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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소설의 주인공이 성좌였다-8화 (8/206)

제8화

이곳의 킹크랩은 이세계답게 그 크기가 어마어마했다.

맛도 맛이지만, 세 명이 함께 먹는다면 3박 4일을 먹어도 남을 양이었다.

“다 못 먹는다고 했잖아요. 많이들 드세요.”

“잘 먹겠습니다!!”

“저도 잘 먹을게요.”

* * *

거대한 킹크랩을 배가 터지도록 먹은 후, 우리는 마음에 드는 의상을 구매했다.

임아린은 연한 핑크색의 마법사 로브를, 김도은이 구매한 것은 만화에나 나오는 엘프들이 입을 법한 가벼운 옷을 구매했다. 아무래도 원거리 공격에 특화돼서인지, 움직임이 편한 것을 산 것 같았다.

나는 시스템의 각성이 시작된 후 회귀와 함께 집에서 시작했기에 옷은 필요 없었다.

아이템 창의 아공간을 이용해 집에 있던 옷을 전부 담아 왔기 때문이었다.

옷을 구매한 후 숙박업소에 들러 몸을 씻어 낸 뒤 다시 모인 우리 세 사람은 곧, 용사를 찾기 위해 모험가 길드로 향했다.

“근데, 우린 모험가도 아니지 않아요?”

“게이트의 특성상 저희는 이곳에 들어오자마자 ‘A’급 모험가로 분류됩니다. 아이템 창에 모험가 등록증이 있을 거예요.”

“별것이 다 간소화되어 있네요. 편해서 좋지만….”

“그렇죠?”

모험가 길드에 들어서자, 우리를 포함해 여럿의 현계인들이 있었다.

그중에는 본래 존재했던 게이트 속 모험가가 훨씬 많았지만, 미션을 클리어하기 위해 모인 현계인의 수도 만만치 않게 많았다.

“용사는 어떻게 찾아요? 이렇게 많은데.”

김도은이 궁금해하는 것도 당연했다.

‘명’을 보지 않은 나였다면, 용사를 찾기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미 용사의 얼굴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용사를 흑화시키는 방법도.

이곳 용사의 이름은 카인.

처음 게이트에 들어서게 되면 용사를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미션의 클리어를 위해서는 용사를 흑화시켜 처치해야만 했다.

“곧 올 겁니다. 그래야지 미션의 스토리가 진행되니까요.”

김도은의 질문에 답하는 순간, 다섯 명으로 이루어진 모험가들이 길드에 들어섰다.

하얀 갑옷을 입은 전사형의 남자와 로브를 입은 여성 그리고 엘프, 드워프, 성직자를 포함해 총 다섯이었다.

이들이 용사 일행이었다.

나는 가만히 다섯의 용사 일행이 어떤 퀘스트를 받는지 지켜보았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현계인 중 용사를 눈치챈 것 같은 사람들이 어느 정도 있는 것 같았다.

본인의 감으로 눈치를 챈 것인지 성좌들의 도움으로 알게 된 것인지는 알지 못했지만 현계인은 서로 눈치를 보며 용사 일행이 선택하는 퀘스트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따라간다고 클리어가 되는 것이 아니었다.

이번 미션의 경우 ‘흑화’를 시켜야 한다는 것. 이것이 이 게이트의 핵심 클리어 조건이었다. 때에 따라서는 현계인들을 막을 필요가 있었다. 가만히 있어도 흑화하는 용사를 굳이 흑화시키겠다며 건들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저희도 저 퀘스트 받아서 따라가면 됩니다.”

“그다음은요?”

“쉽습니다. 전투는 어렵겠지만, 용사가 흑화하길 기다리면 됩니다.”

“아…!!! 정말 쉽네요? 그런데, 저 사람들도 기다릴까요?”

“장담할 수는 없지만…. 용사 일행을 방해하려는 낌새가 보이면 저희가 막아야 합니다.”

김도은이 고개를 끄덕였다.

옆에 있던 임아린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당최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나와 김도은을 번갈아 쳐다봤다.

“아린이는 언니 옆에서 마법 사용해 주면 돼. 알겠지?”

“언제 할까요!?”

“음…. 언니가 화살을 쏠 때?”

“알겠어여!!”

용사 일행이 퀘스트를 받아 밖으로 나가자, 나를 포함한 일행들과 몇몇 무리의 현계인들이 따라나서기 시작했다.

“이봐, 방해하지 말고 꺼지는 게 어때? 어린애랑 쪼끄마한 여자애를 데리고 뭘 하겠다고.”

“……”

[성좌, <재미로 삶을 반복하는 자>가 혼쭐을 내주는 것이 어떠냐는 의견을 제시합니다.]

[성좌, <당나라의 고승>이 살생은 무의미하다며, 염불을 외웁니다.]

시비를 거는 사람을 무시한 채 용사 일행을 미행하기 시작했다.

괜한 시비에 하나하나 반응해 준다면, 한도 끝도 없을 것을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 현재 중요한 건 이들을 참교육하는 것이 아니었다.

용사를 흑화시켜 게이트를 클리어하는 것이 첫 번째 목표였다.

그리고….

용사 일행이 받은 모험가 길드의 퀘스트는 ‘뱀파이어 로드’를 처치하는 것.

퀘스트 자체는 쉬웠다.

문제는 스토리의 흐름대로 용사를 흑화시키는 것이었지만.

“씹냐? 어린놈의 자식들이?”

“야야, 오줌싸겠다. 내버려 둬. 미션이나 클리어하자고.”

시비를 거는 무리를 죽일까…. 잠시, 생각했지만 임아린에게 몹쓸 것을 보여 주기 싫어 참았다.

“근데, 이렇게 미행해야 해요?? 걸리진 않을까요?”

“걸릴 겁니다. 전투가 발생할 수도 있고요. 장소는 알고 있으니까 저흰 천천히 가도록 하죠.”

용사 일행도 바보들은 아니었다.

등급 자체는 낮은 C등급이지만 저들도 이곳에서는 마왕에게 맞서는 최상위권에 해당하는 실력자들이었다.

나는 김도은과 임아린을 불러 세워 한참 뒤에 떨어져 걷기 시작했다. ‘뱀파이어 로드’의 위치는 알고 있었기에, 차라리 시비 거는 무리가 용사들에게 쓸려 나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 * *

용사 일행과 현계인들이 성문 밖으로 나가고 한참 뒤에야 출발한 우리는 곧 전투의 흔적과 시비를 걸던 무리가 갈려 나간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어? 아까 그 사람들 아니에요? 시비 걸던….”

“맞아요. 잘됐네요. 아린이는 이런 거 보면 못써.”

“응? 뭔데여??”

나는 임아린을 들어 올려 한 손으로 받치곤 눈을 가렸다.

멸망이 시작된 이상 언제든 볼 수 있는 장면이었지만, 꼰대의 마음으로 굳이 보여 주고 싶지는 않았다.

[성좌, <재미로 삶을 반복하는 자>가 약한 놈들이 강한 척한 결과라며 콧방귀를 뀝니다.]

[성좌, <당나라의 고승>이 아미타불이라 말합니다.]

“용사 일행이 생각보다 강한가 보네요.”

“저희 셋으로 괜찮을까요?”

“음…. 저들 말고도 다른 무리가 있었으니, 괜찮겠죠…?”

확신할 수 없었다.

겪은 상황도 아닌, 겪었어야 할 상황만을 알고 있던 나였기 때문이었다.

이미 초반의 ‘명’을 바꿨기 때문에 지금 상황도 얼마든지 바뀔 가능성이 컸다.

나는 눈앞의 미래를 보는 것이 아니었다.

정해진 ‘명’을 바꾸기 위해 애쓰는 것뿐.

“저들 때문에 조금 불안했는데, 차라리 잘됐네요.”

“인성 쓰레기들….”

앞으로 계속 나아가자, 곧 다른 무리의 현계인을 만날 수 있었다.

그 수는 약 열다섯.

“다들 여기서 뭐 하는 겁니까?”

“보면 몰라? 망보는 중이지.”

“그러니까 왜 망을….”

“미행하다 저놈들한테 걸리면 죽는다고!!”

우리에게 시비를 걸던 무리가 죽은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이들이 겁을 먹는 것은 당연했다.

레이드 형식으로 흑화한 용사만을 잡는 것과 용사의 일행을 전부 상대하는 건 상황 자체가 달랐기 때문이다.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자, 저 멀리 거대한 뱀파이어의 성에서 격렬한 전투가 이어지는 것 같았다. 무언가가 터지는 폭음 비슷한 소리가 들려오자, 이곳에 있던 현계인 모두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지금 가야 하는 거 아니야?”

“흑화를 시키라는 거야, 이미 됐다는 거야!?”

알 수 없는 것이 당연했다.

성좌들의 도움으로 어찌어찌 용사의 얼굴을 알았다지만 그 이상의 개입은 할 수 없었다.

가령, 미션을 클리어하는 핵심적인 부분 말이다.

“가만히 있는 게 좋을 겁니다. 여러분이 나서면 스토리의 진행이 바뀔 테니까요.”

“넌 뭐야?”

“이 게이트의 클리어 방법을 아는 자?”

아니꼽게 바라보며 대답하는 자와는 다르게, 긍정적으로 나서는 이도 있었다.

“그 말이 사실인가요? 그렇다면, 저희는 어떻게….”

매우 듬직해 보이는 남성이었다.

포마드 헤어 스타일에 운동을 꽤 오랫동안 한 듯, 근육이 단단해 보였다.

인상도 좋아 보이는 게 나쁜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내 감일 뿐이지만….

“간단합니다. 제가 신호할 때까지 움직이지 마세요.”

“뭐라고? 네놈들은 저 어린놈의 말을 믿는 거냐? 우리를 제외하고 혼자 클리어하려는 거 아니야!?”

“믿기 싫으면, 안 믿어도 상관없는데….”

드르르르륵-

용광검을 사용해 바닥에 선을 그었다.

“이 선 넘으면 죽일 겁니다. 같이 클리어하는 건 좋은데 방해는 하지 마세요.”

[스킬 [강렬한 눈빛 LV.1]을 발동합니다.]

[성좌, <재미로 삶을 반복하는 자>가 기가 막힌 타이밍이라 말합니다. 낄.낄.낄.]

“애새끼가 미친 거 아니야!?”

“전, 믿겠습니다.”

격한 반응을 보이는 남성과는 다르게 포마드를 한 근육남은 나를 믿어 주었다.

“난 못 믿는다!! 애들아!!”

“……”

“조져!!”

나를 향해 달려드는 건 네 명. 그리 강해 보이지 않았다.

김도은의 선에서 해결이 가능할 것 같았다.

나머지 사람들은 싸우거나 말거나 관망 중이었다.

경쟁자가 사라지면, 득이 되는 것은 자신들일 테니까.

물론, 흑화한 용사까지 처치해야겠지만 저들의 실력으로는 어려울 것이 뻔했다.

나는 태극검을 사용해 공격들을 흘려내기 시작했다.

강한 공격도 아니었거니와, 죽이려면 쉽게 죽일 수 있을 정도의 약함이었다.

후웅-!! 퍽!퍽!

훙!후웅-

내 뒤쪽에 있던 김도은이 화살을 마구잡이로 날려 대기 시작했다.

김도은이 쏘는 화살은 명중률이 상당했다.

푹!! 푹푹!!!

달려드는 남성들의 팔뚝과 허벅지를 쉽게 맞추고 있었다.

“컥….”

“끄악……. 내 다리…!!!”

“저…. 저년부터 잡아!!!”

쿠르릉- 쾅!!!!

빠직- 파지직-

두 명이 김도은을 향해 달려들자, 임아린이 번개 마법을 사용했다.

“커허억…….”

털썩.

남은 인원은 둘이었지만, 나를 부정적으로 보던 사람은 안 보였다.

불길한 기분이 들 때였다.

“어? 어디 갔지?”

“꺄아아악!!”

아차.

내 뒤에 있던 임아린을 번쩍 들어 올리며 남자의 신형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은신’ 계열의 스킬이 있는 것 같았다.

젠장, 방심했다.

“어린아이를 인질 삼는 건 좀 더럽지 않나요?”

“흥, 그러게 왜 우리를 건드려!!”

“먼저 건든 건 당신들인데….”

“아무튼!!!”

이럴 때 원거리 스킬이라도 있었으면 도움이 되었을 것을 나에겐 원거리 스킬이 없었다.

어쩌지, 강렬한 눈빛…? 매력 발산…? 남잔데…. 꼬셔…?

스킬 냉정의 효과에도 별다른 생각이 떠오르지 않아 가만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럴 때 원거리 스킬이라도 있으면….

“호창아!! 저 새끼 죽여라!!”

호창이라 불린 사내가 김도은의 화살에 허벅지를 맞아 다리를 절뚝거리며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때였다.

후웅!!!! 쾅!!!!!!!

잠시 안 보인다고 생각했던 포마드의 남성이 뒤에서 나타나 임아린을 구해냈다.

그리고 남자를 높이 들어 머리부터 찍어 버렸다.

“오와우…. 아프겠다.”

“마음 놓고 싸우세요!!”

근육남의 도움에 오래 끌어 봐야 상황만 악화할 것 같다는 생각에 용광검을 사용해 네 명의 남성을 다시는 못 일어나게 만들었다.

스겅- 스걱.

팔을 베고, 다리를 잘라내 버렸다.

“끄아아아악…!!!”

“내…. 내 다리…!!!”

다시는 걷지 못하게.

상황을 정리한 후, 도움을 줬던, 근육남에게 인사를 건넸다.

“조금 전 일은 감사했습니다. 전 이안입니다.”

“전 김영광입니다. 어린아이를 인질로 삼는 게 마음에 안 들었거든요. 계속 시비를 걸기도 했고.”

“그런가요. 하하….”

무척이나 듬직해 보이는 근육이었다.

거기다 어린아이를 생각해 주는 선량한 마음씨. 될 수 있으면 동료로 삼고 싶었지만, 게이트를 종료할 때까지는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나는 아직 한참 부족한 것 같았다.

저 남성이 아니었다면, 그들이 임아린을 인질 삼아 어떤 짓을 했을지도 모른다.

이들보다 강할 것이라는 오만함에 일행들 모두가 위험해질 뻔한 상황이었다.

정신 차리자……. 이런 식으로는 안 돼…!!

그 순간, 저 멀리 뱀파이어의 성에서 처음 들었던 것과는 다른 폭음이 들려왔다.

쿠콰콰콰쾅!!!!!

“슬슬, 시작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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