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화
“제주도까지는 또 무슨 일로 오셨는지?”
나를 향해 무기를 겨눈 채호민과 더 원 그룹원들. 이곳에 오기 전에 예상했듯, 그들은 딱히 나를 반기는 얼굴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오히려 경계하는 쪽에 가까웠다.
“걱정돼서 말입니다.”
“걱정? 이미 화산은 멈췄습니다. 그쪽이 걱정하실 건 없습니다.”
“혹시 모르지 않습니까?”
“제주도에서 나가주십쇼.”
그때였다. 내게 문자 메시지가 도착한 건. 슬며시 S31을 꺼내 문자 메시지를 확인했다.
- 다수의 그룹 탈퇴 희망자 확인.
강태윤이 인터넷으로 더 원 그룹원들의 여론을 조사해서 보내준 내용이었다. 인원을 빼가기 위해서 온 것은 아니지만, 굳이 오겠다는 사람을 막을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한편으로, 나는 채호민이 그들을 순순히 보내줄 리 없다는 것 역시 잘 알고 있었다. 틀림없이 무력을 동원해서 막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둘 생각 역시 없었다.
생각하던 나는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가는 건 정 없고, 차라도 한잔 마시고 가겠습니다.”
“누구 맘대로···!?”
나는 바다를 바라봤다. 굳이 지팡이를 휘두르거나, 손을 휘두를 것도 없이, 중얼거릴 뿐이었다. 하늘에 소환된 거대한 운석이 바다를 향해 떨어진다. 미티어 스트라이크.
대멸겁의 지팡이를 들지 않았으므로, 본래의 화속성 운석 그 자체다. 몸 전체가 후끈거릴 정도의 강렬한 열기와 함께 그대로 바다에 떨어진다. 엄청난 물보라가 우리를 향해 튀었다.
“이게 지금 무슨 짓···”
“안됩니까?”
“지금 무력시위라도 하겠다는 겁니까?”
나는 조금 뻔뻔해지기로 마음먹었다. 무력시위라도 하겠다는 거냐고? 왜, 무력시위라도 하면 어쩔 건데?
“예.”
이번에는 가볍게 손을 까딱였다. 운석이 떨어진 곳에 또다시 운석이 하나 더 떨어진다. 더 원 그룹원들이 무기를 내려놓고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핵무기를 손에 쥔 기분이 바로 이런 걸까.
채호민은 이를 바득바득 갈며 말했다.
“으득. 차, 대접해드리죠.”
“예, 감사합니다.”
- 언젠가는 반드시 죽여주마.
진리의 눈, 게비샤를 통해 나는 그의 생각을 ‘아주 잘’ 전해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내색하지 않고 순순히 채호민을 따라나섰다. 그리고 더 원의 쉘터에 도착할 수 있었다.
지난번에 봤던 쉘터는 아니었다.
기존의 쉘터는 용암에 휩쓸려 파괴됐다고 했다. 내가 도착한 쉘터는 기존의 쉘터가 아닌 임시 쉘터였다. 본래 쓰지 않았던 폐건물을 8급 안전 가옥으로 개조했다고.
내가 안으로 들어서자, 그룹원들이 쳐다본다. 대부분은 나를 보며 기뻐하는 얼굴들이다. 나만 느낀 것이 아닌 듯, 채호민이 인상을 찌푸리곤 황급히 말했다.
“안쪽으로 들어가시지요.”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뒤를 따른다. 누군가가 소리친 건 바로 다음 순간이었다.
“구해주십쇼!”
“누구야!?”
채호민이 인상을 구기며 버럭버럭 소리쳤다. 곧 목소리의 주인이 모습을 드러낸다. 채호민의 또래 정도로 보이는 젊은 남자였다.
”양천우?“
이름을 들은 그의 몸은 움츠러들었지만, 나를 바라보고는 완전히 마음을 굳힌 듯 앞으로 나와 말했다.
“제발 저희를 구해주십쇼! 이대로 있다가 죽기는 싫습니다.”
나는 모르는 척, 천진난만하게 그를 향해 물었다.
“구해줘? 죽어요? 이게 다 무슨 소리지?”
“헛소리입니다. 그쪽이 신경 쓸 거 없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도 우후죽순으로 입을 열기 시작했다.
“제발 저희를 배달부님 쉘터에 받아주십쇼!”
“평생 충성을 맹세하겠습니다. 저 싸이코는 저희도 죽일 것이 틀림없어요.”
“다들 안 닥쳐? 지금까지 내 기프트 축내면서 살아남아 놓고···! 조용히 시켜.”
그의 명령을 들은, 그를 따르는 그룹원들이 움직이려 했다. 나는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누구 맘대로요?”
아까의 공포가 인식됐는지, 내 말을 들은 그들의 몸이 그대로 멈췄다. 채호민의 인상이 한층 더 구겨진 건 덤이다.
“···뭐라고?”
“우리 쉘터에 들어오고 싶다는 사람들 아닙니까? 내가 보호할 ‘의무’가 있을 것 같은데?”
“···처음부터 이럴 목적으로··· 이럴 줄 알았지.”
아까부터 은근슬쩍 자꾸 반말질이다. 웬만하면 꼰대 짓은 안 하려 했지만··· 딱 봐도 나보다도 어려 보이는 게. 내 입에서도 자연스럽게 반말이 흘러나왔다.
“이제라도 알았다니 다행이네.”
“저 새끼, 죽여!”
그의 명령대로 움직이는 그룹원들은 없었다. 급기야 그는 총을 꺼내 내게 겨눴다. 탕! 격발 소리와 함께 탄환이 나를 향해 날아들었다. 팅! 당연하게도 탄환은 튕겨 나가고 말았다.
고작 평범한 탄환 따위가 내가 사용한 앱솔루트 배리어를 뚫을 수 있을 리 만무하니 말이다.
나는 채호민을 바라본다. 스킬을 사용할 필요도 없이, 마력을 방출했다. 해일과 같은 마력이 방출되자 그의 얼굴이 파랗게 질린다. 이내, 그는 허겁지겁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의 뒤를 몇몇 그룹원들이 따른다. 나는 그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손을 내려놨다. 어차피 죽일 생각까지는 없었다. 그가 사람들을 죽이는 악행을 저질렀다고는 해도.
어느 정도 참작될 여지는 있는 악행이었으니까. 실제로 이번 일 전까지만 하더라도 다른 이들도 크게 불만은 없어 보였고. 생각에 잠겨있던 나는 이내 사람들을 훑어봤다.
진리의 눈, 게비샤를 사용한 상태라 그들의 마음속을 엿볼 수 있었다. 크게 문제가 될 만한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애초에 그의 뒤를 따랐던 그룹원들조차 대부분 그가 시키는 대로 따라 했던 사람들이라고 했었지. 물론 고작, 한번 보는 것으로 판단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어차피 쉘터로 데려간 이후에는 정민혁과 간부들이 알아서 해결할 터였다. 내 역할은 일차적으로 플레이어들을 걸러내고, 그들을 쉘터로 데려가는 것으로 한정할 생각이었다.
“자, 다들 떠날 준비 합시다.”
“어떻게 떠납니까? 저희는 그··· 배달부님처럼 날개도, 아니면 육지를 건널 운송 수단도 없는데···”
그렇게 말한, 아까 처음으로 입을 열었던 남자- 양천우가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원래 육지를 건너던 배가 있긴 했는데 채호민이 다 불태워버렸습니다. 몇 척 남겨둔 것으로 알긴 하지만 아마 용암에 의해 묻혔을 텐데···”
“아, 그건··· 곧 올 겁니다.”
“예?”
잠시 기다리고 있는데, 함선이 모습을 드러낸다. USA. 함선에 탑승해 있는 건 미국인이었다. 강태윤이 지원을 요청했고, 미국은 요청을 받아들였다고 했다.
마침 일본 근처에 가동 가능한 구축함이 있었다고.
“미스터 리, 어서 탑승하십시오.”
“감사합니다.”
짤막하게 고개 숙인 나는 사람들에게 서두르라고 손짓한다. 내 손짓에 조급함이라도 느낀 건지, 그들의 움직임이 한층 더 빨라지기 시작했다.
***
광주, 부산, 제주도··· 이번에 구출된 플레이어들의 숫자는 모두 합치면 물경 칠백 명에 달하는 수준이었다. 가뜩이나 북적거리던 쉘터는, 한층 더 북적거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넓어 보였던 쉘터도, 지금 보면 ‘조금’ 비좁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진혜연은 사탕을 입에 문 채로 이제원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이진서를 뾰로통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곧 그녀의 입에서 혼잣말이 흘러나온다.
“저 언니, 너무 이쁘네···”
“그럼, 당연히 이쁘지.”
“그렇게 갑자기 나타나지 말랬지.”
진혜연은 짜증 난 얼굴로, 그녀의 옆에서 불쑥 모습을 드러낸 정민혁을 향해 입에 물고 있던 사탕을 휘둘렀다. 하지만 그는 얄밉게도 사탕을 피하고는, 깐족거리듯 말했다.
“충무로에서 제일 잘 나가던 연예인이잖아?”
이제원은 세상이 이렇게 변하기 이전에도, 미의 대명사였다.
“그건 나도 알거든?”
이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현실에서 보니 비정상적인 수준이었다. 심지어 저마저도 풀 메이크업이 아닌 쌩얼이라는 말을 엿들었을 때는 기겁할 뻔했다.
‘저게 어딜 봐서 쌩얼이야?’
“당연히 평범한 중학생인 너와는 하늘과 땅 차이라 말할 수 있지.”
“하늘과 땅? 나도 어디서 외모가 떨어진다는 이야기는 안 들어봤···”
“아, 또래들한테? 그러고 보니 동작고 애들 중에 누가 너 좋아한다고···”
“진짜, 죽을래? 고딩이랑 만날 생각 없거든? 나이 차이가 얼만데?”
“그렇게 따지면 나이 차이는···”
눈에 쌍심지를 켜고, 정민혁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지만 그는 오히려 낄낄거리며 달아나버렸다. 대화하다 말고 티격태격하는 둘을 구경하던 이제원은 피식 웃었다.
“한창때 애들이라 그런지, 활발하네요.”
이진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렇죠. 그래도 저 친구들은 ‘그냥’ 애들은 아닙니다. 저기 저, 주먹 휘두르는 여중생, 혜연이는 버프 팀장이고, 쫓기는 민혁이는··· 이 그룹의 리더나 다름이 없으니까요.”
“저 어린 나이에 버프 팀장? 대단하네요. 그런데··· 리더는 진서 씨잖아요?”
“표면상일 뿐입니다.”
“아?”
그렇게 탄성을 낸 이제원은 생각에 잠겼다.
‘고작 저런 꼬맹이들이 버프 팀장에, 그룹의 리더라고? 제대로 그룹이 돌아갈 리가··· 없겠네.’
대한민국 사회에서 ‘나이’란 중요하다. 나이 어린 이들이 기득권을 쥐고 있으면, 당연히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것이 바로 그녀의 상식이었다.
‘나는 별 욕심 없지만··· 저기 고경표는 생각이 다를 텐데.’
그녀는 고경표와 인터넷을 통해 몇 번 교류를 나눈 적이 있었다. 때문에 그가 광주로 만족하지 않을 야심가라는 사실을 꿰고 있었다. 물론 이진서와 고경표는 하늘과 땅 차이지만.
그 비교 대상이 저런 꼬맹이들이라면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그녀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진서는 그녀를 쳐다보고는 빙그레 웃을 뿐이었다.
“제원 씨는 연극이나 영화를 찍고 싶으시다고요.”
“예, 솔직히 이런 마스크를 가만히 내버려 두기는 아깝잖아요? 물론 진서 씨가 반대한다면 할 생각은 없지만···”
“이유가 있습니까?”
이렇게 돼버린 세상 속에서, 영화나 연극이나 하는 것들은 ‘사치’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이진서였다.
“이유라··· 당시에 저는 영화를 촬영 중이었어요. 그러다가 갑자기 세상이 이렇게 변해버렸고. 동료 배우들, 그리고 스태프들도 모조리 변이체로 변해버렸죠. 그때는 허겁지겁 도망쳤다가 한 보름쯤 뒤에 영화 촬영한 게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필름이라도 얻을 수 있을까 해서 현장을 찾아갔었죠. 그리고 그 결과는··· 놀라웠어요.”
“놀랍다니, 어떤···”
“관람하는 것만으로 영구적으로 능력치를 올려주더라고요? 물론 소량이긴 하지만··· 영화 촬영 편수가 늘어난다면 결코 무시하지 못할 수준일 거예요.”
“영구적으로 능력치를 올려준다라···”
‘아마 김하나의 요리와 비슷하다···라고 말할 수 있나?’
생각에 잠겨있던 이진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그녀의 말대로, 영화를 보는 것만으로 능력치를 올릴 수 있다면 그룹 전체에 엄청난 도움이 될 테니 말이다.
“그런 거라면··· 환영입니다. 그 전에, 제가 영화를 먼저 볼 수 있을까요?”
그녀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