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코인 채굴-190화 (190/236)

190화

그린돈에 대해 묻자, 시나트리온은 한마디로 정의를 내렸다.

“나약한 쓰레기다.”

물론 나는 그의 말을 곧이 그대로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그린돈이 나약한 쓰레기라는 건 어디까지나 그의 관점에서 봤을 때의 이야기지, 내 관점에서 보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으니 말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함장’이 약할 리가 없잖은가.

아무리 내가 강해졌다지만, 방심은 금물이었다. 신성의 활용법을 익히고, 통찰안의 3단계 능력을 얻으며 강해지긴 했지만, 그린돈에겐 내게 없는 풍부한 전투 경험이 있을 것이다.

‘거울을 사용한다면 어렵지 않게 이길 수 있겠지만…’

거울을 사용해 동화 세계 속의 ‘나’를 불러낸다면 그를 어렵지 않게 이길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그린돈이 강하다 하더라도 그 이프리트보다 강하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거울의 사용은 되도록이면 자제하고 싶었다. 외부에 노출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와 비교하면 어떻습니까?”

내 물음에 그는 오히려 내게 물음을 던졌다.

“이진서, 너는 네 어머니보다 약한가?”

갑작스러운 패드립에 잠시 말문이 막혔으나, 이내 나는 입을 열었다.

“…아뇨. 제 어머니는 이미…”

돌아가신 분과 강하니, 약하니 비교하는 것도 웃기긴 하지만, 평범한 인간인 어머니보다는 내가 더 강할 것이다.

“그 차이다.”

무슨 뜻인지 몰라 내가 의아한 표정을 짓자, 그는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제 어머니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끝내 도망치는 길을 택한 겁쟁이.”

“…그 정도로 그린돈의 어머니가 대단한 인물인가 보죠?”

“크론, 행성의 신이다. 네가 언젠가 우주로 진출하게 된다면 그녀의 이름 정도는 듣게 될 것이다.”

그가 이름을 듣게 될 정도라고 말할 정도면 크론이라는 인물은 정말 우주적으로 유명한 인물이라는 뜻일 것이다. 그런 인물의 아들이 나약한 겁쟁이라니 이걸 믿어야 돼, 말아야 돼?

여전히 모호한 내 표정에 그가 사족을 덧붙였다.

“만나게 되면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게 될 것이다.”

“아, 예… 감사합니다. 그런데… 저 혹시 제가 없는 사이에 녀석이 쳐들어오면… 시나트리온님께서 막아주실 수 있겠습니까?”

아무리 ‘노예 계약’을 맺었다곤 하지만 그는 내가 쉽게 대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만약 계약을 깨고 나를 적대한다면 곤란해지는 것은 이쪽이었으니 말이다.

내 부탁에 시나트리온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만약 내 도움이 필요하다면, 내가 직접 녀석을 죽여줄 수도 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 그건 괜찮습니다.”

“싸움이 고픈 모양이군.”

“그래 보입니까?”

그는 드물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도 한때는 그랬었으니까.”

뭐, 사실 고파서라기보다는 전투 경험을 쌓기 위해서라는 표현이 옳다. 풍부한 전투 경험을 가진 상대와의 전투는 내 부족한 전투 경험을 쌓는 데 도움이 될 테니 말이다.

물론 한편으로는…

‘틀린 말도 아니네.’

지금의 나를 시험해보고 싶기도 했다.

***

제우스, 그는 어째서 그가 그동안 ‘올림푸스의 지배자’로 군림해왔는지 입증했다.

지금껏 단신으로 수백 명의 신을 살해해온 신 살해자, 발라르라는 이계의 신격을 상대로 그는 시종일관 압도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결과는 정반대였다.

그는 패배했다. 사지가 잘려나가고, 몸통은 그가 키우던 독수리에 의해 쪼여 먹히며 그는 발라르를 올려다보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아스클레피오스는 히죽 웃었다.

“제우스, 지금 기분이 어떻지?”

“닥쳐라, 아스클레피오스. 네 놈 같은 쓰레기에게는 대꾸할 시간도 아까우니까.”

“네 놈이야말로 닥쳐라, 제우스.”

아스클레피오스는 인상을 찌푸리며, 제우스를 발로 걷어찼다. 퍽, 발에 맞은 그의 몸이 뒤로 기울어지며 쓰러진다. 제우스는 분노했지만, 그로서는 저항할 방법이 없었다.

그는 대부분의 힘을 상실했으니 말이다. 아스클레피오스는 슬며시 발라르를 돌아봤다. 발라르는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그에게 떠오른 시스템 메시지를.

[경고합니다, 발라르. 당신은 이미 수많은 직접 계약자들을 살해했습니다. 우리 컴퍼니는 더 이상 당신의 행위에 대해 묵과하지 않을 것입니다.]

“묵과하지 않으면 어쩔 거지? 나를 죽이기라도 할 건가?”

[착각하지 마십시오, 발라르. 우리는 당신이 지금껏 죽여온 존재들과 달리, 당신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잊지 마십시오. 이 우주의 지배자가 누구인지.]

다분히 협박성 어린 메시지에 그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도록 하지.”

대수롭잖게 대답한 그는 아스클레피오스에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아스클레피오스, 죽여라.”

그에 기쁘다는 듯 아스클레피오스가 입을 열었다.

“예, 나의 주인이시여.”

[그게 무슨?]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 시스템이 미처 제지하기도 전에 아스클레피오스는 창을 꺼내, 단숨에 제우스의 가슴을 꿰뚫었다. 가슴이 꿰뚫린 제우스가 검은 피를 토해냈다.

아무리 무방비 상태라고는 하나 평범한 창이라면 그의 목숨을 위협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애석하게도 이 창은 평범한 창과는 거리가 멀었다. 죽음의 창, 네메시스(Nemesis).

한때 그의 권좌를 위협하기도 했던 죽음의 신, 하데스의 창이었다. 레플리카도 아닌 원본. 제우스는 인상을 찡그리며, 간신히 입을 열었다.

“이미 하데스도 죽인 건가?”

“올림푸스로 오기 전 죽음을 죽였다. 우리 주인님께 불가능이란 없거든.”

그걸로 끝이었다. 제우스의 몸이 앞으로 기울었다. 그리고 다시는 눈을 뜨지 못했다. 올림푸스의 최고신이자 지배자였던 제우스, 그의 말로는 참으로 허무한 것이었다.

그리고 ‘정산’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그가 지금껏 쌓아온 기프트는 어마어마했다. 비록 소유한 행성은 하나였지만, 올림푸스는 상당히 기프트가 많이 나는 행성이었기 때문이다.

무려 수백억에 달하는 기프트가 고스란히 그를 죽인 아스클레피오스의 손에 들어갔다.

“넘겨라.”

아스클레피오스의 눈에 망설임이 어렸다. 그조차 순간적으로 눈이 멀게 만들 정도로, 기프트의 양은 방대했다. 그러나 그는 더 망설이지 않고, 발라르에게 기프트를 양도했다.

단순한 충성심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미 그의 몸속에는 독- 바이러스가 들어가 있다. 만약 그가 욕심을 부리려 한다면 그 바이러스가 활동을 개시할 것이 분명했다.

‘올림푸스의 신조차 죽인 힘.’

그는 불과 몇 시간 전의 일을 회상했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헤르메스는 올림푸스에 들어가 다른 신들에게 바이러스를 전염시켰다.

바이러스에 전염된 신들은 바이러스에 저항했지만, 결국 바이러스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죄다 죽거나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제우스를 제외하고는 올림푸스의 신들도 이겨내지 못한 힘, 그는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다음은 어디로 갈까요?”

“수확.”

“예?”

“내가 소유한 행성들이 있다.”

“어… 저도 행성을 보유한 적은 없어 잘 모르지만, 기프트가 자동으로 들어오는 게 아닙니까?”

“본격적으로 우주의 ‘신’들을 살해하자, 컴퍼니에서 방해를 하더군.”

그 방식도 가지가지였다. 그의 눈을 속인다거나, 아니면 행성의 관리를 포기한다거나. 플레이어 시스템의 도움을 받을 수 없게 된 그는 ‘직접’ 기프트를 수확할 생각이었다.

“어딜 제일 먼저 가실 겁니까?”

그는 딱 잘라 말했다.

“E-760.”

“어떤 행성입니까?”

“지구라 불리는 행성이다.”

생소한 이름에 아스클레피오스는 별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앞으로 E-760에서 어떤 일을 겪게 될지 말이다.

***

‘플레이어 시스템’의 정체에 대해 우주에서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품었다. 하지만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진실에 근접할 수 없었다. 컴퍼니에서 철저하게 그 정체를 은폐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컴퍼니가 설립되고 헤아릴 수 없는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 플레이어 시스템의 정체는 대외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았다. 액체로 가득한 수조에서 여자가 눈을 감고 있다.

온몸에 정체불명의 플러그가 연결된, 많아 봐야 고작 고등학생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 주황색 머리 인간 여자. 그렇게 얼마나 흘렀을까, 그녀가 눈을 떴다.

여자는 능숙하게 스스로 플러그를 제거하고는, 바깥으로 나왔다. 이내, 인간형 로봇이 그녀에게 다가왔다.

- 오퍼레이터, 미야. 어째서 휴식 시간이 되지 않았는데도 함부로 바깥으로 나온 겁니까?

“그럴 만한 일이 있어서.”

- 당신의 업무는 플레이어를 보조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수조 밖으로 나온 동안, 수백 명의 플레이어들은 제대로 된 보조를 받지 못하게 됩니다.

“미안한데 그것보다 더 급한 일이 생겼어.”

- 그게 대체 무슨…

“그리고 다른 오퍼레이터들도 있잖아.”

- 향후 당신에게 불이익이 발생할지도 모릅니다.

“그건 괜찮아. 만나야겠어.”

- 누구를 만난다는 겁니까?

“다르니온.”

인간형 로봇은 고개를 갸웃거린다.

- 다르니온은 갑자기 왜 만난다는 겁니까?

“시간을 끌 만한 일이 생겼거든.”

- 잊으셨습니까, 미야? 오퍼레이터는 함부로 계약자들의 일에 개입해서는 안 됩니다. 그걸 모를 리 없는 당신인데, 왜 그러시는 겁니까?

“중요하니까.”

- ……

잠시 침묵이 이어졌으나, 미야는 여전히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 인간형 로봇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 다르니온과의 만남을 잡아보겠습니다. 하지만 오퍼레이터, 미야, 잊지 마십시오. 상응하는 불이익이 발생할 겁니다.

“알았다구.”

뚱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그녀의 표정은 원래의 심각한 표정으로 되돌아갔다.

‘만나게 둬서는 안 돼.’

발라르가 지구로 향하면, 그는 틀림없이 이진서를 죽이려 할 것이다. 이진서는 강해졌지만 아직 발라르의 상대는 되지 못한다.

‘시나트리온이 있긴 하지만…’

이미 그는 발라르에게 패배한 전적이 있었다. 그는 발라르를 막을 수 없다.

즉, 그러한 일을 막기 위해서는 둘의 만남을 어떻게든 막아야 했다. 아니, 막진 못해도 최소한의 시간이라도 벌어야 했다.

이진서가 성장할 시간. 그것은 그녀가 최초의 계약자인 다르니온을 만나는 것과 상관관계가 있었다. 오퍼레이터인 그녀는 상부의 결정이 없는 한 직접적인 ‘행사’에 관여하지 못한다.

때문에 그녀는 다르니온의 힘을 빌리고자 한 것이다. 전 우주에서 영향력으로 따지면, 컴퍼니 다음으로 영향력이 막대한 그였으니 말이다. 그라면 충분히 발라르를 막을 수 있으리라.

‘하지만 어째서지? 예정보다 일 년은 빨라. 역시… 발라르 때문인가?’

발라르는 지금 전 우주에서 가장 이질적인 존재이다. 애초부터 이계에서 온 그는 ‘신의 선물’을 품고 있었고, 수천 년이 흐른 지금 신의 선물은 그와 함께 진화했다.

그녀는 예정이 틀어진 이유가 발라르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