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1화
#251
이른 아침.
평소라면 월오룰에 접속하고 사냥에 나서던, 아니면 이동이라고 해야 하는 시간.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서 있을 뿐이었다.
“쩝, 환장하겠네.”
지금 내가 환장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메인 시나리오 때문이었다.
불과 이틀 전.
나는 방송으로 메인 시나리오 관련으로 엄청난 힌트를 투척해버렸다.
그 결과 지금 월오룰은 아수라장을 넘어서 제대로 된 사냥조차도 불가능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어느 정도냐고?
일단 당장 나만 해도 이렇게 아무것도 안 하고 있을 정도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은 다름 아닌 시모어 백작의 성문 앞이었고, 나는 그곳에서 근무하는 병사들이 눈치를 보고 있음에도 그 자리에 묵묵히 있을 뿐이었다.
이렇게 된 이유는 다름 아니라 저기 조금 떨어진 곳에 모여 있는 유저들 때문이다.
“어딜 가더라도 사람이 붙는다는 거지.”
저게 가장 큰 문제다.
블러드 웜을 통과하고 다음 영지인 베르나도 남작령에 가려 했지만, 엄청난 인원이 나에게 달라붙는 탓에 뒤돌아온 것이다.
소수로 움직이는 인원은 기본이고, 한 번에 열댓 명씩 붙어 버리니 사냥터를 통과하는데 제대로 된 사냥은커녕, NPC에게 말을 거는 것조차도 힘들었다.
일거수일투족을 전부 감시당하는 기분은 물론이고, 내가 뭐만 하려면 먼저 하려고 달려드는 탓에 물건을 구입하거나 팔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오죽하면 내가 소환수 먹일 음식을 사는데도 눈치를 보며 사야 하고, 아이템을 파려는 조차도 관심받고 있었다.
“후, 환장하겠네…….”
진심으로 미칠 노릇이긴 하다.
쓸데없는 주변의 관심, 그 때문에 지금 범이의 스트레스가 장난이 아니다.
“냐아아…….”
상당히 날이 섰다가 못해 듣는 것만으로도 긴장하게 만드는 울음소리.
극에 달한 스트레스로 몸에 있는 털이 평소보다 빠지는 듯했고, 빳빳한 꼬리는 지 몸통보다 커다랗게 부풀어 있으며, 얼굴에는 심통 가득했다.
내 왼쪽 팔에 매달려 있는 범이와 다르게 오른쪽에 매달려 있는 백랑은 좀 달랐다.
“헥! 헥! 헥!”
신나게 꼬리를 흔들며 혀를 내밀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녀석.
마치 신기한 거라도 발견한 듯 한껏 흥분해 있는 모습이었고, 내가 땅에 내려다 주면 당장에라도 뛰어갈 듯 기세였다.
그런 둘만 해도 상당히 머리가 복잡한데, 더욱 복잡하게 하는 것은 다른 소환수 때문이다.
“우끼…….”
“캬락!!”
“위대한 대족장이 되기 위한 길을 막다니!”
말을 못 하는 숭이와 가직스는 뭐가 그리 불만인지 아까부터 으르렁거렸고, 그런 둘과 붙어서 쓰랄이 지팡이를 들고 당장이라도 휘두르고 싶다는 듯 땅을 쿵쿵 찍었다.
그 옆으로 로빈후드는 활시위에 화살을 걸어두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당장이라도 명령을 내리면 뛰어들 것 같은 넷.
그런 넷과 다르게 루이즈는 아무런 관심 없다는 듯 허공에 둥둥 떠 있는 상태로 졸고 있었고, 그 위로 오버로드가 가슴 위에서 자리 잡았다.
무심은 내 옆에서 천을 꺼내 스컬 대검의 날을 닦아 주었고, 그를 보조하기 위해 엔다이론이 물을 뿜어내고 있었다.
피이는…… 언제나 그렇듯 내 어깨에서 졸고 있다.
이대로 있다간 정말로 메인 시나리오에 대한 정보를 빼앗길 것 같은 상황, 벌써 이틀이나 날려 먹었으니 얼른 뭔가 조처를 해야만 했다.
“X발 모르겠다. 그냥 가자.”
그래, 이대로 시간을 날려봐야 좋아질 게 없다.
이미 알려질 대로 알려진 상황에 내가 소극적으로 나가봐야 좋을 건 하나도 없지 않은가?
일단 다음 영지인 베르나도 남작령으로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시저가 움직인다.”
“오! 드디어?”
“제발 뭐 하나만 걸려라. 제발!”
“빨리 길드에 보고를.”
“목적지는 미 확실. 하지만 방향으로 보아하니 다음 영지로 향하는 듯.”
고작 한발 움직인 거로 주변에서 유난을 떨기 시작했다.
“하아…….”
그런 그들을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듯 그대로 북쪽 성문을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블러드웜이 있는 사냥터에 도착한 순간, 문뜩 떠올랐다.
“어쩌면 다 떨어뜨릴 수 있겠는걸?”
그와 동시에 나는 가직스를 바라보았다.
“캬락?”
내 시선의 의문이 가득한 얼굴로 변한 녀석이었고, 나는 슬쩍 말했다.
“최대한 멀리. 그다음은 알지?”
“캬락! 캬락!”
내 말을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가직스 녀석.
안 그래도 저기 뒤에서 졸졸 따라오는 유저들 때문에 짜증이 났는데, 이번 기회에 날려버릴 수 있다는 것에 기뻐했다.
그리고는 순식간에 점프할 자세를 잡으려는 가직스였는데, 갑자기 무심이 끼어들었다.
“내가 던져 주지.”
“캬락?”
“그저 몸을 맡겨보게나.”
그러더니 스컬 대검을 땅바닥에 꽃아 버리곤 가직스에게 다가갔다.
처음에는 불안한 얼굴의 가직스였지만, 이내 무심의 말에 따르겠다는 듯 몸을 둥글게 웅크렸다.
그런 가직스를 번쩍 들어 올리는 무심이었다.
“그럼, 하겠네.”
그와 동시에 무심이 두 다리에 힘을 주고는 한 발 두 발 도약하더니 그대로 가직스를 저 멀리 던져버렸다.
피슈우웅!
마치 거대한 포탄이 날아가는 듯한 굉음과 엄청난 속도로 허공에 솟구치는 가직스, 까마득히 멀어지는 모습에 나는 어이가 없어서 한마디 했다.
“아니, 그래도 내 시야에 들어와야지만 한다고.”
“허허허. 나도 이렇게 멀리 갈 줄 몰랐네.”
정말로 무안하다는 듯 무심의 말투.
하지만 어느 순간 허공에서 활강하고 있는 가직스를 발견할 수 있었고, 충분히 내 시야 안에 어슬렁거리는 모습에 나는 서둘러 준비했다.
“로빈후드.”
“주군을 위하여.”
그리곤 등 뒤에 있는 화살집에 있는 화살 여러 발을 끼고는 그대로 허공을 향해 날렸다.
투두두둑.
순식간에 수십 발의 화살이 사방으로 튀었고, 그 덕분에 땅속에 숨어 있던 블러드 웜 수십 마리가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 순간 나는 외쳤다.
“모두 들어가. 그리고 자리 체인지.”
내 몸을 감싸는 빛이었고, 이내 다시 원상태로 돌아왔을 때는 내 뒤를 따라다니는 유저는 물론이고 수많은 블러드 웜의 시야에서 한참 벗어난 곳이었다.
그런 그들을 피해 가직스가 허공으로 점프해 이곳으로 천천히 활강하며 다가오고 있을 때 다시 소환수 모두를 불렀다.
“자, 그럼 이제 가보자고.”
나는 저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베르나도 남작령을 향해 걸어갔다.
* * *
베르나도 남작령.
이곳을 말하자면 거대한 숲속에 있는 영지이자 강 한가운데 만들어진 영지다.
원래 이곳 베르나도 남작령은 숲속에 마련된 전초기지였다.
이곳이 전초기지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마왕의 침공이 있기 전이자 예부터 이곳은 북쪽에서 내려오는 몬스터를 막기 위해 존재하는 곳이었다.
이곳이 뚫리는 순간 대륙 중심으로 향하는 길이 일자로 펼쳐지고, 나아가 대륙 전역으로 몬스터가 빠져나갈 수 있기 때문에 만들어진 전초기지였다.
하물며 마왕의 침공 당시 엄청난 숫자의 몬스터가 이곳을 지나갔고, 그때 당시 끝까지 처절하게 싸웠던 이곳의 기사와 병사들을 위한 추모비까지 만들어졌을 정도였으니 이곳의 위치가 얼마나 중요한지 말을 할 필요가 없었다.
지금에는 일직선으로 내려가면 수도 세크드릭이 나오기에 더욱 중요해진 곳이기도 하다.
아무튼 전초기지라는 이름에 걸맞은 베르나도 남작령.
강 위에 만들어진 성과 성벽은 보는 것만으로도 쉽게 무너뜨릴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아무래도 전초기지다 보니 이렇다 할 많은 건물이 존재하진 않았다.
남작이 머물며 업무를 진행하는 저택 하나와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기사들의 저택, 그리고 병사들이 머무는 숙소가 전부다.
여기까지는 일반 유저가 접근조차 불가능한 곳이며, 낮은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기에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는 곳이다.
일반 유저가 이용할 수 있는 건물은 기사와 병사들이 머무는 숙소 건너편이자 맞은편에 존재하는 남쪽 성문 부근이었다.
다섯 채의 여관에는 언제나 NPC 용병으로 시끌벅적했다.
두 곳의 대장간에는 매일 열기를 뿜어내었고, 하나뿐인 잡화 상점과 물약 상점은 유저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대장간보다 잡화 상점과 물약 상점으로 더 많은 유저가 몰려가는 이유는 다름 아닌 이곳 사냥터에 서식하는 몬스터의 특징 때문이다.
그 몬스터는 다름 아닌 트롤이었고, 3미터에 달하는 몸과 초록색의 피부, 그리고 한 손에 들고 있는 거대한 몽둥이를 가지고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몬스터다.
트롤이라는 존재는 상당히 성가신 몬스터다.
일단 그 첫 번째가 다름 아닌 엄청난 속도의 재생력이라고 할 수 있었는데, 머리통을 잘라내기 전까진 신체 어느 부위라도 시간만 있으면 재생할 수 있을 정도로 끈질긴 녀석이다.
단순히 신체를 재생하는데 만 뛰어나면 모르겠으나 회복력도 좋아 신체가 잘리고 재생하고 나면 그 즉시 체력까지 회복해버리니 여간 성가실 수밖에 없었다.
근데 문제는 이곳 베르나도 남작령의 트롤은 홀로 다니는 것이 아닌 두세 마리씩 짝을 지어 다니고 있다는 것이다.
“크워!!!”
“워어어어어!”
두 마리의 트롤이 거칠게 포효하며 날뛴다.
3미터에 달하는 거구의 몸이 땅을 흔들었고, 손에 쥐고 있는 몽둥이가 휘둘러지면 모든 것을 파괴할 것 같은 엄청난 위력을 뿜어낸다.
숲을 이루고 있는 나무가 박살 나며 옆으로 쓰러지며 다른 나무까지 박살을 내버렸다.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흙먼지였으나, 이내 휘둘러지는 트롤의 몽둥이에 전부 쓸려나갔고, 대신 몽둥이에 의해 박살이 나는 숲의 모습만 훤히 볼 수 있었다.
이 모습을 본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숲의 파괴자 트롤.
말 그대로 숲을 박살 내며 유저를 향해 공격하는 트롤이었다.
그런 트롤을 상대하는 유저의 입에서는 욕설이 난무할 수밖에 없었다.
“X발. 이걸 어떻게 잡아?”
“한 마리도 아니고 두 마리는 너무 하잖아.”
“카악! 퉤. 진짜 개 같네.”
“야, 그래도 정신만 차리면 블러드 웜 때랑 다르게, 끔 살은 안 당하잖아?”
“그럼 뭐해, 여기서 다진 고기가 되어서 죽는데.”
“느껴지는 공포랑 고통을 생각하면 차라리 블러드 웜이 깔끔하겠다.”
오죽하면 이곳에 오기 전에 상대했던 블러드 웜이 좋다고 할 정도의 수준.
하지만 그럼에도 이곳에 머물고 있는 유저는 하나같이 머릿속에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하이리스크 하이 리턴 모르냐?”
“그래, 그래도 트롤은 최소 레어 등급 이상의 스킬 북을 자주 드랍하잖아!”
“거기에 아직 이곳의 인던이 발견 안 되었다고!”
“혹시 아냐? 그게 메인 시나리오랑 연관되어 있을지도?”
“크 생각만 해도 척추가 짜릿하네.”
“지린 거 아니지?”
“뭐래. 아무튼, 버텨 그리고 딜러는 폭딜 준비하고!”
“자! 오늘도 한 건 해보자!”
이곳에서 계속해서 사냥할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
다름 아닌 레이 이상의 스킬 북이 자주 등장한다는 점이다.
그것도 쓰레기 같은 스킬이 아닌 알짜배기 공격 스킬 북을 말이다.
월오룰에 유통되는 수많은 스킬 북이 이곳에서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수준으로 이곳에서 드랍되는 스킬 북이 상당했다.
그렇기에 이곳을 사냥하는 유저는 이를 악물고 최선을 다해 사냥하곤 한다.
“근데, 왜 저 새낀 X나 편해 보이냐?”
“하, X발. 트롤이 X만 해 보이네.”
“X나 세상 불공평하네.”
그들이 바라보는 곳엔 한 유저가 있었다.
그것도 열 마리가 넘는 소환수를 데리고 아주 느긋한 얼굴로 움직이고 있었고, 앞에서 싸우고 있는 커다란 두 짐승 덕분에 흙먼지를 뿜어내지 않고 말이다.
그 유저는 다음 아닌 시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