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화
이 성좌는…….
“당신이었군요.”
[성좌, <검은 날개를 가진 밤의 여왕>이 무엇을 원하는지 궁금해합니다.]
“아린이의 성장을 원합니다. 적절하게.”
[성좌, <검은 날개를 가진 밤의 여왕>이 위험할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성좌, <검은 날개를 가진 밤의 여왕>이 시간이 될 때 같이 움직이는 것이 좋지 않겠냐 말합니다.]
“……역시, 적절하게는 무리인가요?”
성좌, ‘검은 날개를 가진 밤의 여왕’은 <개념>에 가까운 성좌였다.
어째서 ‘검은 날개를 가진 밤의 여왕’이 임아린의 배후성이 되었는지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이 성좌의 말대로 신화 게이트를 클리어해 강해지기 위해서는 엄청난 희생을 감수해야 할 것이기에 고집을 부릴 생각은 없었다.
<개념>에 가까운 성좌인 만큼, 신화 게이트의 난이도는 적어도 ‘SS’급 이상.
자신도 난이도를 알고 있는 듯 성좌, ‘검은 날개를 가진 밤의 여왕’도 임아린을 걱정해 나에게 말을 하는 듯했다.
이 성좌일 줄은 몰랐는데…. 이러면 계획을 변경해야겠다.
“좋습니다. 저도 당신이 아린이의 배후성인인 줄 몰랐으니까요.”
[성좌, <검은 날개를 가진 밤의 여왕>이 잘 생각했다 말합니다.]
임아린의 성장이 중요하다고는 하나, 지금 당장 사지에 몰 수는 없었다.
대략적인 이야기를 마친 나는 곧바로 일행들에게 이동했다.
“아무래도 계획의 변경이 필요할 듯합니다.”
“갑자기요?”
“네. 아린이의 성좌가 꽤 강해서 지금의 저희로는 클리어할 수 없습니다.”
“그 정돕니까??”
두 눈이 휘둥그레진 김영광이 나에게 물었다.
“네. 저희 네 사람이 전부 달려들어도 클리어는 어림도 없습니다.”
“그 정도의 성좌였다니…….”
“그러니 두 분이 움직여야 할 것 같습니다.”
“그거야 어렵지 않은데….”
“제가 왕이 되어도 ‘모든 한국인은 북한을 가로질러 중국을 공격해라!!!’ 같은 명령은 내리지 않을 테니, 시간은 충분할 겁니다.”
“하하…. 그것참 든든하네요.”
김도은이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 고민에 잠긴 표정이 드러났다.
“도은 씨 무슨 할 말이라도…?”
“아니…. 제 성좌 님은 그리스 쪽이고….”
“아….”
“이 둔탱 씨의 성좌 님은 폴리네시아 쪽인데….”
“이참에 두 분이 사이좋게 세계 일주를 하시면 되겠네요.”
“하아…….”
“친해지길 바라. 1탄이라고 생각하세요.”
김도은의 진심으로 한숨을 쉬자, 김영광이 상처를 받은 듯 김도은에게 물었다.
“도은 씨는 그 정도로 제가 싫은 겁니까…?”
덩치는 산만 해서 울상이 된 김영광의 표정이 아주 재미있었다.
“아니…. 그게 아니라…. 모르는 세계를 둘이서 돌아다니며, 클리어해야 한다는 생각에 걱정이 돼서요….”
“하하하. 그런 겁니까? 그렇다면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확실하게 지켜드리겠습니다!!”
“이야…. 도은 씨 보디가드 생겼네요.”
“닥쳐요.”
“네.”
김도은의 걱정은 당연하였다.
한국도 아니고 옆 나라 일본도 아닌 폴리네시아와 그리스 쪽을 돌며, 본인들의 성좌와 연관이 있는 게이트를 찾아 클리어해야 한다니.
내가 ‘명’을 보지 않았다면, 나 또한 답이 없다고 생각할 것이 뻔했다.
“이동은 대부분 ‘전이의 깃털’을 사용할 테고, 대략적인 위치는 성좌 분들이 알려 줄 겁니다. 물론 근처에서 게이트를 찾아야 하는 건 두 분이 힘내야 하겠지만.”
“후…. 말은 쉽게 하시네요.”
“하하…. 도와주고 싶지만, 미션의 특성상 한국을 일정 시간 벗어나면 페널티가 있거든요.”
“알았어요. 까짓거 해 보죠.”
“도은 씨는 제가 지키겠습니다. 안이 씨는 걱정하지 말고 마무리를 부탁드립니다!!”
“든든하네요. 중간에 몬스터 게이트를 돌며, 레벨도 틈틈이 올려 두세요. 능력치도 제법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니까요.”
“알겠습니다.”
“아린이 잘 지켜요!”
“넵.”
김도은이 말하면 왜 주눅이 드는지 알 수 없었다.
나보다 6살은 어린데.
마치 누나 같은 느낌의 김도은이었다.
“그럼 저희는 지금 바로 출발합니까?”
“네. 남은 시간은 저랑 아린이만으로 충분합니다. 다녀오세요.”
“중간중간 연락드릴게요!”
“아저씨, 언니 잘 다녀와요!!!”
“아린이도 아저씨 말 잘 듣고 있어.”
“다녀올게. 아린아. 나중에 보자.”
“응!!”
짧은 인사를 한 김도은과 김영광이 대략적인 위치를 파악해 뒀는지, 곧바로 ‘전이의 깃털’을 사용해 초토화가 된 경복궁을 벗어났다.
뭔가 더 조용해진 느낌이….
“아린이는 영광이 아저씨 없어도 괜찮겠어?”
“저 어린애 아니에요! 이제 혼자서도 잘하는걸요!”
“우리 아린이 다 컸네. 하하.”
“헤헤.”
어린애가 아니라며 소리를 바락 질러댄 임아린이었지만, 다 컸다는 칭찬 한마디에 금세 배시시 웃고 있었다.
귀여운 것 같으니.
덤벼드는 사람들도 없겠다. 나는 임아린의 성장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같이 게이트를 돌아…?
그러기엔 시간이 애매했다.
서울 지역 다음으로 한국의 왕이 되기 위해서는 480시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했다.
그리고 서울 지역 왕의 자리를 사수하는 24시간도 포함이 되었기 때문에 시간으로 치면 대략 450시간 동안 9개의 거점을 통합해야 하므로 게이트를 돌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다.
“아저씨. 무슨 생각 해요?”
“아무것도 아니야. 아린이 배 안 고파?”
“네! 아까 영광 아저씨가 에너지 바 줬어요. 엄청 맛없어….”
“하하…. 정말 더럽게 맛없긴 하지.”
에너지 바와 드링크의 맛은 정말이지, 흙을 퍼먹는 듯한 맛이 났다.
맛과는 다르게 수분과 공복, 컨디션 회복에는 효과가 좋았지만.
* * *
시간이 흘러 어느새 10분 정도가 남았다.
중간마다 왕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 덤벼드는 사람들은 있었지만, 그리 강한 배후성을 둔 사람들은 없었고, 능력치의 합이 임아린보다 낮은 사람들뿐이어서 손쉽게 방어가 가능했다.
그리고…. 나는 임아린의 처우에 관해서 결정을 내렸다.
“아린아. 저번에 곤륜산 기억하지?”
“네! 신선 할배들이 잘해 줬어요. 선자 언니들도 잘 놀아 줬고요!”
“당분간 거기서 지내야 하는데 괜찮을까? 아저씨가 조금 바빠질 것 같아서.”
“흐응….”
나는 한국 왕의 자리를 완벽하게 얻어야 했다.
임아린을 포함한 일행들의 안전과 무난한 성장을 위해서.
물론 내가 강해지기 위한 수단이기도 했지만, 당장은 임아린을 지켜 가며 성장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알겠어요! 전 아저씨 말 잘 들으니까.”
“거기서 신선 할배들한테 좋은 것 많이 배우고 맛있는 거 많이 먹고 있으면 아저씨가 금방 데리러 갈게. 알겠지?”
“네!! 대신, 빨리 와야 해요….”
“응. 약속!”
오래 끌 생각은 없었다.
적어도 이번 미션이 끝날 때까지만. 이라고 생각한 채 임아린의 소지에 나의 소지를 걸어 약속했다.
슬슬 끝날 시간이 됐는데?
시간을 보자, 남은 시간은 10초.
주변을 계속해서 탐지하고 화안금정으로 확인하고 있었기에 별다른 위험은 없었다.
[서울 지역의 왕의 자리가 결정되었습니다.]
[서울 지역의 왕은 ‘이안’입니다.]
[서울 지역에 한해서 <왕의 권능>을 발동할 수 있습니다.]
[서브 미션의 보상으로 100000 시드를 획득하였습니다.]
[한국의 9개 거점 중 가장 첫 번째로 ‘왕’이 되었습니다.]
[서브 미션의 숨겨진 선택지를 클리어하였습니다.]
[특수 보상으로 스킬 중 택 1을 선택하여 LV을 상승시킬 수 있습니다.]
음…? 그렇다면…. 스탯 흡수.
[스킬 [스탯 흡수 LV.2]의 레벨이 LV.3으로 상승하였습니다.]
스킬의 LV이 2였을때도 효율이 꽤 높아졌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도 스탯 흡수를 택한 이유는 간단했다.
각성을 진행하며, 모든 능력치의 합이 4천이나 올랐을 때 그만큼 격의 차이가 나는 강함을 느꼈기 때문. 이 스킬을 최대한 활용한다면 올 스탯에 가장 빠르게 닿는 것은 내가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나저나, 다른 지역은 아직인가?
아무래도 다른 8개의 지역은 아직 왕이 뽑히지 않은 것 같았다.
이곳과는 다르게 한참 치열하다는 것이겠지.
“아린아. 그럼 가 볼까?”
“네!!”
나는 임아린을 끌어안아, 곧바로 ‘전이의 깃털’을 사용했다.
* * *
[숨겨진 세계 ‘곤륜산’에 입장하였습니다.]
[현계와의 시간 괴리가 다르게 작용합니다.]
[현계에서의 하루는 이곳에서 10일입니다.]
여전히 아름다운 곤륜산이었다.
나이가 들어 늙게 된다면, 노후에는 이곳에서 편안한 삶을 보내고 싶을 정도였다.
10분 정도의 시간이 흐르자 처음과 같이 신선 한 사람이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음? 자네들인가?? 이상한 조합이군. 어린아이와 선인의 기운을 품은 자라니.”
“당신은……?”
내가 알던 신선이 아니었다.
천존도, 강자아도 아닌 처음 보는 신선.
검은 머리에 실눈을 뜬, 뱀 같은 인상의 사내였다.
“아아, 내 소개가 늦었군. 나는 곤륜산에서 기거 중인 천존의 제자 ‘신공표’라고 하네.”
언젠가 지나가는 말로 들은 적이 있었다.
나의 스승 강자아의 말로, 자신의 사형 되는 분들을 조심하라고.
정확한 이유는 말해 주지 않았지만,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무언가 어두운 마음을 품고 있구나. 라는 걸.
“아…. 저희 스승님의 사형 되시는 분이군요.”
“스승…? 자네가 얼마 전에 수행을 받고 간 현계의 인간인가?”
“맞습니다.”
“자아가 제법 쓸 만한 제자를 길렀군. 그렇담, 내가 온 이유는 알고 있을 테고.”
신공표가 하늘에 손짓하자, 해태 한 마리가 엄청난 속도로 나의 앞에 당도했다.
“어린아이는 나에게 맡기게.”
아무래도 해태를 다시 한번 타야 할 것 같았다.
젠장.
굳이 타지 않고 날아가도 상관없었지만,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럼….”
해태에 올라탄 나는 역시나 그랬던 것처럼 엄청난 속도에 거품을 물고 말았다.
“하하하하, 역시 현계의 인간은 재밌군.”
이놈의 신선들은 강자아나 신공표나 어째서 인간들을 골려 주는 걸 즐기는지 모르겠다.
해태의 속도로 천존의 거처에 빠르게 도착한 나는 신공표를 따라 천존에게 이동했다.
“오, 자네 또 왔는가?”
“너무 빨리 왔나요?”
“허허허. 그렇긴 하군. 그래서 이번에는 어떤 이유로?”
천존에 물음에 나는 숨기지 않고 솔직히 말을 했다.
“이 아이가 당분간 이곳에서 지내며, 수행을 받았으면 합니다.”
“흐음….”
“이것 또한 운명인가…. 알겠네. 대신 부탁이 한 가지 있네.”
천존의 입에서 운명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움칫 놀랐지만, 이내 생각을 접고 부탁이란 것에 대해서 물었다. 당장 나에게 이것저것 따져가며 물을 시간이 없었다.
“인간인 저에게 부탁할 게 있습니까?”
“허허. 걱정하지 말게. 별것 아니니.”
“알겠습니다.”
나의 대답에 흡족한 미소를 짓던 천존이 자신의 수염을 어루만지며, 말을 잇기 시작했다.
“부탁은 이 아이를 데리러 올 때 하도록 하지. 지금은 괜찮으니 가 보게나.”
“……? 그렇다면… 알겠습니다.”
이 강한 신선이, 그것도 신선들의 왕인 원시천존이 한낱 인간에게 하는 부탁이 무엇일지는 상상조차 안 갔다.
“스승께서는 자리에 안 계시는 겁니까?”
“음. 일이 있어 잠시 천궁에 파견을 갔다네. 자네가 다시 올 때쯤이면 돌아오겠군.”
“그렇군요. 안부 전해 주시죠.”
천존과의 대화를 마친 나는 임아린과 간단한 인사를 했다.
“아린아, 할배들 말 잘 듣고 있어. 알겠지?”
“힝…. 금방 와야 해요!!”
“알겠어. 여기서는 에너지 바 안 먹어도 되니까 밥 잘 먹고!”
“알겠어요!!”
아이를 혼자 두고 간다는 것에 마음이 걸렸지만, 이곳이라면 세상 어느 곳보다 안전할 것으로 생각했기에 미련 없이 곤륜산을 벗어났다.
그리고.
현계로 곧바로 돌아온 나는 뜻밖의 알림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강원도의 왕이 경기도 지역을 차지하였습니다.]
[경기도와 강원도 최초로 2개 거점을 통합한 왕의 이름은 ‘고원’입니다.]
뭐…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