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4화
스킬…. 냉정…?
처음 보는 화면이 아니었다.
처음 스킬이라는 단어가 나타났을 땐 그저, 숙취에 쪄 들어 정신을 놓은 줄만 알았다.
그 뒤로도 여러 번 나타났지만, 정신이 피폐해져 헛것이 보이는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쯤 되니 내가 정신을 놓은 것이 아니었다.
이 세계는 무언가 이상하다.
‘뭐지? 이 기시감은….’
생각에 빠진 것도 잠시.
아니, 생각할 틈도 없었다.
이름과 나이 그리고 출신지 등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장군은 나에게 소리치며 한 사람을 나의 눈앞에 데리고 왔다.
아내.
노인을 만나기 전 대장군이 되어 백성들을 살피는 과정을 군말 없이 따라준 나의 소중한 아내였다. 물론, 노인에게 금전을 얻은 후에 만나기는 했으나, 언제 만난 건 중요하지 않았다.
아내는
언제나, 늘, 나의 편이었다.
“……!!”
당황한 나의 눈빛을 알아챈 장군은 나를 향해 비릿한 미소를 짓기 시작했다.
“다시 한번 말하지. 네놈의 성과 이름을 말하거라. 그렇게 한다면 그간의 실수는 모두 잊고 너의 아내를 풀어주도록 하마.”
[스킬 [냉정 LV MAX]가 발동합니다.]
“……!!!!”
순간적으로 입이 벌어지던 찰나였다.
눈앞에 뜬 메시지는 처음 보는 글자였음에도 나의 눈에 정확히 읽혀 들어왔다.
‘안 된다. 말하면 안 된다…!! 저것은 허상이다. 내가 떠나올 때만 해도 아내는 살아있었다. 헌데….’
입술에 피가 터지도록 꽉 깨문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그들은 급기야 아내에게 채찍질을 했고 아내의 몸이 찢어져 피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말을 하고 싶었다.
내가 사랑했던 아내.
나를 믿어주었던 아내.
비록 정신을 차리고 만난 아내였지만, 그 누구보다 아꼈던 아내였다.
그런 아내가 나의 눈앞에서 살갗이 떨어져 나가 괴로움에 울부짖고 있었다.
괴로움에 발버둥을 치며 아내를 보지 않기 위해 고개를 돌렸을 때였다.
“제가 못나고 어리석어 이 자리에서 당신을 괴롭게 하고 있으나, 전 당신의 아내로 시중을 들며 받든 지 7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런 고통을 당하게 되었으니 그 고통이 참을 수 없을 정도입니다.”
“……”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나에게 아내는 말을 잇기 시작했다.
이미 온몸이 피로 범벅되어 그 몰골이 차마 말로 할 수 없을 정도였다.
“감히…. 당신께 저들에게 기어가 절을 하며 애걸해달라고 하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당신이 한마디만 해주시기를 바랄 뿐입니다. 당신이 한마디만 해주신다면 제 목숨을 온전히 할 수 있을 것인데…. 어찌 감정이 있는 사람이 제 모습을 보고도 모질게 한 마디를 아끼십니까?”
비릿하게 웃는 장군에게 매질을 당하며 아내는 눈물을 비 오듯 흘리며, 고통에 몸부림쳤다.
처음에는 단 한 마디만 해달라는 부탁이었으나, 고통을 못 이기겠는지 아내는 나를 저주하고 욕하기 시작했다.
“……”
“지독한 놈이군. 네 아내에게 이보다 더한 고통을 줘도 괜찮은 것이냐? 네놈이 말하지 않는다면 팔, 다리를 하나씩 잘라낼 것이야.”
[스킬 [냉정 LV MAX]가 발동합니다.]
.
.
[스킬 [냉정 LV MAX]가 발동합니다.]
다행인지, 아닌지 잘 모를 상황에서도 냉정이라는 저 스킬은 나의 침착함을 되찾게 도와주고 있었다. 저 스킬이라는 메시지가 나타났을 땐 나도 모르게 차분한 감정을 유지 할 수 있었다.
“……”
다시 한 번 말을 하지 않자, 장군은 향해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좋다. 네놈이 택한 것이니.”
말을 마친 장군이 아내의 팔, 다리를 절단해 불구덩이에 집어던져 버렸다.
‘아…. 미안하오. 부인…. 내 다음 생에 꼭 이 죄를 갚도록 하겠소.’
눈앞에서 아내의 죽음에도 입을 열지 않은 것은 고집이었는지, 몇 번씩이나 나를 도와준 노인에 대한 의리를 지키려는 것인지는 나조차도 가늠이 가질 않았다.
하지만.
이 냉정이라는 스킬이 나를 도와주고 있다는 것은 확실했다.
“좋다. 네놈의 죄를 물어야겠군. 후회하지 말거라.”
스걱.
장군은 그렇게 자신의 검을 들어 나의 목을 베어 버렸다.
그리고 유체 이탈이라도 겪는 것인지, 나의 몸이 바닥에 누워져 있는 모습이 보였다.
‘영혼…? 난, 죽은 것인가…. 아니. 이것은 허상이다.’
장군은 나의 영혼을 포박하여 이동하자, 순식간에 시야가 변해 알 수 없는 사람의 앞에 섰다.
마치, 재판장 같은 모습의 그 모습은 내가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이놈은 이곳에 있어서는 안 될 인간이 아닌가! 당장 이놈을 지옥에 처넣거라!!!”
분노하는 재판장의 말을 따른 장군이 나를 용광로에 집어넣었다.
영혼 상태였음에도 느낄 수 있었다.
화염에 휩싸여 타는 고통.
고통은 한 가지가 아니었다.
용광로에 이어서 쇠몽둥이로 맞았으며, 방아에 빻아지고 맷돌에 갈리며 불구덩이에 넣어지고, 끓는 물에 삶아지며, 도산(刀山)과 검수(劍樹)에 오르는 등 고통이라는 고통을 모두 당했다.
하지만.
매번 고통이 밀려올 때마다 나에겐 스킬, 냉정이 눈앞에 나타나 나의 감정을 통제했다.
‘노인의 의중은 아직도 모르겠지만, 사내대장부가 약속한 이상. 한 입으로 두말을 할 수는 없는 법. 참는다…!!’
여러 번의 고통을 참아내며 입을 열지 않자, 옥졸들이 더 이상 고문할 게 없다며 재판장에게 아뢨다.
대왕은 분노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노려보았다.
“좋다. 이놈은 음적(陰賊)이니, 남자로 만들기에는 적당치 않다. 그러니 여자로 만들어라!!”
재판장은 분노를 식히지 못한 채, 나를 여자로 환생시키라 지시했다.
옥졸들에게 끌려가는 나는 계속해서 눈앞에 메시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스킬 [냉정 LV MAX]가 발동합니다.]
[스킬 [냉정 LV MAX]가 발동합니다.]
[스킬 [냉정 LV MAX]가 발동합니다.]
.
.
.
감정이 요동을 치는 것인지, 메시지는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그 순간 옥졸들은 지상이 보이지 않는 검은 구름 속으로 나를 집어 던져 넣었다.
번쩍!
한참을 떨어지는 와중에 나는 정신을 잃었다.
* * *
정신을 차리고 눈을 뜨자, 나의 눈앞에 보이는 것은 낯선 천장이었다.
처음 보는 장소.
처음 보는 사람들.
생전의 의식과 기억은 온전했고, 당황한 나의 눈앞에 뜨는 메시지는 같았다.
냉정.
무엇 때문인지는 알지 못했으나, 이 스킬이 나의 평정심을 지켜주는 중이었다.
‘나는 환생한 것인가…?’
잠시간 생각을 하며, 몸을 이리저리 둘러보자, 근육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어린아이의 보송보송한 팔과 다리가 눈에 보였다.
‘아…. 나는 여자아이로 환생한 것이구나.’
[스킬 [냉정 LV MAX]가 발동합니다.]
당황도 잠시.
이 아이의 아비와 어미로 보이는 사람들의 대화가 이어졌다.
“여보. 저희 아이는 말을 못 하나요…?”
“그런가보오…. 울지도 않는 것이…. 어찌 이런….”
두 사람의 대화를 들은 나는 울지도 웃지도 말을 하지도 않았다.
하지 못함이 아니었다.
하지 않은 것일 뿐.
그렇게 말을 하지 않은 채.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갔다.
* * *
단숨에 19년의 세월이 흘렀고 말을 하지 못함에도 나의 아비와 어미는 나를 아껴주고 애지중지 키워주었다.
부모의 사랑을 다시 한 번 느끼는 순간이었다.
일찍이 황 대감을 보내고 흥청망청 재산을 탕진하던 그때가 생각이 났다.
‘이번 생은…. 이 두 사람에 대한 은혜는 꼭 갚을 것이야…!!’
하지만….
부모의 사랑과는 달리 나의 몸은 태어나서부터 병치레를 많이 해, 침을 맞고 뜸을 들이고 약을 먹으며 치료하는 것이 거의 그치는 날이 없었다.
그런 와중에 침상에서 굴러 떨어지고 갖은 고통과 상처에도 나는 입을 열지 않았다.
내가 환생하기 전 겪은 고통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친척들과 주변 모든 사람에게 나는 말을 하지 못하는 여자로만 여겨졌다.
또래 아이들은 나를 놀리고 바빴고 조롱하기 바빴으나, 그런데도 나는 말하지 않았다.
살아온 세월과 그간의 고통이 있어서인지, 또래 아이들의 조롱은 그저 귀여워 보일 뿐이었다.
‘어린 노무 자식들이….’
다행스럽게도 나의 용모는 몹시 뛰어났고 말을 하지 못할 뿐, 그 용모는 순식간에 소문이나 매파를 통해 청혼받기 이르렀고 나이가 꽤 찼기 때문인지, 나의 부모님도 동의했다.
청호.
나의 남편의 이름이었다.
여자로서 살아보니, 남자였을 적이 생각나 적응되지 않는 부분들도 많았지만, 그럭저럭 조신한 여자 행세를 하며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시련이 없지는 않았다.
말을 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남편의 집안에서 결혼을 거절했고 청호는 제 뜻을 저버리지 않고 밀어붙였다.
“아내란, 자고로 현명하면 되는 법인데, 말을 해 무엇에 쓰겠습니까. 저는 그녀가 말만 많은 그저 그런 여인들에게 충분한 본보기가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니 결혼을 승낙해주십시오.”
청호는 자신이 반한 여자를 놓칠 수 없다는 생각에 집안과 등을 지는 한이 있더라도 나와 결혼하려 했고 그 고집을 이기지 못한 청호의 집안은 겨우 승낙하게 되었다.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 혼인 생활하는 동안 나와 청호 사이의 정이 매우 두터워졌고, 우리 둘 사이에 사내아이 하나를 낳았다. 이 아이가 막 두 살이 되었을 무렵, 어찌나 총명한지 당해낼 사람이 없었다.
“부인. 우리 아이가 이렇게 총명하고 무예에 재능을 보이다니. 집안을 일으킬 보물과 같은 존재요.”
“……”
말을 할 수 없었던 나는 그저 청호를 향해 희미하게 웃을 뿐이었다.
“부인, 말 한마디 정도는….”
“……”
이런 나의 모습을 참을 수 없었는지, 청호가 조금씩 화를 내기 시작했다.
청호의 모습에서 말을 하지 못하는 내 모습을 점점 질려한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나의 입을 열기 위해 청호는 노력했고 여러 번의 시도가 있었다.
그것을 내가 모를 리가 없었지만, 나는 입을 열지 않았고 청호의 화는 머리끝까지 도달해 이윽고 터지고 말았다.
“아무리 말을 못 하는 사람이라도 소리는 낼 수 있을 것인데!! 입이라도 열 수 있을 것인데……!!! 어찌 이 나를 무시하는 것이오!?”
“……”
이 전까지는 이런 모습을 보인 적이 없는 청호가 아이를 들먹이고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도 나의 입이 열리지 않자, 매우 화를 내기 이르렀다.
“옛날 가대부(賈大夫)의 아내는 남편을 업신여겨 웃는 낯을 보여준 적이 없었으나, 남편이 꿩을 쏘는 것을 보고 그제야 그 감정을 풀어 웃었다 하오. 지금 내 비루함이 가대부보다 더하지도 않고, 못하지도 않소. 그런데도 당신은 끝내 입을 열지 않는 것이오!? 대장부가 이다지도 아내의 업신여김을 당한다면 그 자식은 어디다 쓰겠소!!!”
분노에 휩싸인 청호를 말릴 수는 없었다.
이제는 여인의 모습으로 지낸 지, 수십 년 나에겐 대장군 시절의 근력과 무예 능력은 남아있지 않았다.
나는….
여인이 되어 청호를 사랑했고 그의 사랑이 오랫동안 유지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청호는 외모를 보고 나에게 청혼을 한 것 때문인지, 그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난 부인을 사랑했소. 하지만, 부인의 업신여김을 더 이상 참을 수가 없구려. 입이라도 열어 보시오!!”
청호는 목소리를 낮게 깔아 어린 아들의 몸을 하늘 높이 들어 올렸다.
“부인이 입을 열지 않는다면, 이 아이를 죽이겠소.”
청호의 분노가 가라앉기를 바랐지만, 청호는 넘지 말아야 할 다리를 건너고 있었다.
나를 향한 청호의 사랑은 여기까지였다.
나의 마음은 찢어지게 아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노인의 말을 떠올렸다.
허상.
이 아이도 나의 남편인 청호도 모두 허상이니.
나의 감정은 오롯이 나의 것.
이 모든 것을 이겨내야 나의 이야기가 이어질 것이니.
“젠장!!!”
청호는 한 마디의 외침과 동시에 나의 아이를 바닥에 집어 던졌다.
쾅!!!
‘……!!!’
나의 입에서 외마디의 말이 터져 나올 때였다.
[스킬 [냉정 LV MAX]가 발동합니다.]
[스킬 [냉정 LV MAX]가 발동합니다.]
[스킬 [냉정 LV MAX]가 발동합니다.]
.
.
.
스킬의 덕분인지, 나는 다시 한 번 입을 닫을 수 있었다.
그리고.
아이의 머리가 터져 죽는 모습에도 말을 하지 않자, 그 모습을 보며 희, 로, 애, 락, 애, 오, 욕. 그동안 느꼈던, 모든 감정과 함께 주마등처럼 모든 기억들이 머릿속을 휘저으며, 기억들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아…. 난, 황 대감의 첫째 아들도, 말을 못 하는 명문가의 여인도 아니었구나….”
[당신의 ‘명’이 갱신되었습니다.]
[당신의 ‘명’을 강하게 되새깁니다.]
[모든 능력치가 회복되었습니다.]
[사용자의 의지로 스킬의 사용이 가능해집니다.]
[정령왕, ‘실리아나’의 시험을 통과하였습니다.]
[보상으로 스킬, [정령화 LV1]을 획득하였습니다.]
[히든보상으로 스킬, [칠정안(七情眼) LV MAX]을 획득하였습니다.]
[보상으로 모든 능력치가 3000씩 상승합니다.]
[1분 뒤 본래의 자리로 돌아갑니다.]
폭주하는 시스템의 메시지를 뒤로한 채, 내가 말을 하자, 청호가 당황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부…. 부인…!! 드디어 말을…. 아차, 아이는…. 우리 다시 낳으면 되지 않겠소…? 미…. 미안하오. 부인. 내 화를 참지 못하여….”
이미 아이를 죽인 청호의 두 눈에 두려움과 환희 그리고 공포와 후회가 깃들기 시작했다.
자신의 아이를 죽였다는 후회.
아이를 죽이자, 말을 하는 나의 모습을 보며 느낀 조그마한 환희.
그리고
“감히, 네 새끼를 죽여? 허상이든 뭐든 그 죄는 당연히 몸으로 갚아야겠지?”
“말을 하지 못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소…!!! 다만, 입을 뻐끔거리기라도 해주길 바라서…!!!내 답답해서 그랬소. 미안하오, 부인…!!”
자신이 사랑했던 부인의 입에서 흘러나온, 남성의 목소리를 들은 두려움과 공포. 그럼에도 횡설수설 나에게 사과하는 청호였다.
스스스.
나의 모습이 본래의 모습으로 변해가자, 청호는 두려움에 엉덩방아를 찧었고 그 모습을 본 나는 청호를 향해 말했다.
“누구 손에 죽는지는 알아야겠지? 나는, 이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