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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코인 채굴-91화 (91/236)

91화

“왜, 내 한국말이 너무 유창해서 놀랐나?”

“예, 당신이 한국말 하는 건 너튜브에서밖에 못 봤거든요.”

한국에서 예런 일리아티가 유명해지고 난 후, 너튜브에서 그의 딥페이크 영상이 유행한 적이 있다. 한국말로 우스꽝스러운 개그를 한다든가, 노래를 부른다든가 하는 등의 내용이었다.

“내가 한국말을 했었다고?”

아마 그는 그런 영상이 떠돌아다녔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그가 보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문득 궁금해졌다. 물론 여기서 굳이 보여줄 생각은 없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그에게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나중에 한번 찾아보십쇼.”

“그래, 기회가 되면 꼭 그러도록 하지. 혹시 내 말투가 불편하나?”

“아니, 괜찮습니다. 어차피 당신이 한국인도 아니고. 그런데 한국말은 어떻게 그렇게 유창하게 하는 겁니까?”

외국인이 한국말 하는 건 꽤 많이 봤지만, 예런 일리아티가 하는 한국말은 한국인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로 유창했기 때문에 물어본 것이었다. 그는 어깨를 으쓱였다.

“‘언어의 마술사’라는 전설 등급 스킬을 습득했거든. 어떤 언어든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는 패시브 스킬이지.”

단순히 보유하는 것만으로 어떤 언어든 사용할 수 있다면, 정말 유용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스킬 슬롯이 없기 때문에, 나는 습득할 수 없지만 말이다.

‘혹시 기프트 계약으로 스킬을 빌릴 수는 없을까?’

문득 의문이 떠올랐지만, 그 해답을 얻는 건 나중으로 미루기로 했다. 지금은 그와의 대화에 집중하는 것이 옳다는 생각에서였다.

“그것 참··· 대단하네요.”

“그래, 이런 세계에서 꽤 쓸 만한 스킬이지.”

그때 대리어스 대통령이 슬그머니 예런 일리아티에게 영어로 말했다. 무슨 말인진 모르겠지만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라고 말하는 듯한 뉘앙스였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통령께서 시간이 없다는군. 너, 시간 없나?”

“아뇨, 이야기할 시간 정도는 충분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야기를 질질 끌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딱 한마디로 말하지. 우리 미합중국은 앞으로, 우기(雨期)가 끝나는 두 달 이내에 화성 이주 프로젝트를 시작할 생각이야.”

“······?”

참으로 간단명료한, 그의 한마디를 들은 나는, 얼굴에 물음표를 띄울 수밖에 없었다.

***

데스 스토커(Death Stalker).

이진서가 중국에서 상대했던 종과 마찬가지인, 몸을 자유자재로 은신할 수 있는 초월체. 당시의 그조차 은신을 꿰뚫어보지 못했는데, 지금의 그의 그룹원들이라 한들 볼 수 있을 리 만무하다.

하지만 한승주가 바리케이드 위에 설치한 센트리건은 달랐다. 센트리건에 달린 적외선 카메라는 녀석을 포착할 수 있었고, 귀를 먹게 만들 정도의 굉음과 함께 기관포를 쏴댔다.

물론 명색이 초월체다. 센트리건 탄환 몇 번 맞는다고, 죽을 정도로 데스 스토커는 나약하지 않았다. 허공에서 거대한 가시가 튀어나왔고 센트리건의 일부가 파괴됐다.

일부 바리케이드 역시 금이 갔다. 밖에 나와 이 사실을 확인한 한승주는 황급히 플라즈마 보호막을 가동했다. 초록색의 보호막이 쉘터 전체를 감쌌다. 그녀는 숨죽인 채 쳐다봤다.

다음 순간, 또다시 거대한 가시가 튀어나와 플라즈마 보호막을 때린다. 쾅! 마치 미사일이 떨어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보호막이 흔들린다. 소리를 들은 그룹원들이 튀어나왔다.

그들은 데스 스토커를 향해 포화하기 시작했다. 몇 번 가시를 계속 소환하던 녀석도 포화를 견디기 힘들었는지, 그대로 사라져버렸다. 물론 그렇다고 안심할 수는 없었다.

쉘터 근처에는 ‘댐’이 있다. 그 댐이 파괴되는 순간, 쉘터 전체에 대재앙이 들이닥칠 것임은 말해봐야 입 아픈 사실이었다. 간부들은 황급히 회의를 열었다.

“리더를 부를까요?”

“고작 변이체 한 마리 때문에 미국에 가신 리더를 부르는 건 좀···”

“형님에게 의존하지 않으려고, 그동안 우리 실력을 열심히 갈고닦은 거 아닙니까?”

강태윤의 말에 이제원이 폭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하지만 태윤아, 별다른 방법이 없잖아? 안 보이는데 어떻게 잡을 거야.”

“댐이 무너진 다음에 부르는 것보다는, 무너지기 전에 부르는 게 나을지도···”

“하지만 리더가 오기 전에 댐이 무너지기라도 하면··· 아무리 리더라지만 여기까지 오려면 시간 좀 걸릴 텐데···”

간부들끼리도 의견이 분분했다. 이진서를 불러야 한다. 이진서를 부르지 말아야 한다. 곰곰이 듣고 있던 정민혁은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무슨 좋은 의견이라도 있습니까?”

고경표가 의아한 투로 물었다.

“한번 도움을 청해볼 생각입니다.”

“···누구한테?”

의아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는 간부들에게 그는 짤막하게 말했다.

“용에게.”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간부들은 여전히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그의 말을 이해한 진혜연만은 우려 어린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모든 책임은 제가 지는 걸로 하겠습니다.”

일어난 정민혁은 빠른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엘리베이터에 탑승하고 최상층 버튼을 누른다. 주상 복합 센터 최상층, 구석에는 안전 가옥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그는 그 문을 열었다. 쇠사슬에 칭칭 묶인 노인이, 서적을 읽고 있다. 그는 정민혁을 보자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네가 무슨 일인가?”

“영감님께 도움을 요청하러 왔습니다.”

“응? 무슨 도움? 일단 이야기나 들어보지.”

“변이체가 나타났습니다.”

“이진서, 그 친구가 잡으면 될 거 아닌가?”

“하필이면 형님이 지금 미국으로 떠나 계십니다.”

“그것참 안 됐군. 자네가 내게 부탁하는 걸 보면 보통 변이체는 아닌 거 같은데···”

“초월체입니다. 그것도 평범한 초월체가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그건 좀··· 흥미가 생기는군.”

천천히 그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드르륵, 드르륵. 쇠사슬이 바닥에 질질 끌리며 소리를 낸다. 정민혁은 어서 가서 자물쇠를 풀기 시작했다. 자물쇠가 풀린 쇠사슬이 바닥에 떨어진다.

“전에도 생각했지만, 자네는 너무 안일해. 내가 진짜 배신이라도 하면 어쩌려 그러나?”

“안 그러실 거 압니다. 저는··· 영감님을 믿습니다.”

“날 믿어주는 사람이 나도 싫지는 않아. 그 친구한테 또 혼나는 거 아닌가?”

“위기만 극복할 수 있다면, 저는 언제든 제 자리를 내려놓을 준비가 돼 있습니다.”

“쯧, 자네 이상의 적임자가 어딨다고. 그래, 가지.”

대화를 마친 그들이 향한 곳은 옥상이었다. 노인- 장영하는 정민혁을 마지막으로 바라본다. 곧 그의 몸이 변하기 시작한다. 날개 달린 거대한 검은 도마뱀- 드래곤으로.

- 탈 텐가?

정민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곧 그를 태운 드래곤이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그 모습을 목격한 그룹원들이 비명을 질러댔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그들은 순식간에 쉘터를 빠져나왔다.

***

“나는 수십 년 전부터 화성 정복을 꿈꿨다. 화성을 개조해서, 최종적으로 인류가 살아갈 수 있는 환경으로 테라포밍하는 것이 내 꿈이었지.”

인터넷을 통해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었던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의아한 투로 그에게 물었다.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그것도 두 달 안에?”

“원래대로라면 불가능하겠지만, 기프트의 힘을 빌린다면 못 할 것도 없겠지. 채굴자라는 빌어먹을 녀석이 이 행성을 채굴기로 개조한 것을 봐.”

그는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만들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물론 그걸 위해서라면 아주 많은 양의 기프트가 필요하겠지만 말이야.”

“내게 계획을 털어놓는 걸 보면 너도 투자해라, 라는 말처럼 들립니다.”

예런 일리아티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들렸다면 아주 잘 들은 거야. 친구, 내게 투자해. 화성에 보내주지.”

나는 생각에 잠긴다.

화성 이주.

단순히 그의 말만 들어보면 그럴듯하다. 지금은 사람이 살기 극악의 환경이라지만, 그의 말대로 기프트의 힘을 빌린다면 사람이 살 수 있는 환경으로 테라포밍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시스템의 힘을 빌렸을 때의 이야기다.’

플레이어 시스템. 기프트로 물건 교환을 하거나, 아예 물건 그 자체를 개조해버리는, 마치 기적과도 같은 힘. 만약 화성에 갔는데 플레이어 시스템의 힘을 빌리지 못한다면···

말짱 도루묵인 것이다. 우주에서도 시스템을 사용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으니까. 게다가 화성으로 도망친다고 해서, 채굴자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란 보장도···

‘없지.’

전부 없다.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이 내게 달려있는데 그런 모험을 강행할 수 없는 입장이었다. 생각을 마친 뒤, 나는 쓰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미안하지만 난 당신의 계획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채굴자가 알게 될 경우, 위험 부담도 상당하다고 생각하고.”

채굴자 입장에서는 프로그램들이 갑자기 탈주하는 꼴이니, 그것을 달갑게 받아들일 리 없다. 그가 알게 된다면, 모종의 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그 조치의 결과란···

아마 ‘죽음’일 확률이 높다. 지나치게 위험하다.

“그 대답은 몹시 실망이군. 세상에 위험 없이 얻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2018년 대위기를 견뎌냈기 때문에, 지금 내가 이 자리에, 네 앞에 있을 수 있는 거고.”

“······”

“그렇다면 네게는 나보다 더 좋은 계획이 있나?”

나는 고개를 저었다.

“최대한 버틸 수 있을 때까지 지구에서 버텨볼 생각입니다. 그리고··· 그 뒤는 아직 생각해본 적은 없습니다.”

그 뒤까지 제대로 생각해본 적은 없다. 나는 아직, 채굴자가 어떠한 존재인지 모른다. 설령 이쪽에서 막대한 양의 기프트를 모은다 하더라도 협상이 가능할지, 불가능할지도 모르고.

아직은 ‘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네 생각이 그렇다면, 나도 강요할 생각은 없어. 그냥 지켜봐, 그러면. 생각이 바뀌면 그때 다시 투자해도 늦지 않으니까. 우리 X프로젝트의 문은 네게는 언제나 활짝 열려있다고.”

“응원하겠습니다.”

“자, 자, 이제 슬슬 출발할 시간이군.”

“뭐가 말입니까?”

그는 바깥을 손짓한다. 거대한 로켓이 불이 붙은 상태로 하늘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드드드. 꽤 멀리 떨어진 창문이 덜덜 떨렸다.

“로켓?”

“기프트로 개조한 로켓이야. 우선 달에 갔다 올 예정이지.”

“무인 로켓입니까?”

“아니, 안에 사람이 타 있지. 이 양반의, 대리어스 대통령의 아들인 제이드가 말이야.”

대리어스 대통령이 아까부터 창밖을 계속 쳐다보는 건 그러한 연유에서였던 모양이다. 그는 주먹을 불끈 쥐고 있었다. 아마 우주선 안에 타 있는 그의 아들이 걱정되는 모양이었다.

“······”

“지켜봐, 우리가 어떤 기적을 만들어내는지. 이번 프로젝트의 또 다른 이름은 미라클(Miracle)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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