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코인 채굴-1화 (1/236)

1화

4년 전, 지인의 추천을 받아 기프트(Gift)라는 이름의 코인을 구매했다. 주택 담보 대출까지 받으며 투자한, 말 그대로 영혼을 끌어모은 투자였다.

그리고··· 거하게 망했다.

-30% 때 버텼더니 -50%가 됐고, -50% 때 추매했더니 -90%가 됐다. 그리고 -90% 때 사채를 써서 추매했더니 이번에는 아예 상장 폐지가 돼버렸다.

유일하게 거래되던 거래소가 사라졌으니, 코인의 가치는 0에 수렴했다.

언젠가 재상장하고 떡상할 거라는 행복회로도 굴려봤지만, 소통하던 트위터마저 삭제되며 현실을 깨닫게 됐다.

그게 벌써 2년 전이다. 단 한 번의 실수로 인해 생긴 빚을 갚기 위해 낮에는 회사에서, 밤에는 배달부로 죽어라 일해야만 했다.

엘리베이터도 없는 4층 주택을 힘겹게 올라 벨을 누르자, 문을 열고 성질 사납게 생긴 중년 아줌마가 나온다.

“저기요, 아저씨, 제가 벨 누르지 말라고 했잖아요? 우리 뽀삐 깨게.”

슬쩍 여자의 너머를 바라보니 머리털만 분홍색으로 물들인, 멍청하게 생긴 강아지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고 있다.

“다음부터 주의해달라고 말한 것만 세 번은 넘은 것 같은데··· 쯧.”

대놓고 혀를 차며, 나를 탐탁지 않은 눈빛으로 쳐다보는 중년 아줌마.

이 집 배달 온 건 오늘이 처음이라고 말할까 잠시 고민하던 나는 고개 숙여 사과하기로 했다.

“···죄송합니다.”

어차피 따져봐야 이쪽만 손해라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뚜벅뚜벅, 계단 아래로 내려온 나는 오토바이에 기댄 채 주변을 살폈다. 경비원이 없다는 걸 확인하자, 입에 담배를 물었다. 라이터 불을 붙이자, 담배 끝이 타들어 간다.

하늘을 바라봤다. 별이 오늘따라 화려하게 빛나고 있었다.

‘이렇게 살기도 지긋지긋하네.’

4년 전의 손가락 실수 한 번으로, 언제까지 이런 일상을 반복해야 하는 걸까.

‘물론 한 번은 아니긴 하지만.’

분명 손절 칠 순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고집을 부린 건 나였고, 대출을 더 받은 것도 나였으며, 그 결과를 감수해야 하는 것 역시 당연히 나였다.

‘차라리 콱 한강에 빠져버릴까?’

정말 빠질 것도 아니면서, 괜스레 그런 나쁜 생각을 한번 해본다. 담배를 바닥에 떨구고, 발로 대충 비빈 후 헬멧을 쓰려던 찰나, 진동이 울렸다.

평소와 같은 배달 앱 알림이 아닌,

[기프트 코인이 지구(Earth)에서 채굴될 예정입니다.]

[채굴 예정 시간은 2023-01-17 0시입니다.]

상장 폐지한 코인의 채굴 예정 알림이었다. 그래, 상장 알림도 아니고 채굴 알림 말이다. 어이가 없어서 실소가 터져 나왔다.

‘이런 씹 스캠이···’

4년 동안 존버했던 기다림의 보답이라는 건, 너무나도 같잖아 보였다.

‘그나저나 17일 0시면··· 앞으로 10분 남았네?’

그래서, 이건 호재냐, 악재냐. 어차피 더 내릴 가격도 없으니, 전자라고 봐야 하나?

그런 생각들을 이어나가며 담배를 입에 하나 더 물었다.

“아저씨! 거기서 담배 피우지 말라고요!”

뜨끔, 위를 올려보니 중년 아줌마가 나를 향해 삿대질을 하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고개를 숙이고, 담배를 슬그머니 담뱃갑에 다시 집어넣은 나는 건물 외벽에 몸을 기댔다. 이대로 10분만 더 기다리기로 했다. 10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마침내,

[기프트 코인의 채굴이 시작됩니다.]

하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물론 그게 끝이었다. 아무것도 바뀌는 건 없었다.

‘하기야, 상장도 아니고 채굴인데 뭐가 바뀔 리가 없지.’

하지만 다음 순간,

[채굴에 적합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테라포밍 작업을 시작합니다.]

라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뭐, 테라포밍? 눈을 의심하는 순간 세상이 격변하기 시작했다. 직전까지만 해도 어둡던 하늘이 피처럼 붉게 물들었고 지면은 갈라졌으며, 건물은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마치, 머릿속으로 그려왔던 종말의 한순간 같았다.

‘피해야···’

당장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내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내 정신은 흐려졌고, 그대로 기절하고 말았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메시지가 떠올랐다.

[테라포밍이 완료됐습니다.]

무언가 잘못 본 건가 하고 눈을 끔뻑거렸지만 메시지는 사라지지 않았다. 아니, 시작에 불과했다.

[플레이어(Player)로 각성했습니다.]

[‘최상급 기프트 보유자’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최상급 기프트 보유자>

등급 : 신화(God)

조건 : 기프트 99,999,999개 이상 보유

보상 : 기프트 채굴량 +99%

[‘신의 사랑’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신의 사랑>

등급 : 유일(Unique)

조건 : 최초로 신화 등급의 업적 보유

보상 : 기프트 채굴량 +35%

◈플레이어 정보

이름 : 이진서

출생 : 지구

종족 : 인간

성별 : 남자

나이 : 29

칭호 : 없음

기프트 : 0(643,567,584)

채굴량 : +35%

◈능력치

[근력 1.000] [민첩 1.000]

[체력 1.000] [지력 1.000]

[마력 1.000] [행운 1.000]

◈스킬

◈업적

<최상급 기프트 보유자(G)>

<신의 사랑(U)>

‘무슨 게임도 아니고···’

RPG 게임 속에서나 볼 법한 그런 상태창이었다. 뭐가 뭔지 모르겠다. 꿈일까? 아니, 꿈이라기에는 너무나 생생하다. 긴가민가하며 몸을 일으킨다. 그리고 곧 깨달았다.

‘다리가··· 안 아프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바지를 걷었더니, 상처가 말끔히 사라져 있었다. 지난주, 배달 중 자동차와 부딪치며 생긴 자상(刺傷)이. 기쁘기보다는, 이 초자연적 현상에 소름이 돋았다.

도로 저편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낸 건 바로 다음 순간이었다.

사람?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저걸 사람이라 부를 수 있을까? 피부가 검게 변색된 채 느릿느릿하게 다가오는 그들은 사람이라기보다는 어디 영화나 소설 속에 나올 법한 좀비 같았다.

내 생각에 확신을 더해주듯 또다시 메시지가 떠올랐다.

[최하급 변이체]

- 플레이어로 각성하지 못하고 변이된 변이체.

- 변이되기 전보다 모든 신체 능력이 저하됐지만, 미약한 신경 독을 보유하고 있어, 손톱에 찔리거나 물릴 시에 독에 걸릴 수 있다.

- 진화 조건 : 플레이어(Player) 1명 살해 시, 하급 변이체로 진화.

- 보유 기프트 : 0.1

이번에는 어디 게임 가이드북에나 나올 법한 몬스터 정보 같다. 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인지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명확했다. 저들이 내게 적대적이라는 것.

‘이 자리를 떠야 한다.’

전투를 벌이는 건, 어디 게임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황급히 오토바이에 올라타, 시동을 걸었다. 하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오토바이를 뒤로 한 채, 변이체들을 피해 달아나기 시작했다. 가로등은 꺼져있고, 거리 곳곳은 을씨년스러운 핏자국이 가득했다. 도주는 오래가지 못했다.

얼마 가지 못해 또 다른 변이체 무리와 마주쳤기 때문이다.

‘이대로 가다간 포위되게 생겼어.’

하는 수 없이 나는 옆에 있던 주택의 유리문을 재빨리 열고 들어가, 잠금을 걸었다. 그리고 안쪽으로 고개를 돌리는데, 주택에서 기어 나오던 변이체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이런 씨···”

다행히 변이체가 한 마리라는 것. 그리고 지금 밖에 나간다 하더라도, 다른 주택으로 도망치기 힘들 정도로 변이체 무리가 근접했다는 것. 내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주변을 둘러봤지만 무기라곤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이내, 내 손에 헬멧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대가리 깨부수기엔 이걸로도 충분할 거 같긴 하다.

나는 헬멧의 끈을 팔목에 꽁꽁 감았다. 그리고 다가오는 변이체를 향해 자세를 낮추고 힘껏 주먹을 휘둘렀다.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머리를 맞은 변이체가 뒤로 넘어간다.

물론 녀석은 여전히 살아있었다. 녀석의 머리를 발로 걷어차고, 헬멧으로 내려치기 시작했다. 한 번, 두 번, 세 번··· 녀석의 머리가 완전히 박살 날 때까지.

머리가 갓 삶은 감자처럼 으깨지면서, 안에 있는 뇌수가 줄줄 흘러나온다. 이 상태가 됐는데도, 살아있지는 못할 것이다. 나는 한숨을 흘리며, 피가 잔뜩 묻은 헬멧을 내려놨다.

[0.135 기프트를 획득했습니다.]

[기프트를 통해서 능력치를 강화하거나 스킬을 구매할 수 있습니다.]

획득한 기프트로 능력치를 강화할 수 있다?

‘능력치 강화.’

[바꿀 수량을 입력해주시기 바랍니다.]

‘얼마나 가지고 있지.’

마치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한 메시지가 출력된다.

[현재 플레이어 이진서가 보유 중이신 기프트는 643,567,584개입니다.]

변이체를 처치하고 얻은 기프트가 고작 0.135개인데, 보유하고 있는 기프트는 6억 4천만 개가 넘는단다. 그러고 보니 내가 가진 기프트 코인의 개수와 동일했다.

‘단순한 우연은··· 아니겠지.’

기프트 코인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 그것만은 분명했다. 애초에 지구에서 기프트 코인 채굴을 시작한다는 메시지와 함께, 이 모든 일이 시작되지 않았던가.

하지만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는지는 이해할 수 없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지금 대답하는 너는 누구고?’

그러나 대답은 들려오지 않는다. 욕설을 내뱉어봤지만,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는 수 없이, 본론을 꺼냈다.

‘1억 개를 사용해서 능력치를 강화시켜 줘.’

[모든 능력치를 최대치로 강화하는 데는 기프트 3,359,214개가 소모됩니다.]

고작?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335만 9천 개? 많아 보이지만, 많은 양이 아니다. 아니, 많은 양일지도 모르지만 6억 4천만 개를 보유한 입장에서는 말 그대로 한 줌에 불과했다.

‘그러면 그것만 바꿀 수 있나?’

[불가능합니다. 현재 이진서 플레이어가 보유한 643,567,584개의 기프트는 스테이킹 상태입니다.]

스테이킹.

적금처럼 일정 기간 코인을 맡기고, 이자를 받을 수 있는 시스템.

기프트 스테이킹 이자율은 45%로 상당히 높은 편이었다. 마지막으로 끝까지 존버한다는 생각으로, 4년짜리 스테이킹을 맡겼었다. 그 결과 개수가 많이 늘긴 했지만, 가치는 0원이었지.

‘스테이킹 해제시켜 줘.’

[만기일이 될 때까지, 스테이킹 해제는 불가능합니다.]

만기일은 앞으로 대략 2년 정도 남았다. 한마디로 그 전까지, 저 6억 4천만 개의 기프트는 사용이 불가능하다는 것. 문득 스테이킹을 한 것이 후회했다.

‘그러면 내가 사용 가능한 기프트는?’

[현재 이진서 플레이어가 사용할 수 있는 기프트는 방금 변이체를 처치하고 얻은 0.135개의 기프트뿐입니다.]

‘그거라도 전부 능력치를 강화시켜 줘.’

[확인했습니다. 0.135개의 기프트를 0.135의 잔여 능력치로 전환합니다.]

무슨 능력치를 올릴까 고민하던 나는 근력을 올리기로 했다. 어차피 당장 나갈 일이 없는 마당에, 민첩은 별로 의미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근력이 0.135 상승했습니다.]

조금 더 힘이 세진 듯한 기분이 든다. 반대로 말하면, 이것 이외에는 별다른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투둑, 투둑. 유리문 때리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변이체들이 유리문에 몰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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