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읽은 소설의 주인공이 성좌였다-9화 (9/206)

제9화

용사의 흑화가 진행된 것인지, 뱀파이어 로드와의 전투가 거칠어진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이 전투에서 용사는 자신을 제외한 모든 동료를 잃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더욱 처참한 흑화가 진행될 뿐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흑화의 방법은 두 가지.

첫 번째로 이곳에서 뱀파이어 로드에게 자신의 연인인 ‘퀘이사’와 동료들 전원을 잃는 것.

두 번째로는 전투에서 용사 ‘카인’과 자신의 연인인 퀘이사가 겨우 목숨을 구하지만 왕도로 복귀하던 중 악감정을 가진 무리에게 카인의 연인인 퀘이사가 처참하게 당하는 것.

이 두 가지 루트가 아니면, 나 또한 다른 방법을 생각해야만 했다.

이세계 게이트는…. 역사 게이트와는 다르게 스토리를 비틀어, 용사를 살리는 루트는 없었다.

될 수 있으면, 첫 번째 루트가 좋을 텐데….

첫 번째 루트를 원하는 이유는 한 가지였다.

두 번째 루트는 용사에게 너무나도 잔인한 루트였기 때문에 더욱 강하게 흑화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이 숫자로 흑화한 용사를 처치하는 것은 힘들 가능성이 컸다.

보상이 같다면, 아무래도 첫 번째 루트가 더 좋았다.

“당장 보이는 게 없으니 불안하네요. 제가 다녀와 볼게요.”

“그래도 괜찮을까요? 공격이라도 당하면….”

“괜찮길 바라야죠.”

용사 일행이 뱀파이어 로드의 성에 진입한 이후 현재까지 어떤 상황인지 알 수 없었기에, 나는 정찰을 위해 움직이기로 마음먹었다.

[성좌, <재미로 삶을 반복하는 자>가 당신의 활약을 기대합니다.]

내가 개고생하는 걸 기대하는 거겠지….

“저기, 영광 씨. 아이와 이분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네. 걱정하지 말고 다녀오세요. 마음 같아선 저도 같이 가 드리고 싶지만…. 아이가 걱정되긴 하네요.”

“정찰가는 것뿐이니 괜찮을 겁니다. 그럼.”

“아저씨, 조심히 다녀와여!!”

어디로 가는 것인지도 모르는 임아린은 그저 해맑기만 했다.

한참을 이동해 다다른 곳은 뱀파이어의 성이었다.

이곳에는 뱀파이어 로드뿐 아니라 그의 수하들도 시중을 들기 위해 살고 있었다.

C급이지만 역시 용사네.

멀리서 들었던 폭음은 용사 일행이 이곳의 뱀파이어들을 쓸어버린 소리인 듯. 뱀파이어 로드의 성 주변이 초토화되어 있었다. 그렇다는 건…. 이미 뱀파이어 로드와의 전투에 돌입했다는 것이고, 한참 전투 중이라 나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

폭음이 들리는 곳으로 조용히 이동했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폭음도 점점 거대해지기 시작했다.

이쯤인 거 같은데….

쿠콰쾅!!!!!

“크흡…!!!”

몰려오는 후폭풍에 눈을 뜨기가 힘들었다.

그 순간.

저 멀리서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죽어라!!!”

“$#%@#”

자세한 말은 듣지 못했지만, 아직 전투가 한창인 것 같았다.

대화 소리를 듣기 위해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간 순간이었다.

“웬 파리 새끼가 한 마리 들어왔구나. 네놈은 무엇이냐!?”

자신의 영역에 침범해서인지, 뱀파이어 로드가 나의 존재를 간단히 눈치챈 것 같았다.

젠장… 걸렸네…?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에 나갈 수밖에 없었다.

“안녕, 모기?”

“……”

“………”

“안녕이 아닌가…. 하하하하?”

[성좌, <재미로 삶을 반복하는 자>가 요즘 욕을 안 먹었더니 다시 미치기 시작했냐 물어봅니다.]

[성좌, <당나라의 고승>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안타까워합니다.]

뜬금없는 나의 인사에 벙찐 것은 뱀파이어 로드뿐만이 아니었다.

용사 카인과 마법사 퀘이사 그리고 성녀까지 벙찐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안타깝지만, 용사 일행 중 둘은 이미 당해 버린 상태였다.

“그렇게들 쳐다보니 부끄럽네요. 하던 일마저 하시죠. 전 이만….”

“어디를 가느냐!!!”

쿠와아아아-!!!!!

뱀파이어 로드는 한 놈도 놓칠 수 없다는 듯, 자신의 피를 이용해 나를 공격해 왔다.

촤르륵.

나는 태극검을 이용해 뱀파이어 로드의 공격을 흘려 냈다.

그다지 강한 공격은 아니었다.

이때다 싶었는지, 용사 카인이 소리를 버럭 지르며 덤벼들었다.

“요파크!!!!!!”

하지만 용사 카인은 아무래도 요파크의 상대가 되지 않았는지, 요파크는 간단하게 카인의 공격을 막아냈다.

뱀파이어 로드의 이름은 디스트란 요파크.

마왕 다음으로 이 게이트의 강자였다.

“내 동료를 당장 살려 내!!!!”

“흥, 그런 것들도 마왕을 잡겠다고 데리고 다니는 거냐? 어이가 없군.”

하얀 갑옷이 피 칠갑이 된 용사는 울부짖었다.

대화 내용을 보아하니, 이야기가 어느 정도 진행이 되었는지는 금방 알 수 있었다.

후웅-

후웅!!

용사 카인이 소리를 지르며 자신의 성검을 휘둘렀다.

자신의 동료를 잃은 상황에서 분별력을 잃었는지, 그저 휘두르는 게 전부였다.

“크하하하하. 그것도 공격이라고 하는 것이냐?”

요파크는 용사의 공격을 가볍게 피한 뒤, 박쥐로 변했다.

텁.

순식간에 성녀의 뒤로 날아간 요파크는 뒷덜미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요… 용사님…!!! 퀘이사…. 살…”

“절망은 어디에나 있는 법이지. 절망하거라 용사여.”

수와아아아-

퍼석.

“이런 미친…!!”

예상은 했지만 실제로 보니, 기분이 안 좋았다.

요파크에 의해 성녀는 모든 피가 빨려, 미라처럼 변하고 말았다.

“아… 아아……. 하지… 마…….”

카인이 흑화하는 순간이 그리 멀지 않았다.

이대로 가만히 있기만 해도 퀘이사도 죽을 것이 뻔했다.

그렇게 된다면 당연하게 용사는 흑화할 것이고, 요파크는 흑화한 용사에 의해 죽게 될 것이었다.

이것이 이 게이트를 클리어하는 가장 무난한 첫 번째 루트였다.

“어쩐다….”

이 상황을 보지 않았더라면 마음이 약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두 번째 루트까지는 가고 싶지 않았다.

이것이 용사 카인을 구하지 못하는 대신에 해 줄 수 있는 최대한의 배려였다.

[성좌, <재미로 삶을 반복하는 자>가 당신의 선택을 지켜봅니다.]

[성좌, <당나라의 고승>이 자신의 제자였다면 당장 구하러 갔을 거라고 합니다.]

전, 당신의 제자가 아닙니다….

[스킬 [냉정 LV.2]의 효과가 강하게 발동됩니다.]

스킬 냉정은 감정을 죽이는 스킬이 아니었다.

그저….

상황을 조금 더 냉철하고 사사로운 감정에서 벗어나, 냉정하게 판단 할 수 있는 스킬일 뿐이었다.

“나는…. 안 구할 겁니다. 그리 강하지도 않을뿐더러 정의롭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제 실수로 인해 모두를 이 게이트 안에서 죽게 할 수는 없습니다.”

나에게 하는 말이자, 나를 지켜보는 성좌들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나 혼자 이 게이트 내에 있었다면, 당장 달려 나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었다.

[성좌, <재미로 삶을 반복하는 자>가 잘 생각했다 말합니다.]

[성좌, <당나라의 고승>이 그것 또한 본인의 선택이라며 존중해 줍니다.]

성좌들의 반응도 이해는 갔다.

내가 구하지 않은 이유는 한 가지가 더 있었다.

나의 ‘명’에 있는 이세계 게이트는 한 번 클리어한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어딘가에서 또 생겨난다는 특징을 지녔기 때문이었다. 결국, 내가 이들을 위해 나선다고 해도 이들은 어딘가의 다른 이세계 게이트에서 무한한 반복을 하게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살아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

여러 번의 게이트를 반복하며 같은 내용의 삶을 사는 존재들이었다.

영혼 자체가 게이트에 속박당한 채, 가장 아픈 순간을 무한히 반복하는 존재.

용사, 카인의 게이트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본 ‘명’에서의 기억으로 대략, 이유는 알 것 같았다.

본래 이곳 이세계의 마지막에 다다라서는 흑화한 용사를 저지하지 못하게 된다.

마왕이 아닌, 용사에 의해 멸망을 맞이하는 이세계였던 것이다.

그로 인해 받게된 용사 카인의 죄와 벌.

나는 이들을 구해 줄 이유가 없었다. 아니, 이유가 있다고 한들 나에겐 그런 힘이 없었다.

내가 게이트의 스토리를 바꿔 버리고 클리어하지 못한다면 나로 인해 수십 명의 현계인들이 이 게이트에 갇히는 것이었다.

이곳에는 나의 동료가 된 김도은과 내가 지켜 줘야 할 임아린이 있었기에 마음이 약해질 수는 없었다.

“미안합니다.”

미련이 남을까 싶어 [질주 LV.1]을 사용해 재빠르게 자리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크하하하하하하. 너를 구해 주는 사람 하나 없구나!!!”

멀어져 가는 동안 요파크의 웃음소리와 용사를 조롱하는 말들이 들려왔지만, 나는 멈추지 않고 달리기 시작했다.

“저 왔습니다.”

“표정이…. 왜 그렇게 어두워요?”

“아저씨 울어여?”

“아니. 아저씨 안 우는데?”

김도은과 임아린이 내 표정을 보더니 무언가를 느꼈는지 대뜸 물었다.

어린아이까지 느낄 정도로 내 표정이 어두웠나 싶었다.

“저흰 왕도로 갈 겁니다. 그곳에서 흑화한 용사를 막을 거예요.”

“직접 보고 오셨으니…. 뭐, 알겠어요!”

일행들과 자리를 벗어나려는 순간 김영광이 보였다.

임아린을 구해 주고, 내가 없는 동안 김도은과 임아린 두 사람을 돌봐 준 고마운 사람이었다.

“아, 영광 씨 혹시 일행이 있나요?”

“아니요. 전 이곳에 혼자 들어왔습니다.”

나는 김영광이 마음에 들었다.

내가 자리를 비우고 다시 왔을 때도 임아린과 놀아 주는 모습에 확신했다.

같이 행동하고 싶다고.

단순하지만 어린아이를 좋아하는 사람이기에 나쁜 사람은 아닐 거로 생각했다.

“일행이 없다면 저희와 같이 행동하는 건 어떤가요?”

“아저씨 같이 가요!!! 우리 아저씨 되게 쌔고 되게 좋은 사람이에여.”

“하하….”

“음…. 그래도 될까요?”

“네. 영광 씨만 괜찮다면 저는 좋습니다.”

“좋습니다. 앞으로 아린이는 제가 지키겠습니다. 안이 씨는 옆에 여자 친구분을 지켜 주면 되겠네요.”

김영광의 뜬금없는 발언에 나와 김도은이 동시에 대답했다.

“아닌데요?”

“죽을래요?”

……

아니면 아닌 거지 죽을래요? 라고 하니까 어쩐지, 울화가 치밀었다.

나 정도면 잘생긴 건데…?

그때의 매력 발산 덕분에 점수를 크게 깎아 먹은 것 같았다.

“가시죠. 저흰 이곳에 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네!!”

새로운 동료인 김영광과 함께 이동하려 몸을 돌리며, 남은 현계의 무리에게 말했다.

“당신들 여기 있다간 금방 죽을 겁니다. 저흰 갈 테니 알아서들 하세요.”

“흥. 뭐라는 거야? 어린놈이”

“그러게. 여긴 고작 C급인데 죽기야 하겠어?”

이것도 저들의 선택. 내가 강요할 필요는 없었다.

* * *

왕도로 돌아온 우리는 상황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단단하고 듬직한 근육에 덩치가 큰 김영광이 임아린을 목말 태우고 있었다.

“꺄하하하. 재밌당.”

“아린이가 영광 씨를 되게 잘 따르네요.”

“그러게요. 왜인지 모르겠지만 어린아이에게 인기가 좋더라고요.”

알 것 같았다. 듬직한 근육에 훤칠한 키.

어린아이들이 올라타기 좋은 체형이었다.

그리고 호감형의 생김새까지.

“그나저나, 이곳에 있다고 미션 클리어가 될까요?”

“네. 흑화한 용사는 반드시 여기로 올 겁니다.”

“그런가요…. 전 아무것도 모르는데, 안이 씨는 항상 모든 걸 알고 있는 듯 이야기하시네요.”

“성좌들의 도움 덕분이에요. 너무 깊게 생각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일단은 믿어 둘게요. 나쁜 사람이 아니란 건 알고 있으니까.”

[성좌, <재미로 삶을 반복하는 자>가 구라가 자연스러웠다고 말합니다.]

김도은의 말에 잠시 움찔했지만, 어쩔 수 없이 성좌를 팔아먹었다.

세상이 변함과 동시에 성좌란 존재는 핑계 대기 참 쉬운 존재였다.

그때였다.

쿠콰쾅!!!!

“꺄아아아악!!!!”

“으아악!!!”

“사… 살려…!!!”

“용사가 미쳤다…. 모두 도망가!!!”

갑작스레 왕도는 아수라장이 되기 시작했다.

“왔네요. 다들 조심하세요. 강할 겁니다.”

“네…!!”

“영광 씨 아린이를 부탁합니다.”

“맡겨 두세요.”

김영광이 임아린을 지켜 준다면 마음 놓고 싸울 수 있었다.

무엇보다, 후방은 김도은이 맡아 주었기에 나만 잘 해낸다면 빈틈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그리고….

용사의 흑화를 기다리며 왕도로 이동한 이유는 단 한 가지.

가장 먼저, 흑화한 용사는 왕도에 나타나 모든 인간을 죽일 것이었고 이곳에는 모든 모험가와 남은 현계인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의 내 힘으로는 혼자서 이길 수 없었다.

혼자서 이세계를 멸망에 몰아넣은 C급 용사.

“도은 씨 가시죠. 제가 빈틈을 만들 테니, 최대한 후방에서 용사 머리통에 한 발 부탁드려요.”

“네!!! 맡겨 주세요!!”

얼마 이동하지 않았지만, 곧바로 흑화한 용사를 볼 수 있었다.

처음 보았던 하얀 갑옷과는 다르게 피로 물들어 빨갛고 이곳저곳 깨진 갑옷을 볼 수 있었다.

용사의 눈빛은 마치 감정 없는 기계인 듯 보였다.

쿠콰콰쾅!!!!

“검기…?”

용사 카인이 어두운 아우라를 뿜어 대며 사방에 검기를 날리기 시작했다.

이곳 주민들의 힘으로는 막을 수 없었는지, 도망치거나 혹은 그 자리에서 사망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었다.

나는 곧 앞으로 나서며 용사를 불렀다.

“야. 뒤지기 싫으면 그만해라?”

[성좌, <재미로 삶을 반복하는 자>가 제법 강해 보였다 말합니다.]

[성좌, <재미로 삶을 반복하는 자>가 스킬도 사용하면 허세는 배가 될 거라고 말합니다.]

[스킬 [강렬한 눈빛 LV.1]을 발동합니다.]

[스킬 [매력 발산 LV.1]을 발동합니다.]

아니, 매력 발산은 왜…. 망할 놈의 자동 발동.

[성좌, <재미로 삶을 반복하는 자>가 흡족해합니다. 낄.낄.낄.낄.낄]

내 의지와는 다르게 발동되는 스킬이었기에 어쩔 수 없이 용사를 노려보았다.

“넌… 요파크의 성에서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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