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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코인 채굴-90화 (90/236)

90화

즐거운 만찬 시간을 가진 나는 대리어스 대통령과 함께, 백악관 정원 위에 도착한 반중력 수송기로 향했다. 로프를 잡는 내게, 이서란이 조금 아쉬운 눈으로 말했다.

“여기서부터는 제가 아닌, 다른 사람이 통역을 맡을 거예요.”

“연락드리겠습니다.”

“네.”

이서란과 그녀의 동료들 일부가 우리 그룹에 들어오기를 원하고 있다고 했다. 이곳에 오기 전 그녀는 그룹에 자신들을 받아줄 수 있냐고 은밀하게 물어왔고, 나는 흔쾌히 승낙했다.

실력 있는 플레이어가 합류하고 싶다는데 거절할 이유가 없다. 외교적인 문제가 발생한다 하더라도, 이제는 감당할 수 있고. 정 뭐하면 기프트로 대가를 지불하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그녀를 뒤로, 나는 로프를 타고 반중력 수송기에 올랐다. 그리고 ‘그녀’와 마주칠 수 있었다. 그녀의 정체를 확인한 내 얼굴이 굳었다. 이렇게 만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전 여친, 라소미.

‘플레이어가 됐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라소미의 행방은 묘연했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지금까지 알지 못했다. 그동안 나도 바빠서 외국에 있는 그녀를 찾을 여력이 없었고. 아니, 솔직히 말하면··· 이건 변명이다.

정확히 말하면··· 찾을 ‘자격’이 없어서 찾지 않았다, 라는 말이 옳을 것이다. 그녀의 눈동자는 파문이 일고 있었다. 나 역시, 그녀와 똑같은 모습일까. 잠시 이어지는 침묵.

그러나 이쪽이 먼저 말해야 할 것 같아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오랜만이네, 오빠.”

그녀도 입을 열었다.

“···응.”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복잡한 얼굴이었다.

“······”

우리 둘 사이의 관계를 알지 못하는 듯 대리어스 대통령이 밝은 얼굴로 유쾌하게 떠들었다. 그러나 지금 그의 말이 제대로 들릴 리 없었다.

“이제 곧 우주항공국으로 향할 거라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잠시 단둘이 얘기 좀 하자. 그렇게 전해드려.”

“오빠, 나는 여기 통역 신분으로 온 거야.”

“그게 무슨 상관이야. 나, 여기서 내려?”

당장이라도 뛰어내릴 듯한 포즈를 취하자, 라소미가 다급하게 말했다.

“잠시만 기다려봐.”

그녀는 영어로 대리어스 대통령과 이야기했고,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이내 나와 눈이 마주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나와 라소미는 단둘이서 시간을 가지게 됐다.

“잘 지냈어?”

“나야, 뭐 그럭저럭. 오빠는?”

“나도 뭐.”

“안 봐도 뭐··· 힘들었겠지. 오빠 눈에 그렇게 다 쓰여 있거든? 그래도 이런 세상이지만, 잘돼서 보니 좋다.”

“나야말로. 너는 평범하게 유학 갔던 거 아니었어?”

얼핏 본 그녀의 신분은 평범한 신분은 아닌 것처럼 보였다. 지금 내 통역을 맡고 있다는 자체가, 미국에서 그녀가 꽤 고위직에 올라있다는 방증이었으니 말이다.

“응, 그랬지.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이 일이 이렇게 터진 다음에는 방공호로 대피했는데. 함께 방공호에 갇혔던 사람들 중에 재벌이 있더라고.”

“재벌?”

“응, 그냥 재벌도 아니고 역대급 재벌이. 그 사람 눈에 들어서 임시 정부와 일하게 됐지.”

“역대급 재벌이라면.”

“예런 일리아티라고 알아?”

“모를 리가 없지.”

예런 일리아티. 그의 업적을 입으로 말하자면, 입이 아플 정도의 엄청난 천재 기업가.

물론 내가 그를 처음 알게 된 건 그러한 이유 때문은 아니었다. 그가 바로 지난 불장 때 전 세계적으로 가장 핫했던 도지(Doge) 코인의 광풍을 주도했었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나야 이미 기프트 코인에 전 재산을 박았을 때라 피해를 입진 않았지만, 그 덕분에 많은 코인 투자자들이 웃고 울었다고 한다. ‘도지코인 ***층’이니 이런 닉네임이 흔한 건 그런 이유였다.

그나저나··· 이 넓은 미국 땅에서 함께 방공호에 갇힌 대상이 그런 예런 일리아티일 확률이 얼마나 될까. 그야말로 라소미에게는 천운(天運)이 따라줬다고밖에 말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대단한 사람이야. 이번 일도 그가 주도하고 있어.”

“이번 일?”

“도착하면 알게 될 거야. 아마 그를 만날지도 모르겠네?”

“기대되네.”

이건 진심이었다.

“오빠는 어떻게 지냈어? 오빠 이야기도 듣고 싶다.”

“나는··· 너도 알다시피 우리 결혼이 그렇게 돼버리고 나서··· 한동안 폐인처럼 살았지?”

주택 담보 대출로 집만 날린 게 아니다. 전 재산을 날렸고, 주위 사람들의 신용도 잃어버렸다. 그 정도로 상황은 절망스러웠고, ‘자살’이라는 단어가 절로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그래도 시간이 약이었다. 정신을 되찾고, 회사에 복직했다. 가까스로 사장님의 배려로 회사를 잘리지 않았다. 물론 회사 월급으로는 이자를 갚는 것조차 어려웠기에 투잡을 뛰었다.

안 해본 일이 없었다. 배달부 일은 그 일환이었다. 그렇게 4년이 흘렀다. 원금을 꽤 많이 상환했지만, 아직도 수십 년은 갚아나가야 했다. 살인적인 스케줄을 감당해야만 했다.

그래도··· 그럭저럭 살 만은 했다. 이건··· 세상이 코인 채굴기로 변하기 전까지의 이야기였다.

“세상이 이렇게 돼버리고 난 후에는···”

처음에는 변이체들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을 쳤다. 그러나 나는 곧 깨달았다. 이 세계는 내게 그리 위협적이지 않다는 것을. 내 지갑에 존재하는 6억 5천만 개의 기프트.

비록 그 막대한 양의 코인들은 스테이킹(Staking)에 묶여 사용할 수 없는 상태였지만, 그로 인해 달성한 업적 보상으로 채굴량 보너스를 얻을 수 있었다.

남들이 걸을 때, 나는 혼자 비행기를 타고 가는 격이었다.

이후, 바른 마음 교회의 목사를 상대하고, 구원교의 목사를 상대하며 나는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었다. 선지자, 노아(Noa).

성서 속에 나오는 그처럼 다가올 ‘대홍수’에 대비해 거대한 방주를 쌓아 올리기로 했다. 쉘터를 만든 건 그러한 이유에서였다.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내 주위에 몰려들었고, 이제는 전 세계의 사람들을 모으고 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거였구나.”

“그랬지, 뭐.”

“힘들었겠다, 오빠.”

그렇게 말하는 라소미는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이제 와서 말하지만, 그때는 정말···”

그녀를 바라보고 있으니 그녀와의 추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꽤 많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기억들은 선명하게 떠올랐다. 잠시 감상에 잠겨있던 나는 말을 이었다.

“미안했다.”

그동안 전하고 싶었지만, 전할 수 없던 말이었다. 여전히 눈물이 글썽거리는 눈으로, 그녀도 입을 열었다.

“나도 미안했어.”

잠시 그녀를 바라보던 나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 역시 웃음을 흘렸다. 그녀에게 말했다.

“이제 가자. 도착한 거 같은데.”

방금 전까지만 해도 움직이던 반중력 수송기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의미였다.

***

도합 열한 개의 팔다리가 달린 기괴한 변이체가 물을 헤치며 빠른 속도로 달려온다. 이를 맞이하는 건 모터보트에 탑승한 거구의, 가슴털이 복슬복슬한 남자였다.

이내 변이체가 물 밖으로 튀어나온다. 거구의 남자도 들고 있던 도끼를 휘둘렀다. 퍽! 호쾌한 소리와 함께 변이체가 날아간다. 그의 뒤에 있던 여자가 빼꼼 고개를 내밀어 주문을 외웠다.

“아이스 캡슐.”

곧 그녀의 손 위에 생긴 연한 푸른색의 캡슐. 그녀는 망설임 없이 물을 향해 던진다. 그 순간, 순식간에 흐르던 강물이 얼어붙었다. 변이체 역시 그대로 얼었다.

거구의 남자는 도약해 얼어붙은 변이체를 향해 도끼를 휘둘렀다. 쨍그랑. ‘변이체 조각상’은 그대로 깨져나갔고, 변이체는 그대로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그러나 변이체를 처치하는 데 성공한 남자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아니, 보트까지 얼리면 어떻게 하냐고. 스텔라.”

“그러면 어떻게 해? 보트만 안 얼리는 마법 같은 건 배운 적이 없다고.”

“후···”

남자는 한숨을 쉬었다. 입김이 흘러나온다. 그러거나 말거나 스텔라라 불린 여자는 계속 말을 이었다.

“애초에 왜 우리가 이러고 있어야 돼?”

“또 무슨 소리를 하려고?”

“다른 플레이어들은 스릴러 및 재난 영화를 찍고 있을 때, 왜 우리만 미션 임파서블을 찍고 있어야 하냐고.”

“잘 알면서 왜 물어? 그 미치광이 때문이잖아?”

“그니까 왜 그런 미치광이가 우리 러시아에 있는 거냐고.”

“국민들이 뽑았으니까.”

“국민들? 나는 그런 놈 뽑은 적 없는데, 어떤 병신들이 뽑은 거야?”

“···내가 뽑았다.”

돌아오는 경멸 어린 시선에, 거구의 남자는 억울하다는 듯 말한다.

“아니, 내가 알고 뽑았냐고. 그 녀석이 전 세계에 핵을 날리려 하는 미치광이일지.”

“그래서 이제 어쩔 거야.”

“뭘 어쩌긴 어째? 기껏 구한 보트도 못 쓰게 돼버렸고, 걸어가야지.”

“그 어딘지도 모르는 방공호까지 걸어가자고? 바실리, 너 제정신이야?”

남자- 바실리는 한숨을 쉬었다. 지금 누가 할 말을 자꾸 하는 건지는 모르겠는데··· 그녀를 바라보며 입술을 달싹이던 그는 그냥 굳게 입술을 닫아버렸다.

‘그냥 조용히 가자···’

최대한 조용히 가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었다. 물론 스텔라는 여전히 쫑알쫑알거렸지만 말이다.

“이러한 컨디션으로 우리가 그 추종자들을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아?”

“······”

거구의 남자와 그의 몸에 찰싹 달라붙은 매미 같은 여자. 이 괴상한 조합은 얼음 위를 뚜벅뚜벅 걸어가기 시작했다.

***

미합중국 우주항공국, 나사(Nasa).

외계인이 만들었느니, 디스트릭트 9을 관리하느니 소문은 무성했지만 직접 내 눈으로 나사 건물 안에 들어와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들어가자마자 나를 반긴 건 거대한 로켓이었다.

“우주선?”

“진짜 우주선은 아니고, 실제 크기 모형이래.”

아무리 모형이라도 저걸 만드는 건 엄청난 시간과 돈을 들여야 했을 것이다.

그런 걸 보면 역시 나사다운 모습이라 해야 할까?

나는 곧 대통령을 따라 엘리베이터에 탑승해, 최상층으로 올라갔다. 그렇게 도착한 최상층. 라소미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지 않고 멈춰 섰다.

나보고 안으로 들어가라는 듯, 손짓하며 말이다. 의아한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자···

“통역이 필요 없을 거야. 그리고 나는 들어갈 ‘자격’이 없기도 하고.”

“자격이야···”

내가 만들어주면 그만인데. 하지만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그와 이야기 잘 나누고 와. 남은 얘기는 나중에 하자.”

그녀가 그렇게까지 말했는데, 그녀를 더 붙잡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따가 보자.”

곧, 대리어스 대통령과 수행원들을 따라 안으로 들어간다. 나는 의자에 앉아있는 남자를 볼 수 있었다. 기억하던 모습과 조금 달라지긴 했지만 그는 틀림없이 예런 일리아티였다.

놀랍게도 그는 익숙한 한국어로 입을 열었다.

“어서 오게, 나의 친구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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