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밥 차려주려고
그날 밤 집으로 돌아온 그녀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혹은 기가 막힌 듯 투덜거리고 있었다.
“아니, 뭐든이라니? 원래 여자 등짝 본 남자는 다들 그렇게 말하냐?”
“몰라.”
TV를 보며 시큰둥하게 말하는 동생 민규를 한 번 찌릿하고 노려본 소민이 이내 드러누운 민규가 TV를 보지 못하게 손으로 눈을 가리며 말했다.
“너도 남자잖아. 빨리 얘기해봐.”
“뭐를!”
재미있게 보고 있던 프로그램을 놓칠까 전전긍긍하면서도 누나의 재촉에 자신의 눈을 가린 손을 떼어 낸 민규가 그렇게 물었다.
“아니. 보편적으로 여자 등을 보고 난 후에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대화가 가능하고 그러냐고.”
“누나 등짝이 별론가 보지.”
“아니 내 등이 어디가 어때서? 매끈하니 쭉 뻗었구만.”
흥분하여 씨근덕대는 누나를 한 번 흘깃 보며 TV로 다시 시선을 돌린 민규가 물었다.
“대체 누가 그러기에 그러는데.”
“한선유.”
소민의 말에 민규가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한선유야 그런 등 많이 봤겠지.”
정곡을 콕 찌르는 민규의 말에 소민이 순간 딱하고 행동이 멎었다.
“그래. 그랬네. 많이 봤네. 어쩐지 몹시도 자연스럽다 했어.”
“뭐가?”
“그런 게 있어.”
“그러니까 그런 게 뭐냐고. 잠깐 너 오늘 좀 이상해. 등에 연연하는 것부터 너 오늘 뭔 일 있었지. 한선유랑. 빨리 불어.”
“불긴 뭘 불어. 네가 풍선이냐? 깃털이냐?”
당황스런 마음에 나온 헛소리는 민규의 의심을 더욱 증폭시킬 뿐이었고, 결국 10분 간 소민은 민규에게 오늘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보고할 수밖에 없었다.
“둘 중 하나네.”
“뭔데?”
소민의 얘기를 다 듣고 난 민규의 말이 그랬고, 소민은 무릎도사라도 만난 듯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네 등짝이 별로거나”
그의 말에 표정이 일그러지는 소민을 무시하며 민규가 다시 말을 이었다.
“네가 별로거나.”
“아 놔, 너 간만에 혈육이 낭자한 남매간의 전투를 치루고 싶냐?”
끝까지 좋은 말이 나오질 않는 민규에게 전쟁을 선포한 소민을 피해 민규는 방으로 꽁무니를 내뺐고, 한참을 씨근덕거리던 소민이 의자에 놓인 토끼탈을 쳐다보며 플랜B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당분간 토끼탈로 주변에 얼쩡거리는 건 보류해야 할 듯 싶었다.
“이렇게 실패할 줄 누가 알았겠어?”
큰 맘 먹고 첫 삽을 떴던 팬 미팅 현장에서부터 망조가 들었던 거다.
“하필 거기서 그런 대사를 칠 게 뭐람.”
게다가 오늘 있었던 일까지 생각하자 고개가 절로 아래로 아래로 내려왔다. 기왕 토끼탈을 쓰게 된 거 나름 극적인 효과를 노리기도 한 것이었는데 처음부터 지금까지 토끼탈을 쓰고는 저주 받은 행보의 연속이었다.
“‘전교 1등 왕안경 찐따 모범생이 안경을 벗으니 미소녀였어?’ 이런 컨셉이랑 비슷하게 ‘토끼탈을 벗으니 웬 미녀 캐스팅디렉터가?’ 이런 컨셉으로 가려고 했는데.”
팬 사인회장에서 봤던 자신을 기억을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어떤 표정을 짓기도 아까웠던 것인지 자신을 보고서도 무표정을 짓던 선유의 표정을 떠올리자 한숨이 새어 나왔다.
“어쩌지...”
선유 앞에서 원없이 망가졌던 자신의 모습을 곱씹고 있는데 그녀의 전화가 몸을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여보세요?”
- 어, 소민씨. 나야~
“아! 네. 안녕하세요.”
- 그래. 그래. 소민씨. 어떻게 슬슬 진행은 하고 있나?
선유의 캐스팅을 의뢰한 제작사 쪽에서 전화를 걸어오자 소민은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르는 걸 느꼈다.
“아, 이제 슬슬 시작해 봐야죠. 하! 하하하! 하하하하하하!”
- 그래. 그래. 그럼 우리는 언제든 레디하고 있으니까 선유씨 일정만 맞춰 알려달라고. 소민씨한테 거는 기대가 커요. 우리가 다 한선유만 보고 있는 거 알지?
“아... 네... 근데 꼭 한선유여야 하는 이유가 있나요?”
- 알잖아. 지금 CBC 드라마 3편 연속 시청률 꼴찌인 거. CBC쪽에서도 이 드라마에 사활을 걸었거든. 근데 또 사람들이 한선유 사생활은 욕하면서도 꼭 드라마는 봐요. 뭐 연기도 되는 놈이 왜 저러고 사나 생각하는 건가봐. 하하하하하하!
“네에...”
- 아무튼! 우리 소민씨만 믿어! 드라마 잘 돼서 포상 받으면 소민씨도 같이 여행가자구!
“네, 네. 감사합니다. 들어가세요.”
전화기를 내려 놓으며 소민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다른 배우는 안 될까 싶어 얘기를 꺼내보려 했건만, 꺼내기도 전에 싹을 잘린 격이었다.
“어떡하지. 캐스팅에 캐자만 꺼내도 화낼 것 같은데.”
자신을 무감하게 내려다보던 선유의 모습을 다시 떠올리던 소민이 무슨 생각인지 스마트폰으로 인터넷 검색창에 한선유를 검색하다 한참 후 소리 높여 마녀같은 웃음소리를 냈다.
“어우, 또 누구 하나 괴롭겠구만. 제발 저만 아니게 해주세요.”
소민의 웃음소리에 민규가 소름끼치는 소리에 몸을 부르르 떨며 그렇게 빌었다.
그런 민규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소민의 웃음소리는 그치지 않았다.
“좋아, 준비 됐어!!”
며칠 후, 아침 일찍이라고 하기에도 이를 만한 시간인 새벽바람에 소민이 앞치마를 두르고 머리두건까지 하고는 거울 앞에 자신의 모습을 비쳐보고 있었다.
자다 일어나 목이 말라 물을 마시러 부엌으로 나오던 민규가 그런 그녀를 발견하고는 흠칫하고 놀라더니 이내 눈을 비비며 하룻밤 새에 자신의 시력이 나빠 진 것은 아닌지 의심하는 것이었다.
“누구세요?”
“뭐래~”
“저희 누나 맞아요?”
“잠이 덜 깼냐? 한 대 더 때려서 깨게 해주리?”
그녀의 말에 호민이 등짝을 어루만지며 볼 멘 소리를 했다.
“아 쫌! 대체 이 나이 맞도록 누나한테 맞는 동생이 어딨냐?”
“있잖아. 너.”
그녀의 뒤통수에 대고 입술을 삐죽인 민규가 물었다.
“무슨 바람이야? 오늘 해 서쪽에서 뜰 거래? 원래 이 시간이면 업어 가도 모를 정도로 자야 하는 거 아니야?”
“나 좀 늦을지도 몰라.”
민규의 말을 무시하며 신발을 신고는 늦을 거라고 통보하는 소민을 향해 민규가 다시 질문을 던졌다.
“어디 가는데?”
“남자 밥 차려주려고.”
“뭐어?”
기함을 하는 그의 모습을 뒤로 하고 소민이 다부지게 현관문을 박차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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