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낚시에 미친 총각-193화 (193/225)

〈 193화 〉 여자의 향기(3)

* * *

“고맙습니다. 제 목숨을 살려줘서.”

여자는 손을 뿌리치려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 미준을 보자 그러지도 못하고 엉거주춤 수긍을 하였다.

그때 밖에서 다시 아주머니들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예솔아, 오늘 아침밥은 네가 해라. 우린 좀 편하게 먹어야겠다.”

“네.”

“요즘 젊은 것들은 다 저런가봐. 참 좋을 때야."

“언니 부럽죠?”

“부럽지. 호호호.”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그녀는 얼른 밖으로 나가 아침 준비를 시작했다.

“내 등산 가방에 쌀이 있어. 캔도 있고.”

“네.”

“내 가방에도 더덕하고 도라지와 잔대도 있어.”

“네. 잔대는 저도 있어요.”

“알았다. 가스나야. 서방님 드리려면 좀 넉넉하게 하란 말이다.”

“언니?”

“왜 내가 못할 말 했어?”

미준은 변명을 해봐야 소용도 없을 것 같아 그녀의 옆에서 식사 준비를 도와주었다.

더덕 껍질도 벗겨주고 도라지와 잔대도 씻어주었다.

통조림을 따서 산에서 캔 여러가지 재료를 썰어 찌개를 만들고 고추장과 더덕, 잔대를 올려놓고 공기 밥을 퍼서 아침을 먹었다.

식사를 하면서 아주머니들은 미준에게 꼬치꼬치 물었다.

“총각 몇 살이야?”

본격적으로 미준에게 청문회가 시작됐다.

“결혼은 했냐?”

“사귀는 사람은 있냐?”

“하는 일은 무엇이냐?”

“여기까지 어떻게 왔느냐?”

사실 그 처녀가 묻고 싶은 것들을 모두 대신 물어주는 분위기였다.

미준은 그들이 김이 샐까봐 대충대충 얼버무렸다.

그러고 난 다음 자신들에 대한 설명도 늘어놓았다.

자기는 약국 사장.

옆에 있는 사람은 자기 동생뻘 친구.

그리고 덧붙였다.

“얘 이름은 박예솔,”

“사는 곳은 김천.”

“현재는 우리약국 알바 중.”

“금년 초 졸업한 취준생.”

“나이는 25세 처녀.”

“애인 없음.”

미준이 궁금해 할까봐 보충 설명을 해 주었다.

“네.”

“총각, 우리 예솔이가 총각 생명의 은인인거 잊으면 안 돼?”

“네.”

“둘이 잘 어울려 총각도 미남이지. 우리 예솔이 예쁘지. 천생연분이네.”

“아줌마, 그만 하세요.”

예솔은 얼굴을 붉히며 미준의 눈치를 살펴보고 있었다.

“가스나, 눈 봐라 벌써 홀랑 빠졌네.”

“사장님. 그만요.”

홍당무가 된 얼굴로 예솔은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리고 식사를 마친 후 설거지와 뒤처리는 미준과 예솔이 함께하였다.

산에서 내려오니 주차장에는 그들의 차가 있었다.

“총각은 차가 없어?”

“네, 일부러 가져 오지 않았습니다.”

“그럼 일단 내차 타.”

“고맙습니다.”

“총각은 중산으로 언재 돌아 갈 거야?”

“며칠 휴가내서 왔습니다.”

아주머니는 미준의 다음 행선지가 궁금한 모양이었다.

“그럼, 다음은 어디로 갈 건데?”

“보은으로 갈까 합니다.”

“알았어. 그럼 대전에 내려 줄게.”

“고맙습니다.”

“예솔아. 너도 내일 토요일인데 더 놀다와.”

“아니에요. 사장님.”

“잔소리 말고 사장님이 놀다오라면 놀다와. 어차피 내일 모래는 출근도 안하잖아.”

“참 아주머니도.”

결국 아주머니 둘은 미준과 예솔을 기어이 대전 시외버스 터미널에 떨어뜨리고 가버렸다.

그래도 신기한 것은 만난지 불과 하루밖에 되지 않았는데 마치 오래된 친구 같은 묘한 느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럼 예솔씨, 정말 나와 같이 보은으로 갈 거예요?”

모두 떠나고 난 뒤 미준은 예솔의 진심을 알고 싶었다.

“이왕 이렇게 되었으니 동행하죠. 제 혼자 특별한 계획도 없는데.”

미준은 예솔을 데리고 일단 옥천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옥천은 대전에서 비교적 거리도 가깝고 보은으로 가기 전에 금구천을 둘러 볼 생각이었다.

버스에 내려 그들은 옥천 문화원을 가기위해 금구천을 따라 내러갔다. 옥천은 비록 소재지가 큰 곳은 아니었으나 금강지류와 소재지를 가로 지르는 강이 옛날부터 아름답기로 소문 난 곳이었다.

요즘은 강을 따라 자전거 길과 산책길이 만들어져 있어 강을 따라 걸어보았다. 주변 경관을 둘러보며 걷다 보니 강이 두 갈래로 갈라져 흘렀다. 문화원으로 가려면 시장이 있는 방향으로 가야한다고 지나가는 사람이 알려주었다.

예솔은 약대를 졸업했다.

처음 어느 대구에 있는 제법 큰 약국에 취업하여 잠시 근무하긴 했으나 마음이 맞지 않고 힘이 너무 들어 고향 김천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고 하였다.

자신은 제약회사나 대형병원 약국에 근무를 하는 것이 꿈이고 장차는 약국을 경영하는 것이 희망이라 했다.

“여기서 식사하고 문화원으로 가시죠.”

옥천 상가가 가까워지자 산책로를 벗어나 인도교를 지나 시장 상가로 들어갔다. 식사를 한 후 체육공원을 들러 문화원과 예술회관을 거쳐 보은으로 향했다.

보은에 도착하여 속리산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일주문을 지나 계곡 옆길을 따라가다 예솔은 미준의 팔을 잡았다.

산행을 자주 못하다 보니 어제 오른 산행에 다리에 무리가 온 것 같다. 결국 계곡 옆에서 발이 아프다며 쉬어가자고 했다. 모처럼 신은 새 등산화가 예솔의 발에 스트레스를 주는 것 같았다. 어쩌면 법주사를 가는 것보다 아름다운 단풍 정취가 예솔의 마음을 더 끄는지도 모를 일이다.

예솔은 신을 벗고 먼저 발부터 물에 담궜다.

떨어진 단풍이 계곡을 따라 흘러오고 있었다. 미준은 같이 신발을 벗어 두고 예솔의 건너편에 자리를 잡았다.

미준을 쳐다보며 웃는 그녀를 보면서 자신도 모르게 고마운 마음이 생기는 것 같았다.

밤새 정성 끗 간호를 해주고 오늘도 자신을 따라 동행을 해주니 고마운 마음이 생겨나는 것은 어쩌면 지극히도 당연할지 모른다. 마음이 끌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때 미준은 계곡에 흐르는 조그만 폭포 옆에서 담비 한 마리가 물고기를 잡는 모습을 목격하게 되었다.

미준은 예솔을 보며 손짓을 하였다.

“저거 뭐예요? 족제비?”

“담비 같은데.”

“예뻐요.”

“이제 그만 내러가요.” 미준은 그녀의 상태로는 되돌아가서 쉬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았다.

“절까지 안가구요?”

“발도 아픈데 돌아가요.”

“표까지 샀는데 들렀다 가야죠.”

“그럼 내일 새벽에 다시 와요.”

“여기서 자게요.”

“여긴 관광지라 숙소가 많아 여기서 지내는 게 좋을 것 같애요. 새벽에 상태 봐서 절에 다녀오고,”

그녀도 고개를 끄덕였다.

미준은 상가 주변에 호텔을 잡아 일단 숙소로 들어갔다. 예솔은 무엇보다 휴식이 급선무 같았다.

숙소로 들어오니 서먹하기는 마찬 가지였다.

“먼저 샤워부터 하세요.”

어제 밤도 야영을 했고 무엇보다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다.

“그럼 제가 먼저.”

예솔은 등산복을 입은 채 츄리닝을 꺼내들고 욕실로 들어갔다.

욕실의 구조가 반은 개방되어 되었다.

불투명한 체크무늬 유리로 칸막이를 만들어 뒀는데도 그녀의 실루엣이 욕실 문에 모두 비친다.

한참 후 그녀는 추리닝을 입고 밖으로 나왔다.

등산복을 벗고 추리닝을 입은 그녀는 몸이 훨씬 더 날씬해 보이고 피부도 무척 고와 보였다. 이어서 미준도 샤워를 한 후 추리닝으로 갈아입었다.

욕실에 들어간 미준을 본 예솔은 얼굴이 화끈 거렸다.

‘내가 샤워하는 걸 다 봤나?’

예솔은 혼자 가슴이 콩닥거렸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의 츄리닝이 모두 감색이다. 얼른 보면 커플들이 즐겨 입는 커플 운동복 같다.

“좀 쉬다 저녁 먹으로 나가요.”

“네. 그렇게 해요.”

다행이 침대가 각각 따로 있었다. 두 개가 침대를 나란하게 붙여 놓아두었다. 미준은 침대에 누워 TV를 켰다. 그녀도 잠시 망설이는 것 같더니 침대 위로 올라간다.

미준은 본의 아니게 그녀의 발을 보았다. 그녀는 엎드려서 두 발을 들고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그녀의 발 곳곳에 부르튼 흔적이 뚜렷하게 보였다.

“발이 많이 부르텄네요.”

“예, 좀.”

“진작 말을 하시지. 그랬으면 무리를 안했을 것 아니에요.”

“이 정도는 괜찮아요.”

“참내. 난 그런 것도 모르고.”

미준은 배낭을 열어 파스와 밴드를 꺼냈다.

“발 좀 줘 봐요.”

“괜찮아요.”

미준은 사양하는 예솔의 발을 강제적으로 붙잡고 소독을 한 뒤에 밴드를 하나씩 붙여주었다. 뒤꿈치를 비롯해서 발바닥과 발등까지 여러 곳이었다.

“발목도 아프죠?”

“네 조금.”

미준은 파스를 양쪽 발목에 붙여주었다. 그리고는 발목과 종아리를 안마하듯이 잠깐씩 만져 주었다.

“고생 했어요. 난 이정도인 줄은 몰랐어요.”

“아니에요. 그래도 즐거웠잖아요.”

“괜히 나 때문에 이런 고생만 하고.”

미준은 혼자 말로 미안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예솔은 약간 상기된 얼굴로 미준을 보며 하얗게 웃었다.

“그럼 좀 쉬고 저녁은 천천히 먹으러 갈게요.”

“네.”

미준은 소파에 앉아 물을 마신 뒤 실내 냉장고를 열어 봤다.

냉장고 안에는 캔 커피 두 개와 옥수수 수염이란 음료 두병이 들어 있었다.

“커피?”

미준은 캔 커피를 예솔에게 건네주고 휴대폰을 뒤지며 내일 코스를 살펴보고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차를 가져 오는 건데.’

아무리 회전시계를 가지고 있다고는 하나 혼자가 아니니 사용할 수도 없을 것 같았다. 잘못하면 예솔이 자신에 대한 공포심을 갖거나 정상적인 인간으로 보지 않을 것 같았다.

휴대폰으로 지도 검색을 하다 예솔을 돌아보았다.

그새 그녀는 벌써 잠이 들었는지 엎드려 있었다.

‘무척 피곤했나보다.’

엎드려 있는 예솔을 조심해서 돌려 눕혀주자 잠을 깨는 것 같더니 다시 잠잠해진다.

자신의 침대보를 벗겨 그녀를 덮어준 뒤 그녀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마주 앉아 있을 때도 거북스러워서 제대로 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몸을 나름 짐작해 봤다.

‘키는 약 170 정도. 가슴 크기는 중간. 허리와 히프. 수치는 모르겠지만 미인의 체형이 분명한 것 같다.

어쩌면 은혜와 비슷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일 같았다.

자신이 가장 선호하는 스타일은 몇 가지가 있다.

첫째는 일단 웃는 모습이 예쁜 사람.

둘째 다리의 각선미가 아름다운 사람.

셋째 키가 좀 큰 사람.

미준은 이 셋을 생각하며 혼자 웃었다.

‘미친 놈.’

‘세상에 이 세 가지가 다 좋으면 싫어할 남자가 어디 있을까?’

자신이 생각해도 또라이 같다.

하루 밤을 보내도 저런 여자와 보내고 싶은 것이 자신의 마음이었다.

그러나 예솔에 대한 마음은 그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을 위해 모든 정성을 다해준 여자다. 그런 것을 따져볼 마음은 조금도 없다.

그런데도 예솔을 보니 그녀의 몸매에 관심이 끌린다.

‘이 저질,’

미준은 자신을 보며 스스로 저질이라 자책하고 있다.

시계를 보니 저녁 일곱시가 넘어서고 있다. 그렇다고 자고 있는 예솔을 깨울 수도 없다. 얼마나 피곤했으면 그 새를 못 참고 잠이 들었나 싶다.

아마 자기를 돌보느라 어제 밤에 제대로 자지 못잔 것이 원인일 것 같았다.

미준은 이번 여행에서 건진 보석들과 장신구, 원석들을 하나씩 정리해 보았다.

그리고 틈이 나면 루어개발에 고민을 해 보았다.

원석 분말을 섞어 프로가 사용하는 괴물 루어를 개발하였다면 괴물의 뼈를 함께 넣는다면?

갑자기 미준의 머리에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미준은 속는 셈 치고 뼈를 이용한 새로운 시험을 해 보리라 마음을 먹었다.

만약 돌아간다면 당분간 괴 물고기 낚시에 도전하여 괴물의 뼈 확보에 전념을 하리라 마음먹었다.

그리고 괴물 고기의 중요 부분을 추출하여 연구팀에 넘기겠다고 생각하였다.

함부로 괴 물고기를 사들일 수 도 없다.

그것이 소문나면 어렵게 개발한 기술이 하루 아침에 노출 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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