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화
노인은 공포에 질린 얼굴로 허겁지겁 달렸다.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위태위태하게 그의 몸이 앞으로 튀어 나갔다. 하지만 그런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의 앞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뒤를 돌아본 그는 기겁했다. 그에게 운석이 떨어지고 있었다. 하나도 아니고 물경 수십 개에 달하는 어디 드라마나 영화에서나 볼 법한 비현실적인 거대한 운석들.
그는 황급히 제일 먼저 떨어지는 운석을 피해 몸을 날렸지만, 몸을 날린 곳 역시 운석이 떨어지기는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은, 거미줄에 걸린 느낌.
‘나는 괴물이 아니다···’
노인의 중얼거림과 상반되게, 그의 몸이 변형되기 시작한다. 거대한 악어의 형상으로. 그는 운석을 단숨에 집어삼켰다. 복사의 권능. 운석을 복사해 반격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곧 그는 깨달았다. 그의 몸이 타오르고 있다는 것을. 혼돈 속성 스킬은 그가 복사할 수 있는 종류의 스킬이 아니라는 것을. 그는 결국 운석을 다시 뱉어내고 말았다.
[혼돈의 불이 당신의 생명력을 1초당 1%씩 갉아먹기 시작합니다.]
동시에 그는 깨닫고 말았다. 저 남자는 그의 생각보다, 그가 만났던 그 어떤 존재보다 강력하다는 것을. 남자가 천천히 그에게 다가왔다. 남자는 싸늘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사람 좋은 미소지만 그가 보기엔 소름 끼치는 미소나 다름없었다.
“드디어 다시 본색을 드러내셨군. 이번엔 안 놓친다.”
“진짜 아니란 말일세··· 나는 진짜로 인간이야···!”
마지막 말은 거의 절규에 가까웠다. 또다시 하늘에서 운석이 떨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 순간이었다. 변이체들이 사방에서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한 마리? 아니 수십, 수백 마리가.
변이체들이 그의 몸을 방어막처럼 둘러쌌다. 물론 별 효과는 없었다. 운석에 닿는 순간 변이체들은 말 그대로 녹아내렸으니까. 결국 노인은 운석에 그대로 얻어맞아 몸이 반파됐다.
그럼에도 아직 죽지 않은 것은, 그의 괴물 같은 생명력에 대한 방증이었다. 노인은 그대로 앞으로 콕 고꾸라지고 말았다. 남자- 이진서는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다.
‘다른 이의 능력을 따라 한다··· 뭐, 이런 건가.’
도플갱어라는 변이체는 미티어 스트라이크를 복사하려는 수작까지 부렸다. 아니, 진리의 눈, 게비샤는 미티어 스트라이크가 ‘혼돈 속성’이 아니었다면 복사에 성공했을 거라고 판단했다.
한마디로 잠재력이 무궁무진한 변이체였다. 그래, 변이체라는 게 문제였지. 그는 천천히 손을 들었다. 이미 다 죽어가는 상태, 그를 죽이는 건 그에게 어렵지 않은, 손쉬운 일이었다.
그러나··· 이진서는 손을 내려놨다.
게비샤를 통해 본 것은 그것뿐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게비샤를 통해 그의 속마음을 들여다봤고, 인간이라고 주장하던 그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진실이라는 보장도 없지만.’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미티어 스트라이크를 사용한다. 거대한 운석이 또다시 지면에 충돌하며 달려오던 변이체들을 박살 내버렸다. 그 숫자는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마치 무언가에 이끌리고 있는 것처럼.
그는 S31을 펼쳤다. 반경 수 킬로미터에 있는 변이체들이 ‘전부’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노인이 방금 전 무언가 능력을 사용했기 때문이리라. 무슨 능력이지는 알지 못했지만···
‘만약, 이 능력을 지방에서 사용한다면 어떨까?’
그는 훌륭한 ‘토템’이 돼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어느 정도 컨트롤이 가능할 때의 이야기지만, 그가 협조만 해준다면 변이체를 좀 더 수월하게 처치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문득 그는 웃고 말았다. 변이체에게 협조? 지금까지 만났던 변이체들을 떠올리면 말도 안 되는 소리였지만, 그는 어쩌면 노인에게는 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3만 기프트.’
채굴량을 생각하면 대략 8만 기프트가량이 그의 수중에 들어온다.
분명 많은 양이긴 하지만, 동시에 당장 내일만 돼도 그리 많은 양이라 할 수는 없었다. 중급 변이체를 사냥하게 되면, 또다시 기프트 수급량은 ‘폭증’하게 될 테니 말이다.
생각을 마친 그는 노인을 데려가기로 마음먹었다. 물론 평범한 방법으로 그를 데려갈 생각은 없었다. 그의 눈에 노인은 다른 플레이어들에게는 충분히 위험한 존재였으니까.
괜히 풀려나기라도 해서, 폭주하기라도 한다면 의도치 않은 인명 피해가 발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변이체가 꼼짝 못 하도록 묶을 수 있는 쇠사슬, 구매해줘.’
[확인했습니다.]
<타나토스의 쇠사슬>
종류 : 사슬(Chain)
등급 : 전설(Legendary)
옵션 : 포박된 대상의 능력치 -99%, 포박에서 벗어났을 경우 죽음의 낙인(3일 동안 모든 능력치 -66%) 효과 발동.
이진서는 노인을 쇠사슬로 칭칭 묶었다. 노인은 신음을 흘렸지만 아직 일어나지 못했다. 노인을 묶는 모양새가 영 좋지 못했지만 기어코 모두 묶은 그는 안전 가옥을 구매했다.
사람 하나 겨우 들어갈 정도의 작은 5급 안전 가옥. 그 속에 노인을 넣었다. 쇠사슬에 묶인데다, 5급 안전 가옥까지 넣었으니 그 혼자서 벗어난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마무리를 지은 그는 주변을 둘러본다. 변이체들의 시체가 점점 더 늘어나고 있었다.
‘이래서는···’
그룹원들의 전투에 개입할 생각이 없었는데, 본의 아니게 개입해버린 셈인가. 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이내 느릿하게 걸어 군용 트럭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
“괜찮습니다, 리더. 특수 변이체라니··· 오히려 안 다치셔서 다행입니다. 그러면 특수 변이체는 죽은 겁니까?”
강순철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간부인 그에게는 진실을 밝혀야 할 것 같았다. 혹여나, 나중에 그룹원들에게 퍼진다 하더라도 수습하기 편할 테니까.
“포박해서, 안전 가옥 안에 가둬놨습니다. 신경 쓰실 필요 없습니다.”
“혹시 빠져나오기라도 하면···”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럴 일 없습니다.”
어설프게 말했다가는 오히려 불안감만 가중할 뿐이라는 걸,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강순철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리더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면 그런 거겠죠.”
이내, 그는 내게 지도를 꺼내 보여줬다. 우리가 지나온 길은 푸른색 빗금이 쳐져 있었다. 원주시를 지나 내가 구출 활동을 벌이는 동안 평창시까지 넘었다고 했다.
그려져 있는 화살표대로라면···
“다음은 강릉시인가요?”
우리가 향할 다음 도시는 강릉시였다.
“안 그래도 방금 전 인터넷에 올라온 글이 있습니다. 강릉시에 생존자 그룹과 함께 숨어있는데, 도움을 달라고 말입니다.”
강릉시. 나와 인연이 아주 없는 도시는 아니었다. 워낙 데이트 코스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고. 비수기 때 펜션 예약해서, 전 여친과 바다 구경을 하러 자주 갔었다.
서울에 비하면 작고, 사람도 별로 없지만 아름다운 도시. 강릉시로 향하는 도중, 나는 군용 트럭에 탑승해 아이들과 놀아줬다. 구출한 플레이어들의 의문도 해소할 겸 해서.
“우리는 어디로 가는 겁니까?”
“강원도 지역의 변이체들을 토벌 중입니다. 토벌, 구출 작업이 끝나면 쉘터로 돌아갈 겁니다.”
“쉘터?”
“우리 말고도 사람이 더 있습니다. 대략 천삼백? 사백 명 정도.”
“세상에···”
“여러분도 이번에 이동하면 곧 그곳에서 생활하시게 될 겁니다.”
“다행이군요. 아직 신이 있어서···”
“어차피 이 군용 트럭 안에만 있으면 안전할 겁니다.”
군용 트럭은 행렬의 중앙에 배치됐다.
한마디로 변이체가 직접 군용 트럭을 파괴하려면, 우리들을 모두 뚫어야 한다는 소리. 군용 트럭의 내구도까지 생각하면 특수 변이체라도 여럿 몰려오지 않는 이상, 해치지 못할 것이다.
- 리더, 도착했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좀 이따 봅시다, 다들.”
군용 트럭의 짐칸에서 껑충 뛰어, 바닥에 착지한다. 둘러본다. 눈이 쌓여있는 새하얀 도시. 내 기억과 달리 눈이 훨씬 더 쌓여있다는 차이점이 있긴 하지만 분명 강릉시가 맞다.
도시 내에는 붉은색 점이 가득하다.
“리더는 먼저 이동하시겠습니까?”
고개를 끄덕이고는, 디아블로에 탑승했다. 본대는 도시 외곽부터 변이체들을 처치하고, 나는 인터넷에 언급된 주소를 먼저 찾아가 볼 생각이었다. 디아블로가 빠르게 달린다.
소리를 들은 변이체들이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냈지만, 나를 향해 몸을 던졌지만, 죄다 에코의 기계 방벽에 맞아 튕겨져 나가고 말았고, 나는 순조롭게 H 펜션에 도착할 수 있었다.
‘H 펜션···’
그리고 나는 마침내, 그 앞에서 창을 들고 있는 거구의 흑인 남자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나를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흑인 남자의 입이 열린다. 놀랍게도 익숙한 한국어였다.
“당신은 플레이어?”
“그렇습니다.”
“우리 말고 다른 플레이어가 있을 줄은 몰랐는데.”
분명 구조 요청을 받고 왔는데, 그의 반응은 마치 이쪽의 존재를 알지 못하는 듯 보였다. 나는 진리의 눈, 게비샤를 사용했다. 안에 추가적으로 플레이어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만약 이 거구의 흑인 남자가 악인이고, 그가 플레이어들을 강제로 구금하고 있는 거라면···의 상상을 잠깐 했는데 그런 건 아니었다. 남자의 속마음을 읽어 내린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곧 아버지가 자신을 구원할 거라고?’
“무슨 일로 왔는지, 목적을 밝히지 그래.”
“그건 당신의 그룹원들에게 물어보는 게 어떨까요?”
“그룹원들?”
“내 이름은 이진서, 서울에 있는 쉘터의 리더입니다. 변이체 토벌 겸 플레이어 구출을 목적으로 강원도에 들어왔고··· 플레이어가 있다는 말을 전해 듣고, 이곳에 왔습니다.”
“···나는 제이드다. 누구에게 전해 들었단 말이지? 우리 그룹은 갈 곳이 있다.”
그 ‘갈 곳’이라는 게 그의 아버지와 연관된 일인가. 어쨌거나 상황을 정리해보면, 눈앞의 제이드라는 흑인 남자는 그룹원들과 모종의 갈등(?)이 생긴 모양이었다.
그와 대치하고 있는데 펜션에서 플레이어들이 내려왔다.
“저희를 구출하러 오신다는 그분이십니까?”
“예.”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이드가 인상을 찡그렸다.
“너희들···”
“미안하게 됐어, 제이드. 우리도 너에게 말할 생각이었는데··· 아무래도 불확실한 네 아버지를 따라가기보다는, 당장 눈앞에 내려온 동아줄을 잡는 편이 나을 것 같아서 말이야.”
“당장 내일이면 빌어먹을 하급 변이체들이 중급 변이체로 변하잖아. 그것만 아니었어도, 조금만 더 기다려보겠는데···”
결국 제이드는 부르르 몸을 떨더니, 한마디를 내뱉고 말았다.
“배신자들 같으니.”
“우리도 진짜 이렇게 할 생각은 없었다고.”
“······”
자신의 그룹원들, 정확히 말하면 한때 그룹원들이었던 이들을 노려보던 그는 창을 거칠게 바닥에 내려놨다. 나는 그를 향해 담담하게 물었다.
“제이드 씨는 어쩔 겁니까?”
“뭘 어쩌긴 어째?”
“저를, 저희를 따라오셔도 좋습니다. 저희는 서울에 위치한 쉘터로···”
“미안하지만 나는 선약이 있어서 말이야. 거절하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본인이 싫다는데, 이쪽이 강제할 이유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