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화
초월체, 데미안.
특수 변이체의 다음 단계가 있다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 직접 두 눈으로 보는 건 처음이었다. 보유 기프트는 무려 10만. 지금까지의 특수 변이체와는 기프트 보유 단위부터가 다르다.
아마 무력 역시 그에 걸맞은 수준을 보유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별로 긴장감은 들지 않았다. 지금의 나는 ‘마력 무한 치트키’를 사용한 상태나 다름이 없었으니 말이다.
다음 순간, 강렬한 푸른색 광선이 피닉스의 몸을 꿰뚫었다. 진리의 눈, 게비샤를 사용한 지금의 나조차 눈으로 좇지 못할 만큼 엄청난 빠르기. 데미안의 능력인 듯 보였다.
하지만 푸른색 광선은 한 번으로 그치지 않았다. 두 번, 세 번··· 마치 대포처럼 계속 쏘아댄다. 꿰뚫린 피닉스의 몸이 불안정하게 흔들렸다. 녹색 화염이 피처럼 후두둑 아래로 떨어졌다.
불안정하게 유지되던 피닉스의 몸은 다음 순간, 강렬한 폭발과 함께 그대로 터져버렸다. 폭발로 인한 여파는 내가 있는 곳까지 이어질 만큼 대단했다.
하지만 내 얼굴은 여유롭기 그지없었다. 피닉스가 괜히 피닉스가 아니다. 피닉스의 능력은 ‘소생’. 소환자의 마력이 허용하는 한 피닉스는 끊임없이 되살아난다.
내 몸이 점차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체내의 마력을 감당하지 못해, 소비하지 못해 생기는 일이었다. 감당하지 못하면 터진다는 연병훈의 말이 아주 헛된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러다가 풍선처럼 뻥 터지는 건 아니겠지?’
하지만 다음 순간, 내 몸이 다시 원상태를 되찾았다. 피닉스가 내 마력을 먹고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그 크기는 방금 전보다 오히려 거대했다. 나는 의아한 얼굴을 했다. 피닉스에게는 제약이 걸려있다. 죽었다 되살아나면 이전의 크기보다 1/2 이하로 작아져야 한다는 제약이다.
[압도적인 마력으로 인해 피닉스의 제약이 일부 풀립니다.]
[피닉스가 새로운 능력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멀뚱멀뚱 메시지를 바라보고 있는데, 지상에서 또다시 푸른색 광선이 발사되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피닉스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 지금부터 이 도시를 내 영역으로 선포하노라.
오만한 목소리가 내 머릿속에 울려 퍼짐과 동시에, 지상에서 녹색 화염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피닉스가 ‘영역 선포’를 사용했습니다.]
‘제대로 날뛰라곤 했지만.’
부산 시내 전체에 들끓는 녹색 화염을 보며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바닷물들이 실시간으로 증발하고 있었다. 아니, 지상에 있는 모든 것이 증발하고 있었다.
플레이어 대피를 완료한 것을 확인해서 망정이지, 만약 저 위에 플레이어라도 있었다면 그대로 잿더미가 돼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그 사이, 피닉스가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그리고 그대로 푸른색 광선이 발사되는 곳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자폭. 하지만 영역 선포라는 새로운 능력을 사용한 이후인지, 그 위력은 방금 전 것과도 궤를 달리했다.
이어지는 강렬한 폭발. 그 위에 생기는 거대한 버섯 구름. 마치 핵이라도 떨어진 듯한 모양새.
‘데미안은···’
[473,850 기프트를 획득했습니다.]
아무리 초월체라 하더라도 저런 걸 맞고 멀쩡할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나는 탈력감에 털썩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 사이, 피닉스가 또다시 되살아났다.
“그만 살아나.”
나는 바닷물을 통해 마력을 흡수했다. 그런데, 지상의 바닷물이 모조리 증발해버렸으니 당연히 링크가 끊어졌다. 쓰나미는, 해일은 완전히 소멸한 모양인지 더 이상 몰려오지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피닉스가 순순히 사라질 리 없었다.
- 시끄럽다, 인간.
내 말을 가볍게 무시한 녀석이 하늘 높이 날아오른다. 그 모습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바라보던 나는 품에서 체력 회복제, 마력 회복제를 꺼내 입에 넣었다.
한발 늦게, 업적 달성과 칭호 획득 메시지가 떠올랐다.
[‘퍼스트 무버 6’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퍼스트 무버 6>
등급 : 신화(God)
조건 : 플레이어 중 가장 먼저 초월체 처치.
보상 : 기프트 채굴량 +65%
[칭호 ‘포세이돈’을 획득했습니다.]
<포세이돈>
조건 : Lv.25 이상의 해일 소멸
보상 : 바다 위에서 체력, 마력 회복 속도 200% 상승
[‘칭호 초급자’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칭호 초급자]
등급 : 희귀(Rare)
조건 : 칭호 네 개 이상 획득
보상 : 기프트 채굴량 +7.5%
기프트 채굴량만 65%를 주는 신화 등급의 업적 ‘퍼스트 무버 6’을 달성했다. 이로써, 내 기프트 채굴량은 거의 300%에 육박할 정도로 상승했다.
그리고 칭호, 포세이돈. 보상이 ‘바다 위’라는 지형으로 제한된 만큼 좋은 칭호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그로 인해 칭호 초급자 업적을 달성했으니, 만족스러웠다.
그래, 다 만족스러운데··· 한편으로 나는 이상함을 느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단 말이지.’
나열된 업적 목록들.
<퍼스트 무버 1(N)>
<퍼스트 무버 2(S)>
<퍼스트 무버 3(R)>
<퍼스트 무버 4(U)>
<퍼스트 무버 6(G)>
‘왜··· 퍼스트 무버 5만 빠져있는 거지?’
퍼스트 무버 1부터 6까지. 그중에서 5만 빠져있다. 그동안 미처 느끼지 못했는데, 알고 나니··· 마치 멀쩡하던 이가 빠진 것 같은 허전함이 느껴진다.
‘설마 내가 죽였다고 착각···한 건 아니겠지.’
내가 죽인 특수 변이체는 하나뿐이다.
시흥시의 타일런트란 개체. 혹시 녀석이 죽음을 위장했다든가··· 아니, 이내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기프트가 들어오는 것을 확실하게 확인했으니, 녀석은 틀림없이 죽었을 터였다.
‘설마 나보다 먼저 특수 변이체를 사냥한 플레이어가 있다는 건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타당해 보였다. 퍼스트 무버 업적은 가장 먼저 변이체를 살해한 플레이어에게만 지급되는 업적이니 말이다. 생각에 잠겨있던 나는 지상을 내려다본다.
도시 전체가 말 그대로 불타 없어지고 있었다. 저 화염이 그치는 날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겠지. 부산시의 플레이어들에게는 미안하게 됐지만, 강제 병합 각이 잡혔다.
***
“에밀리, 배달부 최신 영상 봤어?”
백인 여자의 물음에 에밀리라 불린 동양인 여자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봤어요.”
“정말 멋지지 않아? 토네이도를 검 한 자루로 베어버리다니. 솔직히 반했어.”
그녀는 공개된 이진서의 영상을 접했고, 한눈에 반해버리고 만 것이다.
“반했다고요?”
에밀리의 미간이 느닷없이 찌푸려지자, 이야기를 꺼낸 백인 여자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어, 응··· 왜?”
“아뇨, 제니퍼. 뭐, 제니퍼가 반하든 말든 상관없어요.”
“그러고 보니··· 네 남자친구는 살아있대? 네 전 남자친구 말이야.”
“···예.”
에밀리의 이야기를 들은 백인 여자아이, 세라가 이곳저곳에 그녀의 이야기를 퍼트리는 바람에 그녀의 사랑 스토리는 꽤나 유명했던 것이다.
잠시 생각하던 에밀리는, 이내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예.”
“왜, 연락해봤는데 잘 안 된 모양이지?”
“어떻게 연락하겠어요. 제니퍼가 말하는 그 ‘배달부’가 제 전 남친인데.”
처음 알게 됐을 때는 그녀도 놀랐다.
동양에, 한국에 엄청난 플레이어가 나타났다고 사람들이 떠들 때까지만 해도 그녀의 전 남자친구와 동일 인물일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으니까.
이진서. 놀랍게도 그는, 한국의 플레이어들을 이끄는 리더 자리에 올랐다고 했다.
‘하기야, 정신 못 차리고 코인 계속 사들였던 거 생각하면 이상한 일은 아니지만.’
기존의 세계의 물질적 가치가 완전히 뒤바뀐 세상. 대량의 기프트를 가지고 있는 이진서가 리더 자리에 오르게 된 건 당연한 이치일지도 몰랐다. 당장 미국만 해도 그랬으니까.
“진짜?”
제니퍼가 황당하다는 얼굴로 물어온다. 에밀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거짓말하는 거 아니지?”
“진짜라니까요.”
“그러면 나 좀 소개시켜 줘.”
“······?”
“어차피 전 남친이잖아. 나, 동양인 남자 만나보는 게 소원이었는데 잘됐네.”
“미쳤어요, 제니퍼?”
신나서 떠들던 제니퍼의 몸이 움츠러들었다.
“···농담이야, 농담.”
후다닥 그녀가 사라지는 걸 본 에밀리는 한숨 쉬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말하지 말걸. 괜히 말해서 또 방공호에 다 퍼지게 생겼다. 아니, 요즘 한국과 교류가 점점 확대되고 있다던데···
‘정말 그 남자의 귀에 들어가면 어떻게 하지?’
언젠가는 먼저 연락할 생각이었지만, 저런 식의 연락을 바라지는 않았다. 아니, 애초에···
‘제니퍼가 그 남자를 꼬신다니까 왜 이렇게 기분이 나빠진 거야?’
그녀는 감정 상태가 들쑥날쑥한 것을 느끼며 또다시 한숨 쉬었다.
***
리더인 이제원을 비롯한 ‘에이스’ 그룹과, 다른 그룹의 플레이어들은 우리 그룹에 합류를 결정했다. 어차피, 부산에 있던 모든 것을 불태웠으니 다른 선택지는 없었을 터였다.
“여기서 잠시 기다리십시오.”
주위에 바리케이드를 설치한 내 말에, 이제원이 물어왔다.
“제주도도 가보시게요?”
이미 제주도에는 ‘자연재해’가 끝났다고 들었다. 하지만 나는 제주도 역시 가볼 생각이었다.
“예.”
“안 가는 걸 추천 드려요.”
“??”
“인터넷 못 봤어요? 거기 리더가 맛이 갔다는 말이 있어요. 뭐, 화산 폭발을 막기 위해서 같은 그룹원을 죽였다고 했었나?”
“···그런 식으로도 정말 없어지기는 하나 보네요?”
나도 어디까지나 ‘추측’만 했었다.
애초에 자연재해가 일어난 이유가 생산성이 떨어지는 플레이어들을 제거하기 위해서라고 했으니, 이쪽에서 그런 플레이어들을 제거한다면 자연재해가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추측이었다.
물론 추측에서 끝났다. 자연재해를 막겠다고, 어제까지 한솥밥 먹던 이를 죽일 정도로, 내 상황은 절박하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그 추측은 사실로 확인된 모양이었다.
‘제주도···’
며칠 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리더인 채호민에게 합병을 권유했었고, 합병 권유는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거절당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그가 나를 ‘적대’하려 했다는 점.
“솔직히 저도 고민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솔직히 같은 그룹원을 어떻게 죽여요?”
이제원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워낙 연예인으로서, 쌓아온 이미지가 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데···
“이제원 씨가 그런 말을 하다니, 뭔가 잘 매칭이 안 되네요.”
“뭐가 매칭이 안 된다는 거예요. 저는 남들보다 조금 예민한 성격을 가지고 있을 뿐이지, 남을 배려하는 마음은 똑같다고요. 그래서 식은 언제 올릴 거예요? 역시 서울로 올라가서? 준비만 됐으면 여기서도 상관없는데.”
“···아무튼 여기서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대화를 끝낸 나는 날개를 펼치고 가볍게 허공으로 몸을 던졌다. 뒤통수에 꽂히는 강렬한 시선이 느껴졌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하늘 높이 날아오른 나는 제주도로 향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