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5화
#175
시저가 인던에 들어간 그 시각.
월오룰의 커뮤니티엔 새로운 글이 올라왔다.
- NPC를 죽인 시저. 하나 그를 말리는 NPC는 없었다. (영상 첨부)
영상은 시저가 달밤의 신음 소리라는 주점 앞에 도착한 부분부터 시작이었다.
시저는 주점 내의 NPC와 짧은 대화를 주고받더니 그 자리에서 검을 들고는 그대로 복부를 찔러 버렸다.
공격당한 NPC는 게거품을 물고는 그대로 바닥으로 쓰러졌고, 피가 사방으로 튀어 금세 바닥을 적셨다.
비명이 들려왔다.
보통 이런 상황이 일어나면 순식간에 경비병이 움직인다.
플레이어는 그 즉시 경비병에게 제압당하거나 반항할 경우 그 자리에서 바로 죽는다. 하지만 주변에 있던 수많은 경비병은 물론이고, 경비 대장은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그 순간 죽은 NPC의 시체 위로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오더니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수많은 NPC가 마신교를 언급하기 시작하더니 주점 안으로 들어가는 시저의 뒷모습으로 영상이 끝났다.
그리고 그 영상을 본 사람은 자연스럽게 댓글 창으로 향했다.
- 이게 머선129?
- 사람 죽이는 영상을 편집도 없이 그대로 올리네. 혐짤 표시 좀.
- NPC 죽였는데 왜 경비병이 가만히 있죠?
└ 나도 이건 이해가 안 됨.
└ 와, 보통 경비대가 와서 바로 제압하지 않나?
└ 제압이 아니라 죽이지.
└ 근데 살아 있다는 거잖아?
- 영상만 보면 잘 모르는데, 그 자리에 있었는데, 처음부터 경비대장이랑 같이 왔음
└ 그렇다면 눈앞에서 죽인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소리야?
└ 이건 또 무슨 소리야?
└ 멍청아. 말 그대로 같이 와서 죽였다고! 근데 왜 안 말리는 거지?
└ 혼자 말하고 혼자 의문 가지네. 개 웃기네.
- 근데 마신교는 뭐임?
- 안 그래도 나도 그게 궁금함.
- 이분들, 스토리 안 봤네. 마신교는 옛 마왕을 강림시킨 악의 무리이며, 대륙에서 공공의 적으로 불리는 존재임.
└ 오, 땡큐.
└ 좋은 정보 감사.
- 예전부터 대형 길드는 마신교에 대한 정보를 모집하곤 있었는데, 이번 일로 더 많은 인력을 투입한다고 함.
└ 오, 뭔가 있는 듯?
└ 기왕이면 뭔가 화끈하게 한 방 터졌음 좋겠다.
시저가 NPC를 죽인 사건은 커뮤니티를 통해 순식간에 전해졌다.
다들 놀라 하는 것은 당연했지만, 이내 모두의 머릿속에 마신교라는 이름이 박혔다.
대형 길드도 찾고 있는 마신교의 흔적.
거기에 그 누구도 찾지 못했던 메인 시나리오를 진행 중인 시저가 마신교와 연관이 되었다는 것은 월오룰을 직접 플레이하지 않는 시청자의 머릿속에도 자리 잡기 충분했다.
그것이 월오룰의 새로운 변화를 가져다줄 것이라곤 그 누구도 몰랐다.
* * *
마신교의 비밀 하수도.
말 그대로의 인던은 거대한 하수도였다.
옆으로 흐르고 있는 오물이 섞인 물에서 하수도 특유의 역한 냄새가 진하게 풍겨왔다.
“욱…….”
내 옆에서 루이즈가 창백한 얼굴로 헛구역질했다.
지금 사방에서 풍겨오는 냄새는 당장에라도 오늘 내가 무엇을 먹었는지 확인시켜 주고도 남을 정도로 역겨웠다.
벌써 다섯 번째 헛구역질이었다.
“불편하면 들어가 있을래?”
“조금만 더 버텨보고……. 우욱!”
버틸 수 있는 수준이 아닌 듯한데 남아 있기를 고집하는 루이즈다.
당연히 루이즈만 그런 것은 아니다.
범이는 내 품에서 고개를 파묻고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 범이와 붙어 있는 피이 또한 머리를 들고 있지 않았다.
팅고와 가직스, 숭이, 쓰랄은 얼굴을 찌푸리고 있지만, 딱히 문제가 되지 않는 듯한 모습이었고, 유일하게 스켈레톤인 로빈후드는 평소와 다름없이 턱을 딱딱 부딪칠 뿐이었다.
어떻게든 적응하려던 루이즈가 결국 항복했다.
“안 되겠어.”
“그래, 쉬고 있어.”
루이즈가 소환수창으로 돌아갔다. 나는 품에 있는 범이와 피이 또한 소환수 창으로 돌려보냈다.
겨우 두 손이 가벼워졌고, 나는 역한 냄새를 참으며 말했다.
“자, 이제 다시 사냥 시작하자고.”
내 말에 남은 소환수가 움직였다.
이곳 인던의 몬스터는 언데드. 구울이었다.
구울이야 언데드 몬스터로 자주 등장하는 녀석이다.
느린 움직임을 가지고 있는 대신 피 통이 많고, 한 방 데미지가 강한 녀석이다. 물리면 디버프 저주까지 걸리는 녀석이니 어찌 보면 상당히 귀찮은 몬스터다.
대신 공략법은 간단하다.
머리통만 잘 부숴주면 되니 말이다.
물론 고통을 느끼지 못하기에 공격하는 처지에선 조금 무섭기도 한 녀석이다. 물론 나와는 별로 상관없는 이야기다.
- 소환수 ‘팅고’가 스킬 ‘강타’를 사용합니다.
- 추가 데미지 150%를 입힙니다.
접근하는 녀석은 팅고의 도끼 한 방이면 충분하다.
정확하게 머리통만 노리고 휘둘러지는 공격에 구울은 별다른 저항도 하지 못하고 어김없이 쓰러졌다.
- 소환수 ‘팅고’가 치명적인 공격에 성공했습니다.
- 소환수 ‘팅고’가 ‘구울’을 사냥했습니다.
- 경험치 50,000을 획득합니다.
- ‘식탐의 목걸이’의 효과로 추가 경험치 150,000을 획득합니다.
- 최초 발견 보너스로 추가 경험치 50,000을 획득합니다.
“크, 좋네.”
경험치가 쭉쭉 들어온다.
인던이라서 경험치가 많이 들어오는 것도 있겠지만, 마신교와 연관된 곳에 있는 몬스터는 경험치 자체가 다르다. 필드 몬스터보다 1.5배 정도 많은 양을 주기 때문이다.
덕분에 경험치가 쭉쭉 쌓여간다.
물론 팅고만 활약하는 건 아니다.
- 소환수 ‘숭이’가 스킬 ‘로우 킥’을 시전합니다.
- 추가 데미지가 400% 상승합니다.
숭이의 다리가 구울의 하체를 노리고 날카롭게 휘둘러졌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구울의 다리 한쪽이 처참하게 박살이 났다.
구울을 사냥하는 데 머리통 말고는 다른 곳을 공격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하지만 숭이가 하체를 노리고 공격한 것은 이유가 있다.
박살 난 다리 때문에 몸이 한쪽으로 쏠렸고, 구울의 머리통이 숭이가 공격하기 딱 좋은 위치로 내려오기 때문이다.
- 소환수 ‘숭이’가 스킬 ‘정권 찌르기’를 사용합니다.
- 추가 데미지 150% 입힙니다.
숭이의 주먹에 구울의 머리통이 터졌다.
- 소환수 ‘숭이’가 치명적인 공격에 성공했습니다.
- 소환수 ‘숭이’가 ‘구울’을 사냥했습니다.
- 경험치 50,000을 획득합니다.
- ‘식탐의 목걸이’의 효과로 추가 경험치 150,000을 획득합니다.
- 최초 발견 보너스로 추가 경험치 50,000을 획득합니다.
숭이의 시건방진 표정을 볼 수 있었다.
마치 시시한 것을 처리했다는 듯한 모습.
여전히 시건방지기 그지없는 숭이의 모습이지만, 내 소환수라 그런지 그저 기특하게만 보였다.
가직스는 도약을 통해 허공에 날아올랐다. 그리고 구울의 머리 바로 위에서 몸을 빙글 돌려 어깨가 아래로 향하게 했다.
- 소환수 ‘가직스’가 스킬 ‘가시 방출’을 사용합니다.
가직스의 어깨에서 쏘아지는 가시가 구울의 머리통을 꿰뚫다 못해 몸속 깊숙한 곳까지 박혀 들어갔다.
구울이 허물어졌고, 가직스는 바닥에 착지했다가 다시 도약을 통해 내 곁으로 날아왔다.
가직스의 스킬은 여전히 가시 방출밖에 없다.
물론 그 스킬의 레벨이 이제 곧 MAX를 향하고 있을 정도로 성장했기에 한 번에 방출하는 가시의 숫자가 열 개로 늘어났고, 쿨 타임도 줄어들어 이제는 3분에 한 번씩 사용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 엄청난 활약을 보이는 것은 다름 아닌 로빈후드였다.
피슝! 피슝! 피슝!
로빈후드의 손이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움직였다.
패시브 속사 스킬 덕분에 공격 속도가 상승한 로빈후드의 손은 엄청나게 빨랐다.
1초에 한 발씩 날아가는 화살은 저 멀리 다가오는 구울의 머리통에 계속해서 박혀갔다. 거기에 패시브 연사 스킬 덕분에 확률적으로 추가 데미지까지 들어갔다.
더욱 무서운 심심치 않게 크리티컬이 터지는 덕분에 엄청난 화력을 자랑해 주었다.
“딱딱딱!”
“그래. 나도 신난다.”
로빈후드가 신이 난 듯 턱을 열심히 부딪치며 좋아했다.
저 느리게 접근하는 구울은 완전히 로빈후드의 장난감이나 다름없는 수준이다.
로빈후드는 이곳 인던을 공략하기 시작하면서 절반에 달하는 구울을 혼자 사냥했다.
게다가 인던의 끝에 자신의 진화를 위한 존재가 있다는 것을 시작부터 알고 있어서 그런지 흥분을 넘어서 가장 신이 나는 모습이었다.
그 감정이 고스란히 내게 전해졌고, 나 또한 기뻐해 주었다.
“딱딱딱!”
“그래, 얼른 가자.”
“딱딱!”
아까부터 잠시라도 쉬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로빈후드다.
빨리 진화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전해져 왔다.
나에게는 저렇게 마음으로 표현하지만, 다른 소환수에게는 달랐다. 잠시라도 앉아서 쉬려고 하면 화살을 손에 쥐고는 뒤에서 푹푹 찌른다.
당연히 숭이나 가직스, 쓰랄은 화들짝 놀라 화를 내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딱!”
로빈후드는 턱을 한 번 움직일 뿐이었다.
다만 다른 소환수들은 놀랍게도 불만 가득한 얼굴이었음에도 움직였고, 유일하게 말을 똑바로 할 줄 아는 쓰랄이 슬쩍 투정을 부렸다.
“선배라고 기강 잡네.”
그 말에 내가 속으로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나는 말이 들려오지 않지만, 소환수끼리는 대화가 되는 건지 가끔 저들끼리 떠드는 모습을 보이곤 했다.
가끔은 궁금하기도 하지만, 뭔가 특별한 일이 있다면 루이즈나 쓰랄이 내게 말하겠지, 라는 생각으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근데 이제는 조금 호기심이 생긴다.
‘로빈후드가 말을 하면 재밌겠는데?’
보통 스나이퍼 하면 조용하거나 말수가 적은 느낌을 준다.
한 번의 저격을 위해 엄청난 인내와 고통을 참고 살아가는 이들이다 보니 별명 또한 침묵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로빈후드는 조금 다르다.
‘쾌활하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방정맞다고 해야 할까?’
가끔씩 마음으로 전해지는 로빈후드의 감정은 항상 밝고 즐거웠다.
지금도 흥분해서 움직이는 것은 물론이고, 다른 소환수를 귀찮게 하면서도 즐거운 감정이 생생하게 전해졌으니 말이다.
그래서 더욱 기대되는 거다.
그 뒤로 이어지는 사냥은 순조로웠다.
거대한 하수도라 막다른 길이 자주 등장했지만, 그냥 등을 돌려 다시 걸어갈 뿐이었고, 몬스터가 나타나면 쓰러뜨릴 뿐이었다.
대충 인던에 들어오고 세 시간 정도가 흘렀고, 마침내 등장한 거대한 문을 발견했을 때는 조금 기쁜 마음도 들었다.
“그럼, 마지막 사냥을 해 볼까?”
“딱딱!”
로빈후드가 신난다는 듯 나 보다도 먼저 앞으로 가더니 그대로 거대한 문을 밀기 시작했다.
문이 활짝 열렸고, 정면을 바라본 나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자기, 또 만났네?”
활짝 미소를 지어주며 손을 흔들어 반겨주는 지나핀.
“흘흘, 오랜만이군. 플레이어 시저.”
지나핀 옆에서 턱수염을 쓰다듬는 히데아.
“네놈이! 모든 것을 망쳤구나!”
나를 향해 분노를 터트리는 NPC 크레이튼.
[거대 구울 Lv.700]
NPC 등 뒤에 있는 인던 보스 몬스터까지.
생각지도 못한 조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