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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코인 채굴-81화 (81/236)

81화

눈을 뜬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창을 바라본다. 먹구름으로 가득한 하늘에서 쏟아지는, 눈에 선명하게 보일 정도로 굵은 빗방울들. 이곳에서 취침하기 전 풍경 그대로다.

방문을 열었다. 라우라의 방문이 닫혀있는 걸 보면, 아직 잠을 자고 있는 모양이었다. 입구로 향했다. 그리고 심호흡을 한 후, 가볍게 문을 열었다. 쏴아아. 물이 쏟아지는 소리.

분명 안전 가옥을 구매할 때만 하더라도 평지였던 안전 가옥 앞에 요란하게 강이 흐르고 있다. 하루 만에 이렇게 돼버릴 수 있다는 것에 새삼 신기해하면서 강에 발을 내디뎠다.

가볍게 물 위에 선다. 물살은 거셌지만, 그런 물 위에서도 나는 손쉽게 균형을 잡을 수 있었다. 물 위로 온갖 것들이 흘러온다. 자동차, 가전제품, 판자, 심지어 집이 흘러오기도 했다.

물론 아파트가 아닌, 사실상 컨테이너에 가까운 소형 집이었지만 말이다. 그때였다. 저 멀리 사내 한 명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는 거친 물살을 가르며 헤엄치고 있었다.

그는 내 앞에 도달한다. 나를 향해 손을 뻗었지만, 나는 그의 손을 잡지 않았다. 그 때문인지 균형을 잃은 그는 물속에 빠졌다가 다시 어푸어푸거리면서 판자를 붙잡고 위로 올라온다.

결국 그는 안전 가옥까지 올라오는 데 성공했다. 나는 그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20대 초중반쯤 돼 보이는 젊은 동양인 남자. 곧, 그의 입이 열린다. 중국어가 흘러나온다.

어조가 사나운 걸 보면, 아마 날 탓하는 듯 보인다. 나는 어깨를 으쓱인다. 중국어 모르는 걸 어떻게 하라고. 지하오란의 딸인 미란과 톡으로 대화하며 조금 늘긴 했지만 회화는 무리다.

그는 화난 표정으로 내게 말하다가, 자신의 말이 통하지 않는 걸 깨달았는지 답답한 표정을 짓는다. 그때였다. 안전 가옥에서 라우라가 나왔다. 그는 라우라에게 다가갔다.

그는 라우라에게 말했지만, 당연히 브라질인인 라우라가 중국어를 알아들을 리 없었다. 한참을 토로하듯 말하던 그는 뭔가 날카롭게 한마디 말하고는 라우라에게 다가갔다.

다음 순간 그의 몸이 검은 짐승으로 변형된다. 그리고 검은 짐승은 순식간에 그녀를 집어삼켰다. 드디어 본색을 드러냈다. 발연기 지켜보기도 슬슬 지겹던 찰나였는데 잘됐네.

그녀를 집어삼킨 것처럼 보이던 검은 짐승의 내부가 붉게 빛나더니, 펑 하는 소리와 함께 터져버렸다. 검은 짐승은 말 그대로 산산조각 나 버리고 말았다. 막타는 내가 때릴 걸 그랬나.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나는 라우라에게 다가갔다.

잔뜩 짜증이 난 표정의 그녀의 전신에는 불의 방패가 둘려 있었다. 그녀는 나를 향해, 그리고 산산조각 난 ‘도플갱어’의 살점을 보면서 욕설 한마디를 내뱉고는 다시 들어가 버렸다.

처음에는 미인계였는지 몰라도, 나름 다소곳한 모습도 보여줬던 그녀지만, 이제는 자포자기해버린 모양이다. 하기야, 곰곰이 생각하면 당연하다. 그녀와 기프트 계약을 추가로 맺었다.

그 덕에 적잖은 기프트를 소모하긴 했지만···

내 말에 절대복종해야 했던 라우라는 이제, 내가 그녀에게 명령을 내리건 말건 내게 해를 끼칠 수도, 내 반경 50m를 벗어날 수도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

그야말로 노예 계약도 이런 노예 계약이 없다.

말만 들으면 너무하다 생각할 수 있지만, 그녀의 정체를 잘 알고 있는 나는 별로 불쌍하지 않았다. 잔혹한 카르텔 수장의 딸. 그녀가 살해한 플레이어의 숫자만 수천을 넘어설 것이다.

‘그나저나··· 영감님 이외에 다른 도플갱어를 보는 건 처음이네.’

장영하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형태를 하고 있지만, 그 연기는 무척이나 어설펐다. 상황 연출도 그렇고. 뭐, 그 정도만 해도 다른 플레이어들에게는 충분히 통하겠지만 말이다.

생각하던 나는 담배를 한 대 물었다. 한 대 피우고 들어가서, 늦은 점심을 먹을 생각이었다. 앞으로 두 시간 뒤면 일식이다. 식사를 해결한 후에는 도시에서 변이체를 사냥할 생각이었다.

그때였다. 또다시 무언가가 떠내려오기 시작했다. 이번엔 집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평범한 집이 아니었다. 오토 쉴드가 둘려 있는 걸 보면 안전 가옥이 틀림없었다.

<8급 안전 가옥>

‘저건···’

나는 천천히 안전 가옥에 다가갔다. 강물을 따라 빠른 속도로 이쪽으로 흘러오는 안전 가옥. 그 사이즈도 크고, 속도도 빨라서 저기에 치이기라도 하는 날엔 참사가 일어날 것이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일반인이나, 평범한 플레이어의 경우고, 당연하게도 나는 예외다. 가볍게 손을 뻗었다. 쿵! 살짝 밀리는 듯한 느낌과 함께 안전 가옥이 그대로 정지했다.

그리고 다른 손으로 안전 가옥을 붙잡고, 통째로 들어 올렸다. 집을 들어 올린다는 것. 말이 쉽지 그 무게는 보통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가능하다. 내 근력은 ‘무려’ 140이었으니까.

그리고 바리케이드를 구매했다. 단번에 수백 개를 구매해 벽을 쌓고, 그 위에 안정적으로 안전 가옥을 놓았다. 안에서 인기척이 느껴진다. 곧, 문이 열렸다.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인도인으로 추정되는 수염을 치렁치렁하게 늘어트린 중년 남자와, 히잡을 쓴 채 두려운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늙거나 젊은 여자들, 그리고 어린아이들이었다.

나는 그들을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중년 남자의 입이 열린다.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것은 중국어였다. 아마 내가 중국 사람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아임 코리안.”

영어로 말하자, 그는 놀랍게도 한국어로 입을 열었다.

“코리안? 한국 사람입니까?”

“예, 한국말을 하실 줄 압니까?”

중년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 통역가입니다. 먼저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는 간단하게 상황 설명을 시작했다. 한국어에 완전히 능숙지는 않은지, 중간중간에 영어를 섞어가면서. 그러나 그의 말을 이해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렇게 영어를 잘하는 건 아니지만 S31의 번역 기능을 이용하기도 했고, 시간 가속의 효과로 인해 그의 말을 느릿느릿하게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이름은 나레쉬.

“겉으로 드러난 내 신분은 통역가이지만, 사실 내 진짜 신분은 비밀스러운 일을 하는 정부의 요원이었습니다.”

“국정원 요원 비슷한 건가?”

그는 내 말이 이해가 안 되는지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이내 무언가를 떠올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진짜 신분은 무려 인도의 정부 요원이란다.

한국 정부로 따지면 국정원 요원, 미국으로 따지면 FBI 정도 될 것이다. 이런 세상이 아니었다면 평생 내가 그를 만날 일은 없었겠지. 하기야 그렇게 따지면···

창 너머에서 표독스러운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카르텔 수장의 딸을 만난 것부터 말도 안 되는 일이겠지만 말이다. 새삼스럽게 그에게 손을 건네 악수를 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나레쉬. 나는 이진서입니다.”

“이진서? 나, 너 어디서 본 적 있습니다.”

“아마 너튜브? 아임 페이머스 너튜버.”

말해놓고서도 약간 부끄러워졌다. 페이머스 너튜버는 개뿔. 물론 내 동영상이 인기 동영상 1위니 아주 틀린 말은 아니긴 하지만··· 그때, 나레쉬가 생각났다는 듯 무릎을 탁 두드렸다.

“아, 배달부?”

다행히 그는 나를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이러면 설명하기가 빠르다.

“나는 변이체들을 소탕하기 위해 왔습니다. 플레이어들을 구출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감격한 표정을 지었다.

“곧 이곳에 수송기가 도착할 겁니다. 이곳에서 잠깐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그나저나···”

나는 조금 고민하는 표정을 짓다가, 그들과 기프트 계약을 맺었다. 합리적으로 그들에게 10만 기프트를 넘겨주기 위해서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 대부분은 바이러스에 걸린 상태였다.

아마 변이체들을 상대하다가 걸린 것이겠지. 잠복기가 끝난다면 그들은 틀림없이 죽을 것이다. 물론 치료제는 오로지 ‘시간 회귀의 물약’밖에 없었다.

한편으로 나는 마음이 급해지는 걸 느꼈다.

이미 그들이 걸릴 정도로 바이러스가 퍼졌다면 바이러스가 퍼지는 것은 순식간일 것이다. 남은 플레이어들마저 중국의 플레이어들처럼 전멸당하고 말겠지.

플레이어 구출 작업을, 그리고 백신 개발 작업을 서둘러야겠다.

“인도에 플레이어들이 많습니까?”

“많은 수의 변이체들이 침략했고, 플레이어들은 많이 죽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많이 남아있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인도의 인구수를 떠올리면 당연한 일이다. 아직도 중국의 플레이어들이 꽤 많이 남아있는 걸 생각하면 더더욱 말이다. 이내, 그들은 내 지시대로 시간 회귀의 물약을 구매해 마셨다.

50명을 구출하며 도합 500만 기프트가량을 일시불로 쓴 셈이었지만, 전혀 아깝지 않았다. 과거와 달리 시간만 있다면 500만 기프트는 얼마든지 벌 수 있는 금액이었으니까.

어차피 이쪽에서도 기프트 계약을 통해 능력치를 받은 셈이니, 손해라 말할 수도 없었고. 30분 후 쟈비스가 도착한다. 상공에서 거대한 수송기의 입구가 열리고 사다리가 내려온다.

나는 나레쉬와 함께 가족들을 사다리에 태웠다. 모두 탑승을 완료하자 나레쉬 역시 사다리에 올라 수송기에 탑승한다. 그는 나를 향해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그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주었다. 머잖은 미래에 또 보게 될 것이다.

‘민혁이에게 또 전화해야겠네.’

쟈비스는 빠른 속도로 모습을 감춘다. 남은 것은 빠르게 흘러내리는 강물 소리뿐. 그 사이에 강물의 물이 불어났는지 이제는 안전 가옥을 위협하고 있다. 라우라를 향해 말한다.

“가자.”

그녀가 문을 열고 나오더니, 뭐라뭐라 중얼거린다. 물론 들을 생각이 없었기에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곧 날개를 펼친 나는 그녀를 안고, 가볍게 도약했다.

***

이진서가 말한 대로, 정민혁은 웨이타오에게 VVIP 대접을 하고 있었다. 쉘터 내 최상급 주거 시설과, 식사로는 최고급 요리를 대접했고, 직접 쉘터 곳곳을 에스코트해주고 있었다.

그는 만족스런 표정을 지었다.

쉘터의 방비가 잘돼있는 걸 보니, 적어도 당분간은 죽을 일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학교의 비닐하우스에 들러 사과를 따 먹고. 근처에 설치된 거대한 댐을 구경하기도 하고···

외곽의 바른 빛 선교회에 들러 걸려있는 이진서의 사진에 나름 진심을 담아 기도를 드리기도 했다. 그의 원래 종교는 불교지만, 아무렴 그에게 있어 이진서는 살아있는 생불이었으니까.

마지막으로 웨이타오가 정민혁과 함께 들른 곳은 병원이었다. 정민혁은 그에게 마스크와 방호복을 건넸다. 일단 마스크를 쓰고, 방호복까지 입은 그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나를 어디로 데려가려 하는 거지? 여긴 평범한 병원이 아니었나?’

의아한 표정을 지은 그지만, 정민혁의 손짓에 그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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