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코인 채굴-114화 (114/236)

114화

- 아쉽게 됐군. 이프리트만 소환할 수 있었어도···

전장을 종횡무진 휘젓던 피닉스는 초월체들의 포화를 맞아 수십 분의 일 크기로 줄어들었다가 결국엔 완전히 소멸해버렸다. 마도사, 벨루가 역시 변이체들을 상대하다가 소멸했다.

- 기분 나쁜 죽음인데.

무한 증식으로 분신을 거의 일백 개체 가까이 늘렸던 대마도사, 옐레나는 홀로 수백 마리의 초월체들을 처치하는 위엄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결국 초월체에 의해 최후를 맞이했다.

그리고 소환된 영령들이 사라진 후, 내 앞에는 마법사 로브를 걸친 여자가 서 있다. 겉보기엔 옐레나와 똑같은 생김새. 그러나 그 실체는 그녀를 복사한 ‘도플갱어 군주’다.

특수 변이체, 도플갱어가 진화한, 도플갱어처럼 남의 형상을 뒤집어쓰고 남의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초월체. 장영하가 바로 그 도플갱어 군주이기에, 내게는 더욱더 친숙한 개체였다.

물론 그런 나도 도플갱어 군주가 영령마저 복사할 수 있는지는 지금 알았지만. 나는 녀석을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만약 저 녀석이 옐레나의 능력을 사용할 수 있다면?

그건 재앙이다.

옐레나는 지금의 내가 모든 것을 쏟아부어도 이길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존재다. 물론 아무리 도플갱어 군주라 하더라도 그녀를 온전하게 복사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은 들진 않지만.

만약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 가능성이 현실로 이어질 경우, 닥치게 될 미래를 생각하면··· 여기서 무슨 수를 써서든 해치워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문제는 내 상태가 그리 좋지만 못하다는 것.’

아직 마인화의 지속 시간이 3분가량 남았다. 하지만 체력은 이미 떨어진 지 오래다. 그런 상태에서 초월체를 상대한다는 것은 도박에 가까운 것이다. 그러나 나는 검을 들었다.

‘이번 일격에 모든 것을 쏟아붓는다.’

생각을 마치자 나는 즉시 행동에 옮겼다. 발도 자세를 취한다. 아직까지 녀석은 움직이지 않고 있다. 0.01초도 안 되는 찰나의 순간, 내 검이 앞으로 뻗어진다. 녀석의 몸이 흐릿해진다.

나는 그것이 ‘텔레포트’의 전조 현상이라는 걸 깨달았다. 내 얼굴이 굳어진다. 텔레포트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다시 말하면 다른 마법들 역시 사용할 수 있을 거란 의미니까.

공간을 찌그러트리며 나아간 내 ‘참격’은 녀석의 몸을 단숨에 두 동강 내버렸다. 다소 허무한 최후였지만 한편으로는 가슴을 쓸어내릴 수밖에 없었다. 만약 실패했다면?

만약 텔레포트가 완성돼 녀석이 참격을 피했다면? 내 목숨은 물론, 이 세계에 있는 모든 플레이어들이 위험해지고 말았을 것이다. 긴장감이 풀린 나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극한의 발도술은 체력과 마력의 90%를 소모한다. 아직 마인화 상태라 마력은 흘러넘치는 상태였지만, 체력이 완전히 바닥나버렸다. 이젠 정말 한 톨도 없는 수준.

그러나 쉬고 있을 여유는 없었다. 나를 향해 ‘무수한’ 광선이 쏟아진다. 데미안인가 하는 초월체의 공격이었다. 나는 황급히 앱솔루트 배리어를 사용해 막아낸 후···

아공간 창고를 열었다. 내가 꺼낸 것은 안전 가옥. 물론 평범한 안전 가옥이 아닌 ‘1급’ 안전 가옥이었다. 러시아에서 얻었던 니콜라이의 가옥을 1억 기프트를 지불해 수리한 것이다.

이후, 아나스타샤에게 추가적인 개조를 받았기에 전체적인 성능은 그때 내가 상대했던 안전 가옥보다 향상됐다. 하지만 그런 안전 가옥에 탑승했다 한들 안심할 수는 없었다.

스마트 워치로 이쪽을 향해 몰려드는 수많은 붉은 점들을 보면 말이다. 무수한 초월체의 공격에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물론 이쪽이 보유하고 있는 ‘총알’은 빵빵하지만.

‘일단 회복제 하나 구매해줘.’

[100,000기프트를 지불해, 피로 완전 회복제 6(G)를 구매했습니다.]

<피로 완전 회복제 6>

종류 : 소모품

등급 : 신화(God)

설명 : 전설의 연금술사, 하인켈이 신의 피로 개발한 피로 회복제. 한 모금을 마시면 피로를 모두 해소할 수 있고, 체력 회복 속도를 빠르게 증가시킨다. 한 병을 모두 마시면 확률적으로 마력이 0.5 상승한다고 한다.

무려 51만 기프트짜리 회복제지만, 내겐 망설임이 없었다. 지금 내가 보유한 기프트는 20억 기프트가 넘기 때문이다. 회복제를 단숨에 들이켠다. 달달한 포도맛이 혀끝을 맴돌았다.

체력 회복 속도가 점차 빨라지는 것을 느끼며 나는 중얼거렸다.

“이제 도망치자.”

물론 혼잣말이 아닌, 이 1급 안전 가옥을 관리하는 AI에게 말한 것이었다.

[이동 모드로 전환합니다.]

곧, 드드드거리는 진동과 함께 안전 가옥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때도 느꼈지만 꽤나 빠른 속도. 하지만 달아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고작 이 정도 속도로 떨쳐버리면 그건 초월체가 아니지.

‘어떻게든 떨쳐버리고 이 자리를 벗어나야 한다.’

이제부터 그 방법을 궁리할 시간이다.

***

우주선은 파괴됐고, 함께 탑승했던 승무원들은 모조리 사망했다. 하지만 제이드는 살아남았다. 그 이유는 그도 알지 못했다. 눈을 떴을 때는 이미 모든 일이 벌어진 후였으니 말이다.

파괴된 우주선의 잔해를 헤치고, 간신히 빠져나온 그는 그가 빙하로 뒤덮인 어딘가에 떨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비틀비틀 빙하를 걷던 그는 한 인간 여자와 조우할 수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인간 여자의 생김새를 한 변이체를 말이다.

‘초월체···’

그는 하늘에서 변이체들을 진두지휘하는 초월체, ‘퀸’을 바라본다.

처음 마주쳤을 때, 그는 그녀를 공격했다. 이유는 당연했다. 그녀는 변이체, 그것도 무려 초월체였으니까. 하지만 그는 전투 끝에 패배했다. 사실 전투라 말하기도 애매했다.

그녀는 그에게 공격을 일절 하지 않았고, 그 혼자 공격하다 지쳐 나가떨어진 것이 그 내용의 전부였으니 말이다.

제이드는 스스로가 플레이어 중에서 상위권의 무력을 가졌다고 생각해왔지만 퀸은 그야말로 ‘차원’이 달랐다. 전투에서 패배한 그는 꼼짝없이 퀸에 의해 죽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퀸은 그를 죽이지 않았다.

- 어째서 나를 죽이지 않는 거지?

- 내가 어째서 너를 죽여야 하지? 변이체라서, 인간인 너를 죽여야 한다는 말인가?

제이드는 말문이 막혔다. 변이체는 인간을 공격하고, 인간은 변이체를 공격한다. 그게 이 세계의 당연한 상식이었고, 앞으로도 영락없이 그럴 거라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그 상식과 반대되는 존재를 만난 것이다.

- 미안하지만, 변이체인 나는 인간인 너를 죽이고 싶은 마음이 없어. 하지만 순수하게 죽고 싶다면 죽여줄게.

아무리 그라 하더라도 죽고 싶을 리는 없었다. 그는 고개를 저었고, 그녀는 자비롭게 그를 살려줬다. 그것이 바로 지난날의 이야기. 그동안 그는 이곳에서 지내왔다.

가진 기프트도 얼마 없었고, 몸 상태도 여의치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이곳의 상황을 어느 정도 알 수 있었다. 북극이나, 남극 어딘가로 추정되는 이곳엔 그녀와 그녀가 이끄는 변이체들이 빙하에 파묻혀 있었다. 그 숫자는 수천, 수만 단위에 이른다.

전부 다 특수 변이체들. 개중에는 초월체로 각성한 개체들도 제법 보인다. 놀라운 건, 그들이 자신을 공격하지 않는다는 것. 그것이 그녀의 명령이든, 어쨌든 간에 말이다.

‘그녀의 목적은 뭘까?’

물론 그가 궁금해한다 한들 알 방법은 없었다. 퀸에게 물어본다 한들, 그녀가 알려줄 리도 없으니 말이다. 그는 하늘에 보이는 먹구름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내가 봤던 것들은 대체 뭘까?’

구름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눈. 모든 것이 의문투성이였다. 꽤나 한참을 구름을 바라보고 있던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그의 거주지로 돌아왔다.

풀리지 않는 의문을 계속 생각해봤자, 의미 없다. 몸을 회복하기 위해 잠이라도 잘 생각이었다.

***

꽤나 한참을 달렸음에도 불구하고, 변이체들을 떨쳐버리기는커녕 그 숫자가 불어났다. 하기야 초월체는커녕 최상급 변이체조차 떨쳐버리지 못하는 판국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노릇.

그동안 꽤 고비를 여러 번 맞이했었다. 1급 안전 가옥은 엄청난 내구를 가졌지만, 초월체의 포화는 그런 내구를 순식간에 바닥나게 만들 정도로 강력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변이체 사냥으로 지갑이 빵빵해진 탓에 금세 복구할 수 있었지만···

뼈 아프다. 거의 분 단위로 계속 수리한 탓에 벌써 수리비만 7천만 기프트를 소모했다. 이대로 가다간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게 생긴 건 물론, 다 털리게 생겼다.

그렇다고 수리를 안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만 좀 쫓아와라, 이것들아.’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요격 모드 활성화.”

[요격 모드를 활성화합니다.]

천장을 비롯한 벽이 열린다. 녹색의 투명한 막이 씌워진 상태로, 바깥을 내다볼 수 있다. 새롭게 추가한 ‘요격 모드’ 기능으로 이 상태에서는 안에서 바깥을 공격하는 게 가능해진다.

대멸겁의 지팡이를 들고 중얼거렸다.

“블리자드.”

하늘에서 눈보라가 몰아치기 시작한다. 갈락시아의 도서관에서 얻은 마법으로 강력한 눈보라를 불러일으키는 마법이었다. 물론 내가 사용하는 블리자드는 눈보라에서 그치지 않았다.

그 위력은 일대를 얼려버릴 정도. 물이 삽시간에 얼어붙기 시작한다. 변이체들 역시 얼어붙었다. 물론 초월체 같은 경우는 얼지 않고 빠져나올 테지만 속도가 느려졌다.

‘한 번 가지고는 어림도 없지.’

10만 기프트짜리 회복제를 한 병 더 구매해 들이켜고 블리자드를 사용하고, 또 사용한다. 소모됐던 기프트가 다시 빠른 속도로 차오르기 시작했다. 붉은색 원이 점점 줄어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월체를 떨쳐버리는 건 쉽지 않았다. 떨쳐버린 대부분의 변이체들은 최상급 변이체들. 온전하게 따라붙고, 계속 안전 가옥을 향해 공격을 날리고 있었다.

나는 진지하게 고민해야만 했다.

계속 기프트를 소모하는 게 반드시 정답은 아닐 것이다. 차라리, 안전 가옥을 포기하고 질주를 이곳을 불러 모험을 해볼까. 해볼 가치는 충분했다. 나는 질주를 불렀다.

질주가 이곳에 도달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그동안 적당히 푸닥거리를 해볼까.’

‘기프트 계약’을 맺은 사람을 통해 다른 플레이어의 스킬을 빌릴 수 있다는 사실을 난 일찍이 알고 있었다. 심지어 신화 등급 스킬을 빌리는 게 가능하다는 것도.

그럼에도, 그동안 내가 사용하지 않았던 것은 워낙 비용이 비싸기도 했고, 무엇보다 다른 스킬과 함께 사용할 체력과 마력이 뒷받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다르다.

넘치는 건 기프트요, 사용할 수 있는 스킬 역시 없었다.

‘해볼 가치는 충분하다.’

생각을 마친 나는 중얼거렸다.

‘이프리트 소환 빌리고 싶은데.’

라우라와 맺은 ‘노예 계약 4’가 발동한다. 노예 계약 4의 내용은 그녀가 어디에 있든, 기프트 계약을 맺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 그녀와 멀리 떨어져 있어도 새로운 계약을 맺는 것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10,000,000기프트를 지불해, 라우라와 ‘일회성 계약 : 불의 정령왕, 이프리트 소환’을 맺었습니다.]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불의 정령왕, 이프리트 소환(G)을 일시적으로 습득했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