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최강 자연인이다-8화 (8/175)

8화 인마, 20대는 돌도 씹어 먹는 나이야

* * *

백진섭이 누워 있다.

왜냐?

그 이유를 모르는 건 오직 본인뿐이다.

“컥.”

쓰러져서 제대로 숨도 못 쉬고 있는 그는 방금의 상황을 되짚어 본다.

분명 강철남과 멍구가 산길을 노려보던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이게 대체…….”

강철남이 멍구를 타고 산길을 뛰어 올라갈 때, 백진섭은 그 속도를 눈으로 좇을 수 없었다.

게다가 그때 일어난 풍압에 나가떨어지고 만 것이다.

“인간, 괜찮냐?”

“어떻게 된 거니? 철남 씨와 멍구 씨는.”

“먼저 올라갔지.”

“얼른 따라잡아야 해.”

“왜 따라잡는데?”

“도와야지.”

그러자 냥고가 배를 뒤집고 깔깔대며 웃는다.

“뭐가 그렇게 웃긴데?”

“저기 저 소나무 보이냐?”

냥고는 고양이 앞발로 300m 앞에 있는 소나무를 가리켰다.

“보이는데 왜?”

“네가 저기에 도착하기도 전에 상황은 끝날 거다.”

백진섭은 이 고양이가 무슨 말도 안 되는 허풍을 늘어놓는가 싶었다.

어찌 되었건 그는 헌터 연합 대장이다.

민간인과 개 한 마리가 몬스터가 득실대는 소굴로 들어갔다는데 손 놓고 있을 순 없다.

“너는 여기 있어라.”

“말 안 해도 여기 있을 거야.”

냥고는 침을 발라 고양이 세수를 하며 얌전히 앉아 기다렸다.

[신속]

백진섭은 스킬을 발동했다.

김성남만큼은 아니지만 제법 빠르게 움직일 자신이 있다.

최대 출력으로 산을 성큼성큼 오른다.

그런데,

쿠웅!

“아앗!”

땅이 휘청 흔들리며 비탈길을 굴러떨어지는 백진섭.

“우하하하하!”

냥고가 그 모습을 보며 낄낄 웃는다.

마치 산이 쪼개어지는 듯한 울림이었다.

“대체 저 위에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 * *

“철남이.”

“왜 불러? 또 쓸데없는 거 물어보려고 그러지.”

“이번엔 진짜 진지한 거다.”

“뭔데?”

“닭 뼈는 음식물 쓰레기에 버리나, 일반 쓰레기에 버리나.”

멍구가 덤프트럭만 한 오골계의 모가지를 콱 물고 다가온다.

둘이 오기 전까지 대한산의 주인 자리를 노리던 레벨 40의 대왕 오골계였다.

“일반 쓰레기일걸?”

“그럼 달걀 껍데기도?”

“그럴걸.”

“아니, 걸, 걸이 아니라 확실하게 말해 줘.”

“나도 잘 몰라.”

“그것도 몰라? 나이 50 짬밥을 어디로 먹은 거야.”

“그러는 너는 쓰레기 한번 직접 버려 본 적 있냐?”

“나는 개잖아.”

“불리할 때만 개 코스프레하지 마.”

둥둥둥둥둥—

강철남과 멍구가 닭 뼈와 달걀 껍데기가 일반 쓰레기냐, 음식물 쓰레기냐를 놓고 논쟁하는 동안 산 위에서 북소리가 들려왔다.

“북소리?”

“그럴 리가.”

설마설마했지만 정말 북소리다.

게다가 우레와 같은 발 구름 소리까지 함께 몰려온다.

“아무래도 쪽수로 밀어붙일 작정이군.”

“멍구야, 혹시 입에서 메테오 같은 거 못 쓰냐?”

“그러면 내가 용이지 개겠냐?”

둥둥둥둥둥둥둥—

북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진다.

멀리서 군단의 모습이 보인다.

마치 어린아이의 형상과도 같은 것들이 무리 지어 달려온다.

“저건 또 뭐야.”

“잠만, 상태창을 볼게.”

“뭐? 너 그런 거 볼 수 있었냐?”

멍구는 눈을 뜨고 그들을 관찰했다.

[고블린

레벨: 16

힘: E

맷집: FF

속도: D]

“이렇게 나오네.”

“그런 게 있으면 진작 말을 해야지.”

그러자 멍구가 호탕하게 웃으며 말한다.

“어차피 네 기준 전부 X밥이니 그냥 쓸어 버려.”

강철남은 고블린 떼가 너무 많아서 번거롭게 느껴졌다.

약한 개미라도 득실대면 귀찮은 법.

빗자루 같은 도구가 있으면 딱 좋겠다.

“잠깐 실례.”

강철남은 멍구가 모가지를 비튼 오골계의 닭발을 집어 들었다.

“야야, 그거 오늘 저녁인데.”

“어차피 털 뽑아야 하잖아.”

노란 닭발을 꽉 잡아 보니 그립감이 훌륭하다.

붕— 붕— 붕—

돌리는 손맛도 있다.

빗자루로 딱이다.

“간다!”

쿠앙—

“끼에엑!”

오골계가 이리저리 춤을 추며 고블린 군대를 괴멸시키기 시작했다.

하늘에는 검은 닭털이 흩날리며 고블린들이 뒤엉켜 날아든다.

인간 한 명과 개 한 마리를 얕잡아 보고 기세 좋게 달려들던 고블린들은 혼비백산하여 후퇴하였다.

“철남이, 저놈들 도망간다! 다 때려잡어!”

“너도 놀지 말고 좀 도와.”

“이 미친! 닭대가리를 무식하게 흔들어 대는데 어떻게 도와!”

멍구는 강철남이 휘두르는 오골계를 요리조리 피하느라 바쁘다.

와중에 정신없이 산 위로 다시 도망가는 고블린들.

그런데 그때,

“우오오오오!!”

산에서 거대한 바위 하나가 괴성을 지르며 굴러왔다.

고블린들은 구르는 바위에 깔려 곤죽이 되었다.

그런데 잠깐, 바위가 소리를 지른다고?

바위는 삐그덕거리며 강철남 앞에서 접었던 몸을 펼쳤다.

[스톤골렘

레벨: 50

힘: SS

맷집: SSS

속도: AA]

“철남이, 그놈은 좀 센데?”

“나는 어떤데?”

[강철남

레벨: 72

힘: SSS

맷집: SSS

속도: SSS]

“철남이, 맷집이 동급이군. 너도 제법 돌대가리구나.”

“죽을래? 확 된장을 발라 버릴라.”

“싸움에 집중해!”

스톤골렘이 커다란 팔을 휘둘러 강철남을 덮친다.

그러나 강철남이 빠르게 전진 대시로 피해서 골렘의 다리를 주먹으로 치는데.

쾅!

흔들—

녀석의 몸체가 흔들린다.

스톤 골렘은 당황했다.

한낱 인간의 주먹에 코어가 흔들리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한 방으로 안 죽는 건 처음이라 당황스러운데.”

“이야, 너도 징하다. 그걸 맨손으로 때려?”

“멍구야, 좀 깨물어 봐라.”

“세계 최초로 틀니 낀 개가 되겠군.”

멍구가 달려들어 콱 깨물어 본다.

그러나 역시 딱딱해서 턱만 아프다.

상성이 안 좋은 상대다.

“우오오오!”

표정이 없지만 스톤 골렘은 생명의 위협을 느끼기 시작했다.

골렘이 팔을 마구잡이로 휘두르며 날뛰기 시작한다.

아무리 강철남이라도 이런 걸 맞기는 싫었다.

“이런 싯팔! 뛰어!”

강철남은 멍구와 함께 초가집이 있던 곳을 향해 달렸다.

스톤골렘이 일으킨 지진은 온 산을 뒤흔들었다.

백진섭 같은 일개 헌터는 산에 접근하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젠장, 제대로 설 수조차 없어! 대체 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한편 집터에 도착한 강철남은 진짜로 초가집이 개 박살 난 꼬라지를 보고 분노가 치밀었다.

밭도 엉망이 되어 있었다.

그나마 옥수수 몇 개가 바닥에 나뒹굴 뿐이었다.

“이런 썅놈의 몬스터 새끼들.”

“철남이, 이걸로 조져 버려.”

멍구는 솥뚜껑을 입에 물고 던져 주었다.

그것을 받고 골렘을 향해 분노의 부메랑을 날리는 강철남.

솥뚜껑은 그대로 골렘의 목에 콱 박혔다.

“우오?”

구멍에서 나올 때만 해도 자기 힘에 대적할 몬스터는 없었다.

그런데 대체 이 인간은 뭔가?

스톤 골렘은 처음으로 무력함을 느꼈다.

“끝까지 박아 넣어!”

강철남은 쓰러진 소나무를 주워 힘껏 날렸다.

목에 절반쯤 박혀 있던 솥뚜껑은 소나무가 충돌해 오자 그대로 골렘의 목을 뎅강 날려 버린다.

쿵—

스톤 골렘이 쓰러지며 산에 큰 지진이 울렸다.

여기저기 가파른 지대에는 산사태가 일어나며 한바탕 난리가 일어났다.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구만. 돌덩이가 사람도 공격하고.”

멍구는 혀를 끌끌 차며 말세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멍구.”

“왜.”

“그런데 이건 어떻게 먹지?”

“…….”

“20대는 돌도 씹어 먹는 나이라잖아.”

“네 대가리로 으깨서 먹어라, 이 돌대가리야.”

* * *

산은 고요해지고 울림도 멎었다.

겁에 질린 듯 떨던 나무들도 진정되었고 구르는 돌도 자리를 잡고 멈추었다.

“끝인가?”

“냐옹. 그런 것 같군. 이제 올라가 보자구.”

냥고는 폴짝 뛰어 산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잽싼 냥고의 속도에 깜짝 놀란 백진섭은 ‘신속’을 발동했다.

하지만 냥고를 따라잡을 수는 없었다.

“이 고양이 말도 안 되게 빠르잖아. 김성남보다 더 빨라!”

헉헉대며 간신히 냥고의 뒤를 쫓아 초가집이 있던 터로 올라온 백진섭.

고개를 들어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니 아주 가관이다.

웬 덤프트럭만 한 오골계가 떡하니 누워서 손질 당하고 있다.

게다가 주변에 웬 바윗덩어리가 널브러져 있고 데굴데굴 솥뚜껑이 굴러다닌다.

“왔소? 여기 백숙 손질 좀 거드쇼.”

“네? 아, 네.”

얼떨결에 칼을 뽑아 들고 백숙 손질을 돕는 백진섭.

“철남 씨랑 있으면 꼭 귀신에 홀린 듯한 기분이 듭니다.”

“멀쩡한 정신으로는 살아가기 힘든 세상이잖소.”

백진섭이 오골계의 질긴 가죽을 찢어발기지 못하고 낑낑대자 강철남이 대신 슥슥 벗겨 낸다.

“혹시 이 오골계 강철남 씨가 잡은 겁니까?”

“내가 잡았지.”

개집 앞에서 게으름을 피우고 있는 멍구가 답한다.

“역시, 멍구는 대단한 녀석입니다. 저런 반려견이 호위를 해 주다니. 요즘 같은 시대에는 자식보다 더 좋은 가족을 뒀군요.”

“뭘 좀 아네, 저 양반.”

멍구가 거드름을 피우며 뒹굴뒹굴하며 바닥에 등을 긁는다.

“그나저나 집이 이렇게 무너져 버렸으니 어떡하실 겁니까?”

“지붕은 그쪽 사람이 작살냈지만 말이오.”

백진섭은 뜨끔했지만 헛기침으로 무마해 넘겼다.

“대한산을 점령하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렇소.”

“대한산을 점령해 헌터로서의 공로를 인정받아 대통령에게 산의 소유권을 인정받는다, 그것이 강철남 씨의 계획이죠?”

백진섭은 솔직히 어이가 없었다.

아무리 멍구가 강하다고는 해도 고작 개 한 마리에 의지해 산을 점령하겠다니.

“산을 점령한다는 게 무슨 의미인 줄 아시죠? 산 정상 하늘에 뚫린 작은 구멍을 막는 겁니다.”

구멍에는 큰 구멍과 작은 구멍이 있다.

우선 하늘 한가운데에 뚫린 가장 큰 구멍.

몬스터들이 내려오기 시작한 시발점이다.

그리고 작은 구멍.

그것은 산꼭대기에 뚫려 몬스터들을 뿌리는 거점 같은 것이다.

대한산 역시 작은 구멍이 있는 몬스터들의 거점이다.

산을 점령한다는 것은 그 구멍을 틀어막는다는 것.

“이 중대한 일을 개 한 마리만 믿고 밀어붙이기엔 너무 무모한 거 아닙니까?”

“아니, 듣자 하니 듣는 개 기분 나쁘게 왜 그러슈? 지금 개라고 무시하는 거야?”

“아, 그, 그게 아니라.”

멍구가 진짜로 삐진 말투로 칭얼대는 바람에 백진섭은 당황하고 만다.

“뭐든 확실하게 하자 이겁니다. 멍구가 아무리 강해도 구체적인 작전을 세워야…….”

“손질 다 끝났소, 이제 뱃속에 찹쌀 넣으쇼. 삼이랑 대추 좀 가져올 테니까.”

“아, 예.”

순간 또 강철남의 페이스에 말려들 뻔한 백진섭.

“철남 씨.”

“아, 거 참. 대한산도 식후경이오. 정상까지 갈려면 배부터 채워야지.”

때마침 백진섭의 배꼽에서 울리는 꼬르륵 소리.

“…참고로 저는 몬스터 못 먹습니다.”

“라면이라도 드실라우?”

“…잘 먹겠습니다.”

강철남과 멍구, 그리고 냥고는 푹 삶은 백숙을 야무지게 뜯어 먹는다.

“아이고, 불쌍한 양반. 이 맛 좋은 토종닭을 못 먹고.”

“지옥 토종닭은 줘도 안 먹습니다.”

“멍멍. 그런데 혹시 닭 뼈는 일반 쓰레기인지, 음식물 쓰레기인지 아슈?”

“…음식물 쓰레기 아닙니까?”

“냥냥. 아무렴 어때요. 멍구 형님한테 짬 처리하면 되지.”

그 말에 멍구가 뼈다귀를 냥고에게 집어 던진다.

오순도순 활기가 넘치는 식사 시간.

그러나 그 즐거운 시간을 방해하는 심보가 못된 녀석이 있었으니.

“키에엑!”

산 위에서 몬스터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하… 시발…….”

강철남이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한 가지가 있다.

그건 바로 밥 먹을 때 방해받는 거.

그런 짓을 하는 것들은 어릴 적부터 밥상머리 교육이 잘못된 새끼들이다.

“멍구야, 잠깐 다녀오마.”

“식기 전에 다녀와.”

강철남은 솥뚜껑을 들고 정상으로 향하는 산길에 올랐다.

“아니, 강철남 씨! 혼자서 어디… 어라?”

순간 백진섭은 눈을 의심했다.

방금까지 눈앞에 있던 강철남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 것이다.

“어디로 간 거지?”

그렇게 5분이 지났을 무렵,

강철남이 돌아왔다.

“세상에, 강철남 씨 귀신에 홀린 줄 알았습니다. 어디로 사라지신 겁니까?”

“정상에 다녀왔소.”

“네? 그 짧은 시간에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백진섭은 웃기지도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정상은 왜 갔어?”

“구멍 막고 왔어.”

“어떻게?”

“솥뚜껑 꼬라박았어.”

“뭐?”

멍구가 어이없다는 듯 쳐다본다.

냥고도 닭가슴살을 발라 먹다 기가 찬 듯 쳐다본다.

백진섭은 할 말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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