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7화
#37
한바탕 도축을 끝내고 범이와 팅고를 데리고 고블린 족장의 움막을 향해 다가갔다.
“뭐 별거 없네.”
사실 큰 기대를 품고 간 것은 아니다.
만약 고블린 족장의 움막에서 무언가 발견되었다면, 이미 내가 알고 있었겠지.
하나 혹시 누군가 발견하고도 모른 척하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에 움막을 살펴보았지만, 역시나 특별한 것은 없었다.
상관없다.
아미 충분히 강한 나와 범이, 그리고 팅고니까.
“아차. 팅고 이거 껴.”
생각해 보니 고블린 족장을 사냥하고 얻은 고블린 풀 세트를 팅고에게 주었다.
“끼에륵…….”
이번에도 어김없이 팅고는 나에게 존경과 감사한 마음을 담은 눈빛으로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사람의 말을 할 줄 알게 되었음에도 자연스럽게 나오는 특유의 소리는 살짝 웃겼다.
팅고가 처음 내가 주었던 장비를 주섬주섬 벗어내더니 건네준 고블린 풀 세트를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착용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또 한 번 킥하고 웃었다.
사실 저 고블린 족장 풀 세트의 경우 나 같은 소환사나, 마법사 같은 직업군에게 어울리는 장비가 아니다.
그 이유가 세트 효과 때문이다.
<분노가 깃든 고블린 가죽 상의>
등급: 레어
내구력: 100/100
방어력: 10
-2세트 착용 시 근력 +5
-3세트 착용 시 민첩 +5
-4세트 착용 시 체력 +5
세트 효과는 철저하게 전사 캐릭터에게 어울리는 스텟을 올려 주는 물건이었다.
레어 등급의 장비이고, 딱히 추가 스텟이 있는 장비도 아니거니와 사실상 사냥터를 바꾸게 되면 금방 쓸모가 없어질 장비기도 하다.
그래도 맨몸보다 방어구를 걸치는 게 안전하니까.
물론 내가 껴 두는 게 여러 가지 의미로 좋긴 하다만, 상태창을 보니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이름: 시저
직업: 서머너 킹(레전더리)
업적: 한 방 컷 외19
레벨: Lv23
스텟: 근력28(+124) 민첩23(+124) 체력28(+124) 지식23(+123) 지혜24(+124) 통솔력MAX
Hp: 15300 Mp: 14800
뭐라 할까.
이건 조금 아니다 싶을 정도의 상태창이다.
이게 어딜 봐서 23레벨의 상태창인가?
대충 100레벨은 넘은 유저의 상태창을 봐도 이렇게까지 화려하진 않을 것이다.
무려 추가 스텟만 124를 넘긴 상태다.
레벨로 환산한다면 124레벨이나 다름없는 보너스 스텟을 끼고 있다.
그러니 지금 내 캐릭터의 수준은 150레벨에 육박하다는 것이다.
회귀 빨 만세.
이게 회귀하지 않았다면 절대 이룰 수 없는 스텟이니 기뻐할 수밖에 없다.
나는 잠시나마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며 기뻐했다.
“주인님. 따라 한다.”
“냐앙…….”
내 모습에 팅고는 똑같이 따라 하기 시작했고, 그 모습을 본 범이가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잠시나마 기뻐하던 나는 고블린 족장의 움막을 나와 저기 뒤편에 있는 폭포를 바라보았다.
“가자.”
나는 그 폭포를 향해 망설임 없이 걸었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폭포기에 금방 도착했고, 나는 그대로 폭포수를 뚫고 안으로 들어갔다.
“여기지.”
분노의 반지가 잠들어 있는 인던.
그곳은 바로 고블린 족장의 움막 너머의 폭포 속에 숨겨진 동굴 속에 있다.
내가 정상적으로 찾아왔다는 시스템창의 알림이었다.
[숨겨진 인스턴스 던전을 찾았습니다.]
-인스턴스 던전 ‘분노한 고블린의 소굴’을 발견했습니다.
-최초 발견 보너스가 적용됩니다.
-사냥 시 얻는 경험치가 두 배가 됩니다.
-아이템 드롭율이 두 배가 됩니다.
그와 동시에 떠오르는 인스턴스 던전의 정보.
[분노한 고블린의 소굴]
난이도 : 보통
최대 입장 수 : 10명
입장 조건 : 50레벨 이하
공략 조건 : 던전 내 모든 분노한 고블린을 제거해라.
간단하다.
이 소굴에 있는 고블린을 전부 제거하면 된다.
이 얼마나 단순하며 쉬운 일인가?
나는 그저 범이와 팅고를 앞세워 사냥하고 뒤에서 꿀이나 빨면 된다.
“자, 그럼 팅고랑 범이랑 한번 사냥해 볼까?”
“충!”
“냐앙!”
둘의 우렁찬 대답과 함께 나는 그대로 인던에 입장했다.
* * *
인던의 입장과 동시에 눈에 보인 것은 다름 아닌 이곳에 서식하는 분노한 고블린이었다.
[분노한 고블린 Lv35]
필드 밖에 있던 고블린 족장과 같은 레벨.
단순히 이곳에 있는 몬스터의 레벨이 35라는 것은 인던의 보스의 레벨은 40이 넘을 것이다.
“짬밥에서 나오는 결론이지.”
아마 밖에서 사냥하다가 아무 생각 없이 들어왔다간 딱 전멸 당하기 좋은 난이도를 가진 인던이다.
물론 그거야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고 나에게는 해당하지 않지만 말이다.
“일단 먼저 스킬부터 확인해야지.”
저 분노한 고블린을 쓰러뜨리는 것도 중요한 일이기는 하나, 그전에 먼저 확인해 봐야 할 것은 다름 아닌 통찰안과 약점 포착 스킬의 확인이다.
“약점 포착은 대충 예상이 가지만…… 통찰안은 전혀 짐작이 가지 않는단 말이야.”
약점 포착 스킬의 경우 회귀 전에 노멀 등급의 스킬을 구해 사용했던 나다.
당연히 노멀 등급이라 붉은 점으로 표기한 부분이 전부라고 할 수 있었다.
아주 가끔 붉은 점이 크게 보일 때도 있었지만, 그곳을 공격하기 상당히 버거운 위치라든가 까다로운 곳에 있어 짜증이 났었다.
하물며 난 고기 방패이자 파티의 탱거 역할을 했던 나다.
몬스터의 어그로를 끌기엔 약점포착 스킬이 알려 주는 곳을 공격하는 게 최고의 방법이었는데, 노멀 등급이다 보니 제대로 된 약점을 포착해 주지 않았다.
덕분에 어그로가 튀기 일쑤였는데, 그때마다 등줄기를 축축이 적셔 주는 땀과 혼란 가득한 파티원을 통제하느라 진땀을 뺐던 나다.
다 내 탓인가? 멍청한 딜러들 탓이지.
시키는 대로 딜 조절만 잘했어 봐. 그럴 일 없는데 말이야.
내가 이래 봬도 검은 손 길드의 작전 사령관까지 했던 나다.
그런 내 작전을 따라오지 못하는 멍청이들 탓이지.
아무튼.
그런 불편했던 약점 포착 스킬인데, 과연 레전더리 등급은 어떠할지 궁금해하며 눈앞의 분노한 고블린을 바라봤다.
“허…….”
분노한 고블린을 바라보는 순간 상당한 충격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런 것이 눈앞의 분노한 고블린의 전신 곳곳에 붉은 점이 확실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사람의 몸을 기준이라 하면 급소란 급소는 전부 표기된다고 해야 할까?
“어이가 없네.”
이건 뭐 그냥 훨씬 더 사냥이 수월해지라고 게임 업체에서 밀어주는 느낌이다.
아니!
내가 더 꿀 빨라고 밀어주는 거 같다.
그렇다면 아주 그냥 쪽쪽 빨아먹어 줘야지.
자세한 건 이따 사냥하면서 차근차근 알아보면 되고, 다음으로 통찰안의 효과였다.
일단 한번 바라보았을 때는 이름과 레벨이 전부였다.
그러나 통찰안이 생겼으니 어떻게 바뀔까 싶어서 분노한 고블린을 바라보고 있으니 시스템창이 반응했다.
[분노한 고블린을 통찰안으로 꿰뚫어 봅니다.]
-스킬 레벨에 따라 지금 알 수 있는 내용은 계체 값입니다.
-개체 값을 분석합니다.
-개체 값은 20%입니다.
오호라 이런 식이라 이거지.
일단 지금 분석한 개체 값이 20%란다.
저게 무엇을 뜻하는지 정확하게 모르겠다.
이것은 좀 더 연구해 봐야 할 것 같으니 일단 가장 빠르게 비교할 방법이 있다.
“팅고의 개체 값 분석을 해 볼까?”
내가 팅고를 바라보며 그렇게 말하자 바로 시스템 창이 반응했다.
[소환수 ‘팅고’의 개체값을 분석합니다.]
-개체 값은 90%입니다.
오호 상당히 높은 수치.
그렇다면 범이는 어떨까?
[소환수 ‘범이’의 개체값을 분석합니다.]
-개체 값은 98%입니다.
범이는 98%란다.
이렇게 되니깐 오히려 놀라운 건 팅고였다.
“너 이 자식. 상당히 쓸 만한 녀석이구나.”
나는 팅고의 어깨를 두드리며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팅고는 기분이 좋아졌는지, 혼자 고블린 특유의 울음소리와 함께 좋아했다.
“끼엑! 끼에륵!”
혼자 신나하며 크게 웃어 버리는 팅고 녀석.
저 멀리 있던 분노한 고블린이 우리를 발견하게 만들어 버리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끼엑!”
“끼엑! 끼엑!”
우릴 발견한 분노한 고블린이 소리치자 저 멀리서도 들려오는 다른 고블린의 울음소리였다.
“쩝. 별수 없지.”
아직 통찰안이라는 스킬을 더 연구하고 싶었지만, 이건 뭐 어쩔 수가 없다.
일단 인던부터 해결해야지.
그리고 옆에서 웃다가 시무룩해지는 팅고 녀석을 보며 나는 어깨를 두드려 주며 말했다.
“뭘 기죽고 그래. 괜찮아, 괜찮아. 어차피 싸워야 했는걸.”
“끼에륵…….”
뭔가 미안해하는 얼굴과 함께 축 처진 어깨를 보고 있자니 내가 더 미안해지는 상황이다.
그래서 팅고의 기를 살려 줄 겸 한마디 했다.
“그럼, 가서 저놈들을 쓸어버려! 너만 믿는다. 팅고!”
“힘내겠다! 주인님!”
“가랏! 팅고. 너로 정했다.”
그렇게 말하며 나는 범이에게 손을 뻗었다.
“냐앙.”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며 내 품에 안기는 범이였다.
그런 범이를 안아 주며 내가 말했다.
“자, 우린 뒤에서 구경이나 해 보자고 홉 고블린 워리어가 된 팅고의 싸움을.”
“냐앙!”
나와 범이는 팅고의 뒤를 따라 느긋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유일하게 홀로 싸우게 된 팅고는 거친 포효와 함께 분노한 고블린을 향해 달려들었다.
* * *
팅고 버스는 쾌적했다.
얼마나 쾌적했냐고 하면 잠깐 졸았다.
“게임 속에서 졸아 보긴 또 오랜만이네.”
진짜다.
지금 내 입가에 흐르는 침을 손으로 닦아 내며 정말로 내가 잠들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나만 아니라 범이도 한참을 잠들었다가 깨어났는지, 지금 눈앞에서 기지개를 켜는 중이다.
“고생했어. 팅고.”
“충! 다음 명령을!”
한바탕 분노한 고블린을 휩쓸어 버리고 도착한 인던 보스 몬스터.
[분노한 홉 고블린 Lv40]
저기 눈앞에 보이는 이곳 인던의 주인을 바라보며 나는 엄지를 척하고 들었다.
[분노한 홉 고블린을 통찰안으로 꿰뚫어 봅니다.]
-개체 값을 분석합니다.
-개체 값은 0%입니다.
개똥이네.
그럼 답은 하나지.
“죽여.”
나는 엄지손가락을 아래로 척하고 내리며 그렇게 명했다.
“충!”
멋지게 한마디 외치고 달려가는 팅고였다.
그런 팅고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딱 하나.
“파괴의 가호.”
[스킬 ‘파괴의 가호’를 사용했습니다.]
-모든 파티원과 소환수의 공격력을 30% 상승시킵니다.
내가 해 줄 것은 이것 하나.
원래라면 범이와 내가 연계하여 보스 몬스터를 무력화시킬까 했지만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다.
그만큼 팅고는 강력해졌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팅고가 보스 몬스터와 싸울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팅고! 일기토!”
“끼에륵!”
[소환수 ‘팅고’가 일기토를 사용합니다.]
-대상은 분노한 홉 고블린입니다.
-대상의 모든 능력치를 10% 떨어뜨립니다.
이거면 충분하다.
그리고 훤히 보이는 홉 고블린의 약점은 가슴에 선명하게 보였다.
“끼에륵!”
보스 몬스터는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팅고를 향해 거칠게 포효했다.
마치 동족끼리 왜 이러냐는 듯한 얼굴이었는데, 그런 보스 몬스터를 향해 팅고는 망설임 없이 그대로 달려들었다.
그 모습에 뒤늦게 반응하려던 보스 몬스터였지만, 이미 팅고의 주먹은 약점포착에서 가장 진한 붉은 표시가 있는 가슴에 도착해 있었다.
퍼어어억!
묵직하고 강력한 일격.
보스 몬스터는 그대로 천천히 바닥을 향해 서서히 쓰러졌다.
그리고 이어지는 시스템 창.
[분노한 홉 고블린을 쓰러뜨렸습니다.]
-인스턴스 던전의 클리어 조건을 충족했습니다.
-인스턴스 던전을 클리어 했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깔끔한 클리어 .
인던의 보스를 만나기 전에 올랐던 레벨 업과 이번 레벨을 합쳐 도합 3레벨을 더 올렸다.
고작 한 바퀴 도는 것 치곤 엄청난 효율.
나는 만족하는 전리품을 챙기기 위해 스킬을 사용했다.
“도축.”
-분노의 반지를 획득했습니다.
엥?
보상이 이게 끝이라고?
인던이 뭐 이래.
그 와중에 나의 심기를 더 거스르는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퀘스트가 완료되었습니다.
-퀘스트가 생성되었습니다.
[신성 교단의 손님]
난이도: 쉬움.
제한: 선행 퀘스트를 완료한 자.
내용: 당신을 기다리는 자가 있습니다. 빨리 미리엘 장로에게 향하십쇼.
보상: 연계 퀘스트.
특이 사항: 강제 퀘스트입니다. 거절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