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1화
하인의 안내를 받아 나갈 채비를 마치자, 곧 하인은 ‘결투 장소’라는 곳으로 나를 안내하기 시작했다.
* * *
나는 조금씩 상황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나이 스물셋. 이름은 황인재.
덕망 높은 황 대감의 첫째 아들로 성품은 좋지 못했고, 황 대감이 죽고 물려받은 재산을 이때다 싶어 펑펑 쓰기 시작한 희대의 망나니.
재산을 독차지하기 위해서 자기 동생들을 유학이라는 핑계로 저 멀리 보내 버렸고, 지원을 일절 끊어버린 패륜적인 인물.
황인재의 일과는 그저….
남은 재산을 탕진하며 돌아가신 아버지의 권력을 등에 업고 자신 마음대로 사는 한량 중의 한량이었다.
매일매일 반복되는 음주와 가무를 즐기는 쓰레기 같은 이가 황인재였다.
나는 궁금했다.
본래 내가 이런 사람이었던가?
아니면…. 내가 모르는 사이에 미쳐버리기라도 한 것일까?
의문이 강하게 들었지만,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나는 본래 이런 사람이었구나.
술에 취해 잠시 정신을 놓았다고 생각하는 중이었다.
그것 말고는 달리 생각할 것이 없었다.
결투 장소에 도착한 나는 최대감의 자녀에게 결투 신청을 한 연유를 살폈다.
“하하. 이보게, 인재. 이제 오는 것인가? 무서워서 도망간 줄 알았건만?”
“뭔 당나귀 뒷발 차이는 소리야? 하루빨리 죽고 싶어 환장한 것이냐?”
“으하하핫. 말하는 것을 보아하니, 돌아가신 황 대감의 뒤를 빨리 따라가고 싶어 안달이 난 것 같구나.”
“어이, 최명규.”
“왜 그런가? 소원을 이루어줄 나에게 부탁할 것이 있는가?”
나는 최명규를 노려보았다.
단순히 도발에 넘어가서는 아니었다.
결투란 본디, 이기기 위해 하는 것. 위압감을 주기 위함이었다.
나의 기억 속의 최 대감의 자녀 최명규는 사사건건 나를 귀찮게 하는 자식이었다.
아버지의 경쟁자인 최 대감.
아버지가 죽고 권력 1순위가 되어버린 최 대감이었다.
이 나라에서 최 대감이 살아있는 한, 그의 자녀는 누구도 건들지 못하는 막강한 권력의 사내였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아버지는 돌아가셨지만, 그동안의 업적으로 ‘왕’은 나의 아버지에게 가야 할 모든 보상을 주었고, 최 대감과 더불어 그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존재가 되어있었다.
그야말로 나의 세상이었다.
“네가 오늘 아가리를 터는 것을 보니, 빨리 죽고 싶은 것 같은데 맞는가?”
“하하하하. 입만 산 것은 여전하구나. 좋다. 내기는 무엇으로 하겠는가?”
최명규는 자신감에 차 있었다.
자신의 검술로 나를 이기겠다는 생각.
자신의 입지를 더욱더 높이고자 사사건건 나를 건드려댄 것이다.
“내기라…. 그렇군. 내기 좋지. 지는 사람이 평생 부하로 남는 것은 어떠한가?”
“오호…. 꽤 파격적인 제안 아닌가? 좋네! 맨손 격투와 무기, 무엇을 택하겠는가? 내 자네가 매일 놀고먹는 것을 알고 있는데. 죽기 싫으면 맨손이 좋지 않겠는가?”
최명규는 몰랐다.
하루하루 수행에 힘쓰며 자신의 아버지에게 누를 끼치지 않고자 노력이라는 것을 하는 최명규와는 달리, 황인재는…. 천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천재였다.
격투면 격투, 검이면 검, 활이면 활.
모든 것이 수준급에 도달한 사내.
마음만 먹는다면 ‘고구려 제일 검’이 되는 것도 쉬운 일이었다.
마음을 먹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지만.
“흠…. 자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검으로 하는 게 어떻겠는가?”
“좋네. 후회는 하지 말게나.”
나는 최명규를 더욱더 강하게 노려보며 살기를 뿜기 시작했다.
[스킬, [강렬한 눈빛 LV MAX]을 발동합니다.]
‘응…? 이건 뭐야…?? 스킬?’
눈앞에 뜬 메시지에 당황한 것도 잠시.
검을 휙휙 저으며 다가오는 최명규 덕분에 금세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지금은 이게 먼저지.’
알 수 없는 메시지들이 눈앞에 보였지만, 술이 덜 깨어 헛것이 보이는 거라 착각에 빠진 나였다.
“이보게, 명규.”
“또 왜 그러는가? 무섭다고 빈다면 내 여기서 그만둬줄 수도 있는데?”
“아아. 그게 아니야. 이왕 시작한 거 제대로 해야 하지 않겠는가?”
“무엇을?”
“여기 있는 모두가 증인이오. 나와 최명규의 결투는 모든 이가 알고 입에서 입으로 소문이 퍼질 것이오. 혹여, 관직에 오르더라도 평생을 패배자라는 꼬리표를 들고 다니겠지. 진 사람은 이긴 사람의 평생의 부하로 남는 것은 물론, 무릎을 꿇고 부하가 되기를 간청하는 거로 하겠소.”
[우와아아아아!!!]
“해보라고!! 재밌겠는데!?”
“황 대감의 자녀와 최 대감의 자녀의 결투라니. 이것만큼 재미있는 구경이 어디 있겠는가!!”
황당한 표정을 짓는 최명규에게 나는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구경꾼들은 그야말로 신이나 있는 상태였다.
축제의 한 장면이었다.
그리고 구경꾼들은 몰래몰래 자신들의 화폐를 내기에 걸기 시작했다.
“야, 복돌아.”
“예. 도련님.”
“네놈이 나에게 걸 거라. 어차피 이길 것이 아니냐.”
“알겠습니다. 도련님. 하하….”
탁!
준비를 마친 나는 근처의 나무에서 기다란 나뭇가지를 하나 부러트렸다.
휙! 휙휙!
“흠…. 이 정도면 괜찮겠군.”
“이보게, 인재. 지금…. 무엇을 하는 것인가…?”
“아아. 네놈의 멍청한 머리로는 이해를 하지 못하는 건가?”
“이놈이…!!! 목숨만은 살려주려 했더니…!!”
“네놈과 나의 실력 차이가 겉으로만 봐도 엄청나다는 것을 내 알겠는데, 자네는 모른단 말인가? 하기야. 모르니까 나에게 덤벼들었겠지. 긴말 말고 들어 오거라.”
도발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실력 차는 확연했다.
그것을 모르는 건 최명규였을 뿐.
“으랴아아압!!!”
거친 기합을 내며 달려오는 최명규의 검술은 그야말로 초급자보다 더 강한 수준인 중급자 정도였다.
이제 막 중급자의 반열에 오른 최명규와 5년만 노력한다면 고구려의 대장군까지 노려볼 수 있는 황인재의 실력이었다.
이 둘의 차이는 격투기를 배운 어른과 이제 막 스텝을 밟기 시작한 초등학생의 싸움 정도로 차이가 큰 상태였다.
희대의 천재.
이것은 말뿐이 아니었다.
하지만, 황인재는 노력하지 않고 놀고먹는 한량의 길을 택한 것이다.
휙!
탁!!
“악!!”
나는 본능적으로 몸을 움직여 회피한 후, 나뭇가지를 이용해 최명규를 타격했다.
“아프냐? 지금이라도 무릎을 꿇고 파리처럼 빈다면 내 한 번쯤은 용서해 줄 의향이 있다만?”
“다, 닥쳐라!!”
“쯔쯧. 그놈의 자존심 때문에 평생을 복돌이와 같이 지내겠구나. 아아. 네놈은 복돌이 후임이니 복돌이가 더 위다. 괜찮으냐?”
“개…. 우라질 놈이!!!”
나…. 원래 이렇게 도발을 잘했나…?
나 자신이 말을 하면서도 스스로 감탄을 하는 중에 최명규가 자신의 진검을 휘두르며 다시 덤벼들었다.
오른쪽 어깨.
오른팔.
왼 다리.
상단 베기.
‘쯧. 보인다 보여.’
지루했다.
나는 전투를 끝낼 생각으로 나뭇가지를 본능에 맡겨 휘두르기 시작했다.
[스킬, [태극검 LV MAX]을 발동합니다.]
“어? 아까와 같은…. 뭐지…?“
”한눈을 파는 것이냐!!“
시스템의 알림에 한눈을 팔자, 이때다 싶은 나는 최명규가 나의 상단을 베기 위해 큰 동작으로 검을 그어냈다.
하지만.
한눈을 팔아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것이다.
휙!
휘릭! 탁! 탁!
검을 피해낸 나는 나뭇가지를 이용해 최명규의 오른 손목과 왼 손목을 강하게 타격해 검을 떨어뜨렸다.
그리고.
“인정하지 않는다면 맞아야지. 그렇지?”
최명규를 향해 씨익. 웃은 나는 나뭇가지로 최명규를 패기 시작했다.
탁!!!
“악!”
탁!! 탁!
“으억…!”
탁탁!! 탁!!
“그…. 그만….”
“응? 뭐라고? 안 들리네?”
탁!!! 탁탁!!!
“그…. 그만…. 제가 졌습니다….”
“이제야 잘 들리는구나. 다음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아느냐?”
“……”
최명규는 망설이고 있었다.
이곳에서 자신이 누군가에게 무릎을 꿇고 부하로 받아주라는 말을 한다는 것은 아버지의 얼굴에 먹칠하는 것은 물론, 앞으로 자신의 인생에 커다란 오점이 생기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5초.”
“……??”
다짜고짜 초를 새는 나를 향해 온몸에 매질을 당한 최명규가 두려움 가득한 눈빛을 내며 바라보았다.
“4초.”
“자…. 잠시만….”
나는 봐줄 생각이 없었다.
놀 거면, 이 정도의 권력을 가진 놈을 데리고 다니는 것도 꽤 좋은 방법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지금 나를 따라다니는 놈들은 나의 재산과 호탕한 성격에 콩고물이라도 얻으려 하는 놈이겠지만, 최명규는 달랐다. 야망이 있고 강해지고 싶은 욕구가 가득한 놈. 이놈은 나를 뛰어넘기 위해 평생을 노력할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런 놈 하나는 있어야 내가 재미있지. 크크.’
“3초.”
나는 계속해서 초를 세고 있었다.
뭐, 솔직히 말하자면 초를 세고 있지만, 시간이 다 되었다고 해서 최명규를 어찌할 생각은 없었다. 최 대감의 자녀를 죽일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저, 겁을 주면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고 말겠지. 딱 그 뿐이었다.
“2초.”
하지만.
최명규는 멍청했다.
나도는 소문을 의식하지 않은 채 살면 될 것을….
털썩.
소문보다는 겁을 주는 나에게 겁먹어 무릎을 꿇고 말았다.
“내…. 내 이렇게, 부탁하오. 나를…. 부하로 받아주시오.”
“말이 짧네? 1초.”
“죄…. 죄송합니다!! 앞으로 나 최명규는 황인재를 형님으로 받들고 평생을 모시겠소…!”
“옳지. 좋다. 일어나거라.”
“예….”
1초라는 말에 얼굴빛이 변한 최명규는 그제야 넙죽 엎드리며 나를 향해 말했다.
자존심이 무엇인지,
“이놈은 앞으로 나의 부하다. 내가 허하기 전에는 이놈과 나에 대해 소문을 퍼트리는 자는 지옥 끝까지 쫓아가 사지를 잘라내 버리고 가문을 멸할 것이다. 알겠느냐!?”
당장, 소문이 퍼지는 것을 막은 나는 주변을 둘러보며 일갈했다.
말뿐만이 아니었다.
나에겐…. 아직 저 정도의 힘은 남아있었다.
그리고 재산도.
“모두 자리를 뜨거라!”
푸욱!
나와 최명규의 결투를 구경 중이던 사람들이 자리를 벗어나자, 나뭇가지를 던져 땅에 깊숙이 박아 넣으며 말했다.
“명규야. 형님 아우가 되었으니, 이제 음주와 가무를 즐겨야 하지 않겠느냐? 오늘은 기분이니 내가 사겠다. 어떠하냐?”
“조…. 좋습니다….”
“짜식. 주눅 들었군. 괜찮다. 편하게 지내거라. 다만, 복돌이가 네놈보다 선배니 깍듯이 대하거라 알겠느냐?”
“아…. 알겠소. 형님.”
“그래, 그래.”
최명규에게 이보다 더한 굴욕은 없었다.
제 아버지의 경쟁자인 황 대감.
하지만, 황 대감은 이미 죽었고 최 대감이 일인자로 오른 지금. 그의 자녀에게 무릎을 꿇은 것도 모자라 ‘형님으로 받아주세요.’ 라니…. 최 대감의 귀에 들어간다면 웃고 넘어갈 상황은 아니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황인재의 말이 두려운 구경꾼들은 소문을 퍼트리지 않았다.
* * *
두 계절이 지났다.
그런데도 황인재의 삶은 변한 게 없었다.
매일매일 도박과 음주와 가무에 빠져든 삶.
관직에 오른다거나, 나라를 위해 힘쓰겠다는 말은 황인재에게 쓸 데 없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아우가 된 최명규 또한 황인재 덕분에 비슷한 삶을 살고 있었다.
“이보게, 명규! 놀자!! 나오거라!”
“예!!! 형님!! 지금 나갑니다!!”
왜, 상황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지 않았던가?
최명규는 어느새…. 황인재에게 물들어 망나니의 삶에 한 몫 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지나치게 방탕한 생활을 이어가는 황인재의 재산은 날이 갈수록 탕진되어 가는 중이었다.
그것을 신경 쓰지 않고 펑펑 쓰기만 하는 것은 황인재였다.
갱생의 여지가 없는 쓰레기 중에 쓰레기였다.
“오늘은 낮술이 어떤가?”
“좋습니다. 형님!! 술은 낮술이지요!”
“크하하하. 이제야 너와 내가 이렇게 합이 맞는구나.”
“조금 더 일찍 친해졌으면 좋을 걸 그랬습니다. 으하하하하.”
해가 쨍쨍한 낮에도 VVIP의 말은 절대적이었다.
열었을 리가 없는 기방에 들어선 황인재와 최명규는 그야말로 안하무인이었다.
“딸꾹! 오늘은 기분이다!!!”
촤르륵!!
황인재는 자신의 품을 뒤져 금전을 사람들에게 뿌리기 시작했다.
“키야아!!! 형님!! 역시 화통하십니다!! 으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