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2화 〉 여자의 향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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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 원통전, 명부전과 규모가 큰 대방(大?)이 있으며, 대웅전은 충청남도문화재자료 제51호로 지정되어 있다.
특별한 문화재는 없으나 원통전내의 중수 또는 시주질(???) 등의 현판들은 역사 연구의 좋은 자료가 된다. 현재 이 절은 비구니의 수도처로 이용되고 있다.
그리고 당간지주가 남아 있었다.
그곳에서도 미준은 몇몇 영령과 대화를 나누었고 사람의 피해를 주는 악령들을 제거하였다.
영은사에서 공북루를 거쳐 나와 함영산으로 오르다가 임란의 격전지 파슬루에 올랐다. 함영산은 그리 높지 않은 산이다.
전쟁의 흔적이란 찾아 볼 수가 없다.
역사는 흐른다.
세월이 흐르면 모든 상처는 아물어 간다.
소나무를 비롯한 단풍나무와 떡갈나무, 참나무 들이 아름드리 울창하다. 정상을 서서 기지개를 펴며 마음 끗 기를 빨아들인다.
‘와, 시원하다.’
폐까지 빨려 들어오는 가을의 신선함이 온 몸에 녹는 듯하다. 내러오는 길은 능선을 따라가지 않고 경사가 급한 비탈길을 택했다.
역시 능선 보다 계곡의 풍치가 멋을 더해준다. 계곡에는 맑은 물이 흘러내리고 산새들의 노래 소리조차 너무나 청아하다.
‘멋지다.’
누가 봐도 아름답고 절경이라 할 수 있다. 미준은 계곡 물을 두 손으로 받아 한 모금 마셨다. 내장까지 전해오는 짜릿한 쾌감이 전신을 퍼져 나갔다.
계곡에 앉아 발을 담궜다.
땀에 젖은 양말을 벗어 널어두고 시리도록 시원한 물에 발을 담구니 그제야 미준은 산행의 피로가 풀리는 것 같았다.
계곡에 누워 눈을 감았다.
한적하기 없는 계곡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환청.’
옛날에는 이런 것을 환청이라 생각했다.
자리에 앉아 사방을 둘러보니 왜놈들의 악령이 꾸물거린다.
‘아니, 저놈들이.’
‘아직도 가지 않고 우리의 산야를 더럽히고 있다니.’
그러는 가운데도 우리 선열들의 영령도 보인다.
‘맞아.’
‘여기가 바로 임란의 격전지구나.’
선열의 혼이 아직도 그놈들과 싸우고 있었다.
수많은 세월이 지나 갔건만 그들의 영혼은 후세를 위해 쉬지도 못하고 싸우고 있다.
‘누가 이들을 알아줄까?’
죽어서도 쉬지를 못하고 왜놈들의 악령과 싸우고 있다는 것을.
미준은 분노했다. 오늘에야 이놈들을 이 골짜기에서 씨를 말려 버리고 민족의 혼을 편안하게 쉬도록 해줘야겠다.
미준은 다시 양말을 신고 등산화를 신었다. 등산 스틱을 오른 손에 쥐고 놈들의 악령을 제거하기 시작했다.
전쟁이 끝났으면 귀신이 되어서라도 자기 나라도 돌아갈 것이지 왜 여기 남아서 호국영령들을 괴롭히고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미준은 닥치는 대로 말살시켰다. 그들의 악령이 조국 영령들을 억누르고 있다.
그들의 고초가 너무나 크게 느껴졌다.
얼마나 잡았을까 죽여도, 죽여도 끝이 없었다.
목은 타고 온 몸의 정기가 빠져나가는 것 같다.
왜놈의 악령은 만만하지가 않았다.
미준을 향해 반항을 하는 놈들은 눈을 까뒤집고 미준의 기를 감소시키고 있다.
‘이래서 죽어도 악령이 됐구나.’
선조들의 영령이 미준과 합세하여 그놈들을 몰아부쳤다. 그들의 손에는 딱총을 들고 미준을 향해 총을 난사 했다.
‘나쁜 새끼들.’
어떻게 보면 그들도 불쌍하다. 본의 아니게 끌려나와 출병을 해서 남의 땅에서 죽은 인간들. 죽어 귀신이 되어서도 자기의 조국으로 가지도 못한 신세.
그러나 아니다.
동정은 금물이다.
남의 땅에 묻혔으면 죽어라고 반성해도 모자랄 판에 자기 조국에 충성을 빌미로 우리 조상의 영령들을 괴롭히고 있다니.
결국 미준은 있는 힘을 자신의 기를 뽑아내어 그놈들을 섬멸해 버렸다.
그리고 그는 쓰러져 누웠다.
숲속 가을 햇살이 나무 사리로 비춰주고 있었다.
미준은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모든 진력이 빠져 땅바닥이 누워 의식을 잃었다.
“아저씨.”
“아저씨.”
‘또 환청인가?’
눈을 뜨려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는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살아 있어.”
‘내가 죽은 것은 아닌가 보다.’
“아저씨, 눈 좀 떠 봐요.”
귀에는 생생하게 사람들의 말소리가 모두 들렸다.
“물 좀 먹어봐요.”
누군가가 물을 떠서 미준의 입에 넣어 주었다.
미준은 그들이 주는 물을 받아 마셨다.
의식은 다시 가물가물 하였다.
눈을 떴을 땐 사방이 캄캄하고 어디가가 어디인지 분간되지 않았다.
자신의 기억을 되살려 보고 있었다.
“음.”
하나하나 계곡에서 벌어졌던 모든 일들이 되살아나고 있었다. 몸을 움직여 보았으나 움직여지지 않았다.
겨우 고개를 들어 옆으로 돌아보니 자신의 옆에 낯선 여자가 웅크리고 앉아 졸고 있었다.
그리고 주변에서 작은 말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음.”
“정신이 좀 들어요?”
“누구?”
여자는 미준의 이마에 수건을 벗겨주며 들여다보았다.
“언니, 깨어났어.”
그러자 누군가가 달려오는 것 같다.
“다행이네. 수고 했다. 네가.”
“총각 때문에 날이 저물어 우리도 길을 잃었어요.”
옆에 앉은 여자는 다시 미준의 입에 물 한 모금을 넣어 주었다.
물맛이 좀 다른 것 같다.
“미안합니다.”
“어떻게 여기서.”
미준은 힘이 없어 다시 눈을 감았다.
“언니. 이사람 아직 기운이 없어. 말 너무 시키지 마.”
“알았어, 가시네 야.”
“그럼 우린 네만 믿고 건너간다.”
옆에 앉은 여자는 젖은 수건으로 미준의 얼굴을 닦아주었다. 그리고 가끔씩 미준의 입에 물을 조금씩 넣어주었다.
얼마나 시간이 또 흘러갔을까.
다시 미준이 눈을 떴을 때 온 몸에 한기를 느끼며 오들오들 떨려 왔다.
“추우세요?”
미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여자는 자신의 등산복 상의를 벗어 덮어 주었다. 그래도 좀처럼 몸을 엄습하는 한기가 가시지를 않았다.
“이것 미수가루예요. 먹은 것이 없어 한기가 들 거예요.”
여자는 물처럼 희멀건 물을 미준의 입에 조금씩 먹여주었다.
“미안해요.”
몸이 떨려오니 목소리까지 떨린다.
미준은 몸이 오싹하여 부르르 떨었다.
“이제 이걸 먹었으니 좀 있으면 좋아질 거예요.”
그래도 계속 미중의 몸이 떨리는 걸 보자 여자는 미준의 옆에 누웠다.
“여기 텐트에요?”
“제 텐트에요. 언니들과 산 정상에 올랐다가 약초를 캘까하고 계곡을 따라 내려오다가 쓰러져 있는 아저씨를 목격했어요. 통화도 되질 않고 버려두고 갈 수도 없어 오늘밤을 여기서 묵기로 했어요. 날이 어두워져 길도 모르고.”
“미안합니다.”
“계속 추우면 제가 좀 가까이 갈게요. 사람의 체온이 제일 따뜻하다 하잖아요.”
“고맙습니다.”
여자는 미준의 옆에 누워 미준을 끌어안는 듯한 자세를 취했다.
그제야 미준은 천정에 걸어놓은 야외용 충전 전등이 눈에 들어왔다.
미수가루 물을 마신 탓인지 여자의 체온 탓인지는 모르지만 차츰 온기가 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미준은 다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다시 시간이 흘러갔다.
다시 눈을 뜻을 땐 여자는 자신의 부둥켜안고 잠이 들어 있었다.
조심스럽게 발을 움직여 보니 조금씩 힘이 들어오는 것 같았다. 손도 움직여 보고 팔도 조금 움직여 봤다.
‘이제 살았구나.’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다 가만히 있었다. 자신 때문에 잠을 설친 옆 사람이 깰 것 같아서다.
여자의 얼굴은 땀에 얼룩져 있었고 옷을 벗어주어 추위를 느끼는지 미준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있었다. 팔을 미중을 끌어안고 한쪽 다리도 미준의 다리 위에 걸쳐 얹어 감싸주려 애를 쓴 여자의 마음을 읽을 수가 있었다.
‘고마운 사람이다.’
미준은 콧등이 시큰하였다.
자신을 위해 이렇게 해준 여자가 과거에 있었던가?
미준은 다시 눈을 감고 그녀가 일어나길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야 미준의 귀에 개울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기의 충전과 레벨 상승이 아직도 내게 많이 필요하구나.’
자신의 힘만 딛고 지나치게 에너지를 소모한 미련함과 거만을 떤 자신이 너무나 황당한 생각이 들었다.
여명이 밝아오자 미준은 조심스럽게 그녀의 팔을 치우고 자리에 일어나 앉았다.
그때 미준의 눈에 새로운 능력치를 알려주는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귀하의 스펙 12급. 순발력 35. 감별력 35. 투시력 33. 전투력 38. 조정력 30.]
모든 기들이 회복된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조정력의 수치가 많이 상승했다.
미준은 덮고있던 그녀의 상의를 다시 덮어 주었다. 그녀의 한쪽 손은 미준의 팔을 꼭 쥐고 있었다.
미준은 그녀의 머리카락을 옆으로 쓸어 올려 주었다.
비록 얼굴은 땀과 흙으로 얼룩져 있었으나 나이는 그리 많아 보이지 않았다.
여자를 한참동안 지켜보다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자신이 잔 텐트보다 조금 떨어진 공간에 또 다른 텐트 하나가 쳐져 있었다.
미준은 개울로 내려가 세수를 하고 물을 마신 뒤 자신의 배낭을 찾아보았다.
자신의 배낭에는 많은 귀금속과 우주 원석이 많이 들어 있었다.
정신없이 싸우면서도 챙길 것은 챙겼네.
“이제 괜찮으세요?”
얼굴을 들어보니 밤새 간호해 준 그 여자였다. 여자는 미준을 보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네, 덕분에 많이 좋아졌어요.”
“어떻게 된 거죠?”
“아마 탈진했나 봅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래도 너무나 건장하신 분이라서.”
여자는 계곡으로 내려와서 미준의 옆에 앉았다.
미준은 변명하기도 애매해서 엉뚱한 거짓말을 했다.
“사실 몇 일간 독감을 한 후라 컨디션이 나빴는데 무리한 산행을 해서.”
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얼룩덜룩 땟물로 얼룩진 그녀를 보고 있자니 미안하기도 하고 민망하여 미준은 순간 엉뚱한 발상을 하였다.
“잠깐만 그대로 있어요.”
미중은 그녀의 머리를 잡고 한 손으로 계곡물을 떠서 그녀의 얼굴을 문질렀다.
“아저씨.”
“잠깐만.”
미준은 어머니들이 아기 얼굴을 씻기듯 그녀의 얼굴을 물로 씻어주고 머리카락을 쓸어 올려주었다.
거부감을 가지고 주춤하던 아주머니는 미준이가 자신의 얼굴을 씻어주자 가만히 있었다. 그때였다.
“그림 좋네.”
얼굴을 들고 처다 보니 두 아주머니가 텐트 앞에 서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루 밤에 만리장성을 쌓는다고 하더니 그새 그런 사이가 됐네.”
그들은 키득키득 웃으며 계곡 쪽으로 다가왔다.
“아니야 언니.”
미준은 이왕 이렇게 된 거라 싶어 호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여자의 얼굴을 깨끗하게 딱아 주었다.
여자의 얼굴은 빨갛게 물들었다.
미준이 보기에도 좀 전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예쁜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봐라, 저 총각. 아니긴 뭐가 아니야.”
“하도 얼굴에 땀과 얼룩이 범벅이 돼 있어 저도 모르게.”
여자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자기의 텐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리고는 배낭에서 거울을 꺼내 그제야 자신의 얼굴은 들여다보았다.
미준의 덕분에 깨끗한 모습이었다.
그런데도 가슴은 쿵덕거리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따라가 봐요. 총각.”
미준이 어쩔 줄 몰라 텐트로 따라가니 여자는 무척 당황하는 눈치였다.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
미준은 여자의 손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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