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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코인 채굴-205화 (205/236)

205화

우주 해적 중 단 넷밖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제독, 크레인은 눈앞의 행성을 바라본다. 상인들의 성지라는 그랜드 머천트. 그 달콤한 과실과 같은 아름다운 자태에, 그는 입맛을 다셨다.

곧 그의 손에 들어올 것들을 떠올리니 절로 군침이 돌았다. 그랜드 머천트 자체가 원래부터 채산성 높은 행성이기도 하지만, 사실 ‘진짜’는 거래소가 보유한 대량의 기프트다.

그랜드 머천트에는 총 다섯 개의 거래소가 존재한다. 미리 사전 답사해 알아낸 정보에 의하면 각 거래소에서 보관하는 기프트의 양은 적어도 수백억 기프트.

다섯 곳이니, 그 액수는 수천억 기프트에 이른다. 그리고 그 막대한 양의 기프트는 계획대로만 진행된다면- 곧 그의 손아귀에 들어갈 것이다.

“마셜 상단에서 항의를 해왔습니다. 약속과 달리 왜 이렇게 일을 크게 벌이냐고 말입니다.”

크레인은 코웃음을 쳤다. 이번 그랜드 머천트 침공 작전을 벌이기 위해 마셜 상단의 도움을 받은 건 사실이지만 그는 애초부터 마셜 상단과 끝까지 협력할 생각이 없었다.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그의 입장에선 처음부터 협력한 적이 없었다. 이쪽이 일방적으로 이용했을 뿐이다. 협력이라는 건 동등한 존재끼리 성립할 수 있는 단어다.

“쯧, 고작 냄새나는 개새끼들 주제에 우리랑 맞먹으려 하다니··· 무시해.”

그의 명령에, 부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슬슬 시작하지.”

“예.”

“방심해선 안 된다. 상대는 ‘신’이니까.”

나머지는 별 볼 일 없지만 그랜드 머천트를 수호해온 신, ‘므르므르’는 그조차 결코 쉽게 상대할 수 없는 괴물이었다. 그의 명령이 떨어지자, 전함들이 일제히 주포 발사를 준비한다.

마침내, 주포가 그 불을 뿜었다. 그는 파괴 광선들에 의해 그랜드 머천트가 불바다가 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과연, 그의 예측처럼 행성은 불바다가 돼버렸다.

그러나, 그조차 예상하지 못했던 ‘변수’ 역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주포를 다시 발사하려던 그때, 공간이 일그러지며, 앞열에 있던 전함들이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 이게 무, 무슨···

전함은 물론, 그 안에 탑승해있던 선원들마저 먼지로 분해되고 있었다. 크레인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대체 어떤···”

이내, 그는 우주 공간에 서 있는 ‘인간’을 바라볼 수 있었다. 우주 공간 위에 둥둥 떠 있는 여우 가면을 쓴 인간. 그의 손에는 검이 들려 있었다. 당연하게도, 이진서였다.

***

근 몇 달간, 지구는 놀라울 정도로 평화로웠다. 기후 이변이 일어나지도 않았고, 적이 나타나지도 않았다. 이진서의 그룹원들은 깨달았다. 이제··· 정말로 끝났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2023년 1월 17일, 세상이 갑작스레 코인 채굴기로 변한 이후, 거의 일 년 반에 가까운 긴 시간 동안 그들이 벌여온, 생존을 위한 사투(死鬪)가 종지부를 맞이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그룹원들은 갑작스레 찾아온 평화에 기뻐하면서도, 한편으론 어색해했다.

그러나 그것도 시간이 흐르며 점차 나아졌다. 그들이 마치 아포칼립스 세상에 적응했던 것처럼, 그들은 점차 바뀐 세상에 적응해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전히 바쁜 이들은 있었다. 김하나가 이끄는 요리조원들이 바로 그들이다. 물론 요리조원들 중 그만둔 이들도 많았지만, 초창기의 요리조원들은 대부분 그녀와 함께했다.

가령 과거, 그녀와 일했던 이들이라거나···

진혜연은 요리조원은 아니었지만, 종종 요리조의 일을 돕곤 했다. -여담이지만, 그녀는 최근 버프 스킬 하나를 삭제하고, 요리 스킬을 익혔다.

“혜연이, 왔구나?”

빵 모자를 쓴 채, 음식 접시가 놓인 쟁반을 옮기고 있던 김미애가 진혜연을 반갑게 맞았다. 마당발인 그녀답게, 그녀는 대부분의 요리조원들과 친분을 가지고 있었다.

“네, 미나 언니.”

“하나 언니는 안에 있어.”

“고마워요, 언니.”

“이따 배고프면 와, 점심 만들어줄 테니까.”

“히히, 네.”

진혜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조리실 안쪽으로 들어갔다. 조리실 안쪽에 나 있는 문을 열자 각종 요리 기구들과 함께 땀을 뻘뻘 흘리며 요리를 하고 있는 김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꽤나 한참 동안 그녀가 온 줄도 모른 채, 요리에 몰두하는 그녀를 바라보며, 진혜연은 새삼스럽게 감탄했다. 일에 몰두하고 있는 여자란 이렇게 아름다운 거구나 하고···

‘나도 나중에 저렇게 돼야겠다.’

그렇게 다짐하던 그때, 김하나가 그녀를 바라봤다.

“혜연이 왔니?”

진혜연은 웃으며 그녀에게 얼른 인사를 건넸다.

“네, 안녕하세요, 언니. 이거예요?”

그녀는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접시를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아름다운 꽃 모양으로 데코돼 플레이팅된 파스타. 겉모양은 무척이나 아름답지만, 사실 진짜는 그 맛일 터였다.

몇 번이나 김하나가 만든 음식을 먹어왔던 진혜연은 냄새만 맡아도 군침이 절로 흘러나오는 걸 느꼈다. 정민혁은 그것을 ‘파블로프의 개’에 빗대며, 그녀가 개인 증거라고 주장했었다.

물론, 주장은 그녀의 정강이 걷어차기 한 번에 묵살 당하고 말았지만···

“응, 맞아. 그거랑 바깥에 있는 스테이크랑 해서 갖다 드리면 돼. 아마 애들이 스테이크 이미 만들어놨을 거야.”

고개를 끄덕인 진혜연은 접시를 들었다.

“갖다 드린 다음에 너도 와. 네 것도 만들어 놓을 테니까.”

“아니에요, 미애 언니가 이미 만들어주기로 하셨어요.”

“미애보다야 내가 낫지.”

진혜연은 피식 웃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그냥 두 접시 먹어야겠네···’

파스타 접시를 아공간 주머니에 보관한 그녀는 바깥에서 스테이크 접시도 받아, 1층으로 내려갔다. 1층에는 최근 아나스타샤가 발명한 ‘이동용 드론’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동용 드론, 메인 AI 도리스에 의해 자율 주행 되는 운송 수단으로, 발명한 지 채 한 달도 안 됐음에도, 빠르게 기존에 존재하던 운송 수단을 대체해나가고 있었다.

이동용 드론에 탑승하자, 드론이 목적지를 묻는다.

“웨이타오 전망대.”

이동용 드론은 빠른 속도로 목적지로 향하기 시작했다.

목적지에 도착한 진혜연은 바람을 맞으며 웨이타오 전망대 앞에 살포시 내린다. 전망대 엘리베이터에 탑승한 그녀는 중얼거렸다. 64층. 전망대 64층은 펜트하우스다.

펜트하우스 앞에 도착한 그녀는 심호흡을 한번 하고,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무표정한 얼굴의 미녀가 소파에 기대듯 누운 채 허공에 손짓을 하고 있다.

‘생긴 것처럼 우아하네.’

미녀에게 다가간 그녀는 먼저 화사하게 인사를 건넸다.

“시에니 언니, 안녕하세요.”

“······?”

시에니라 불린 미녀는 표정 변화 하나 없는 무표정한 얼굴로 진혜연을 바라본다.

마치 ‘너는 누구냐?’ 하고 묻는 것 같았다. 보통 사람이라면 뻘쭘해하며 음식만 꺼내고 돌아갔겠지만 핵인싸로 화려하게 개화한 진혜연은 오히려 그녀에게 한층 더 살갑게 다가갔다.

“언니, 와, 너무 예뻐요.”

단순한 사탕발림만은 아니었다. 실제로 그녀의 미모는 과장 조금 보태서 빛이 날 정도였으니 말이다.

“누구?”

“언니 드릴 음식 가져왔어요.”

그녀는 아공간 주머니에서 파스타와 스테이크가 담긴 접시를 꺼내며 말했다. 그제야, 시에니의 입이 열렸다.

“두고 가요. 지금은 조금 바빠서.”

그렇게 말하는 것 치고는 별로 안 바빠 보여서, 그녀는 무심코 물었다.

“지금 뭐 하시는데요?”

“모니터링.”

짤막하게 대답한 그녀의 금색 눈이 검게 물들었다.

누구를 모니터링한다는 걸까? 진혜연은 의아해했지만, 이내 그 칠흑 같은 눈동자에 생각할 여유를 빼앗기고 말았다.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눈동자에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

검은 눈동자에 어느새, 색이 뒤섞인다. 아름답게 빛나는 푸른색과 붉은색의 빛무리들. 그녀는 그제야 자신이 보고 있던 것이 단순한 검은 배경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주.’

그것은 우주였다. 그녀의 눈동자는 우주를 담고 있었던 것이다.

“와···”

우주는 아름다웠다. TV나 인터넷에서 보긴 했지만, 거기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무언의 감동을 받을 수 있었다. 헤아릴 수 없는 별들이 저마다 빛을 발하며 존재감을 알린다.

마치 ‘나를 쳐다봐’라고 말하는 것처럼. 이내, 천천히, 느릿느릿하게 움직이던 장면은 푸른색과 보라색이 어우러져 빛나는, 아름다운 행성에서 멈췄다.

행성을 둘러싼, 수십 대의 전함들. 척 보더라도 전쟁 분위기였다. 그녀는 그제야 그녀가 모니터링한다는 것이 어딘가에서 벌어지는지 모를 전쟁 풍경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여긴 어디예요?”

“그랜드 머천트, 상인들의 행성입니다.”

그녀는 곰곰이 ‘그랜드 머천트’라는, 괴상한 행성의 이름을 곱씹다가 화들짝 놀랐다.

“그러면 진서 오빠가 간 곳 아니에요?”

시에니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이 상황에서 침묵은 곧 긍정이었다. 그녀는 황급히 되물었다.

“오빠는 살아있어요?”

“네.”

시에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간략하게 설명했다.

“플레이어, 이진서는 이미 전 우주를 통틀어서도, 최상위권의 강자입니다. 고작 전함의 주포를 맞고 죽을 정도로 약하지는 않습니다.”

“어··· 그건 그렇죠.”

그때, 펑!

전함 한 척이 강렬한 폭발을 일으킨다. 누구의 소행인지는 명확했다. 신화 속의 용사처럼 찬란하게 빛나는 검을 들고 폭발 속을 빠져나온 사내는 이진서였으므로.

진혜연은 내심 그의 무사함에 안심하면서도, 걱정 어린 눈초리로 물었다.

“도와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래서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시에니는 짤막하게 대답했다.

분명 그녀가 말한 대로 이진서는 전 우주를 통틀어서도 최상위권의 강자. 그러나 상대가 지나치게 거물이었다. 애초에 그랜드 머천트를 침공했다는 것 자체가 그 강함의 방증이었다.

상대의 정체는 수많은 우주 해적들 가운데, 단 네 명밖에 없다는 제독, 크레인. 한때 베스타스 제독과 영역 다툼을 벌여 판정승 끝에 그를 내쫓은 괴물 중의 괴물.

이진서는 강하지만, 그런 괴물을 상대로 승리를 장담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없습니다.”

“네?”

“그를 도와줄 만큼의 강자가 없다는 뜻입니다.”

그들의 전투에 참여해, 도움이 되려면 일정 이상의 ‘허들’을 넘어야 한다. 어설픈 실력을 가진 이가 개입해봐야, 방해만 될 뿐이다.

그러나 하이낸스에서 당장 운용할 수 있는 강자들은 그 정도 수준이 되지 못했다.

“그래도 잘 찾아보면··· 아니, 차라리, 저라도 보내주세요. 버프 셔틀이라도 하게.”

시에니는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그녀의 눈에 진혜연의 수준은 허들은커녕 걸음마도 제대로 못 할 신생아 수준이었으니 말이다.

진혜연은 답답하다는 듯 숨을 쉬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도와줄 사람을 찾아볼게요.”

시에니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다급히 펜트하우스를 나섰다.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그녀는 다시 장면을 전환한다. 가장 거대한 전함의 문이 열렸다.

안에서, 백발의 사내가 도약한다. 제독, 크레인이 직접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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