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7화 〉 여행중 만난 여자(2)
* * *
“오늘 소주 어때요?”
“소주 보담 조껍데기 술이 어때요?”
“제주 민속주 좋지.”
“그럼 아주머니 소주 한병하고 조껍데기 한병, 낚지볶음 하나 주문할게요.”
결국 그들은 식사를 하면서 술을 곁들여 마셨다.
술이 나오자 경선은 먼저 상준에게 조껍데기 술을 권했다.
"연주는 뭐할거야?"
영도는 연주에게 소주를 권했다.
잔을 채운 영도는 그새 배워서 그들이 하던 건배사를 외쳤다.
“오밤행을 위하여”
“오행위가 아니야?”
"뭐든 위하여!"
모두 한바탕 웃고는 즐겁게 술을 마시다 하루를 마감하고 숙소로 돌아 왔다.
연주는 총무 답게 술 몇병과 안주를 사서 숙소로 돌아왔다.
팬션에 와서도 술은 계속 되었다.
“연주는 술을 꽤 잘하는 것 같네.”
“네, 전 좀 해요.”
상준니 고개를 끄덕이자 영도도 맞장구를 쳤다.
“맞아, 연주 못하는 게 없어.”
“이거 칭찬 맞아요?”
“그럼 칭찬이지.”
“저도 소주 한잔 더 주세요.”
경선은 잔을 비우고 다시 잔을 내 밀었다.
“내일은 점심 먹고 헤어져야 하네.”
“2박 3일은 너무 짧아.”
연주와 영도가 이별의 아쉬움을 표현하자 경선은 정색을 한다.
“난 며칠 더 있다 갈 거야.”
“학교는?”
“뮈 어떻게 되겠지.”
“아저씨는 언제가요?”
“난 펜션을 일주일이나 빌려 놨어.”
“좋겠다.”
사실 상준은 다슬의 단기 방학이 일주일이라 하여 처음부터 일주일 계획이 세워져 있었다.
잠시 후 영도와 연주가 방으로 들어가자 상준도 씻은 뒤에 방으로 들어왔다.
내일은 어린이 날.
상준은 상미께 전화하여 어버이 날 부산 어머니께 다녀오라 전화를 한 후 자리에 누웠다.
다슬이에게 전화를 해봤지만 여전히 다슬의 휴대폰이 꺼져 있었다.
눈을 감고 자려 했으나 도무지 잠이 오질 않았다.
잠시 후 방안에 불이 꺼지더니 이불 소리가 사각거린다.
경선이 마자 잠자리에 들려나 보다.
상준은 눈을 감은 채 가만히 누웠다가 경선의 고른 숨소리를 듣고 조용하게 거실로 나와 베란다로 나갔다.
갑자기 담배 생각이 간절하게 났다.
담배를 끊은지 7개월이 지났건만 아직도 미치도록 피우고 싶을 때가 있었다.
바로 지금이 그런 때인 것다.
그러나 지금은 담배가 없다.
멀리 해수욕장이 바라 보이고 그 옆엔엔 이름 모를 작은 항구에서 등대 불이 깜박이고 있다.
“아저씨.”
베란다 문소리가 사르르 열리면서 경선이 그를 따라 베란다로 나온다.
“잠이 안와?”
“네. 화장실 가시는 가 했더니 들어 오시지 않아서.”
“나도 잠이 안와서.”
“아저씨. 사랑이 뭔지 아세요?”
“글쎄, 그걸 알면 내가 이러고 있겠어?”
“난 친구가 저러는 걸 처음엔 이해하지 못했어요.”
“연주 말이야?”
“근데 이제 좀 알 것 같아요.”
경선은 한숨을 쉬었다.
“사랑은 배려라고도 하고, 희생이라고도 하고, 용서라고도 하지.”
“눈물이라고도 하던데?”
“결혼한 전 남친은 사랑은 모두 다 주는 것이라 해 놓고는 막상 자신은 배신하더라고요. 진정 사랑이 있기는 있는 거예요?”
“있다고 믿어야지. 믿지 않으면 우리가 너무 불상하잖아?”
“남친이 원하는 걸 다해 줬어요. 친구도 아마 그랬을 거예요. 근데 왜 배신을 당했을까요?”
아직 경선에게 술 냄새가 풍기는 것 같다.
아니 자신도 마찬가질 것이다.
경선의 하소연에 대답할 수가 없었다.
‘사랑은 움직이는 것이라 하지 않았던가?’
‘사랑은 상대가 원하는 걸 주는 것이 아닐까?’
그럴지도 모른다.
내가 원하는 걸 상대에게 받으면, 나를 사랑한다고 믿을 수도 있으니까?
“아저씨. 들어가요.”
상준은 다시 경선과 함께 방에 들어갔다.
두 개의 이부자리가 나란히 깔려있다.
상준이 이불 속으로 들어가자 어제 밤처럼 경선은 상준의 머리맡에 앉아 벽에 기대 않았다.
옆방에서 들리던 소리도 이제 잠잠해 졌다.
“화요일부터 학교 가야 하잖아.”
“아저씨는 언제까지 여기 있을 거예요?”
“난 처음 계획이 일주일 이었어. 가고 싶으면 언제든지 가야지.”
“그럼 저도 목요일에 갈 거예요.”
“....?”
“같이 있어도 되죠?”
“....?”
“부담 갖지 마세요. 조용히 있다 갈게요.”
상준은 눈을 감았다.
상준이 눈을 감자 경선은 방에 불을 끄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눈을 감고 있었으나 정신은 더욱 맑아지는 것 같다.
“아저씨 자요?”
“아니.”
“아저씨. 좀 들어갈게요.”
경선은 상준의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옆으로 누워 상준은 바라보며 상준의 손을 잡았다.
"아저씨는 저를 안고 싶지 않으세요?"
"....."
상준은 경선의 머리 밑으로 팔을 뻗어 팔베개를 해주었다.
사람은 누구나 남모르는 상처가 있는가보다.
이튼 날 연주와 영도는 먼저 차를 가지고 떠나갔고 상준과 경선은 남아 있었다.
“아저씨 우린 차가 없어 어떡하죠?”
“이 부근에서는 렌트하기가 어려울 텐데?”
“그럼 우리 낚시나 해요. 낚시 재미있던데?”
“어제 잡은 고기 아직 남아 있어.”
“그래도 오후에 낚싯배 타요.”
특별하게 다른 계획도 없어 그러자고 했다.
낚시배 대여점에 전화를 했더니 오후 2시에 출발하면 6시에 귀항하는 배가 있다고 하였다.
“그럼 먼저 점심이나 먹지.”
결국 경선은 마트에 나가 햇반과 반찬 몇 가지를 구입해 왔었고 잡아둔 물고기를 구워 먹기로 하였다.
식당에 나가 먹는 것도 좋지만 펜션에서 먹는 식사도 단출하면서도 먹을 만 하였다.
“저녁은 내가 맛있게 해 줄게.”
상준은 식사를 한 후 다시 다슬에게 연락을 했으나 통화가 되지 않았다.
'가스나 왜 이래? 진짜?'
‘한번쯤은 전화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야.’
걱정이 되면서도 화가 난다.
하는 수 없이 다슬이 어머니께 전화를 했다.
“나도 소식 못 들었어. 난 자네에게 연락 하는 줄 알았지.”
“전혀 연락이 없네요. 몇 번이나 해도 받지도 않고.”
이쯤 되니 점차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오후 출조 시간에 맞춰 항구로 나갔다.
동승한 사람은 중년부부와 신혼부부. 그리고 상준과 경선이 뿐이었다.
역시 오늘도 멀리 나가진 않았다.
생활 낚시인들이라 뚜렷한 대상어도 없이 잡어들이라도 손맛만 보면 되는 것이라 판단한 것 같다.
선장님은 어제 그분이었다.
손님만 있으면 오전, 오후 하루에 두 번은 출조를 한다고 했다.
낚싯배도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지는 것 같다.
주로 생활 낚시인을 대상으로 하거나 프로 낚시인을 대상으로 하는 두 유형으로 분류되는 것 같다.
구명조끼를 입고 멀미약을 먹은 후 모든 채비를 마친 사람들이 낚싯배가 멈추자 다투어 낚싯대를 바다로 던져 넣었다.
역시 오늘도 광어를 포함하여 고등어와 전갱이가 걸려들곤 하였다.
얼마 후 상준에게 참돔 한 마리가 걸려들었다.
대물은 아니었지만 손맛을 즐기기엔 손색이 없다.
“아저씨.”
경선이도 역시 큰 놈이 걸렸는지 상준을 향해 도움을 청했다.
“낚싯대를 세워 당기고 있어.”
경선은 상준이 시키는 대로 낚싯대를 세우려고 안간힘을 썼다.
“힘이 빠질 때까지 기다렸다 감아 봐.”
상준은 결코 남의 낚싯대를 가로채지 않는다.
그것은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남의 손맛을 가로채는 것이다.
“이제 천천히 감아.”
경선은 165 cm는 족히 되는 후리한 키에 청바지를 입고 회색 티를 입었다.
이제 낚시 자세도 조금은 나온다.
상준을 보며 모처럼 싱긋 웃음을 보였다.
어제는 종일 우울한 모습이 가시지가 않더니 이제 조금씩 풀리는 것 같다.
상준은 뜰채를 쥐고 고기를 제압할 때 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놈이 물 밖으로 정체를 나타냈다.
“우와, 감성돔.”
지켜보던 사람들의 입에 환호성이 터졌다.
생활 낚시에서 감성돔을 잡으면 최고의 선물이다.
시알도 제법 큰 놈이다.
상준은 뜰채를 이용하여 건져 주었고 고기를 쥐고 자세를 잡게 한 후 사진을 찍어 주었다.
“아저씨.”
감격한 모양이다.
“잘 했어. 대단해.”
상준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상준은 오늘도 역시 그냥 가지 않았다.
처음에는 광어 한 마리와 참돔을 잡더니 결국 날개 돔 감생이를 걸어 올렸다.
전장은 비록 60cm에 불과 했으나 스피넬 원석과 사파이어 원석을 획득하였다.
선장은 상준을 보며 한마디 하였다.
“역시 헛소문은 아니었어.”
선장은 엄지를 세워 앞으로 내어 밀었다.
“감사합니다.”
중년의 선장은 어제부터 시작하여 상준의 낚시에 눈을 떼지 않고 살펴보고 있었다.
혹시라도 비법이 있으면 배워볼까 하는 속셈일 것이다.
“아저씨. 정말 대단한 분이세요.”
경선은 그가 추출해 낸 원석을 쥐고는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아저씨. 저 졸업하면 아저씨 회사에 도전 할 거예요.”
“우리 회사 알아?”
“찾아 봤어요.”
상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꿈의 직장이라고들 하던데?”
“간혹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긴 하지.”
“연봉도 높나보죠?”
“조금은 더.”
“그럼 꼭 도전 할 거예요.”
“전공이 뭔데?”
“산업디자인.”
“산업 디자인ㅇ들전공 했으면 어디가도 인기가 좋을 텐데?”
“입학할 땐 좀 어려웠어요.”
상준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경선은 그 후로도 쏨뱅이와 고등어 등을 걸어 올렸고 주변 사람들 역시 제법 많은 고기를 건지는 것 같았다.
“생각보다 손맛이 솔솔 하네요.”
선장을 보고 말을 던지자 선장은 웃으면서 덕담을 하였다.
“오늘 타신 분들이 모두 덕이 있는 사람 같습니다. 안될 때는 죽어도 안되거든요.”
낚시를 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바둑을 두면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고 했던가?
낚시를 해도 해가 언제 기우는지 모를 판이다. 고개를 들어보면 해가 서산에 걸려있다.
다시 항구로 귀항을 하자 상준은 잡은 고기를 그물망에 담아 펜션으로 돌아왔다.
고기를 모두 손질하여 냉장고에 넣어두고 마트에 나가 식자재를 구입한 후 백세주도 몇병 바구니에 담았다.
가방에 넣어 온 기본 소스를 모두 꺼내 놓고 밥도 하고 회도 치고 매운탕도 끓였다.
초고추장과 겨자 간장 소스도 올려놓았고 백세주와 술잔도 같이 올렸다.
상준이 식사 준비를 하는 동안 경선은 상준의 옆에서 잔심부름을 하고 있었다.
이제 자신도 알게 모르게 변하고 있다는 걸 스스로 깨닫는다.
과거 같으면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과 격의 없이 대화를 한다는 건 불가능하였다.
사람의 그릇이 달라졌다할까 아니면 사교성이 늘었다고 할까 기업 경영의 노하우가 생활에도 많이 영향을 주나보다.
“식사하자.”
경선과 마주 않은 상준은 먼저 술잔을 채웠다.
“아저씨와 이러고 있으니 무척 행복해요.”
“나도 그래.”
그들은 잔을 부딪친 후 술을 한 모금씩 마시 후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아저씨, 제가 좀 성가시죠?”
“성가시긴 뭐. 절대 아니야.”
“그럼 다행이구요.”
“혼자 있으면 심심하겠지?”
“부담 갖지 마세요. 오히려 제가 고마워요. 이제 숨도 좀 쉴 것 같고.”
“그래?”
“죽으란 법은 없나 봐요.”
“무슨?”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죽고 싶었는데?”
“모두 잊어 버려.”
상준은 다시 술잔을 들어 잔을 부딪쳤다.
그들은 회를 먹으면서 백세주를 마셨지만 오늘따라 두 가지가 잘 맞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