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화
온통 불로 이루어진 거대한 거인은 하늘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그의 손에 생겨나는 거대한 불의 검. 무식하게 거대한 불의 검이 수직으로 낙하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 검이 지면과 맞닿는 일은 없었다. 지면에서 무언가가 총알처럼 튀어 나가, 그의 팔을 꿰뚫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검을 바닥에 떨어트리고 말았다.
그대로 건물의 잔해들을 짓뭉개버린 검은 곧 화염으로 변해 흩어져버렸다.
- 감히 하찮은 미물 주제에···!
이프리트는 분노의 음색을 내뱉으며 이번엔 주먹을 바닥에 내리쳤다. 쾅! 지면에서 거대한 용암들이 일어난다. 그러나 용암들은 제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둘로 갈라지고 말았다.
용암을 가른, 리저드맨- 그린돈이 그에게 달려든다. 이프리트는 그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둔탁한 동작으로 피하려면 얼마든지 피할 수 있었겠지만, 그는 이번에는 피하지 않았다.
마침내 주먹과 주먹이 맞닿는다. 쾅! 거대한 폭음과 함께, 여파로 인해 순간적으로 공간이 일그러진다. 이후에 몰아친 힘의 폭풍으로, 인근의 산 여러 개가 그대로 날아가 버렸다.
승자는 다름 아닌 리저드맨이었다.
“누가 미물인지는 이미 답이 나온 것 같은데.”
화염 거인의 위에 선 그린돈은 화염 거인의 머리를 박살내 버린다. 이프리트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아마 다음번에 소환되면 길길이 날뛸 그의 모습이 눈에 선한데···
그린돈은 나를 돌아보며 혀로 입술을 축인다.
“어지간하면 사용하고 싶지 않았던 스킬인데, 네 놈이 명을 재촉했다.”
‘광폭화와 스킬 압축을 동시에 사용한 건가.’
나는 광폭화와 스킬 압축의 스킬 설명을 떠올렸다.
<광폭화>
종류 : 액티브(Active)
등급 : 신화(God)
설명 : 일시적으로 몸을 광폭시켜, 모든 능력치를 50% 증가시킨다.(최대 900) 다만 광폭화의 지속 시간이 끝날 경우, 탈진 상태가 되고 모든 능력치가 50% 저하된다.
<스킬 압축(2)>
종류 : 액티브(Active)
등급 : 신화(God)
설명 : 스킬 슬롯 여러 개를 차지하는 대신, 대상 스킬의 효율을 배로(차지하는 슬롯의 개수 +1만큼) 증가시킨다.
스킬 압축을 사용하고, 광폭화를 사용한 것이라면.
‘설명대로라면 그린돈의 능력치는···’
150% 증가된다. 최대치인 ‘900’일 확률이 높았다. 모든 능력치 900. 내 예상이 맞다면··· 나는 단언할 수 있었다. 지금 눈앞의 그린돈은, 내가 상대했던 그 어떤 상대보다 강력하다고.
비록 시한부이긴 하지만···
사고(思考)를 이어나가기 전에 그의 몸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다음 순간, 내 앞에 나타난 그의 주먹이 내게 뻗어졌다.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 두른 앱솔루트 배리어는 찢어져 버렸다.
강력한 충격과 함께 내 몸이 뒤로 날아간다. 쾅! 쾅! 부딪치는 사물들을 닥치는 대로 부수면서. 그러나 그는 나를 향해 네 발로 달리기 시작했다.
“왜, 아까처럼 더 입을 털어 보시지. 내가 너무 빨라서, 적응이 안 되나?”
‘시간 가속.’
[시간 가속(G)을 사용합니다.]
내 육체의 시간이 빨라진 만큼, 세상의 시간이 느려진다. 그린돈의 몸놀림 역시 약간은 느려졌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시간 가속을 사용했음에도 여전히 그는 ‘나보다’ 빨랐다.
간신히 엘론을 들어 그의 주먹을 쳐낸다. 그러나 엘론은 그의 주먹과 맞닿는 순간, 그대로 박살 나 버리고 말았다. 신화 등급 무기가 고작 주먹질 한 번에···
그러나 놀라워할 시간은 없었다. 아니, 그럴 여유를 주지 않았다.
‘아낄 때가 아니다.’
스킬을 아낄 때가 아니었다. 마인화의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선, 가진 스킬을 모조리 쏟아내야 했다.
“영령 빙의.”
[영령 빙의(G)를 사용합니다.]
[행운이 믿을 수 없는 기적을 만들어냅니다.]
[신급의 영령, ‘군신, 아레스’를 불러옵니다.]
‘신급의 영령.’
신급의 영령을 소환했던 적은 있다. 하지만 이렇게 영령 빙의를 사용해 신급의 영령에 빙의된 적은 처음이었다. 군신, 아레스. 만약 내가 아는 그 올림푸스의 아레스가 맞다면···
‘최고의 카드를 뽑았다.’
그는 어쩌면 지혜의 신, 미미르보다도 더 강할 것이었다. 아니, 이건 ‘확신’이었다. 물론 아직 설레발치기는 일렀다. 내게 힘을 빌려줄지, 안 빌려줄지는 그의 뜻에 달렸으니 말이다.
갑옷을 걸친 붉은색 머리의 사내가 눈앞에 나타난다.
아레스에 대한 첫인상은 신이라기보다는, 전형적인 양아치스러운 외모였다. 하기야, 신화대로라면 그는 천하의 싸움꾼에 난봉꾼이니까 당연한 건가?
‘혹시, 내 생각을 읽은 건 아니겠지?’
그를 쳐다봤지만, 그는 전혀 그런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 네가 나를 불러낸 인간인가? 아니, 인간이 맞긴 한가?
“예, 뭐··· 그렇습니다.”
긴가민가 고개를 갸웃거리던 그는 그린돈을 쓱 돌아보고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 저런 괴물을 상대하는 데 내 힘이 필요하다면야, 뭐, 내가 힘을 빌려주지 않을 이유가 없지.
“감사합니다.”
나는 그에게 고개를 숙였다.
[신급의 영령 ‘군신, 아레스’가 몸에 빙의됩니다.]
[마력에 따라 동화율이 설정됩니다.]
[마력 601.7을 확인했습니다.]
[현재 동화율 50%] [지속 시간 : 60분] [재사용 대기시간 : 48시간]
[영령의 능력치와 스킬의 일부를 불러옵니다.]
[일시적으로 근력이 27, 민첩이 27 상승합니다.]
[군신의 무구(G)를 일시적으로 습득했습니다.]
[아레스의 군대(G)를 일시적으로 습득했습니다.]
동화율이 50%밖에 되지 않는다. 지금 내 마력으론 그 옐레나조차 동화율 100%를 채우는 데 전혀 문제가 없었는데 말이다. 예상은 했지만 그는 더 괴물이었다.
하기야, 그는 신이니 당연한 노릇이지만 말이다.
‘게다가 스킬까지···’
신화 등급 스킬을 무려 두 개나 습득했다. 각각 군신의 무구와, 아레스의 군대라는 스킬이었다.
<군신의 무구>
종류 : 액티브(Active)
등급 : 신화(God)
설명 : 내구도가 무한인 군신의 무구들을 불러낸다. ①군신의 검 : 근력 +15.0, 공격 시 일정 확률(1%)로 군신의 축복(공격력, 방어력 +30%) 효과 발동 ②군신의 갑옷 : 모든 능력치 +10.0, 절대 반사 +20%, ③군신의 망토 : 민첩 +25.0, 일정 확률로 마법 무효화 ④군신의 뿔피리 : 마룡, 셰어셀을 소환한다. 마룡, 셰어셀의 능력치는 사용자의 마력과 비례한다.
<아레스의 군대>
종류 : 액티브(Active)
등급 : 신화(God)
설명 : 전장을 늘 승리로 이끌었던 아레스의 군대를 소환한다. 아레스의 군대의 양과 질은 소환사의 신성과 마력에 비례한다.
마음 같아서는 천천히 설명을 읽고 싶었지만 그린돈이 가만히 두지 않았다. 어느새 창을 꺼낸 그가 나를 향해 창을 던졌다. 마치 싸이클론처럼 가로막는 모든 것을 휩쓸며 날아오는 창.
나는 블링크를 사용해, 공격을 피해냈다. 마치 핵폭탄이라도 맞은 것처럼 거대한 크레이터가 생겨난다. 시스템에게 물었다.
‘군신의 무구를 사용하면, 루의 무구는 사용할 수 없는 건가?’
[아뇨, 중복 적용 가능합니다. 외양만 군신의 무구로 변경되고, 옵션이 추가됩니다.]
더 이상 거리낄 것이 없었다.
‘군신의 무구.’
[군신의 무구(G)를 사용합니다.]
내 갑옷이 점차 변화하기 시작한다. 허리춤에는 군신의 검이 생겼고, 빛의 신, 루의 갑옷은 아레스가 입고 있던 군신의 갑옷으로 변했다. 그리고 등에는 붉은 망토가 생겨났다.
내게 또다시 달려드는 그린돈. 나는 군신의 검을 쥐고, 그를 향해 휘둘렀다. 그는 나를 비웃는 듯한 조소를 지으며 내게 주먹을 휘둘렀다.
아마, 그는 이 군신의 검이 엘론처럼 부서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군신의 검은 부서지지 않는다. 애초에 옵션 자체가 ‘내구도 무한’이었으니 말이다.
쾅!
강력한 반탄력과 함께 내 몸이 뒤로 밀려난다. 그러나 뒤로 밀려난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그 역시 주먹에 자상을 입고 뒤로 밀려났다. 그의 표정에 당황함이 역력했다.
그러나 금세 원래의 여유를 되찾은 그는 품에서 창을 꺼내 내게 휘둘렀다. ‘시간 가속’을 사용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막을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간신히 몸을 뒤로 날렸다.
그러나 나는 잠시 망각했던 사실을 떠올렸다.
녀석의 스킬 중 하나는 ‘천둥창’이라는 것을 말이다.
우르릉, 하늘에서 낙뢰가 떨어져 내린다. 아까 이프리트를 상대할 때 사용했던 낙뢰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이 크고 웅장한 낙뢰였다.
나는 마력을 최대한 끌어올려, 앱솔루트 쉴드를 사용했다. 급조한 것이기에, 완전히 방어하진 못할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예상에도 불구하고, 나는 멀쩡할 수 있었다.
[군신의 망토(G)가 낙뢰를 무효화합니다.]
‘운 좋게’ 군신의 망토가 낙뢰를 무효화했기 때문이었다. 웃고 있던 그린돈의 표정이 굳어진 건 덤이다. 그는 창을 들고 내게 달려들었다. 그가 밟을 때마다 지면이 늪지로 변한다.
아까 모두 태워버렸음에도 불구하고, 주위엔 늪지로 가득한 이유였다.
나는 그를 향해 중얼거렸다.
“멈춰.”
통찰안의 지배 권능을 사용하자, 순간적으로 그의 몸이 굳어진다. 물론 그의 몸이 굳어진 것은 말 그대로 찰나에 불과하다. 그러나 지금의 내게 필요한 것 역시 그 ‘찰나’였다.
나는 녀석을 향해 검을 휘두르는 대신, 지면을 향해 검을 내리꽂았다.
콰직.
지면을 가볍게 부수고 들어간 검.
[성역을 선포합니다.]
성역이 선포된다. 지면이 새하얀 대지로 변화하기 시작한다. 시험관이었던 제라처럼 그린돈의 표정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그러나 이내 그의 표정은 분노로 변한다.
“인간 주제에 어떻게··· 어머니와 같은 힘을 사용하는 거냐···!”
나는 그제야 시나트리온의 말- ‘어머니의 그림자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어머니의 그림자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말이, 신성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말이었나.’
그린돈은 강했다. 그 강함은 어쩌면 ‘신’에 근접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신성을 사용하지 못했다. 물론 신성의 유무가 강함의 척도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거 하나는 분명했다. 신성의 유무는 결코 작지 않은 차이라는 것.
“죽어라, 인간!”
그의 창은 기어코 성역 전체에 둘러진 신성 보호막을 찢어내고 안으로 들어왔다. 무시무시한 힘이다. 그러나 그뿐이다. 나는 신성을 사용해 보호막을 ‘리필’했다.
그는 보호막 사이에 갇히고 말았다.
[성역이 다른 신의 힘을 제거했습니다.]
[크론의 가호가 사라집니다.]
그린돈의 몸이 눈에 띄게 수척해졌다. 그는 벗어나기 위해 몸을 흔들었지만, 방금 전처럼 손쉽게 물리력으로 신성 보호막을 찢고 나오지는 못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광폭화의 지속 시간까지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