넸다.
당연히도 하림 선생은 이런 것들을 받을 수 없었다.
“어르신들. 이런 걸 받게 된다면 앞으로 제가 이런 일을 할 수 없게 됩니다. 부디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대신에 우리 마족들을 예쁘게 봐주시고 이웃분들과 돈독하게 지내주시면 그걸로 족합니다.”
하림 선생의 부드럽고도 단호한 거절에 어르신들은 더 이상 선물을 강요할 수 없었다.
그저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감사의 인사를 건넬 수밖에 없었다.
칼론은 왠지 더 보고 있기가 힘들어 고개를 돌렸다.
노인들이 모두 돌아가고 그날의 의료 봉사도 끝이 났다.
“어떤가 칼론. 오늘 사람들의 눈에서 봤던 눈물은 절망과 죽음 속에서 흘리는 눈물과 조금 다르지 않던가?”
“흥. 원래 인간은 싫지만 질질 짜는 인간은 더 질색이야.”
“자네에게 오늘 사람들이 흘렸던 기쁨과 감사의 눈물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길 바라네.”
그렇게 말을 남기고 하림 선생은 강철남이 준 부적을 들어 봉사단과 함께 마계로 돌아왔다.
* * *
긍지 높은 용족 설로번은 황무지가 된 인간계 땅에 수목화를 일으키러 와있다.
그러나 그곳에서의 작업은 시작부터 난항을 겪었다.
“몬스터들은 물러가라!”
“우리에게 화합은 필요없다!”
“마계로 돌아가라!”
몬스터들이 인간계로 넘어오는 것을 반대하는 시민 단체들의 시위가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 광경을 보며 설로번은 미소를 지었다.
“역시, 인간들도 우리가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군.”
그때, 시위대 앞에 나선 이들이 있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