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0화 〉 재벌가의 후예(1)
* * *
한편 미준은 소행성에 관한 집필을 하고 있을 때 뉴 해양 백화점 중산 지점장 연슬준의 전화를 받았다.
미준도 기회보아 연락을 할까 하고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는 지난 번 일에 대한 사과도 할 겸 다시 만나자는 제의를 하였다.
“지난 번 일은 제가 너무 속이 좁아 실례했습니다.”
“....?”
그렇지 않아도 미준은 먼저 만나자는 제안을 하리라 마음먹고 있던 터라 순순히 그의 제의를 수락하였다.
그리고 미준은 집에 들러 어머니를 만났다.
“어머니, 아버지를 만나실 생각은 없으세요?”
“글쎄, 난 별로 만나고 싶지 않다만.”
“어머니도 아버지를 사랑하고 계시잖아요?”
미준의 말에 어머니는 부정은 하지 않으셨다.
“아무리 그래도 이제 와서 만난 들 뭐 하겠느냐?”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지금 만나지 않으면 나중에는 진짜 후회하실 거예요.”
“.....?”
“아버지도 어머니를 잊지 못하시고 평생을 혼자 살고 계신다고 해요. 그리고 오랫동안 찾아 헤매셨고.”
“난 한 때 너를 잘 키워서 떳떳하게 그들 앞에 나타나겠다고 마음을 먹었지.”
“그랬을 것 같아요.”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니 그 또한 부질없었어.”
“죄송합니다. 어머니. 저는 그것도 모르고.”
“아니다. 넌 애비 없는 자식이라 놀림을 당하면서도 한 번도 나를 원망하지 않았어.”
“어머니.”
“넌 들 얼마나 마음고생 심했겠어?”
미준은 지난 사춘기 때 겪었던 일들이 영화 필름처럼 머리에 스쳐 지나갔다.
며칠 후 드디어 미준의 책이 세상에 나왔다.
책은 5개 국어로 번역되어 동시 출판되었다.
책이 나가자 미준에게 방송 출연 신청이 쇄도하였다.
그러나 미준은 정중하게 거절하고 일체 언론에는 나가지 않았다.
잘못하면 유언비어를 퍼뜨린다는 풍문에 휘말려 난처한 입장에 처할 것이란 걸 너무나 잘 알 기 때문이었다.
물론 나중에는 다 밝혀지겠지만 그래도 싫었다.
미준의 집 앞에는 국내외 기자들이 장사진을 쳤지만 미준은 공주의 집에서 꼼작도 하지 않았다.
가끔 인터넷에 소행성 고려국의 사진과 자료를 공개할 뿐이었다.
각 방송에 출연한 패널들은 소행성에 대한 진위 여부에 대한 토론을 계속하고 있었다.
“이게 말씀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래도 사진을 분석했는데 진짜 사진이란 의견이 있습니다만.”
“모르시는 말씀을. 요즘 얼마나 사진 조작을 잘 하는지 전문가도 알아내기 어렵다고요.”
주된 내용은 이런 것들이었다.
책에 수록된 사진과 미준이 제공한 사진들을 두고도 진위 여부를 따지는 프로들이 우후죽순 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그러나 미준은 이런 방송들이 진행되고 있는 동안 차근차근 소행성 개발에 필요한 계획을 수립하여 추진하고 있었다.
본사에는 소행성 여행 신청자들이 세계 각국에서 수도 없이 접수 되었고 출판한 책들은 초판 재판을 지나서 21판의 출간이 준비되고 있다.
방송의 내용은 비단 국내뿐만 아니었다.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언론에서 떠들수록 책의 출간은 늘어나고 있다.
행성 계발의 첫 번째 준비가 유람선과 화물선. 이 두 개를 접목한 대형선박을 개조하는 작업이었다.
엄청난 화물을 실을 수 있으면서 많은 사람이 유람할 수 있는 대형선박 개조.
소행성 해안에 대형 선박 선착장의 건설.
항해를 하다 소행성 해안으로 순간 이동하는 방법.
이것이 미준이 생각한 개발과 운영의 첫 번째 시도다.
공주와 미진은 종종 순간 이동하며 천개성에 월궁 내 새로 마련한 공주의 집과 미진의 집을 순회하면서 실생활에 필요한 각종 물건을 구비하였고 월궁에서 함께 밤을 보내는 날이 많아지고 있었다.
그러는 가운데서도 공주는 결코 공부에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들의 행복지수는 갈수록 높아졌고 중산과 천개성을 왕래하면서 즐거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는 가운데 미준은 대대적인 인사 작업을 시행하여 인사이동을 단행하였다.
회사의 빌딩도 새로 확장되고 3,000명이 넘는 신입 사원 채용과 500명 정도의 경력 사원을 특채 하였다. 경력 사원 중에는 소희의 이름도 포함되었다.
중책을 맡고 있던 부장급 인사들은 대부분 지점장과 공장장으로 국내외에 재배치되었고 측근으로 있던 은혜를 비롯한 예솔이와 김라희(김간), 이영미 등도 승진 발탁하여 지점장 이상의 자리에 보직을 주었다.
*
그동안 계절이 다시 바뀌어 가을이 오고 있는 9월 어느 날 미준은 어머니를 모시고 중산에 위치한 중산 한식 전문집에 들어서고 있었다.
“어머니 기분 어떻세요?”
“차문을 열어주면서 어머니께 물었다.”
“글쎄다. 그냥 벙벙하구나.”
주차를 한 후고 식당으로 들어서는 데 식당 대문 앞에 안내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나와 정중하게 인사를 하였다.
“환영합니다. 회장님.”
“오셨어요?”
“네, 벌써 오래 전에 도착해 계십니다.”
“.....?”
한식집 마당은 꽤 넓었다.
“누가 또 오려고 했어?”
“네.”
어머니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대문에서 현관까지 화강암을 깎아 만든 오솔길이 있었다. 두 사람이 걸을 수 있을 정도로 오솔길 모양으로 길이 나 있었다.
어머닌 먼저 식당 정원부터 살펴보고 계셨다.
“잘 꾸며진 식당이구나.”
“어머니는 긴장이 되시는지 일부러 정원 조경에 신경을 쓰는 것 같았다.
“그렇죠. 어머니.”
긴장이 되는 것은 어머니뿐만이 아니었다.
정원에는 잔디밭이 조성되어 있고 곳곳에 작은 언덕을 만들어 소나무와 단풍나무들이 군데군데 배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현관 건물 좌, 우측에는 아름드리 동백나무가 멋진 포음으로 서 있었다.
“음, 예쁘게 꾸며져 있네.”
“네.”
“벌써 가을이 오나보다.”
단풍나무 잎이 벌써 빨갛게 물이 들어 가을이 오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누가 봐도 최고급 한식집 임을 외관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 한식집은 미준이 가끔 귀한 손님을 만날 때 이용하는 집이다.
“누가 오려고 했는데?”
“네, 약속한 사람이 있어요.”
“네 여자 친구?”
미준은 더 이상 대답하지 않고 현관으로 들어섰다.
현관에 들어서자 30대 후반의 건장한 젊은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반갑습니다.”
미준은 그와 악수를 했다.
“연슬준입니다.”
그는 미준의 어머니를 보고 허리를 굽혀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슬준이?”
“예, 어머니.”
그제야 눈치를 챈 어머니는 미준을 보며 나무라는 듯 표정을 짓더니 슬준에게 다가가 그를 꼭 껴안았다.
그들은 한참동안 아무 말 없이 껴안고만 있었다.
“뵙고 싶었습니다. 어머니.”
“나도 그랬다.”
실로 그들은 이게 얼마만인가?
30년 만에 다시 만나는 모자 상봉이었다.
“안으로 들어가시죠.”
슬준은 두 사람을 안내하여 한쪽 구석진 조용한 방으로 안내하였다.
“할머니, 어머님 오셨어요.”
방안에는 슬준의 할머니와 아버지가 자리에 앉아 있다 벌떡 일어났다.
“아가!”
“여보. 뷰미야!”
미준의 어머니는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 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자, 모두 자리에 앉으세요.”
그들이 자리에 앉자 미준도 자신을 소개하였다.
“천 미준입니다.”
“알지 알아, 천 원장님.”
“할머니 이 분도 이제 회장님입니다.”
“그러냐. 응. 그렇게 될 줄 알았지.”
“천 회장 정말 반가워요.”
슬준의 아버지 연회장도 미준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반갑습니다.”
“아가. 내가 잘못했다. 나 때문에 모든 일이 이렇게 꼬였구나.”
“그래, 여보 나도 잘못했어.”
미준의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분위기가 다소 숙연해 지자 할머니가 다시 입을 열었다.
“천 회장. 내가 천 회장 덕분으로 오늘까지 이렇게 건강하게 살고 있어요.”
“예, 그러셔야죠. 어디 다른 곳이 불편한 점은 없으십니까?”
“없어요. 이제 걱정도 안 해요. 중산 병원이 있는데 무슨 걱정이 있어요.”
“그래도 한 번씩 병원에 오셔서 진단 받아보시는 게 좋아요.”
“그러고 있어요. 천원장이 병원에 나오지 않아서 그렇지.”
“네. 제가 하는 일이 좀 바빠서.”
그들 앞에는 이집 주 메뉴들이 차례대로 속속 나왔고 이따금씩 작은 소리로 식사를 하고 있었다.
“어머님도 그러시고 당신도 많이 늙으셨네요.”
어머니는 마주 않은 두 분을 바라보며 한참만에야 입을 열었다.
솟아 나오려는 눈물을 참느라 한동안 애를 쓰다 이제야 좀 진정이 되는 것 같았다.
“미안해요. 여보.”
“.....?”
“당신 다른 사람과 재혼 했다며?”
연회장이 어머니를 보고 물었다.
“....?”
“천 회장은 재혼한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인가 보네.”
“....?”
“잘했어. 어찌 그 나이에 혼자 살았겠어?”
이번엔 할머니가 어머니의 입장을 대변해 주고 있었다.
할머니는 아들 연회장이 혼자 살아온 것이 자신 때문으로 생각하고 늘 괴로워했다.
그리고 뷰미에게 늘 미안하고 가슴이 아파하였다.
다행이 뷰미가 재혼을 하여 이렇게 훌륭한 아들을 두었으니 그나마 마음이 가벼워지고 있었다.
“아들을 잘 키웠네.”
“고맙습니다.”
“키도 크고 인물도 좋고 무엇보다 재벌의 반열에 오르게 됐으니. 고생 많았다. 아가야.”
“할머니. 우리 어머니는 재혼하시지 않았어요.”
“....?”
모두가 동그랗게 눈을 뜨고 미준을 쳐다봤다.
“애가 바로 당신 아들이에요.”
드디어 어머니는 미준에 대해 털어 놓으셨다.
“뭐?”
“저도 재혼하지 않고 이 애만 보며 혼자 살았어요.”
“뭐라. 천회장이 내 아들이라고?”
연상준 회장은 그만 입을 다물지 못하고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질렀다.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천회장이 내 손자란 말인가?”
“네, 할머니, 그리고 아버지. 저도 최근에 와서야 알게 되었어요.”
“아니 그럼, 그 때 그, 그....”
“네, 제가 알에서 태어났어요.”
모두들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지만 슬준은 알고 있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보자 천회장. 내 손 좀 잡아보자.”
할머니는 숟가락을 놓고 마주앉은 미준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아이고, 이게 꿈이야, 뭐야. 나를 살린 게 내 손자였구나?”
할머니는 대성통곡을 하신다.
앉아있던 모두가 함께 눈물을 흘린다.
갑자기 식당이 울음바다가 되었다.
“아버지. 이 것 좀 보세요.”
슬준은 상의 속으로 손을 넣어 봉투 하나를 꺼내 놓았다.
연회장은 얼른 봉투를 받아 열어 보았다.
친자 확인서였다.
유전자 감식을 통한 친자 확인서.
연상준과 천미준은 99.9% 친자임을 확인하는 내용이었다.
“미준아.”
연회장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미준에게 다가왔다.
“아버지.”
두 사람은 오랫동안 포옹을 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제야 미준의 어머니도 눈물을 보이며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고 있었다.
한참 후 다시 분위기가 가라 않고 진정되었지만 할머니는 미준의 손을 잡고 쓰다듬고 있었다.
“내 손자. 이 사람이 내 손자라니. 하느님. 부처님. 조심님 감사해요.”
“할머니. 저도 할머니 많이 보고 싶었어요.”
“그래. 미준아. 그리고 아가. 정말 고맙다. 정말 고마워.”
“아버지 제가 모처럼 좋은 일 했지요?”
지켜만 보고 있던 슬준이 미소를 지으며 연회장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래. 잘 했어. 수고했다.”
연회장은 모처럼 아들 슬준에게 따뜻한 눈길을 주었다.
“정말 당신도 고생 많았겠구려. 우리 천회장, 아니 이제 연회장이라 해야 하나? 이렇게 키우려면 얼마나 고생 많았겠소.”
“그래. 아가 다 나 때문이야. 네가 낳은 아이를 내가 버리려고 했으니.”
미준의 어머니는 아무 말 없이 눈물만 흘렸다.
연회장은 손수건을 꺼내 아내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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