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인생 최고의 캐스팅-69화 (68/105)

69. 기분이 어때?

69.

선유가 아직 자고 있는 소민에게 다가갔다. 새근새근 잘도 자고 있는 그녀를 보고 있자니 한숨이 나왔다.

소속사에서 밝힌 입장이라 그가 정정보도를 하자니 그의 이미지에 타격이 클 게 분명했고, 그렇다고 그냥 두자니 그녀에게 무슨 화라도 있을까 걱정이었다.

소민이 깰까 제운을 끌고 방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욕실로 들어섰다. 안 그래도 넓지 못한 욕실은 남자 둘이 들어서자 꽉 들어차 금세라도 이산화탄소가 가득 욕실을 메울 것만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보다도 더 어두운 분위기가 들어차고 있어 이산화탄소야 아무래도 좋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소속사와 통화를 하러 갔던 유찬까지 욕실로 들어서자 욕실은 그야말로 미어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어떻게 됐어?”

“저희 소속사에서 일단 열애는 아니라고 정정보도 내보냈답니다. 형님 기사 나가고 얼마 안 있어서 여기 들어오자마자 한선유씨 소속사에서 같이 기사를 내버린 바람에 일이 좀 꼬였네요.”

그렇게 말한 유찬의 시선이 선유를 향했다. 그 시선이 제법 날카로웠다.

“의도했다거나 뭐 들은 거 없으세요?”

“의도는 개뿔. 일부러 거리 두고 피하고 있었는데.”

“무슨 소리예요?”

“몰라도 돼.”

“아무튼 지금 두 분 다 한 여자한테 목매는 모습이 됐어요. 대한민국 탑배우라고 손꼽히는 사람 둘이 같은 여자를! 그것도 동시에. 아니, 어차피 한배우님은 이미지가 원래부터 그렇다 치지만 저희 제운이 형은 어쩌실 거예요?”

유찬의 말에 선유가 그를 노려봤다.

“애시당초에 경솔하게 기사를 먼저 낸 건 그쪽인데 왜 피해자 코스프레야? 나는 지금 이 상황이 황당하지 않은 줄 알아?”

“많이 해보셨는데 왜 황당해요?”

유찬의 속 뒤집는 발언에 선유가 작게 한숨을 흘렸다.

“조용히 해봐. 생각 좀 해보게.”

소민과 계약 연애를 할 이유는 없었다. 새로 나올 작품이 홍보라고 해도 지금은 시점이 너무 일렀다. 그럼 뭘까 고민하던 선유의 뇌리에 최근 준영과 사장이 컨셉 변경을 목표로 회의를 자주 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이걸로 무슨 이미지 변화가 있으려고...”

혼잣말을 하는 선유의 모습을 제운과 유찬이 지켜봤다. 대외적으로 조금은 잘생긴 바보 느낌으로 밀고 나가는 이미지와는 딴판으로 선유의 지금 모습은 날카롭고 이지적으로 보이기까지 했다. 잘생김을 연기한다는 베네딕트 컴버배치와는 딴 판으로 그는 그냥 딱 누가 봐도 잘생긴 탐정 혹은 명민한 추리가의 모습이었다.

“폰 줘봐.”

그리고 그냥 단순히 핸드폰을 달라는 저 말도 무슨 성공한 젊은 외과 의사가 “메스.”를 주문하는 듯 한 어조여서 순순히 손이 움직였다.

건네받은 핸드폰을 들여다보던 선유가 핸드폰을 다시 유찬에게 건네주고는 이내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잠시 그러고 있던 선유가 이내 고개를 들더니 제운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혹여 제운에게 한소리 하려는 것일까 지켜보았지만 선유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더니 다시 유찬의 손에 들린 핸드폰을 바라봤다.

“하! 그랬네. 그런 거였어. 여러모로 득이네.”

뭔가 깨달은 듯 그렇게 말하는 선유를 향해 욕조에 걸터앉은 제운과 유찬이 바라봤다.

“뭔데요?”

“왜 이게 그렇게 오래 걸려서 떠올릴 일이었지?”

“아, 무슨 소린지 저희도 좀 알자구요.”

유찬이 바락 그렇게 외치자 선유가 입가에 손가락을 갖다 댔다. 그 와중에도 소민이 깨는 게 걱정인지 바깥의 기척을 살피기까지 했다. 밖에서 아무런 기척이 없음을 즉 소민이 깨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하고서야 선유가 제운과 유찬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유찬의 손에 들린 핸드폰을 향해 얕은 턱짓을 했다.

“인터넷 봐봐.”

선유의 말에 제운과 유찬이 인터넷 기사를 봤다. C엔터테인먼트에서 정정기사가 나가긴 했지만 전체적인 기사의 내용들은 대체적으로 비슷했다. 제운과 선유, 그리고 한 여자의 삼각 애정관계, 그리고 소민의 애정은 어디로 향할 것인가 하는...

다만 누가 더 자극적으로 기사를 썼는지, 혹은 내용에 오탈자가 있는지 없는지의 차이였다.

어제와 별반 다른 게 없어 보이는 내용에 제운과 유찬의 시선이 선유를 향했다.

“근데 이게 뭐요? 기사내용은 어제랑 크게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은데요?”

그래도 선배라고 따지고 들지는 못하는 제운을 대신해 유찬이 총대를 멨다. 그런 유찬에게 선유가 다시 입을 열었다.

“기사 말고. 댓글들... 봤어?”

선유의 말에 둘의 고개는 다시 핸드폰으로, 그 안에 인터넷으로 향했다.

“어?”

먼저 유찬의 입에서 의아함을 가득 담은 짧은 소리가 터져 나왔다.

“왜?”

제운이 물었지만 유찬은 믿을 수 없다는 듯 계속 댓글만 확인했다. 제운 역시 유찬이 확인하는 댓글들을 보다 말했다.

“분위기가 예상 밖인데요?”

“어떻게 된 거예요?”

유찬의 질문에 선유가  입을 열었다.

“생각해 봐. 어떤 놈이 운전 중에 통화를 하다 걸렸어. 처음 걸린 데다 반성 한다 그래서 훈방조치하고 봐줬다 쳐. 근데 그 놈이 똑같은 경찰한테 그 다음날 또 걸렸어. 그 날은 급한 일이 있어서 어쩔 수 없다고 해서 봐줬어. 근데 그 다음날 또 그런 일이 반복 돼. 그럼 어떻게 되겠냐?”

“상습범이니까 처벌 받겠죠 뭐.”

“그럼 봐, 꽃뱀이라 그랬는데 좀 이따가 보니까 아니래. 근데 김제운이가 쟤랑 열애한데. 그럼 어떻겠어?”

“여론이 좋지는 않겠죠.”

“근데 그게 사실이 아니래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김제운이네가 실드 쳐주느라 그랬대. 그래서 사람들이 그런가 보다 했어. 근데 얼마 안 있다가 나랑 채소민이 또 뭔가 기사가 나. 이런 내용이든 저런 내용이든. 그럼 어떻겠어.”

“좋지 않겠죠. 근데 지금은 왜 이렇게 상황이 바뀐 거죠? 타이밍만 다를 뿐이지 내용은 똑같잖아요.”

유찬의 말에 선유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지. 아니지. 다르지. 꽃뱀 누명을 벗은 여자에게 두 남자가 동시에 대쉬를 했어. 그것도 별 볼일 없는 남자들이 아닌 꽤 괜찮은 남자들이. 어디서 많이 본 상황 아니야?”

“그거 드라마같은데요.”

선유의 말에 제운이 답했다. 그러자 선유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거야. 드라마 보는 사람들은 대개 드라마 여주를 응원하지. 그런데 실사판 드라마가 펼쳐지면 어떨까?”

“흥미진진하겠네요.”

“그렇지. 뭐 게 중에는 안티도 있겠지만 그래도 꽃뱀보다는 적을 걸?”

유찬이 새로운 지식을 얻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카사노바답네요. 아무튼 좋은 거 배웠어요.”

유찬의 말에 선유가 유찬의 뒤통수를 때리자 유찬이 뒤통수를 문질러댔다.

“아, 왜 때려요!”

“얄밉잖아. 그리고 나도 스탄데 뭐? 카사노바?”

“카사노바 맞잖아요. 소문도 자자하고. 그리고 얄미운면 다 때려요?”

“그럼 수업료라고 치든가.”

그렇게 말한 그가 욕실 문을 열었다.

“어디 가요?”

“채소민 깨우러.”

“왜요?”

“왜긴 왜야? 나가야지. 채소민도 입장정리를 해야 할 거 아니야. 기사 나간 지 하루정도 지났는데 아무 반응도 없으면 어떡해? 슬슬 반응을 보여줘야지.”

“그럼 같이 나가서 깨우죠.”

제운이 냉큼 나섰다.

“안 돼.”

“왜요?”

“나는 그 여자하고 작금의 사태에 대해서 따로 할 얘기가 있거든.”

“그 사태에 저도 관련 돼 있잖아요.”

“아닐걸?”

“아니라니요. 저도 분명히 기사가 났잖아요.”

대충 물러나주길 바랬는데 제운의 굳은 의지가 철심 박은 콘크리트 같아서 선유는 짜증이 났다.

“그래. 관련 있어. 근데 나는 그 이전에 그 여자랑 해결해야할 문제가 있거든. 계약과 관련된 문제인데 내 계약을 김제운씨가 알아야 하나? 그리고 김제운씨 그쪽도 보도 정정했잖아. 열애 아니라고. 그럼 사장님하고 할 말 많지 않아?”

기어코 따라오는 제운을 겨우 내보낸 (사실은 쫓아내다시피 방에서 쫓아내고 문을 잠가 버린) 선유가 아직 자고 있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새근새근 잘도 자고 있는 그녀를 보고 있자니 한숨이 나왔다. 결국엔 그녀가 결정할 일인지라 어떻게 될지 예측 불가란 사실이 마음을 답답하게 했다.

한참을 그렇게 그녀를 내려다보던 그가 그녀 옆에 앉아 잠이 든 그녀의 머리카락을 그가 부드럽게 쓸어 넘겼다.

“채소민. 넌 어떻게 할 거지?”

낮게 뱉은 말이었는데 소민이 눈을 반짝 떴다.

“으꺅!”

“왜 그래?”

“당신이 왜 여기 있어요?”

자신이 옷을 입고 있는지 이불을 들춰보는 소민을 보며 선유가 입을 가리고는 피식 웃었다. 이 상황에서도 그녀의 엉뚱함은 고갈되지 않을 모양이다.

“뭐 바랐던 거라도 있나?”

“바, 바라긴 뭘 바래요! 혹시나 한 거지.”

“혹시나 뭐?”

“호, 혹시! 오바이트 해서 옷이 더럽나 확인한 거예요!”

벌개진 얼굴로 애써 변명하는 소민을 보며 선유가 물었다.

“그래서 확인해 본 소감은?”

“뭘 소감씩이나.”

그렇게 중얼거린 소민이 선유를 올려다봤다.

“밤새 여기 있었어요?”

“그래.”

잠이 든 자신을 지키고 있었을지 아니면 다른 곳에서 잠을 잤을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같은 공간 안에 있었다는 사실에 마음이 포근해졌다. 뒷말을 듣기 전까지는.

“김제운이랑 김제운 매니저도 같이.”

그 말에 그녀가 처한 현실이 떠올랐다. 머리를 쓸어 넘기는 그녀를 향해 그가 물었다.

“그래서?”

“뭐가요?”

“기분이 어때?”

선유의 입에서 나온 말에 소민이 인상을 찡그렸다. 어제 많이 마시지도 않았는데 좋지 못한 기분으로 마신 술이 아침까지 그녀의 머리를 아프게 했다. 그래서 아무 말도 없이 가만히 있는데 선유가 뚫어져라 그녀를 쳐다보더니 입을 열었다.

“설마 소주 두 병에 기억이 안 난다던지 하는 건 아니지? 곤란하다고 생각해서 잊은 척 한다거나 말이야.”

흔하디흔한 드라마같은 설정을 언급하며 선유가 그렇게 말하자 소민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사람이 살면서 좀 취할 수도 있고 실수도 하는 거지 뭐 그런 걸 숨기겠어요. 내가 그래야 해요?”

그녀의 말에 선유가 미간을 살짝 구겼다. 하기야 그 순간 그녀가 그를 가리키며 했던 노래가 정말 그를 향했을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실수라는 말에 마음이 편치 못한 것까지는 어쩔 수가 없었다. 그래도 그런 티라도 내면 소민이 또 어려워 할까봐 애써 자신의 마음을 쳐내며 덤덤하니 대답했다.

“그래. 그러면 채소민이 아니지.”

잠시 망설이던 그가 밤사이 있었던 일을 간단히 다시 얘기했다. 그의 입에서 요약되어 나오는 말에 소민의 표정은 점점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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