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43살 월급쟁이가 헌터가 된다고?
* * *
백진섭. 올해 나이 43세.
산전수전 다 겪고 중년의 나이에 친구네 사업장에서 평범한 월급쟁이로 살아왔다.
그러던 어느 날, 하늘에 구멍이 뚫리고 인생이 바뀌었다.
“대단해, 이 사람! 몬스터를 잡았어!”
“살려 줘서 고맙습니다! 흑흑흑.”
몬스터에게 먹힐 뻔한 사람을 구해 준 날, 그는 헌터의 길을 걷게 되었다.
생각보다 검에 재능이 있었고 의협심도 강해 싸우다 보니 어느새 이름을 떨치게 되었다.
능력 랭크는 FF로 일반인이 운동으로 넘을 수 없는 높은 수준까지 이르렀다.
“진섭아, 우리 협회 하나 차리자.”
레벨이 4에 다다랐을 무렵,
사업장을 운영하던 친구가 시대는 변했다고 헌터 사업을 하자고 꼬드겼다.
이 나이 이때까지 이것저것 안 겪어 본 일이 없는 백진섭.
돈이야 좋다만 그것보다 더 좋은 게 생겼다.
바로 사람을 구했다는 뿌듯함.
“살려 줘서 고맙습니다! 흑흑흑.”
백진섭을 헌터의 길로 이끌었던 감사의 인사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 이유 하나만으로 그는 친구와 함께 경북 헌터 협회를 만든 것이다.
“당신, 미쳤어?”
헌터가 되겠다고 했을 때 아내는 극구 반대했다.
이혼까지 하겠다며 말리는 아내를 백진섭은 겨우겨우 설득했다.
“나 자신에게, 그리고 가족에게 부끄럽지 않은 인간으로 살고 싶어.”
아내는 며칠을 울었다.
비록 남편을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 마음이 고마워서라도 백진섭은 다짐했다.
반드시 살아남기로.
그래!
여기서 죽을 순 없어!
나는 헌터로서의 사명을 다한다.
김성남이 나가떨어진 지금, 이 젊은 청년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하앗!”
백진섭은 칼을 들고 달려들었다.
[쾌속 찌르기]
스킬을 발동하자, 칼끝에서 빛이 번쩍하며 직진했다.
힘을 주어 앞발에 칼을 폭 찔러넣었다.
그러나 절망적이게도 너구리는 아무런 반응이 없다.
그저 따끔할 뿐인지 물끄러미 아래를 쳐다본다.
“너구울?”
“조졌다!”
내 인생은 이걸로 끝인가.
미안해 여보.
백진섭은 눈을 질끈 감았다.
순간 살아왔던 과정들이 스쳐 지나갔다.
이것이 주마등인가.
세상에 작별을 고할 때다.
안녕히!
그때,
콰아악!
“꽤엑!”
머리 위에서 가죽이 찢어지는 굉음과 함께 몬스터의 비명이 터졌다.
이내 머리 위를 드리운 그림자가 사라지더니 쿠웅, 하고 너구리가 쓰러진다.
실눈을 떠 보니 목이 뜯겨 즉사한 너구리가 보인다.
척!
그 옆에는 웬 튼실한 개 한 마리가 늠름하게 서 있었다.
대체 이 개는 뭐지?
몬스터인가? 몬스터들의 영역 다툼인가.
백진섭은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말았다.
“에라이, 씨봉방 너구리 새끼! 확 삶아 먹어 버릴 테다!”
그때 강철남이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커다란 솥에 물을 끼얹었다.
그 와중에 개는 얌전하게 개집에 들어가 엎드려 쉬고 있다.
“처, 철남 씨. 이 개는 대체 뭡니까?”
“그러는 당신들은 뭐요? 대체 뭔데 여기 와서 남의 집 지붕을 깨 먹고 난리요?”
“아니, 그건 고의가 아니라…….”
“됐으니 저 사람이나 들고 내려가쇼.”
맞다, 김성남!
백진섭은 후다닥 무너진 집안으로 달려갔다.
다행히 아직 숨이 붙어 있다.
역시 레벨 12, 최강의 인간.
그런 인간이 한 방에 당했다.
너구리 몬스터에게.
그리고 그 너구리는 개 한 마리에게 당했다.
그렇다면 대체 저 개는 정체가 뭐지? 얼마나 강한 건가.
“강철남 씨, 저 개는 대체 뭡니까?”
백진섭은 다시 물었다.
평범한 개는 아닐 터.
“당신은 몬스터를 다룰 줄 아는 겁니까?”
“멍구는 내 가족이요.”
“멍구… 가족… 그럼 혹시 기르던 개가 몬스터가 되어 버린 겁니까?”
그때,
“기른다는 말은 틀렸어. 같이 사는 거지.”
잠자코 있던 멍구가 입을 열었다.
“으악! 개가 말을 한다.”
멍구는 눈을 뜨고 백진섭을 바라보았다.
[백진섭
레벨: 4
힘: FF
맷집: FF
속도: FF]
멍구의 입장에선 하품이 나오는 능력과 실력이었다.
그래도 나름 인간계 강자에 속하는 백진섭이었지만 말이다.
“집에 안 갈 거요? 너구리는 냄새가 고약해서 여기 있으면 괴로울 텐데.”
“저기 제안이 있습니다!”
백진섭은 ‘제안’이라는 단어에 힘을 주어 말했다.
짧은 시간이지만 파악해 본 강철남의 성격상 ‘부탁’에 응할 것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에게 득이 되는 ‘제안’을 건네 보는 편이 꼬드기기 쉬울 것 같았다.
“제안?”
“네! 헌터를 해 보시는 건 어떠십니까? 당신의 가족, 그러니까 멍구라면 몬스터 사냥에서 큰 활약을 펼칠 수 있을 겁니다.”
“오올 철남이, 다 늙어서 스카웃 제의를 다 받네?”
“쌉쳐.”
둘이 아옹다옹하는 모습을 보며 백진섭은 멍해졌다.
다 늙어서? 아무리 봐도 20대로밖에 안 보이는데.
“제안은 거절이요.”
“아니, 들어 보십시오. 어마어마한 돈을 거머쥘 수 있습니다!”
“돈이 인생의 목표였다면 내가 여기 틀어박혀 살겠소?”
“그, 그건…….”
맞는 말이었다.
애초에 자연인을 돈으로 유혹하다니.
백진섭은 어리석다 자책했다.
“세상을 구원하는 영웅이 될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일이오.”
“남을 돕는 일이요?”
“남은 나를 돕소?”
입이 턱 막혔다.
할 말이 없었다.
특히 요즘같이 생존이 우선순위인 세상에 남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인간상은 찾아볼 수 없으니까.
대체 이 남자, 어떻게 해야 움직일까.
“강철남 씨는 사는 이유가 뭡니까?”
“태어났으니 사는 거죠.”
“왜 산에 틀어박혀 사는 거죠?”
“사람이고 뭐고 다 귀찮아서요.”
그 순간, 머리를 번뜩이는 생각 하나가 지나간다.
“강철남 씨, 강철남 씨가 원하는 삶, 그 평생의 꿈을 이뤄 드릴 수도 있습니다!”
너구리의 꼬리를 자르려던 강철남은 그의 말에 멈칫했다.
* * *
이곳은 경북 헌터 연합.
너구리가 나타나자 도망친 헌터들은 모두 제명 처리되었다.
남아 있는 헌터는 20명 남짓.
모두 굴욕적인 대한산 사건에 있어서는 쉬쉬하는 분위기다.
그런데,
“대한산에서 몬스터를 데려왔다고?”
헌터들이 술렁거린다.
“대장, 무슨 생각입니까?”
“우리 전력이 되어 줄 소중한 인재입니다.”
무슨 소중한 인재?
그들의 눈에는 그저 잘생긴 젊은 청년과 만사 지루해 보이는 개 한 마리가 있을 뿐이다.
“성남 씨가 설명해 봐요,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기절해 있다가 깨어난 김성남은 백진섭에게 사정을 대강 들었다.
사실 듣고도 이해할 수 없었다.
웬 개 한 마리가 자기를 날려 버린 너구리를 한 방에 물어 죽였다고?
자존심이 대단히 구겨지는 일이었다.
“나도 몰라. 직접 물어보던가.”
심기가 불편해진 김성남은 아무 의자에 가서 드러눕듯 앉는다.
“당신, 이름이 뭡니까?”
“멍구요.”
“으악! 개가 말을 한다! 것보다 너 말고!”
멍구가 입을 열자 협회 헌터들이 또다시 술렁인다.
“자, 자! 진정들 하세요. 이분은 강철남 씨, 세계 최강의 몬스터를 길들이신 분입니다.”
“거 참 세계 최강 세계 최강 엄청 집착하네.”
멍구가 하품을 쩍, 하며 비꼰다.
“네가 개라서 잘 모르나 본데 세상에는 그런 칭호가 정말 중요하다고. 알아?”
머리가 벗겨진 한 중년의 헌터가 손가락질을 하며 따져 댄다.
“왜 중요한데?”
하지만 한마디도 지지 않는 멍구.
“그게… 대외적으로 중요하니까. 홍보도 되고. 그래야 돈이 많이 들어오거든.”
“어차피 너구리 앞발 한 방에 그 대머리가 다 깨질 텐데 돈이 무슨 소용이야.”
“뭐시라고?!”
협회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개랑 말싸움하다가 흥분하는 헌터들이라니.
강철남은 말리긴커녕 이 상황이 재밌어 팝콘이 간절할 지경이었다.
“제발 진정들 좀 하세요!”
간절함은 백진섭도 지지 않았다.
“이 개의 강함은 진짜입니다. 대한산을 거점으로 삼을 수 있는 건 이 개밖에 없습니다.”
“거 자꾸 개, 개 하지 말고 이름을 불러, 이름을.”
멍구가 빈정이 상한 듯 툴툴댄다.
“크흠, 멍구의 실력은 검증이 되었습니다. 남은 건 여러분의 동의입니다.”
백진섭은 천천히 협회 헌터들을 둘러보았다.
그중 하나가 강철남을 쓱 보곤 백진섭에게 물었다.
“그러는 그 개의 주인은 얼마나 강한 거요?”
“멍구라니까 그러네.”
“이분은 그냥… 평범한 청년 같습니다.”
강철남의 솜씨는 본 적이 없으니 백진섭은 할 말이 없었다.
인간도 아니고 개한테 작전을 맡겨야 하다니.
헌터들의 분위기는 회의적이었다.
멍구는 눈을 뜨고 헌터들을 둘러봤다.
평균적으로 레벨2에 레벨3도 섞여 있었다.
힘, 맷집, 속도 랭크는 대체로 F급.
강철남과 비교를 하니 이게 사람 새끼들인지 아메바 새끼들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다.
“귀찮네. 얘기는 여기까지 하지.”
“앗, 철남 씨. 잠시만요.”
떠나려는 강철남과 붙잡으려는 백진섭.
둘의 모습에 헌터들의 조롱이 빗발친다.
“시간만 낭비했네.”
“무슨 일 처리를 이따위로 해?”
“서울에서 사람 불러요. 더 센 사람 없나?”
김성남이 발끈해 의자를 쓰러뜨리며 일어난다.
협회장은 그야말로 개판이었다.
강철남은 탁상공론 아가리 털기에 진절머리가 났다.
“아재요, 다 귀찮소.”
“철남 씨, 내가 다시 설득해 볼 테니…….”
“저런 멍청한 놈들은 눈앞에 들이밀어 줘야 보이는 법이요.”
“네?”
“대한산, 내가 먹으면 되는 거잖소.”
* * *
강철남과 멍구는 백진섭의 차에 타자마자 곯아떨어졌다.
“드르렁.”
“푸프프.”
대한산을 먹겠다고 선포한 양반이 참 속도 좋다.
코끼리만 한 너구리를 한 방에 물어 죽인 멍구는 그렇다 쳐도 저 청년은 뭘 믿고 저렇게 천하태평일까, 라고 생각하는 백진섭.
“다 왔습니다.”
“어우, 이 집 운전 잘하네.”
멍구가 침을 흘리며 부스스 일어난다.
“내가 살다 살다 댕댕이 운전기사 노릇까지 할 줄이야.”
인생이란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대한산 입구에서 내린 강철남은 설렁설렁 걸어가 볼까 싶었다.
그런데 그때,
“철남이 형님, 멍구 형님!”
냥고가 멀리서 냥냥 대며 달려오고 있었다.
“어, 완전히 잊고 있었네. 너 어디 갔었냐?”
“아이고, 철남이 형님!”
백진섭은 깜짝 놀랐다.
김성남이 잡아 죽이려 했던 고양이가 살아 있었다니.
게다가 이 둘과 아는 사이라고?
“철남 씨, 이 고양이는…….”
“우리 집 식객이오.”
“아까 그 인간 아니냐!”
고양이는 털을 곤두세우며 경계 자세를 취했다.
“삼천포로 빠지지 말고 원래 목적이나 말해 봐.”
“아 참, 맞다! 지금 이럴 때가 아닙니다요!”
“본론부터 말해.”
멍구가 앞발을 치켜들자 냥고가 침을 꿀꺽 삼키고 대답한다.
“대한산이 난리가 났어요. 미친 몬스터 떼가 우글우글하기 시작했어요!”
“뭐? 갑자기 왜 지랄들이야?”
“그야 형님들이 자리를 비우시니까 그렇죠.”
“우리랑 뭔 상관인데?”
“두 분이야말로 이 대한산의 최강자, 즉 주인! 그런 두 분이 자리를 비우니 대한산의 몬스터들이 주인 자리를 꿰차기 위해 날뛰기 시작했다는 거죠!”
냥고가 눈을 질끈 감고 다리를 마구마구 휘두른다.
“너 어째 신나 보인다.”
“그야 물론 이제 형님들이 다 정리해 주실 테니까요.”
“하암, 귀찮은데.”
“철남이, 가위바위보로 정하세.”
가만히 지켜보던 백진섭은 이 세 사람의 대화를 좀체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문득 궁금해진 한 가지는…….
“이봐 야옹아. 그렇다면 초가집은 어떻게 됐지?”
“나는 야옹이가 아니라 냥고다, 인간!”
“그래, 냥고야.”
“흠흠. 그래. 좋다. 특별히 용서해 주지. 초가집은 말이야.”
설마.
“개박살이 났지.”
순간 냉기가 서늘하게 몰아친다.
“읏! 8월인데 무슨 한기가.”
백진섭이 얼어붙을 듯한 추위에 몸을 웅크린다.
“멍구.”
“그래, 철남이.”
“오늘 저녁 메뉴는 지옥의 몬스터 고기 파티다.”
강철남이 간다.
산을 다 때려 부수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