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인생 최고의 캐스팅-35화 (35/105)

35. 나랑 멀리 가고 싶은가봐?

35.

“그럼 조금만 기다리세요. 준비하고 나갈테니까요.”

소민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선유가 집을 나가고 방으로 들어가려는 소민을 민규가 붙잡았다.

“어디가?”

“어디가긴! 일하러 가지.”

“저 사람이랑?”

“내 캐스팅 대상이니까 당연히 저 사람이랑 가지.”

“계약하기로 한 거야?”

“아니. 오늘은 시놉시스만 전달하기로 했어.”

“이제 캐스팅디렉터라는 거 알긴 하는 거고?”

“그러니까 설명하려고 하는 거지.”

“뭐, 쫄래쫄래 따라다니더니 효과는 있었나 보네.”

“당연하지.”

“알았어. 갔다 와라. 조심하고.”

“뭘?”

“뭐긴 뭐야. 남자.”

“연애하랄 땐 언제고.”

“그건 그거고. 연애할 남자랑 조심해야할 남자는 구분하란 소리지.”

“한선유 생각만큼 나쁜 사람 아니야.”

그렇게 말한 소민이 방으로 쏙 들어갔고 민규가 고개를 갸웃했다.

“남자는 다 나쁘다고 하던 때는 언제고. 그래. 어쨌든 상처가 나아가는 거면 다행인 거지.”

그렇게 중얼거린 민규가 드디어 낮잠을 즐기러 방으로 들어갔다.

소민이 전신 거울 앞으로 달려가 자신의 옷매무새를 살폈다. 아까와는 달리 나무랄 데 없어 보였다. 핸드백과 시놉시스를 챙긴 소민이 날 듯이 집을 나섰다.

엘리베이터가 올라오고 다시 그녀를 태우고 내려가는 그 순간에도 동동 발을 구르던 그녀가 1층에 도착하자 뛰듯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선유의 차로 향했다.

“근데 어떻게 이렇게 일찍 왔어요?”

“오후에 시간이 좀 남아서 일찍 출발했어. 초행길이기도 하고.”

그렇게 말한 선유가 소민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혹시 신경써서 옷을 입은 게 너무 티가 난 건지 긴장한 소민이 더듬더듬 물었다.

“왜... 왜요?”

그녀의 질문에 그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뭐가 문제인 걸까 그녀가 오늘 한 화장이 문제인 걸까? 역시 옷이 안어울리나 고민을 하는데 선유가 그녀 쪽으로 훅 다가왔다.

“왜, 왜 이래요!”

그렇게 말하며 두 손을 포개 입술을 막는 소민을 결박하듯이 안전벨트가 둘러졌다.

“안전벨트 매라고. 안전벨트 안 매고 한 바퀴만 가도 벌금이야. 그러면 내가 또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날 거고 또 욕을 먹겠지. 그럴까봐 그런 거야.”

“아... 난 또.”

그렇게 중얼거리는 소민이 민망한 손을 입술에서 떼어내며 그렇게 말하자 선유가 그녀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나더러 변태라더니. 사실은 나보다 더 응큼한 거 아니야? 머릿속에 그 생각 밖에 없어?”

“무, 뭐가요! 갑자기 훅 들어오니까 그렇잖아요.”

부인하는 소민을 향해 선유가 낮게 중얼거렸다.

“변녀.”

“누, 누가 변녀예요! 그런 거 아니거든요?”

“잘 어울리네.”

“아니라니까요?”

강하게 부정하는 그녀의 말에 피식 웃은 그가 차를 출발시켰다.

“근데 우리... 어디로 가요?”

“글쎄?”

“글쎄라니요. 어디 가는지는 정하고 가야죠.”

“뭐 먹고 싶은데?”

“어... 잘 모르겠는데요.”

“그럼 그냥 내가 가자는 데로 가.”

“그러니까 어디 가는데요?”

“회 먹으러.”

“에?”

그렇게 말한 선유가 핸들을 꺾었다. 고속도로 표지판이 보이는 그 방향에 소민이 경악을 하며 물었다.

“설마 지금 회 먹으러 바다 가는 거 아니죠?”

“글쎄?”

“바다를 가면 어떡해요? 저 오후에 약속 있는데!!”

“내가 선약이야.”

“아니, 한선유씨보다 제운씨가 선약이죠.”

“오늘 약속시간이 내가 먼저잖아. 그럼 내가 선약이지.”

“이렇게 제 멋대로 하는 법이 어디 있어요.”

“나한테 시놉시스만 던져주고 작품 설명도 없이 나더러 알아서 하라고 하면 직무태만인 거 알지? 만약에 내가 궁금한 게 많아도 김제운이랑 약속있으니까 시간되면 나 버리고 갈 생각이었나? 그거 요즘 말로 먹튀라고 한다면서?”

“누가 그렇대요? 그리고 누가 누구 앞에서 먹튀를 논하는 거예요?”

“먹튀할 거 아니면 뭐가 문제야.”

“뭐가 문제긴요. 김제운씨랑 만날 약속을 해놨는데 한선유씨가 멀리 간다고 하면 제 시간에 돌아오기 어렵잖아요. 안 돼요! 가기만 해 봐요?”

“누가 그래? 멀리 간다고?”

“바다 간다면서요!”

“바다? 누가?”

“한선유씨가요!!”

복장이 터지게 하는 선유의 말에 소민이 흥분을 금치 못하는데 선유가 차를 세웠다.

“나랑 멀리 가고 싶은가봐? 근데 안타깝네. 나도 바쁜 사람이고 내일도 일정이 있어서 멀리 못 가. 여기서 먹을 거니까 내려.”

그렇게 말한 선유가 차에서 휙 내리자 차 안에 남겨진 소민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에?”

한참이나 이 상황이 뭔가 가늠하던 소민의 얼굴에 분노가 떠올랐다.

“아악!! 또 낚였어! 저 사기꾼, 뻥쟁이! 나 혼자 또 북치고 장구치고 한 거야?”

잔뜩 흥분해 그렇게 외치던 소민이 순간 고개를 푹 숙였다. 하긴 그가 확답을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냥 그녀 혼자 매 번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 본인의 상상에 농락당했을 뿐.

“아, 쪽팔려. 그냥 밥 안 먹고 간다고 할까?”

‘꼬르르르륵.’

그러기엔 배가 너무 정직했다. 게다가 오늘 정신이 없어 끼니를 떼운 둥 만 둥 한터라 배는 평상시보다 더 고팠다.

“하여튼 한선유랑 있으면 내 예상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어.”

그렇게 투덜거린 소민이 마지못해 차에서 내렸다.

한편 먼저 차에서 내린 선유는 태연한 척 식당으로 향하고는 있었지만 땀이 흥건한 주먹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진짜 다한증이라도 걸린 거 아니야?”

소민과 약속을 잡고는 샤워를 하고 뉴스를 보고 머리까지 했건만 약속시간까지는 아직도 너무도 멀었다.

“아, 그냥 가. 가서 기다려. 원래 서양 매너는 여자를 기다리는 거야.”

그렇게 그에게 탑재되지 않은 서양 매너를 운운하며 소민의 집 앞에 도착한 게 5시도 되기 전이었다.

“이제라도 내려오라고 약속 시간을 당겨? 여자는 준비하는데 오래 걸리는 것 같은데 준비 다 못했겠지?”

핸드폰을 들었다 놨다 하기를 반복하다 문자라도 보내볼까 하고 문자를 입력했다 지웠다를 반복할 때 소민에게 전화가 왔다. 태연한 척 전화를 받는데 자신과의 약속을 취소할 기미가 보이는 소민의 태도에 한숨이 절로 흘러 나왔다. 이 여자랑 뭔가를 하는 건 왜 이렇게 기력을 소모하게 되는지...

“아니에요. 그럼 오늘은 제가 시놉시스만 전달하고...”

- 됐어.

라고 말하고 뭐라고 불러내야 하나 고민하는데 덩달아 소민도 침묵을 지켰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다른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 그 쪽 집에 다 왔으니까 조금 빨리 저녁을 먹으면 되겠네.

“네?”

- 거의 도착했어. 그러니까 지금 내려 오라고. 밥 먹게. 아직 준비 안 됐어?

“어... 어... 벌써 왔다구요? 저 아직 씻지도 않았는데요?”

이미 도착한 지 10분도 더 지났지만 거의 다왔다는 말에 소민은 씻지도 않았다고 난색을 표했다.

- 그럼 어떻게 하라고. 나 도로 가?

“아, 아니요! 어... 음... 올라와요.”

그의 말에 소민은 허둥거리며 올라오라고 했다. 순전히 일 때문이 분명했다. 그와 함께 있으면서도 소민은 제운의 얘기만 해댔고, 제운 어쩌구 자꾸 운운하는 소민의 말에 하마터면 홧김에 그대로 차를 끌고 부산까지 내달릴 뻔했다. 고속도로로 진입하는 길에 적색신호등에 걸린 때에야 그 신호등의 붉은색이 자신에게 보내는 경고 같아 정신이 들어 근처 횟집으로 오긴 했지만.

“안 좋아.”

그가 그렇게 중얼거릴 때였다.

“뭐가요?”

뒤에서 태연하고 평온하기 그지 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민이었다. 혹시 자신의 말을 들었을까 염려했지만 소민은 아무렇지 않은 표정이었다. 소민의 태도에 선유가 손가락으로 횟집 앞 수조에 있는 물고기를 가리켰다.

“저것들 말이야.”

“왜요? 쌩쌩하니 싱싱해 보이기만 하는데요. 우리 뭐 먹을까요?”

소민의 말에 선유가 뭐라 반박하지 못하고 서 있을 때였다.

“어머, 여기서 뭐해?”

웬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고, 소민의 시선이 소리의 근원으로 향했다. 시선의 끝에 한 여자와 남자가 서 있었다. 그러나 같이 들었을 게 분명한 선유는 미동조차 하질 않았다. 그저 수조에 들어 있는 물고기만 계속 바라볼 뿐이었다.

“아는 사람인가?”

“아, 박대표님. 죄송한데 먼저 차에 가시겠어요? 바로 따라 갈게요.”

여자가 그렇게 말하자 박대표라 불린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차로 향했다.

“여기서 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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