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7화
#77
조심스럽게 팅고의 진화 조건을 확인해 봤다.
-홉 고블린 워리어 ‘팅고’의 진화 조건이 공개됩니다.
1. 레벨 90 달성.
2. 상위 몬스터 천 마리 사냥 0/1,000
이번 진화 조건은 상당히 심플하다. 천 마리만 사냥하면 되니까.
“문제는 상위 몬스터라…….”
지금 팅고는 홉 고블린 워리어.
그보다 상위 몬스터라고 한다면 당장 떠오르는 몬스터가 있다.
“오크라든가, 워 베어, 라이칸스로프, 리자드맨…… 많네?”
지금 내가 부른 순서가 앞으로 지나가야 할 사냥터에 존재하는 몬스터 목록이다.
문제가 있다면, 지금 팅고가 평범한 ‘홉 고블린’이 아니라 ‘워리어’라는 이름이 붙은 상위 개체라는 점이다.
재수 없이, 지금 떠오른 몬스터가 팅고보다 낮은 존재라면 진화는 점점 늦어진다.
정말 재수 없어서 한참 더 뒤의 사냥터를 향하게 된다면 거의 자살 행위나 다름없다.
차라리 상위 계체가 나오는 인던을 찾거나, 엄청난 시간을 투자해서 니베라 남작령으로 돌아가 고블린 족장이라도 잡는 것이 정답일 수도 있다.
조금은 난감한 상황.
적당히 100레벨 정도의 수준의 몬스터라면 팅고도 무리 없이 사냥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일단……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 할 듯하다.
“좋아, 천천히 해결해 보자고.”
당장 안 되는 일이니 별수 없다. 되는 것부터 해야지.
“근데 범이는 언제 진화할래?”
“냐앙?”
내 물음에 범이가 뭘 물어보는 듯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이름 : 범이
등급 : 레전더리
계열 : 환수
레벨 : Lv.88
스텟 : 근력40 민첩50 체력40 지식10 지혜10
충성도 : 99
성장 가능
진화 가능
1차 진화 시 고유 특성을 개방합니다.
“뭐야? 언제 1% 올랐대?”
범이의 충성도가 1% 올랐다. 이제 1%만 더 채우면 범이의 진화 조건이 개방된다.
진화가 코앞이라 할 수 있지만, 언제 올라가려나 모르겠다.
“범이야. 너도 얼른 강해져야지. 이러다가 뒤에서 구경만 하게 돼요.”
몬스터는 점점 강해질 텐데 범이는 50레벨 수준에 머물러 있으니 말이다.
당장이야 가직스가 있으니 걱정은 없다곤 하지만, 진짜 이러다가 팅고와 범이의 자리가 사라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냐앙…….”
그런 내 마음도 모르고 범이는 졸린다는 듯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언젠간 이 녀석도 주인님 마음을 알아주는 날이 오겠지.”
범이를 품에 안아 주는 루이즈였다.
요즘 그녀는 범이를 품에 안고 다닌다.
루이즈는 물리적인 대미지를 주지 못해 사냥할 때는 보통 뒤에서 대기하는데, 범이와 함께 있는 시간이 길어진 탓에 상당히 친해졌다.
오죽하면 범이가 먹을 걸 달라고 할 때를 제외하곤 루이즈에게 안겨 있을 정도다.
그런 범이를 보며 나는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그럼 다행이지만 말이야.”
범이의 경우 상당히 기대하는 부분이 크다.
다른 소환수도 아니고 가장 처음으로 계약한 소환수가 아닌가?
거기에 앞으로 미래도 창창할 것이다.
그런 범이를 귀엽다고 이렇게 뒤에서 보호하기엔 너무 아깝다.
이런 내 맘도 모르고 저리 졸고 있는 모습을 보자니 한숨만 나올 뿐이다.
“그래, 일단 먼저 할 건 따로 있으니깐 그거부터 하자고.”
지금 먼저 해야 할 것은 다름 아닌 가직스의 합성이다. 그걸 하고난 다음에 두 가문의 보상을 챙기면 된다.
“그럼 가 보자고.”
남은 한 마리의 가직스를 찾아 움직였다.
* * *
그 시각, 데스트니 길드의 암살자 남녀는 메뚜기 사냥터에서 한창 몸을 풀고 있었다.
“카악, 퉤! 얼마나 처 멀리 간 거야?”
그와 동시에 그의 손에 들려 있던 단검이 휘둘러졌다.
“커억!”
그의 단검은 한 유저의 가슴팍을 찔렀고, 유저의 심장 부근에 박혔다.
남자는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했는지 단검을 비틀었다.
끼리리릭.
남자의 근력이 엄청나다는 것을 증명하듯 단검이 부러질 듯한 소리와 함께 비틀어졌다.
푸슈슈.
비틀어진 단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로 인해 바닥이 붉은색으로 물들어 갔다.
남자의 반대편에 있는 여자가 한 유저를 바닥에 눕혀 두고는 올라탄 상태로 씨익 웃었다.
“어쩔까? 넌 살려 줄까?”
그녀의 질문에 깔려 있던 남자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의 얼굴에는 짙은 공포에 잠겨 있었다.
엄청난 미녀가 자신의 배 위에 올라타 있음에도 남자는 다른 생각을 할 여력이 없었다.
그저 이 자리에서 온전히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으며, 그저 자신의 장비를 잃어버리지 않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함께한 파티원의 장비 따위는 아무런 상관없다. 오직 자신만의 생존만을 생각했다.
“호호호. 그럴 리가 없다는 거 알잖아.”
여자 손에 들려 있던 단검이 깔려 있던 남자의 머리를 향해 휘둘러졌다.
퍼억!
둔탁한 소리와 함께 남자의 몸이 폴리곤 조각으로 변했고, 여자는 주섬주섬 돈이 될 만한 물건을 챙겼다.
그런 여자와 다르게 남자는 짜증 난다는 듯 분통을 터트렸다.
“유저 하나 찾는다고 하루를 날릴 줄은 생각도 못 했네. 얼른 레벨 업해야 하는데 말이야.”
“하긴. 그거 써 보려면 레벨 올려야 하겠네.”
“그러니깐 말이야. 손맛이 좋을 것 같은데…… 환장하겠네.”
이번 의뢰금이 두둑하다는 것을 알고 길드에 돈을 빌려 이번에 단검 하나를 새롭게 맞췄다.
레전더리 아이템인 타란툴라의 단검이 있지만, 기본 대미지는 약하고 독 대미지가 강력하기에 이렇다 할 손맛을 느끼지 못해 유니크 등급의 단검 하나를 지른 것이다.
문제는 그 단검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아직 레벨이 부족하다는 것.
얼른 레벨을 올리고 싶은 마음이 가득한 그에게 여기서 낭비하는 시간은 엄청난 스트레스였고, 그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주변에 지나가는 유저를 죽이는 것으로 푸는 중이었다.
“쩝, 차라리 보스 몬스터라도 만나면 덜 심심하기라도 하지.”
남자가 그렇게 말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넓은 들판에는 무성하게 자란 잡초와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메뚜기가 전부다.
그런 와중에 남자의 눈에 보스 몬스터가 눈에 보였다.
“오, 가서 한번 놀아 볼까?”
남자는 레전더리 단검을 집어넣고, 대장간에서 흔하게 구할 수 있는 단검을 꺼내 들고는 가직스를 향해 달려갔다.
그러곤 첫 공격을 먹였을 때 옆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늦었다…….”
그 목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자신들의 목표인 시저가 서 있어서 화들짝 놀랐다.
남자가 당황하는 사이 여자는 지금이 기회라는 것을 알고는 외쳤다.
“도와주세요!”
그 말에 시저는 좋다고 승낙했다.
“알겠습니다.”
가직스를 향해 검을 들고 달려가는 시저를 보며 남자와 여자는 히죽 웃으며 기회를 노렸다.
* * *
솔직히 말하면 포기하려고 했다.
발견 즉시 뛰어갔지만, 먼저 공격한 사람이 있었고, 혼자도 아닌 두 명이서 파티를 짜고 사냥 중이니 내 기회는 없을 거라 생각했다.
‘아…… 또 찾아야 해?’
벌써 두 시간을 사냥터에서 보냈다.
저 가직스를 포획하지 못하면 또 한참을 찾아 나서야 하기 때문에 막막하던 참이었따.
“도와주세요!”
그런 와중에 도와 달라는 여성 유저의 말.
나는 당연히 수락했고, 검을 들고서는 그대로 가직스를 향해 다가갔다.
가직스에 다가가자 남자가 자리를 양보하듯 뒤로 물러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나는 일단 검을 휘둘렀다.
캉.
내 검이 가직스의 팔에 막혔다.
그와 동시에 나는 슬쩍 옆을 바라보았다.
‘음…… 뭐지? 여자는 어디로 사라진 거지?’
분명 도와 달라는 말에 내가 합류한 것이니 당연히 거들 거라 생각했는데, 내 생각과 다르게 보이지 않았다.
하물며 방금까지 싸우고 있던 남자 또한 뒤로 물러난 상태에서 더 이상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수상해.’
완벽히 수상한 상황 나는 곁눈질로 남자의 머리 위에 이름을 확인했다.
[존웍 Lv.183]
나는 소름이 돋았다.
그것도 모자라 맥박이 빠르게 뛰는 것이 선명하게 느껴질 정도다.
지금 내가 놀란 이유가 있다.
‘설마하니. 레전더리 단검의 소유자이자, 최악의 PK범 존웍이라니.’
그와 동시에 아까 도와 달라 했던 여자의 정체도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림자 여왕 라이지.
그림자를 이용해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그림자 속에서 튀어나와 수많은 이들을 반으로 갈라 버리는 악취미를 가진 PK범이라는 것을 말이다.
‘어떻게 한다…….’
나는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지금 가직스가 문제가 아니다. 이들에게서 PK 당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
일단 저들의 레벨은 200이 안 되는 수준.
사실 스텟상으로 따지면 저들보다는 내가 좀 더 우월하다.
문제는 존웍의 단검인데, 내 체력도 순식간에 녹여 버릴 정도의 강력한 독을 품고 있다.
그리고 라이지의 경우 그림자에 숨어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일.
상당히 난감한 상황이다.
‘루이즈뿐인가?’
지금 내 소환수는 전부 소환수창에 들어가 있다.
당장 소환할 순 있지만, 치명적인 독과 그림자 속에서 튀어나오는 적을 상대론 그리 좋은 선택지는 아니다.
결국, 나 혼자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설마하니 그걸 써 보게 될 줄이야.’
아니. 사실은 배워 두고도 깜박했다고 해야 하는 게 맞다.
딱히 쓸 일이 없거든.
지금 내 스텟과 스킬, 소환수면 충분히 사냥이 가능하니까. 그래서 잊고 있던 스킬이다.
내가 이 스킬을 지금 사용하려는 것은 조금 우월한 스텟으로 이들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압도적인 힘으로 찍어 누르기 위함이었다.
‘서먼 스피릿.’
-스킬 ‘서먼 스피릿’을 사용했습니다.
-동기화시킬 소환수를 설정합니다.
당연히 선택은 루이즈다.
레벨만 따져도 396레벨. 거기에 스텟 또한 엄청나기에 선택지는 그녀뿐이다.
-소환수 ‘루이즈’를 선택합니다.
-능력치의 50%가 추가됩니다.
그와 동시에 전신에 엄청난 활력이 차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슬쩍 상태창을 띄워 보니 내 스텟이 어마어마한 수준으로 상승했다.
이름 : 시저
직업 : 서머너 킹(레전더리)
업적 : 필드 몬스터를 포획한 자 외 29
레벨 : Lv.90
스텟 : 근력96(+204)(+162) 민첩91(+204)(+90) 체력96(+204)(+260) 지식91(+204)(+150) 지혜91(+024)(+150) 통솔력MAX
Hp : 56,000 Mp : 44,500
거의 500레벨에 육박한 스텟이 되어 버린 나다.
엄청나게 늘어난 근력과 민첩으로 인해 내 힘과 동체 시력이 늘어났다.
특히 동체 시력이 늘어난 걸 확실하게 느낄 수 있는 것이 가직스는 물론이고, 존웍이 무기를 바꿔 낀 것을 볼 수 있을 정도였다.
나는 최대한 아까와 별다른 차이가 없어 보이게 연기했고, 가직스의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피하며 라이지를 찾았다.
물론 동체 시력이 늘었다고 해서 그림자 속에 숨은 그녀를 찾을 순 없지만, 적어도 근처에 있음을 알기에 신중할 수 있다는 거다.
“카략!”
그런 나는 물론이고, 옆에서 구경만 하는 존웍이 거슬리기 시작하는지 가직스가 거칠게 포효했다. 그것도 모자라 허리를 슬쩍 숙이기까지 했다.
‘찬스다.’
저 행동이 뭔지 누구보다도 잘 안다.
다름 아닌 가시 방출을 위한 준비 동작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걸 알기에 나는 슬쩍 존웍이 있는 방향으로 몸을 움직였고, 가시가 방출하는 순간 그대로 지면을 박차고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피슝!
가직스의 어깨에서 가시가 방출되었고, 그것은 그대로 존웍에게 향했다.
“뭐야!”
갑작스러운 가시에 당황한 존웍이 피하려고 했지만, 내가 시야를 차단했던 탓에 빠르게 대처하지 못해 그대로 한쪽 팔을 꿰뚫려 버렸다.
“크악!”
존웍의 입에서 비명이 흘러나왔다.
그의 꿰뚫린 팔은 단검을 쥔 채로 팔이 한쪽으로 날아갔다.
이걸로 독에 대한 걱정은 덜었다.
이제 남은 것은 라이지.
바닥을 보자 내 그림자 속에 무언가 꿈틀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나는 허공에 떠 있는 상황.
공격하기 딱 좋은 타이밍이었고, 혹시 하는 마음에 내 그림자를 향해 검을 던졌다.
“아악!!”
끔찍한 비명.
라이지의 복부를 관통한 내 검 때문에 그녀는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그대로 박혀 버렸다.
승기를 잡은 순간, 나는 바닥에 착지함과 동시에 그대로 주먹을 말아 쥐고는 그대로 존웍의 복부를 가격했다.
“케겍!”
꺾인 허리.
고개를 숙이고 있는 존웍의 머리통을 붙잡고는 그대로 바닥을 향해 내려쳤다.
쿵.
둔탁한 소리와 함께 완전히 제압당한 존웍.
서둘러 외쳤다.
“범이, 팅고, 1호, 2호.”
내 부름에 나타는 소환수였다.
“1호와 2호는 저놈을 죽이지 말고 제압해.”
포획해야 하니 죽이면 안 된다.
물론 그사이에 내가 할 일이 있다.
“암살자가 당당하게 모습을 드러내면 되나? 쯧쯧”
제압했으니 이제 그 의뢰주가 누구인지 알아볼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