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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소설의 주인공이 성좌였다-70화 (70/206)

제70화

인간의 모습을 한 정령왕, ‘실리아나’는 그 용모가 아주 아름다웠다.

다른 무언가의 말로 대체 할 수 없을 정도의 아름다움.

넋을 놓은 채 실리아나를 바라본 것은 나만이 아니었다.

그 로봇 같던 차정우도 실리아나의 외형에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인간들이여, 그대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다.]

실라아나의 말에 정신을 차린 나와 차정우는 조용히 그녀의 말을 경청했다.

아름다움과는 별개로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 해도 이길 수 없다는 것이 그녀를 보는 순간 느껴졌다.

나뿐만이 아니었다.

그녀가 어느 정도로 강한지는 차정우 본인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인지, 차정우는 자신의 성검을 그녀에게 겨누지 않은 채 힘없이 바닥에 늘어트리고 있었다.

압도적인 강함.

나의 화안금정에 비치는 실리아나는….

짐작일 뿐이지만, 신선들, 손오공, 성좌들에 버금가는 강함을 지닌 것이 분명했다.

한계를 넘어선 강함.

두 가지 버프를 사용한다고 할지라도….

차정우가 그 어떤 비장의 수단을 쓸지라도….

그녀를 이기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저희는 당신의 종족인 상위 정령과 대정령을 모두 죽였습니다. 원망하지 않는 겁니까…?”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은 공포였고 두려움이었다.

온화하지만 온전히 느껴지는 그녀의 강함에 겁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본능이 말하고 있었다.

결코, 척을 지어서는 안 된다고.

결코, 덤벼들어서는 안 된다고.

[겁먹지 마세요. 정령들은 당신들에게 죽은 것이 아닙니다. 모두 이곳 정령계로 돌아와 휴식을 취할 뿐이죠.]

“저희를 보고자 한 이유가 뭐죠…? 솔직히 말하자면 당신의 정령계를 무너뜨리려 한 것이 저희 두 사람일 텐데요.”

실리아나는 나와 차정우를 번갈아 가며 쳐다보더니, 잠시 고민에 빠지는 듯 말이 없었다.

[저는, 아주 오래전 한 사람과 약속했습니다. 후에 찾아올 환생자를 도와주기로.]

“환생자…? 그것이 저희 둘입니까? 아니, 한 사람이라면 저와 이놈 중에 환생자가 있다는 얘긴가요?”

[글쎄요. 저도 모든 것을 알지는 못하니까요. 하지만…. 두 사람 중 한 사람일 가능성이 큽니다.]

“……”

황당한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차정우의 표정을 보니, 나만큼이나 혼란스럽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으니.

“그래서, 목적이 뭐지?”

무언가 결심을 한 듯, 차정우가 자신의 성검을 강하게 움켜쥐며 실리아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호호호. 목적이라…. 글쎄요. 저는 그 약속대로 당신들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할 겁니다.]

“제안?”

[내부의 용사님은 정령검, 엘키아를 얻기 위해 오셨죠?]

“……그렇다.”

뜻밖의 단어에 놀란 나는 잠시 차정우를 쳐다보고 이내 시선을 돌렸다.

정령검, 엘키아라니…?

[그리고…. 당신은 ‘정령화’를 얻기 위해 오셨고요.]

“맞습니다.”

숨길 수 없었다.

아니, 솔직하게 말하자면 숨길 필요가 없었다.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 투명하고 맑은 그녀의 눈앞에서는 거짓말을 해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걸 나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 두 가지 모두 얻게 해드리죠. 다만, 당신들의 존재를 정확히 알기 위해 당신들을 시험해보고 싶습니다. 이 시험에 통과한다면 당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어 갈 수 있을 겁니다.]

“그래서, 저희 둘 중 ‘환생자’를 찾기 위해 시험을 치르고 그에 맞는 보상을 주겠다는 말인 거죠?”

[맞습니다. 선택은 그대들의 몫. 강요하지 않을 테니, 직접 결정하세요. 거절한다면 본래 들어온 세계로 다시 돌려보내 드리겠습니다.]

“……시간을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말이 없는 차정우와는 반대로 나에겐 스킬 냉정이 존재했다.

물론, ‘불려간 자’답게 차정우에게 나와 같은 스킬들이 넘쳐날 테지만.

[좋습니다. 그대들의 시간으로 1시간 드리도록 하죠. 그럼.]

번쩍!

정령왕, 실리아나가 나타난 방법으로 빛과 함께 사라지자, 나와 차정우는 동시에 고개를 돌려 서로를 바라보았다.

“너, 이런 상황 알고 있었냐?”

“몰랐다.”

“어떡할 건데?”

“애초에 얻으려 한 것을 얻지 못했는데, 이대로 돌아갈 성 싶은가?”

“그래, 만난 건 아주 잠시지만, 너라면 그럴 줄 알았다.”

차정우는 아주 당연하다는 듯, 시험을 받기로 한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차정우처럼 선택받은 용사도 아니었고, 무엇보다 정령들을 이 정도로 죽여 댔는데 아무런 대가 없이 시험을 치른다? 거기에 보상을 주겠다니….

말로는 그들의 영혼이 정령계로 돌아왔다고는 하지만…. 당연하게 의심이 먼저 들었다.

“……”

고민하는 나에게 차정우가 천천히 다가왔다.

“그렇게 겁이 많아서 이 변해 버린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갈 생각이지?”

“……넌 목숨이 두 개냐? 겁이 많은 게 아니라, 신중한 거로 생각해주면 좋겠는데?”

“그 신중함 때문에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을 놓칠 수도 있다.”

“……”

차정우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아니, 일리보단 어느 정도 맞는 말이었다.

세상이 멸망하기 전에도 나는 매번 그랬다.

나는 남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남들보다 더 높은 자리에 설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떤 일을 해도 지지 않고 성공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생각은 나의 지나친 오만이었다.

노력하지 않았고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마인드.

이 마인드가 나를 갉아먹고 망치게 하는 길임을 나는 알지 못했다.

그저, ‘환생자의 재림’을 보며, 나도 저렇게 열심히 살고 싶다는 생각뿐.

나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명’을 안다는 이유로 더욱 자만하고 있었다.

강해질 기회.

겁먹고 움츠려 있다면 그 기회를 잡을 수 없다.

해보자. 할 수 있다.

애초에 죽일 생각이었다면, 마주친 순간 죽이는 게 더 쉬웠을 테니….

“좋아.”

“결정했나?”

“어. 넌 단순해서 좋겠다.”

“단순한 게 아니다.”

“아니야. 단순한 거야.”

“베이고 싶은가?”

“아니야. 베이고 싶지 않아.”

나의 말장난에 차정우는 한숨을 쉬며 몸을 돌렸다.

그리고

시간이 되기까지 차정우와 조금 이야기할 수 있었다.

나의 세계와.

차정우의 세계에 대해서.

“그나저나, 배후성은 왜 조용하지?”

“그렇군. 이곳은 성좌들이 간섭할 수 없는 곳일 수도 있다.”

“일리 있네. 신선계도 그랬으니까.”

“신선계?”

“이세계라고 있는데, 신선계라고 없을까. 너도 이세계로 가서 이 소리 저 소리 들어서 알 거 아니야.”

“뭘 말이지?”

“뭐…. 세월을 낚는 강자아 라던가, 제천대성 손오공! 이라거나.”

“아….”

차정우의 두 동공이 조금 커지는가 싶더니, 이내 역시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변해갔다.

역시, 이놈은 로봇이다. 적응력이 뛰어난 최첨단 로봇.

“아무튼, 슬슬 오겠지? 시험이 뭔지, 예상은 가냐?”

“안 간다.”

“응. 나도 안 간다.”

“……”

붙임성이라곤 눈을 씻고 봐도 없는 놈이었다.

이러다가 정이라도 들까 생각을 정리하며, 정령왕, 실리아나가 오기를 기다렸다.

* * *

한 시간이 흘렀다.

번쩍!!

“큭…. 젠장. 왜 자꾸 이렇게 등장하는 건데? 눈뽕!!!”

“음….”

차정우와 나는 입가에서 신음이 조금 흘러나오자, 그 뒤를 이어 빛이 사라진 후 실리아나가 눈앞에 서 있었다.

“이렇게 등장하는 걸 좋아하시나 봐요?”

[어쩔 수 없습니다. 저는 빛의 정령으로 시작했으니까요.]

“아…. 그런 이유가….”

단순한 이유였다.

자신이 빛의 정령이니, 등장도 빛과 함께. 라는.

[시간은 충분히 드렸고, 생각은 잘 해보셨나요?]

“시험에 응하겠습니다.”

“마찬가지다.”

나와 차정우가 시험에 응한다고 말하자, 실리아나는 고개를 끄덕이곤 허공에 손을 그어 두 가지의 포털을 생성했다.

각자의 설명과 함께 이세계의 용사인 차정우가 먼저 게이트의 앞에 섰다.

[어려울 겁니다. 시험에 통과하지 못한다면, 죽을 수도 있습니다. 다시 한 번 물어보는 거지만, 거절하셔도 됩니다.]

“아니, 나는 들어갈 것이다.”

[그렇군요. 제법 기개가 좋으시네요. 한 가지 알려드리자면…. 당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으세요. 그렇다면, 강해지는 것은 물론, 당신이 원하는 정령검을 얻어 갈 수 있을 것이니.]

“그 말. 꼭 지키길 바란다. 그럼.”

포털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는 차정우를 불러 세운 것은 나였다.

“야.”

“뭐지?”

“살아남으라고. 그래야 로봇 같은 네놈을 기다리는 그 사람을 찾아줄 수 있으니까.”

차정우는 나를 향해 피식. 웃고선 일말의 망설임 없이 포탈로 들어갔다.

“딱딱하기는.”

[다음은 당신 차례군요.]

포탈 앞에 선 나는 긴장감이 흘렀다.

잠시 뒤.

포탈 속으로 발걸음을 옮기려 하자, 실리아나는 나를 멈춰 세웠다.

[당신은 이미 기록자들에게 수행을 받았군요.]

“……네. 맞습니다. 제 스승은 ‘강자아’라 합니다.”

실리아나는 잠시 고민하는 듯했으나, 이내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곤 입을 열기 시작했다.

[역시…. 당신이 그 존재에 가깝겠군요. 이 시험은 어렵습니다. 아니, 어려운 걸 떠나 당신의 모든 것을 버려야 통과할 수 있습니다.]

“각오는 하고 있습니다.”

[각오라…. 그것만으로 이 시험을 통과하기란 어려울 겁니다. 다만, 당신이 정말 그 존재가 맞다면, 통과할 수 있을 겁니다. 제 말을 명심하세요. 이 시험은 본래 기록자가 되기 위한 시험. 당신은 모든 것을 버려야 합니다.]

“……”

당장 알 수 있는 것이 없었던 나는 그저, 실리아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제 말을 꼭 명심하고 기억하세요. 이것은 기록자들의 방식이지만, 통과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그리고?”

[이 시험을 통과하면 당신은 ‘정령화’를 비롯해 더욱 강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더 하실 말씀은?”

[부디, 당신이 그 존재이기를…. 남은 말은 살아 돌아오시면 그때 하도록 하겠습니다.]

실리아나의 말에 씁쓸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인 나는 그대로 포탈은 통과해 들어갔다.

어째서인지…. 나에게 말을 건네는 실리아나의 표정이 슬퍼 보였다.

기분 탓일 수도 있겠지만, 씁쓸한 미소가 나도 모르게 흘러나온 것은 그 때문인 것 같았다.

파앗!!

* * *

“여긴…. 어디지? 나는 누구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처음 보는 침대와 주변의 낯선 풍경들.

누군가의 몸속으로 들어 온 것을 느낀 건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도련님!! 깨어나셨습니까?”

“도련님…?”

낯선 사내의 등장에 당황했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거울을 본 나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내…. 얼굴이 이렇게 생겼었나…?”

이질감이 드는 외모였다.

못생겼다?

잘생겼다?

그런 것을 따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단순하게 느껴지는 기분이었다.

내 모습이 본래 이런 모습이었는지.

그런데도 나는 하인의 말에 즉각적으로 반응하고 있었다.

나인 듯 내가 아닌 듯한 말투와 행동. 그리고 외모.

“도련님!!”

“무슨 일이길래 그렇게 급하게 온 것이냐!?”

하인의 갑작스러운 등장에도 침착함을 유지한 채 말을 이어가는 나였다.

본래 있었던 일인 것처럼.

조금씩.

아주 조금씩.

거울 속 이 사내의 기억이 스며들어왔다.

이 정도면 망나니인데…? 이게 나라고…?

정신을 차리고 조금씩 기억나는 이 사내의 기억.

이 기억이 나인지 아닌지는 현재의 나는 몰랐다.

그저, 기억나는 대로….

“도련님!! 어제 술을 그렇게 드시더니, 기억이 잘 안 나시는 겁니까!?”

하인은 나를 몰아붙이기라도 하듯, 급박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기억 안 나십니까? 어제, 최 대감의 자식에게 결투를 신청하지 않으셨습니까!! 시간이 되셨습니다.”

“아…. 어?”

하인의 말에 잠재된 기억은 더욱더 강하게 밀려 들어왔다.

그리고

나는 기억해냈다.

황 대감의 첫째 아들 황인재.

전날 밤, 술을 너무 많이 마셔 기억을 못 하고 있었다는 걸.

“아아, 그 망할 새끼. 기억났다. 가자. 복돌아.”

“예!! 도련님!! 채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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