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아무리 강화 유리라 하더라도, 버틸 수 있는 무게엔 한계가 존재한다. 저 많은 숫자의 좀비, 아니 변이체들이 안으로 들어오려 한다면, 쉽게 돌파당하고 말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황급히 계단으로 향했다. 2층으로 올라가던 중 변이체가 굴러떨어졌다. 계단을 데굴데굴 구르던 녀석은 나를 발견하자마자 소리를 질렀다.
귀가 먹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날카로운 소리였다.
호박이, 아니 변이체가 넝쿨째로 굴러 들어왔다. 허우적거리는 녀석을 헬멧으로 내리친다. 증가된 근력 덕분인지, 방금 전보다 수월하게 녀석의 머리통을 으깨버릴 수 있었다.
[0.135 기프트를 획득했습니다.]
헬멧에 묻은 피를 탁탁 털어내며 나는 위층을 바라본다. 변이체가 굴러떨어진 것이 단순한 우연일까? 그보다는 누가 밀어서 떨어졌다는 쪽이 더 그럴듯하다.
생각은 나중에 하기로 하고 2층에 올라온 나는 [2층]이라고 포스트잇으로 붙여진 금속 문의 손잡이를 쥐고, 열었다. 딸깍. 잠겨있다. 이번에는 문을 두드려봤다. 똑똑.
‘아무도 없나?’
지금이라도 3층으로 올라가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자물쇠가 열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교복을 입고 있는 여고생이 불안한, 경계 어린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기야, 그런 표정을 짓는 것도 당연하다 생각했지만 바깥에서 설명하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나는 문을 열어젖히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쨍그랑.
유리 깨지는 소리를 들으며, 그대로 문을 닫았다.
“······”
어색한 침묵이 이어진다. 나는 시선을 돌리며, 주변을 둘러본다. 복도에는 변이체의 시체가 늘어져 있었다. 머리가 박살 나 있는 걸 보면, 아마 여고생이 처치한 것 같았다.
“저거 학생이 한 건가요?”
내가 먼저 말문을 열었고, 여고생이 고개를 끄덕인다. 아직도 쇠 파이프를 굳게 쥐고 있는 걸 보면, 나에 대한 경계를 거두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있는지는 왜 물어봐요?”
예민한 말투로 묻는 그녀.
“아니, 혹시 변이체로 변한 건 아닐까 싶어서요.”
“복도에 있던 놈은 제가 처리했고··· 다들 방에 있을 거예요.”
만약 그들이 아직 멀쩡한 사람이라면 상황 파악을 위해서라도 밖으로 나와 봤어야 옳다. 그렇지 않다는 말은 그들 역시 변이체로 변했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물론 저 금속 문 안에 갇혀있는 이상, 자력으로 빠져나올 확률은 없겠지만.
이내, 내 눈길은 복도의 벽면에 걸려있는, 플라스틱 유리 안의 소방용 도끼로 향한다.
‘보유한 기프트 전부 다 근력으로 전환시켜 줘.’
[0.135개의 기프트를 0.135의 근력으로 전환합니다.]
힘이 한층 더 강해지는 것을 느낀다. 헬멧을 단단히 쥔 나는 플라스틱 유리에 가까이 다가가, 힘껏 휘둘렀다. 콰직. 대번에 금이 갔고, 다시 한번 휘두르자, 그대로 박살 나버린다.
유리 조각들을 털어내며 나는 소방용 도끼를 손에 쥐었다. 여고생이 흠칫 놀라며 뒤로 물러난다.
“안에 있는 변이체들을 처치하는 편이 나을 거 같아서요.”
기프트가 생존과 직결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안에 있는 변이체를 잡아, 기프트를 얻을 생각이었다.
“방 안에 들어가 있어도 괜찮아요.”
“그래도 이웃인데··· 최후는 직접 보는 편이 나을 거 같아서요.”
특이하긴 하네.
이내, 방에 다가간 나는 소방용 도끼를 들고는 자물쇠를 힘껏 내리쳤다. 쾅! 강력한 충격을 주자 도어락이 열린다. 문을 열어젖히자 변이체가 기다렸다는 듯 내게 손톱을 뻗어왔다.
하지만 발로 녀석의 복부를 걷어차자, 녀석의 몸이 앞으로 굽어진다.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소방용 도끼로 머리를 힘껏 내리쳤다. 장작을 패듯 머리가 두 쪽으로 박살 나버린다.
핏물과 살점이 복도 곳곳을 장식했다.
여고생을 바라보니, 그녀는 질색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녀는 저 변이체에 자신을 대입했을지도 모르는 노릇이다. 그러게 방으로 들어가라니까···
[0.135 기프트를 획득했습니다.]
‘아직 남은 방은 세 개.’
나는 하나하나 도어락을 열어가면서 문을 열고, 변이체들을 처치해나갔다. 일련의 행위가 반복되면 반복될수록, 점차 몸이 익숙해진다는 걸 느꼈다.
[0.135 기프트를 획득했습니다.]
[0.135 기프트를 획득했습니다.]
[0.135 기프트를 획득했습니다.]
[현재 사용 가능한 기프트는 0.54개입니다.]
변이체 네 마리를 처치하며 내가 보유한 기프트는 0.54가 됐다.
이번에는 바로 근력에 투자하는 대신 모아두기로 했다. 적재적소에, 필요한 능력치에 투자할 생각이었다. 아니면, 스킬이라는 것을 구매해도 되고.
즉각적으로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메시지가 떠오른다.
[보유한 기프트 수량을 확인합니다.]
[VVIP 상점을 해금합니다.]
[해금 조건 : 1,000,000 기프트 이상 보유]
[‘나도 VVIP 상점 이용자’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나도 VVIP 상점 이용자>
등급 : 유일(Unique)
조건 : VVIP 상점 개방
보상 : 기프트 채굴량 +25%, 상점 할인 10%
‘유일 등급 업적.’
앞서 얻은 업적들과 마찬가지로, 본래라면 얻기 힘든 업적임이 틀림없다. 메시지에 의하면 VVIP 상점 해금에 필요한 기프트 개수는 백만 개였으므로.
말이 백만 개지, 변이체 하나가 주는 기프트가 고작 0.135개다. 그와 같은 변이체를 칠백만 마리는 잡아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칠백만 마리?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아득한 숫자.
하지만 한편으로, 나는 분노를 느꼈다.
‘왜 다 스테이킹해서.’
한 일억 개, 아니 천만 개만 빼놨더라도, 이 고생을 할 일도 없었을 텐데.
‘이 손가락이 문제지.’
4년 전에는 코인을 매수했고, 2년 전에는 코인을 스테이킹한··· 이쯤 되면 저주받은 손가락이 아닌지 의문이다.
[VVIP 상점에서는 스킬뿐만 아니라 모든 종류의 아이템을 취급하고 있습니다.]
‘아이템이라··· 0.54 기프트로도 구매할 수 있는 스킬이 있나?’
[일반 등급의 스킬 중 구매할 수 있는 스킬은 세 개 있습니다.]
곧 하얀색 글씨로 된 스킬 목록들이 떠오른다.
[파이어 볼트(N) - 0.5 기프트]
[스프린트(N) - 0.5 기프트]
[근접 무기 강화(N) - 0.5 기프트]
‘생각보다 얼마 안 하네?’
변이체 네 마리 잡을 때마다 스킬을 하나씩 습득할 수 있는 거 아닌가. 그렇다면 무한으로 스킬을 습득하는 것도 가능할 터였다. 그런 내 생각을 바로잡듯, 메시지가 떠올랐다.
[스킬 보유 제한 0/5]
‘다섯 개가 한계라는 건가.’
[기프트로 추가 해금도 가능합니다.]
해금에 필요한 기프트 개수를 물어볼까 생각했지만, 금세 관뒀다. 어차피 지금 당장은 한 개밖에 습득하지 못한다. 나는 스킬들의 설명을 읽어나갔다.
<파이어 볼트>
종류 : 액티브(Active)
등급 : 일반(Normal)
설명 : 불로 된 화살을 적에게 날린다. 유효 거리와 데미지는 마력과 비례한다.
<스프린트>
종류 : 패시브(Passive)
등급 : 일반(Normal)
설명 : 기본 달리기가 15% 빨라진다.
<근접 무기 강화>
종류 : 패시브(Passive)
등급 : 일반(Normal)
설명 : 근접 무기의 데미지가 10% 상승한다.
뚫어져라 쳐다보던 나는 이내, 파이어 볼트로 선택했다.
스프린트와 근접 무기 강화도 나쁘진 않아 보였지만, 셋 중 유일한 액티브 스킬인데다, 특히 원거리 스킬이라는 게 마음에 들었다.
굳이 바깥에 나가는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도, 창문을 통해 변이체들을 처치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0.45 기프트를 지불해 파이어 볼트(N)를 습득했습니다.]
파이어 볼트를 사용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머릿속으로 사용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순간, 손바닥 위에 불화살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지켜보던 여고생이 탄성을 내뱉었다.
곧, 그녀가 내게 물어온다.
“어, 어떻게 하신 거예요? 마법사?”
가볍게 손을 쥐자, 불화살은 흩어 없어진다. 하나도 안 뜨겁다.
‘신기하네.’
“기프트로 상점에서 구매한 스킬이에요.”
“기프트요?”
문득 우스워졌다. 모르는 사람, 그것도 여고생 앞에서 내가 물린 코인 이름을 당당하게 말하게 되는 날이 올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으니까.
“네, 저기···”
“진혜연이에요. 편하게 말하셔도 돼요.”
그녀의 경계심은 많이 누그러진 모양이었다.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그럴게. 나는 이진서. 보다시피···”
산산조각 난 헬멧을 가리키며 말했다.
“배달부. 배달하다가 갑자기 정신을 잃었고, 일어나보니···”
뒤 내용을 말하진 않았지만,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의 일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우리 둘 다 알고 있는 것이었으니까.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요? 외계인의 습격? 인체 실험?”
지구가 코인 채굴장으로 테라포밍됐다고, 그리고 우리는 코인 채굴기가 된 거 같다고. 말하려 했지만 관뒀다. 여고생인 그녀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고.
‘터무니없는 소리지.’
“한 가지 확실한 건, 우리가 가만히 있으면 죽는다는 거야.”
“저것들은, 이 안까지 들어오진 못하잖아요.”
틀린 말은 아니다.
변이체들은 겁만 먹지 않는다면 사실 어렵지 않게 상대가 가능한 존재들이었다. 공동 현관의 금속 문을 녀석들의 허우적거리는 몸놀림으로 뚫어내려면 한세월은 걸릴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영원히 생활할 수는 없다. 곧 전기가 끊어질 것이고, 식량, 식수는? 게다가 저것들 ‘뿐’이라는 보장이 없다. 저것들의 명칭은 최하급 변이체다.
최하급이라는 소리는? 하급, 중급 변이체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소리다. 아니, 있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녀석들의 진화 조건이 있었으니까.
‘진화 조건이 플레이어 1명 살해겠지.’
즉, 우리와 같은 플레이어를 죽이면 녀석들 역시 강해진다. 그리고 그런 개체가 우리에게 나타나지 말라는 보장은 없었다.
“결국 우리가 살기 위해서는 변이체들을 처치해야 한다.”
그녀에게 결론을 털어놓자, 그녀의 얼굴이 어두워진다. 그러나 선택의 문제는 아니었다. 하지 않으면 죽는다.
“그, 제가 가진 기프트로 뭘 하는 게 좋을까요?”
“기프트 얼마나 있는데?”
스킬 구매는 불가능하더라도, 생존에 필요한 능력치를 올릴 수는 있을 것이다.
“0.001 기프트요.”
“0.001?”
혹시 내가 잘못 들은 건가 해서 되물었더니, 그녀가 고개를 끄덕인다.
“아까 변이체 네가 잡았다 하지 않았어?”
“네.”
의구심을 느끼며 그녀에게 묻는다.
“상태창, 내가 볼 수 있을까?”
[타인의 허락을 맡는다면 가능합니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의 상태창이 떠오른다. 그리고··· 나는 곧 그녀와 나의 차이점을 깨달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