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화
다시 눈을 떴을 때, 나는 현실로 돌아왔다.
[통찰안의 3단계 시험을 통과했습니다.]
[통찰안의 3단계 능력을 얻었습니다.]
통찰안의 3단계 능력. 통찰안의 스킬 정보에 적혀있기로는 ‘대상을 지배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했다. 어떻게 시험해볼까 고민하던 나는 내 앞에서 뒹굴거리는 고양이를 바라봤다.
평범한 고양이는 아니고, 우주 상인에게 구입했던 와일드 혼이다. 반년 전과 비교하면 몸집도 더 커졌고, 털도 더 풍성해졌다. 사실 고양이라기보단, 고양잇과 맹수에 가까운 모습이다.
통찰안을 사용한 나는 그런 와일드 혼에게 명령하듯 말했다.
“일어나라.”
그러자 와일드 혼은 마치 벼락이라도 맞은 마냥 화들짝 놀라며, 일어났다.
“그대로 앞으로 걸어.”
뒤뚱뒤뚱, 어색한 몸놀림으로 와일드 혼이 앞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마치 동화 속 장난감 병정 같아서 나는 피식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나는 통찰안의 사용을 해제했다.
와일드 혼은 나를 쓱 돌아보고는, 후다닥 창밖으로 나가버렸다.
‘뭐, 대충 이 정도면 생물에 대한 실험은 끝났고.’
당연한 말이지만 와일드 혼은 평범한 고양이가 아닌 영물(靈物)이다. 그것도 어렸을 때부터 진혜연과 김하나의 사랑을 받아, 전설 등급 음식이나 식재료를 듬뿍 먹고 자란.
비록 과도하게 먹은 탓에 다소 뚱냥이가 되긴 했지만, 신체 능력은 어지간한 플레이어 하나 정도는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해졌다. 지성 역시 인간의 그것과 비견될 정도였다.
그런 와일드 혼을 조종했다는 건, 다시 말하면 인간에게도 통찰안의 3단계 능력이 유효할 거란 의미였다. 물론 신급의 강자들과 상대했을 때 얼마나 유효할지는 모르겠지만…
‘능력의 효과가 고작 그것뿐만은 아니지.’
통찰안이 지배할 수 있는 건 생물뿐만이 아닌 무생물, 심지어 하나의 현상 역시 지배할 수 있다고 했다. 시험을 위해, 나는 마법을 사용했다. 손에 생겨나는 자그마한 불덩어리.
불덩어리를 향해 명령하듯 말했다.
“커져라.”
그러자 불덩이가 무섭게 불어나기 시작한다. 자그마한 불덩어리는 이제 방 전체를 감쌀 정도로 커졌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커진 불덩어리는 순식간에 꺼져버린다.
나는 그 이유를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에너지 보존 법칙. 1의 에너지를 투입하면, 1을 초과하는 에너지를 얻을 수 없다. 이 법칙은 에너지뿐만 아니라 마력에도 적용된다.
1의 마력을 투입했다면 1 이상의 효과를 얻을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나는 방금 통찰안의 3단계 능력을 통해 불덩어리를 ‘강제로’ 커지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그것이 마력의 추가적인 투입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기에, 불덩어리는 마력이 모두 소모되자 사라지고 만 것이다. 물론 내가 마력을 지속적으로 투입했다면, 사라지지 않았겠지만.
머릿속에서 활용법이 떠올랐다. 마법을 사용한 다음, 통찰안으로 ‘명령’해서 위력을 강제로 증폭시킨다면? 물론 그를 뒷받침할 마력이 필요하겠지만, 지금의 나는 마력이 흘러넘친다.
어지간해서는 바닥날 리도 없지만, 설령 바닥난다 하더라도 초월 스킬, 마인화를 사용해버리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아니, 뿐만 아니라… 거기서 멈추지 않고, 사고를 확장하기로 했다.
‘나 자신에게도 사용할 수 있을까?’
혹은 타인에게도 사용할 수 있을까? 여기서 사용한다는 것은 방금 와일드 혼에게 했던 것처럼 단순한 명령을 의미하지 않는다. 나와 타인의 육체, 그 자체에 명령을 내린다면?
‘만약 근력이 강해지라는 명령을 내린다면…’
불덩어리처럼 틀림없이 리스크가 존재할 것이다. 어쩌면 체력이 급격하게 소모되거나, 신체 구조가 영구적으로 붕괴될지도 모른다. 그 대가가 확실하다면… 사용하지 않을 이유도 없다.
당장 발라르라는 대적(大敵)이 언제 쳐들어올지도 모르는 상황이니, 더운밥 찬밥 가릴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그러나 어떤 리스크가 존재하는지 모르니, 실험하기는 꺼려졌다.
“생체용 안드로이드 로봇에 실험해보는 건 어때요?”
내 이야기를 전해 들은 아나스타샤가 의견을 제시했다.
“혜연이를 닮은 그 로봇에 말입니까?”
“좀 관심 좀 가져요. 그건 초기 모델이라고요. 이번 로봇의 모델- J는 정민혁이에요.”
“그건… 거리낌이 없을 것 같네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듣고 있던 정민혁이 슬그머니 입을 열었다.
“형님… 저도 듣고 있다는 걸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
그렇게 내 앞에 놓인 정민혁을 닮은 로봇. 나는 슬그머니 연구실 창문을 바라봤다. 간부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생체 안드로이드 로봇 J를 향해 입을 열었다.
“강해져라.”
말해놓고,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할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J의 몸에 변화가 시작됐다.
J의 신체가 재조립되기 시작한다. 인간을 닮은 로봇의 신체가 재조립되는 과정은 그렇게 그로테스크하지는 않았다. 어디까지나 김민수와 아나스타샤가 예측했던 것에 비하면 말이다.
그 변화 과정을 바라보며 나는 슬며시 간부들의 대화를 엿들었다.
- 흥미롭군요. 어떤 모습으로 변할까요?
- 인간의 신체가 아니라는 것만은 확실해요.
아나스타샤의 말에 김민수가 동의한다는 듯 말했다.
- 인정합니다. 인간의 신체는 사실 강하다고 말하기 힘듭니다. 인간이 대자연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그 나약한 신체 때문이 아닌, 도구를 사용할 수 있는 지능 때문이니까요.
- 역시 호랑이?
- 어쩌면 해양 생물일지도 모르죠. 레비아탄으로 변할 수도 있고. 호랑이보단 레비아탄이 강하지 않겠습니까?
둘의 대화를 잠자코 듣던 진혜연도 한마디 거들었다.
- 그러면 저 오빠 얼굴은 남아있는 거예요? 아니면 그 뭐더라? 프? 프로 시작하는 괴물.
- 프랑켄슈타인.
- 아, 프랑켄슈타인처럼 얼굴이 누더기가 되는 거예요?
- 그럴 수도 있지. 얼굴의 생김새가 어떻든, 강함과는 별개 아닌가?
- 지금 제 얼굴이 누더기가 될지도 모른다는 겁니까?
다소 황당하다는 듯한 정민혁의 어조에, 박승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 아니, 아예 얼굴 자체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르지. 얼굴의 유무가 강함을 의미하는 건 아니니까. 그러니까, 어, 안구에서 레이저가 나가는 사이보그나, 입에서 불을 뿜는 드래곤이 아닌 이상에 말이야.
나는 J를 계속 주시했다. 그리고… 그렇게 대략 삼십 분쯤 흘렀을까, 마침내 변화가 끝났다.
- 저건…
“나로 변했네?”
J를 바라보며 나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물론 J의 생김새는 완전한 나라고 말하긴 힘들었다. 굳이 명칭을 붙이자면, ‘나와 정민혁의 중간 단계’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체형만큼은 ‘완전한’ 나로 변했다.
“어째서 나로 변한 거지?”
“제가 가장 강하다고 생각하는 존재가 이진서님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럴듯한 ‘추측’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대상이 염원하는 대로 바뀐다는 건가? 그런데… 나로 바뀐다고 해서 강해질 수가 있나?”
“이진서님은 이상적인 육체의 보유자입니다. 그런 신체를 따라서 육체를 재구성했으니, 강해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나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딱히 변한 게 없는 것 같은데. 뭐, 처음부터 나를 봐왔던 정민혁이나 진혜연이 말하기로는 많이 변했다고 했으니 사실 나보다는 그들의 말이 정확할 것이다.
“얼굴까지 바꿀 필요가 있… 아니다. 뭐, 시험…해볼 필요는 없겠네.”
이미 통찰안으로 확인했다. 근력, 민첩은 늘어난 반면, 체력 능력치는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J의 마력 능력치가 0이기 때문에 마력 능력치가 변동되진 않았지만, 만약 마력 능력치가 있었다면 마력 능력치 역시 줄어들었을 것이다.
‘나’로 변할 것은 예상하지 못했지만, 세부적인 내용은 내가 생각했던 대로다.
‘만약 내가 사용한다면…’
마인화를 사용하면 리스크는 ‘전혀’ 없어진다고 해도 무방하다. 다만 대상의 염원에 따라 얼굴과 체형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 내가 ‘강하다’라고 생각하는 인물은 몇 되지 않는다.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인물은 역시 발라르.
‘그렇다고 발라르로 변하고 싶지는 않은데 말이야.’
그의 강함은 인정하지만, 발라르로 변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니, 그건 다른 인물들 역시 마찬가지다. 얼굴과 체형 변한다면 그건 ‘나’라고 말할 수 있는 존재일까?
어떤 인물로 변하든 그리 유쾌하지 않을 것임에는 분명했다.
‘어차피 사용할 일도 없겠지만.’
정말 발라르를 상대해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이 능력을 사용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J를 계속 바라봤다.
‘변화’가 영구적인가, 아닌가, 지켜보는 것 역시 이번 실험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대략 30분 정도 후, J는 다시 원래대로 되돌아왔다. 능력치 역시 다시 원래대로 되돌아갔다.
변화가 영구적으로 지속되지는 않는다는 의미였다. 실험을 마친 후, 아나스타샤가 들어와 J에 대한 테스트를 했다.
“손상된 곳은 없습니까?”
“불안정해진 곳이 몇 개 보이긴 하지만, 괜찮아요.”
‘그 정도면 뭐…’
“그나저나… 위층은 난리가 났던데요? 특히 여자들이.”
간부들의 대화 소리를 계속 듣고 있던 나는 그녀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고 있었다.
“성형이라니, 확실히 기발하긴 해요.”
방금 그녀들이 이야기하던 주제는 ‘성형’이었다. 그러니까, 내 능력을 사용한 성형. 확실히 내가 ‘예뻐져라’라고 말한다면 정말로 예뻐질 확률이 높다.
“안 할 겁니다. 위험 부담이 크니까요.”
하지만 고작 성형을 해주겠다고, 완전히 알지도 못하는 능력을 사용할 정도로 나는 바보는 아니었다. 호시탐탐 나를 바라보고 있는 이제원과 진혜연을 바라보며 나는 쓰게 웃었다.
***
“진서, 지금 화성인들은 괴물의 한 끼 식사 거리로 전락했다고 한다.”
“제이드, 그건 또 무슨 말이야?”
제이드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괴물? 그는 내게 사진을 내밀었다. 사진에는 하얀색의 리저드맨이 서 있었다. 척 보기에도 강력해 보이는 신체를 가지고 있는…
“녀석의 이름은 그린돈. 듣기로는 베스타스 제독의 17 함장이라 하더군.”
“베스타스 제독?”
예런 일리아티가 물자를 뜯어내기 위해, 또 사기를 치는 것이 아닐까 의심했는데 ‘베스타스 제독’의 이름이 나온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나는 예런 일리아티에게 베스타스 제독에 대해 말한 적이 없으니까. 그건 다른 그룹원들에게도 역시 마찬가지다.
즉, 저 사진 속의 리저드맨은 진짜로 베스타스 제독의 함대 소속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주장하는 대로 17 함장이라면 그 무력 역시 상당하겠지.
‘물어봐야겠네.’
한때 제1 함장이었던 시나트리온이라면 녀석에 대해 알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