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4화
#134
크세이트 공작령에 입성했다.
공작이 기다리고 있다는 응접실에 입성했을 때 생각지도 못한 인물이 나를 반겨 주었다.
“잘 지냈는가? 플레이어 시저. 아니, 시저 남작.”
“오! 니베라 남작, 아니, 후작님 아니십니까?”
“허허허. 여전하구먼.”
“후작님도 마찬가지십니다.”
우리는 서로 안부 인사이자 장난을 멈추곤 손을 마주 잡았다.
“오랜만에 뵈어요. 남작님이 되셨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이리엘 님이시군요. 오랜만에 뵙습니다.”
훗날 성녀라 불릴 이리엘의 등장에 살짝 놀랐다.
사실 코볼트 사냥터에서 만난 것도 기적에 가까운데, 여기서 또 만나게 될 줄 몰랐다.
‘X발. 이리엘까지 왔을 정도면 이번 난이도 진짜 미친 거 아냐?’
이리엘은 성녀라고 불릴 정도로 엄청난 신성력을 소유하고 있다. 그런 그녀가 이 자리에 있으니 이번 난이도는 미쳤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미 한번 당하지 않았는가?
코볼트 동굴에서 말이다.
그 쪼렙에 500레벨이 넘는 기사들이 무시무시한 오러를 뿜어내며 싸우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이번에는 그렇게 호락호락 당하진 않겠지만.’
그때와 달리 나도 강해졌으니 그때처럼 도망치거나 겁을 먹을 필욘 없다. 아니, 이번에는 내가 찢어 버릴 거다.
그때의 울분을 담아서 진심을 다해!
아무튼, 그렇게 이리엘 다음으로 몇 명의 NPC를 더 소개받았다.
신성 교단의 핵심 인물이라는 불리는 몇 NPC와 마탑의 마법사였다.
가볍게 인사를 하며 안내받은 자리에 앉은 나는 조용히 남몰래 속으로 쌍욕을 내뱉었다.
‘이건 진짜 큰일이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NPC의 대부분이 훗날 엄청나게 이름을 알린다.
그러니까 간단하게 말하자면 말이다.
미래에 최강자에 올라갈 엄청난 인재가 대거 투입된 작전. 그 작전에 내가 함께하게 됐다는 거다.
당장에라도 이곳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자, 주역들이 다 모인 것 같으니 이제 회의를 시작하지.”
가장 상석에 앉아 있던 크세이트 공작이 입을 열었다. 그러곤 옆에 있는 부관으로 보이는 남자에게 손짓했다.
“부관인 웨건입니다. 현재 오크틴 산맥의 상황에 대해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그는 모두가 볼 수 있는 커다란 벽에 커다란 지도를 펼쳤다. 오크틴 산맥을 상세하게 표시되어 있는 지도였다.
“먼저 기존의 오크 부락은 총 열 한 개의 족장이 있는 부락을 비롯해 소수로 구성되어 있다고 보면 됩니다.”
지도에 열 한 개의 오크 부락을 가리켰다. 그러고는 그대로 반으로 갈랐다.
정확하게 동쪽, 서쪽 반이었다.
웨건이 나를 바라보았다.
“현재 시저 남작님께서 동쪽의 오크 부락 다섯 곳을 무너뜨리셨습니다. 맞습니까?”
“맞습니다. 서쪽에 가장 가까운 부락을 제외하고 다섯 곳의 족장을 쓰러뜨렸습니다.”
웨건이 지도에서 다섯 곳을 X로 만들었다.
그 모습에 크세이트 공작이 놀랍다는 듯 말했다.
“아들 녀석에게 들었네.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군. 거기에 소환수를 부리는 모습은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 지휘관과 같았다고 칭찬하더군.”
“과찬이십니다.”
나는 겸손하게 대답했다.
그런 내 모습이 마음에 들었는지 크세이트 공작이 고개를 끄덕이며 나에게 말했다.
“덕분에 아들 녀석에 좋은 경험을 했지. 그에 따른 보상은 나중에 챙겨주지.”
“감사합니다.”
이로써 퀘스트는 완료되었다고 보면 된다.
나중이라고 하는 것을 보니, 지금 대규모 이벤트를 처리하고 난 다음에 주겠다는 소린 것 같았다.
그럴 만도 한 게 지금 상황이 많이 심각하긴 하다.
우리의 대화가 끝나자 다시 웨건이 회의를 진행했다.
“지금 서쪽에 남은 족장이 있는 부락은 다섯 곳입니다. 그중에 두 곳의 족장이 오크의 왕에게 잡아먹혔다고 합니다.”
오크틴 산맥에서 가장 높은 지형에 있는 두 부락에 X가 그려졌다.
“마지막 보고를 받았을 때 이곳을 습격하고 있다고 했으니 이곳 또한 오크의 왕에게 먹혔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오크틴 협곡에서 가장 가까운 두 곳의 부락만 남은 상황이다.
그중 한 곳은 협곡에서 상당히 가까운 곳에 있는 부락이며, 마음먹고 달린다면 협곡을 통과하는 데 한 시간도 걸리지 않을 것이다.
“평소 하던 방식은 통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좁은 협곡을 끼고 싸우는 것은 크세이트 공작이 오크를 상대하는 데 사용했던 방식이다.
자신들에게 익숙한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을 제안했다.
“차라리 협곡 뒤에 있는 성벽을 1차 저지선으로 만들었으면 합니다.”
오크틴 협곡은 높고 좁다. 전략적으로 충분히 가치가 있는 곳이다.
하지만 적의 숫자가 수백만을 넘어가는 상황에선 달리 생각해야 한다. 오히려 그 좁은 지역을 사수하다 역으로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역이 좁기 때문에 아군이 공격하기에도 좁다.
특히 이번 전투에는 수많은 플레이어가 참가하기로 예정되어 있다.
차라리 오크틴 협곡과 크세이트 공작령의 성벽 사이의 넓은 공간을 활용하는 것이 좋지 않겠냐는 웨건의 의견이었다.
“좋은 생각이군.”
크세이트 공작은 괜찮다고 생각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웨건이 말한 방식은 확실히 나쁘지 않았다.
좁은 협곡이 아닌 넓은 장소면 플레이어의 화력을 끌어 올리기엔 완벽하다.
하물며 좁은 협곡을 통과해 넘어오는 오크의 숫자는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니 처음부터 확실하게 이기고 들어가긴 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플레이어들이 웨건의 작전을 절대 따르지 않으리란 걸 알고 있다.
‘다들 욕심에 물들어 말이 안 통할 텐데.’
당장 나라도 웨건이 말한 작전이 아닌 차라리 협곡 너머로 이동해 사냥하는 방식을 선택할 것 같았다.
이유도 있다.
이번 퀘스트는 기여도에 따른 차등 보상이다.
남들보다 한 마리의 오크를 더 죽여야 하는 입장에서 협곡 뒤에서 조금씩 나타나는 오크를 가지고 경쟁한다는 것은 상당히 피곤한 일이다.
플레이어라면 당연히 한 마리의 오크를 더 죽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걸 생각하면 당연히 오크틴 협곡 너머로 이동해 더 많은 오크를 사냥하려 들 것이다.
그러니 플레이어 입장에선 웨건의 작전이 썩 좋진 않다.
“자네 생각은 어떤가?”
꽁해 있는 얼굴 때문인지 크세이트 공작이 나에게 물었다.
그래서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아마 플레이어는 저 작전을 따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내 말의 눈썹이 까딱했다. 그러곤 흥미롭다는 듯 나에게 물었다.
“그럼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은가?”
그의 질문에 나는 솔직하게 말해 줬다.
“크세이트 공작님의 병사와 기사는 웨건 경이 말한 1차 저지선을 유지하되 플레이어는 그냥 풀어 두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플레이어를 풀어 두라?”
“그렇습니다. 플레이어가 죽든 말든 아무런 신경을 쓰지 않고 내버려 두고 공작 전하께서는 오직 영지를 지키는 성벽을 보호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냉정하군.”
크세이트 공작의 솔직한 감상. 내가 생각해도 상당히 냉정하다고 할 수밖에 없는 발언이긴 하다.
그럼에도 이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그게 플레이어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나타난 것이 플레이어다. 그런 플레이어를 감싸고 돌 필요가 없다.
플레이는 여신 아이샤의 은총을 얻어 영원한 죽음이 없다.
죽지 않고 다시 살아나 또다시 전장으로 뛰어가는 것이 플레이어다.
그러니 냉정하다 하더라도 확실하게 사냥할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 옳다.
내가 설명하는 것을 모두 들은 크세이트 공작은 홀로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결정했다.
“좋아. 시저 남작의 말대로 플레이어에게 협조를 구하지 않도록 하지.”
이로써 플레이어는 NPC의 통제 아래 사냥하는 것이 아닌 개인적으로 알아서 사냥할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이곳 브리타니아 대륙인으로서 그저 바라만 볼 수 있을 수는 없지. 오크틴 협곡에 자리 잡아 플레이어를 돕도록 하지.”
크세이트 공작의 말에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웨건 경. 수고스럽겠지만 다시 작전을 짜도록 해 보게.”
“충! 알겠습니다.”
“신성 교단과 마탑의 마법사는 저희와 함께해 주길 부탁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공작님께 협조하도록 하겠습니다.”
신성 교단의 이리엘과 마탑의 대표인 리스토가 대답했다.
그 모습에 만족하는 듯 고개를 끄덕인 공작이 다음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시저 남작은 어떻게 하겠는가?”
“저 또한 따로 움직이겠습니다.”
사실 이건 누가 물어보나 마나 정해져 있는 대답이다.
당연히 따로 움직일 것이고, 누구보다 높은 기여도로 가장 좋은 보상은 내 것이 되어야 한다.
이 이벤트는 분명 나 때문에 발생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압도적인 1등을 위해 준비한다.’
지금 머릿속에 떠오르는 방법이 있다.
스컬 대검으로 만들어지는 오크 스켈레톤의 유지 시간이 24시간이다. 그러니 전날 오후에 잔뜩 만들어 둔 다음 소환수창에 보관했다가 전투가 시작되면 꺼내 사용하면 된다.
조금 귀찮지만 그래도 압도적인 1등을 위해서는 충분히 투자할 가치가 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오크 족장은 내가 죽여야 한다.
메인 퀘스트를 위해서다.
그러니 혼자 움직일 것이다.
“좋아. 잘 부탁하지.”
크세이트 공작은 웨건의 새로운 작전과 함께 내일 이 시간에 다시 모이자며 회의의 끝을 알렸다.
다음 회의에 내가 착석할 필요는 없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나는 회의장을 나왔다. 그런 내 뒤를 니베라 후작이 바짝 따라붙었다.
“공주님의 전언이네.”
그러고는 주변을 둘러보곤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곤 슬쩍 나에게 속삭였다.
“크세이트 공작을 조심하게.”
음? 뭐지? 갑자기 크세이트 공작을 조심하라고?
이건 전혀 생각지 못했다.
내가 왜 그런지 물어보려고 뒤돌아보았지만, 니베라 후작은 벌써 멀리 떨어진 후였다.
그것도 방금 나보고 조심하라고 했던 크세이트 공작의 곁에 붙어 뭔가 이야기 중이었다.
“뭐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상황. 하지만 일단 공주님의 전언이라고 하니 신경 써야 할 것 같았다.
“그건 그거고.”
일단 오늘 목표인 마지막 오크 부락을 쓰러뜨리러 향했다.
* * *
그날 오후, 크세이트 공작령에 막 도착한 데시드는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이벤트라. 이것 또한 운명인 건가?”
그의 스킬인 선고는 보스 몬스터를 상대할 때 가장 좋은 스킬이다. 무려 열 배의 대미지를 주게 만드는 스킬.
압도적인 딜량을 뽑아낼 수 있는 데시드였기에 오히려 이 이벤트가 너무나도 반가웠다.
“그나저나…… 시저란 놈은 어디 있는 거야?”
사냥개로서 마지막 임무. 목표물을 찾아야 끝낼 수 있다.
‘역시, 오크 사냥 중에 죽이는 게 가장 깔끔하겠지.’
데시드는 한동안 사냥개의 임무를 하지 않았다.
그의 사냥감 대부분은 오크 사냥터를 벗어난 지 오래다. 그렇기에 당당하게 돌아다녀도 문제가 없는 상황.
그럼에도 조용히 처리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커리어를 위해서도 이건 숨겨야 한다.’
남에게 들키게 되면 밖으로 나오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사냥개가 아닌 당당한 플레이어로 활동하고 싶기에 절대 들켜서는 안 된다.
‘그러니 보여라.’
시저를 발견해 접촉을 해야 선고 스킬을 사용할 수 있다.
도착과 함께 시저를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앞으로 남은 시간은 삼 일. 이 기간 안에 시저를 찾아야 한다.
그의 시선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 * *
오크틴 산맥.
언데드로 부활한 오크의 왕.
“여전히 무능하고 여전히 모자라군.”
오크의 왕은 자신이 기억하던 오크가 여전하다는 것을 알곤 고개를 흔들었다.
그렇기에 한 가지 확실한 게 하나 있다.
“적어도 인간을 물어뜯기엔 모자람이 없어.”
오크의 왕은 저물어가는 해를 바라보며 인간들의 성이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인간은 노예다. 그리고 오크가 세상을 지배할 것이다.”
옛날에 그랬듯. 다시 그리될 것이다.
자신이 오크틴 산맥을 지배하던 시절과 마찬가지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