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7화
#267
“살려줘서 고맙네.”
나를 향해 감사의 인사를 건네오는 NPC.
그를 유심히 바라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NPC 지에르 Lv. 999]
일단 첫 번째로 눈앞의 NPC의 레벨이다.
999레벨이라면 어지간한 몬스터는 쉽사리 사냥하고도 남을 존재다.
하물며 눈앞의 NPC의 몸을 본다면 말이다.
2미터는 훌쩍 넘어 보이는 덩치에 상처투성이지만 우락부락한 근육질의 몸을 가진 남자다.
거기에 사나운 인상은 밤길에 만난다면 오줌을 지릴지도 모를 정도로 험악했다.
그런 그가 볼품없이 구석에 짱박혀 전신이 묶여 있었으니 이해가 안 되었다.
하지만 나는 그보다 더 신경 쓰이는 것이 있었다.
‘낯이 익단 말이지.’
어디선가 본듯한 얼굴이라고 해야 할지 느낌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내 머릿속으로 스쳐 가는 존재가 있었다.
“NPC 비에르?”
내 말에 오히려 더욱 화들짝 놀라며 반응하는 것은 다름 아닌 지에르였다.
“위대한 대족장인 비에르 족장을 말씀하시는 건가?”
나를 덥석 붙잡더니 갑자기 간절한 눈빛을 넘어서 그렁그렁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하는 지에르였다.
그리곤 갑자기 울먹이는 목소리로 나에게 말을 이었다.
“우리 부족을 아는 것 같으니 내 말 하겠네.”
동의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자신의 부족에 대한 사연을 이야기하는 그였다.
* * *
비스트 부족.
비스트 마스터의 힘을 계승하며 천 년 전 위대한 업적은 세운 비스트 마스터 비에르의 출신 부족이다.
그 부족의 후예이자 지금 비스트 부족의 족장이 바로 지에르라고 한다.
천 년 전만 해도 도시 하나 급의 부족이었지만, 세월이 흘러가면서 점차 그들의 세력은 줄어만 갔다.
그 이유가 있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비스트 마스터의 힘이 제대로 계승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가장 강력한 힘을 가졌던 비에르였지만, 그것을 남에게 가르치는 능력은 없었다.
열혈, 근성, 노력만을 강조하며 가르쳤던 그였고, 결국 죽을 때까지 제대로 된 비스트 마스터의 힘을 계승한 이가 없었다.
그래도 간혹 한두 명씩 스스로 재능을 깨우쳐 강력한 힘을 가지고 부족을 지키는 수호자가 되었으나 세월이 흘러가며 자연스럽게 이탈하는 부족민은 물론이고, 몬스터와 다른 세력으로 인해 점차 힘이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마왕이 이 세상에 강림했을 때 하필이면 비스트 마스터의 유물이라 할 수 있는 물건마저도 사라졌고, 결국 이곳 아이언 엔트 무리가 있는 뒷산에 조용히 부락을 꾸릴 수밖에 없는 상황까지 찾아오게 된 것이라고 한다.
“혹여…… 비에고 선조에 관련된 것이라면 사소한 것 하나라도 알려주게나. 그것이 우리 부족의 희망이니 말이네.”
그의 말에 나는 하나의 물건이 떠올랐다.
“혹여 이것을 아십니까?”
인벤토리 창에서 꺼낸 비스트 부족의 패.
그것을 보자 갑자기 내 손을 붙잡고 울기 시작하는 지에르였다.
“흑흑. 다시 이것을 보게 될 줄이야. 이것이 우리 부족의 유물이자 우리 부족을 상징하는 패이네.”
그와 동시에 눈앞에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퀘스트가 생성되었습니다.
[비스트 부족에게 유물을 건네주어라.]
난이도: 쉬움.
제한: 비에르를 만나 패를 받은 자.
내용: 비스트 부족의 유물이자 상징인 패를 건네주어 비스트 부족을 구원하자.
보상: 새로운 시스템.
특이 사항: 강제 퀘스트입니다. 거절할 수 없습니다.
오랜만에 찾아온 강제 퀘스트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손에 쥐고 있던 것을 지에르에게 넘겨주며 말했다.
“우연한 기회에 비에르 님의 의지를 조금 이어받았습니다. 그때 얻은 물건이니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갔으면 합니다.”
그 말에 감동 받은 듯한 지에르였다.
그리곤 그것을 소중히 품에 챙기고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나에게 말했다.
“우리 부족이 있는 곳으로 가세.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있네.”
“그러시죠.”
그렇게 나는 지에르를 따라 이동했다.
* * *
그 시각.
툴비아 후작령엔 마신교가 부리는 몬스터와 세드릭 제국의 NPC가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마치 인간과 몬스터의 전쟁 영화를 실제로 눈앞에 보는 듯한 모습이었고, 유저들은 한발 물러난 상황에서 그것을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다.
“X친 몬스터가 왜 이렇게 강해?”
“오크 가죽이 더 질겨졌는데? 눈을 왜 저렇게 빨개?”
“와…… 이게 진짜 전쟁이야? 미쳤네…….”
“게임 속이고 성벽 위에서 보는 것만 해도 무서운데 실제로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그냥 죽어야지. 이걸 어떻게 버텨?”
“와…… 너무 리얼해서 미치겠네. 이건 좀 너무하지 않나?”
“아니! 차라리 마신교의 기사랑 싸우라면 싸우지. 몬스터는 좀…….”
“그러니까. 이건 좀 너무하지 않아?”
너나 할 것 없이 감탄사를 비롯해 두려움에 떠는 듯한 말을 꺼내고 있었다.
열심히 떠들고 있는 입이지만 그들의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방관만 할 뿐 이 싸움에 끼어들고 싶어 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듯 말이다.
그 이유가 있었다.
공적 포인트.
몬스터를 잡아봐야 공적 포인트가 1포인가 들어오는 것을 알았기에 굳이 힘을 빼려고 하지 않는 것이었다.
차라리 몬스터 무리가 물러나고 난 다음에 마신교의 기사나 신관 그리고 플레이어와 싸우는 것이 포인트를 더 많이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근데…… 언제 다 잡냐?”
“끝이 없네. 끝이 없어…….”
“이게 몬스터 웨이브가 아니고 뭐겠어.”
문제는 그 몬스터의 숫자가 엄청나다는 것이다.
끝도 없이 밀려드는 몬스터 무리였고, 지금도 더 멀리서 흙먼지를 피워 올리며 이곳을 향하고 있는 몬스터였다.
그리고 그 중간에 자리 잡은 마신교와 플레이어들이 진지를 구축해 편하게 쉬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세드릭 제국의 유저들은 굳이 힘을 빼지 않고 그저 기다릴 뿐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막아!”
“여기 뚫렸으니 지원 요망!”
“죽어 이 새끼들아!”
“그래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 이거야!”
“안돼!!!!!”
성벽 위에서 처절하게 싸우고 있는 유저가 있다.
그들은 몬스터가 몰려오자 처음부터 자리 잡고 사냥, 아니 성벽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이들이었다.
그들의 목적은 여러 가지였다.
“지금보다 레벨 업을 할 수 있는 기회는 없다고!”
“맞아! 힘들어도 이정도 규모의 몬스터를 어디 가서 본다고!”
“어차피 모 아니면 도라고! 그러니 싸워!”
“혹시 알아? 전투가 끝나고 뭐라도 떨어질지?”
“이번 기회에 NPC 호감도 작업을 해보자고!”
“그래 유저 중에서 귀족도 나왔잖아? 시저를 보라고!”
“우리도 그렇게 될 수 있다고!”
목적은 두 가지로 나뉘었다.
하나는 몬스터를 사냥해 경험치를 먹는 것이 목적이었다.
지금 눈앞에는 몬스터 웨이브라 할 수 있을 수준의 엄청난 양의 몬스터 무리가 눈앞에 있다.
이 정도 규모의 몬스터는 대규모 이벤트가 아니고서는 절대 볼 수 없는 양이고, 일반 사냥터에서는 어림도 없는 수준이었다.
당연히 욕심이 날 수밖에 없는 것이 정상이다.
비록 한 마리당 공적 포인트가 1포인트밖에 얻을 수 없지만,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고 쏟아져 나오는 몬스터를 사냥하다 보니 그 양은 무시 못 할 수준이었다.
또 하나는 NPC와 친분을 쌓을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하는 자들이었다.
함께 등을 맞대고 성벽을 넘어오려는 몬스터와 싸운다? 그것은 이곳 전장에서 함께 하는 전우나 마찬가지였다.
서로의 목숨을 구해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함께 힘을 합쳐 몬스터를 쓰러뜨리거나 필요한 물품을 빠르게 가져와 세팅하는 등의 행동은 당연히 NPC의 호감을 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들의 노력은 마침내 돌아왔다.
“자네. 이름이 무엇인가?”
“찰스입니다.”
“플레이어 찰스. 이름을 기억해두지.”
“고맙네. 덕분에 목숨을 구했어.”
“함께한 전우가 아니겠습니까? 당연한 일입니다.”
“목숨의 은혜는 쉽지 않은 법. 플레이어 카이데. 나중에 내 한번 집으로 초대하지.”
“영광입니다.”
실제로 몇몇 기사 NPC가 유저의 이름을 기억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 모습을 본 다른 유저는 조금씩 초조해질 수밖에 없었다.
“지금이라도 끼어들어야 하나?”
“아냐, 차라리 마신교를 상대하는 게 좋다니까.”
“아, 근데 NPC랑 친해지는 기회는 쉽지 않은데…….”
“아, 씁. 고민이다.”
“에이씨. 지금이라도 합류한다.”
“야, 같이 가!”
결국 고민의 끝에 지금이라도 합류하려고 뛰어드는 몇몇 유저가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얼마 가지 못해 멈출 수밖에 없었다.
“꺼져라! 동선이 꼬인다!”
이미 자리를 잡은 유저와 NPC로 인해 더 이상 끼어들 틈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성문을 열어 몬스터를 상대하러 뛰어나갈 수도 없는 상황이니 지금이라도 끼어들려는 유저는 애간장이 타들어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해 질 무렵까지 미친 듯이 몬스터와 싸우는 세드릭 제국의 NPC와 몇몇 유저.
저 멀리서 들려오는 뿔 나팔 소리가 들려왔다.
뿌우우우!
그 나팔 소리에 방금까지 성벽을 향해 무작정 달려들던 몬스터의 움직임이 툭하고 멈췄다.
그리곤 그대로 등을 돌려서 마신교가 꾸린 진형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는 몬스터였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성벽 위의 NPC와 유저의 입에서 비명과 같은 소리가 흘러나왔다.
“와아아아!”
“우리가 이겼다!”
“성벽을 지켰다!”
“살아남았어! 살아남았다고!”
그 소리는 첫날의 전투가 끝났다는 것을 알리는 함성소리였다.
서로 부둥켜안고 살아남음에 감사하는 이들을 비롯해 승리라는 달콤한 단어에 취해 소리치는 그들이었다.
대기 중이던 유저는 입맛을 다시며 다음 기회를 노려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뒤로 물러나려는 찰나였다.
-첫날 전투의 기여도를 측정합니다.
-기여도에 따라 공적 포인트를 획득합니다.
-첫날 전투에 참가한 모든 유저에게 24,230 공적 포인트를 부여합니다.
그와 동시에 성벽 위에 있던 유저의 입에서 또 한 번 비명이 흘러나왔다.
그들로선 생각도 못 한 공적 포인트였다.
거기에 사냥을 통해 얻은 포인트까지 합친다면 최소 오늘만 25,000포인트를 얻은 격이기에 말이다.
그리고 세드릭 제국의 속해 있는 유저들이 모두 알았다.
어떻게든 성벽 위에 올라가 몬스터를 상대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모두의 눈빛에 내일은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가 불타올랐다.
* * *
첫날의 기여도가 측정되고 나뉘었을 시각.
시저는 아이언 엔트가 서식하는 산의 뒤편에 도착했다.
“어서 오게. 이곳이 비스트 부족이자 우리 부족이 머무는 마을일세.”
커다란 폭포 아래 존재하는 작은 마을.
열다섯 채의 집이 오밀조밀하게 모여 있었고, 폭포 주변으로 뛰어놀고 있는 아이들과 그것을 바라보며 빨래하는 아낙들이 보였다.
그리고 한쪽에는 남자들이 모여 육체를 단련하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저마다 기르는 동물과 교감을 나누고 있었다.
그런 그들을 향해 걸어가는 지에르였다.
그리곤 그들을 향해 내가 주었던 패를 보여주며 외쳤다.
“다들 보게! 드디어 성물이 돌아왔네.”
그와 동시에 한쪽에 세워져 있는 제단을 향해 그 패를 올리더니 영롱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파아아앗!
그 빛은 이곳 마을 전부를 집어삼켰다.
근처에 있던 나도 그 빛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아…….”
따스했다.
그리고 그 따스함 속에서 느껴지는 강력한 기운은 이루 말할 수 없는 포근함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건 나만 느낀 것이 아닌지 주변에서 비슷한 소리를 내는 자들이 많았다.
언제까지 이어졌음 하는 그 따스함과 포근함이 끝나가려는 찰나였다.
-비스트 마스터 부족의 유물의 힘을 느낍니다.
-스킬 ‘서먼 스피릿’의 진정한 힘을 깨우칩니다.
-스킬 ‘서먼 스피릿’의 숙련도가 상승합니다.
-스킬 ‘서먼 스피릿’의 등급과 레벨이 상승합니다.
-스킬 ‘서먼 스피릿’이 레전더리 등급 MAX로 성장했습니다.
“헐?”
생각도 못 한 스킬이 최고 등급이자 레벨로 상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