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5화 〉 인간이 된 뷰미(2)
* * *
‘내가 미쳤나. 오늘 따라 왜 이러지.’
상준은 스스로 자책하며 소파에 앉아 바닥에 자고있는 뷰미를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의 이런 알턱이 없는 뷰미는 눈을 감은 채 이불에 걷어차며 자신의 몸을 슬쩍 노출시킨다.
물론 고의적인 것은 분명 아이었다.
‘잠이든 것 일까?’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마음이 가는 대로 행동을 한다면 자신도 이불 속으로 파고들고 싶었다. 그러나 상준은 감정보다는 이성이 강한 사나이다.
그녀를 깨워 옷을 내어준 뒤 자신의 추리닝 상의를 뷰미의 어깨에 걸쳐 주었다.
자신의 이성이 어디까지 갈지 버텨보고 싶은 생각을 가진 것 같았다.
상준은 뷰미를 데리고 와서 상미의 방에 머물도록 조처를 하였다.
그리고 서둘러 죽순섬에 가서 할아버지의 신원보증 확인서와 자신이 작성한 신원보증서를 구비하여 뷰리 처럼 죽순섬을 주소지로 잡아 모든 서류를 제출하였다.
그리고는 명함판 사진을 첨부하여 호적등록을 한 후 동시에 주민등록을 발급을 신청하였다.
할 일은 또 있었다.
뷰리의 집 부근에 방을 얻어 뷰미가 거쳐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이름 : 천뷰미, 주소 : 중산시 진호동 죽순리 산 3번지. 나이 만 20세. 성별(여)]
이것이 뷰리의 새 호적이다.
뷰미의 주민등록이 나오자 상준은 총무부에 지시하여 뷰미를 [뉴 해양 박물관] 안내원으로 입사조치 하였다.
뷰미가 하는 일은 박물관을 드나드는 모든 관람객들에게 인사를 하고 간단한 안내를 하는 일이었다.
원래 이 자리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생들의 자리였으나 뷰미를 정식 직원으로 채용하여 전담하게 한 것이었다.
뷰미 외에도 몇 명의 아르바이트생이 더 있었기에 큰 부담은 주지 않을 것 같았다.
상준의 이런 노력은 뷰미의 심적 안정에 도움이 되었다.
무작정 있는 것 보다 자신의 일에 집중하다 보면 육지 생활에 적응을 잘 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며칠이 지난 후 상준은 뷰미에게 전화를 해 보았다.
“아저씨.”
“너, 힘들지?”
“아뇨, 이제 좀 살 것 같아요.”
“무리는 하지 말고 힘이 들면 휴가도 낼 수 있고 월차를 사용할 수도 있어.”
“걱정 마세요. 아저씨. 집에 가만히 있는 것보다 훨씬 좋아요.”
“집은 어떻고?”
“혼자 있으니 모든 것이 편해요. 제 마음대로 할 수 있고.”
“종종 밖에서 뷰리와 만나 식사도 하고 놀기도 해.”
“그렇게 하고 있어요.”
날이 갈수록 뷰미의 마음이 안정을 되찾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 가면서 뷰리와 함께 상준의 집에 다녀가기도 하고 사무실에 찾아와서 차를 마시기도 하였다.
뷰리에 비해서는 성격이 활발하고 적극적인 면이 보이기도 하였다.
이제 상준은 한 시름 놓았다.
다슬이도 이제 신규교사 연수를 끝내고 발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임용고사에 합격하고 나니 인근 사립학교에서 연락이 왔다.
본인이 원한다면 사립학교 재단에서 특채를 하겠다는 것이었다.
교사 자격증을 소지한 사람 중에서 임용고사에 합격한 교사를 대상으로 특채하겠다는 제안이었다.
다슬은 처음에는 망설이더니 공립학교 발령을 기다리기로 하였다.
사립의 장점은 인사이동 없이 평생을 한 학교에 근무할 수 있어 안정이 된다는 것이었고 공립학교는 인사 이동이로 근무지가 바뀌는 단점은 있으나 폭넓은 대인 관계와 승진을 원한다면 노력의 여하에 따라 쉽다는 것이었다.
다슬은 여러모로 알아보고는 공립학교 발령을 기다리기로 하였다.
한가지 더 신경을 쓰는 것은 사립의 경우 재단의 간섭이 있을 수 있다는 막연한 염려와 직원간 갈등으로 인간관계가 어려워지면 오랜 기간동안 함께 근무하기가 어려울 것이란 판단도 있었다.
공립학교는 자신이 원하면 언제든지 타 학교로 이동이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2월 중순을 지나면서 날씨가 많이 풀리는 것 같다.
그 중에서도 일기 예보를 알아보고 봄맞이 낚시를 위해 인어도로 가려다 뷰리에게 전화를 하였다.
주말을 통해 함께 갈 생각이 있는지 물어본 것이었다.
뷰리는 약속이 있어 어렵다고 하였다.
하는 수 없이 이번에도 혼자 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이런 상황이 제일 싫다.
토요일 아침 일찍 일어나 요트 안에 있는 식자재를 살펴보고 바다를 향해 키를 잡았다. 약간의 파도가 일어나긴 하지만 낚시하기엔 안성맞춤이었다.
해자도를 지나 인어도 방향으로 키를 돌리는데 전화가 왔다.
“예, 뉴해양 대표 연상준입니다.”
“오빠, 저예요.”
미쳐 발신자 확인을 못한 상태에서 전화를 받았더니 다슬이었다.
“어, 그래.”
“오빠, 저 발령 났어요.”
“학교가 어딘데?”
“학교는 아직 모르겠고 일단 도교육청에서 중산시교육청으로 발령이 났어요.”
“그래, 축하한다. 그럼 중산시교육청에서 학교로 보내 주겠지?”
“맞아요. 일단 중산시까지 떨어졌으니 다행이에요.”
“중산시까지 왔으면 어느 학교라도 상관없겠지. 모두 통근 가능한 것 아니야?”
“네, 맞아요.”
“축하해요. 정 선생님.”
“하하하, 오빠가 선생님이라니 이상하네. 근대 오빠 어디에요?
“나? 지금 혼자 낚시가고 있어.”
“어디로?”
“진주도 근해나 주변 무인도 근해.”
“오빠, 저도 갈래요.”
“너, 안 바빠?”
“뭐 오늘 토요일인데.”
“어쩌지? 해자도 지났는데.”
“오빠 신항으로 오세요. 준비해서 신항으로 나갈게.”
상준은 콧노래를 부르며 키를 돌렸다. 이보다 더 신난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요트를 돌려 신항 선착장에 도착했을 땐 다슬은 짐이 든 가방을 매고 선착장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다슬이 너 선생시험 됐다며?”
지나가는 동네 아주머니가 다슬을 보고 인사처럼 말을 던졌다.
“네, 아주머니. 안녕하세요?”
“사장님하고 같이 낚시가려고?”
“네.”
상준도 갑판에서 아주머니께 인사를 하였다.
“둘이 약혼했다며?”
“네, 아주머니.”
참 소문은 빨랐다. 인어도에서 관리인 아저씨께 슬쩍 던졌던 말이 동네에 모두 퍼진 모양이었다.
다슬이 임용고사에 합격한 것도 소문이 빨랐지만 약혼을 하였다는 소문도 모두 번진 것 같다.
그 소문은 다슬의 어머니 귀에도 들어갔다.
정작 어머니도 모르는 소문을 들은 다슬이 어머니도 하는 수 없이 그렇다고 대답했다. 차라리 그것이 쓸데없는 소문을 줄이는 좋은 방법 같아서였다.
“빨리타.”
“별장에 가나보네. 별장이 꼭 궁전 같다며?”
“아네요. 아주머니.”
상준은 다슬의 짐을 받아 선실에 넣어두고 다슬의 손을 잡아 올려주었다. 그리고 요트는 신항을 빠져나와 다시 해자도로 달리기 시작하였다.
‘저 가스나, 복도 많다.’
아주머니는 멀어지는 요트를 바라보며 한참동안 서 있었다.
해자도를 지나가자 탁 트인 바다가 요트의 앞에 펼쳐진다.
“아. 기분좋다.”
다슬은 오랫동안 준비한 임용고사에서 모든 것을 벗어날 수 있었다.
“너, 요즘 바쁘다고 안했어?”
“그땐 일정을 몰랐을 때고 이제 모두 해경됐어요.”
“그래?”
“응, 화요일에 도교육청에가서 사령장 받아 시교육청으로 가면되고 며칠 내로 발령난 학교에가서 인사드리고 사령장 제출하면 되는가 봐요.
그러면 해당학교에서 인사배정을 하여 업무분장과 담임배정을 2월말까지 한다나? 그리고 3월 2일 날 부임인사 하게 되면 발표하나봐.
“그래도 아직 절차가 많이 남아있네.”
“늘 발행지를 몰라 조마조마 했는데 희망학교를 조사를 하드라고. 다행이지 뭐. 내 뜻대로 돼서.”
“어째든 너 대단해.”
“오빠, 어떻게 혼자가게 됐어요?”
“나, 요즘 혼자 자주 간다.”
다슬은 키를 잡은 상준의 옆에 서서 요트 앞에 펼쳐진 먼 바다를 보면서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동안 고생 했다. 시험공부 하느라.”
“다 이게 오빠 덕분이에요.”
“내가 뭐 한 게 있다고.”
“오빠가까이 살겠다는 나의 집념이죠. 그리고 오빠를 사랑하기 때문이고.”
“그런가?”
상준도 의자에 앉은 채 한손은 키를 잡고 한손은 다슬의 손을 잡아주었다.
“저기 우리 별장 봐.”
인어도를 자나가자 다슬은 별장을 가리켰다. 상준은 인어도와 진주도를 조금 더 지나 작은 무인도 부근에 요트를 세웠다.
“너 옷 그렇게 입고 추울 텐데.”
다슬은 청바지에 운동화를 신고 상의는 얇은 하얀 셔츠 위에 바람막이 하나를 걸쳐 입고 나왔다.
“오늘 날씨 좋은데요. 뭘.”
“저녁이나 밤이 되면 추울 텐데.”
“....?”
“너도 낚시할거야?”
“해야죠.”
결국 상준은 다슬의 낚시부터 채비를 해서 바다에 던져두고 자신의 채비를 해서 던져 넣었다.
거치대에 낚싯대를 걸어두고 나니 이제야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나란하게 의자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이런 저런 다슬의 무용담을 들으며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너 전화 안했으면 나 혼자 심심해서 어쩔 뻔 했을까?”
“그러니 항상 출발하기 전에 전화해 보세요. 혹시 알아. 내가 시간이 될지.”
“알았어.”
상준은 다슬의 하얀 손을 보니 손이 시릴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손이 시리지?”
상준은 선실에 들어가 작업용 실장갑을 꺼내 와서 다슬에게 건네주었다.
“이거라고 껴봐.”
작업용 실장갑은 보통 장갑에다 손바닥 부분에 붉은색 고무액을 바른 것이었다. 보통 장갑보다 낚시 바늘에 잘 걸리지 않고 물기가 안으로 스며들지 않아 여러모로 편한 장갑이었다.
“추우면 말해. 내 추리닝 가져다 줄 테니.”
“알았어요.”
“오빠 찌, 움직이네.”
상준은 다슬의 말을 듣고 챔질을 해 보았다.
“늦었나 보네.” 상준은 새우를 갈아 끼워 다시 바다로 던져 놓았다. 고기는 물건 말건 둘이 같이 있는 것만으로 만족하였다.
조금 지나서 다시 찌가 움직였다. 상준은 챔질을 하였더니 노래미 한 마리가 걸려들었다. 버리기에는 좀 큰 놈이라서 수족관에 던져 넣었다.
바다낚시는 겨울을 타지 않는다. 민물에는 얼음이 얼고 수온이 내러 가면 소식이 별로 없다. 그에 비해 바다낚시는 겨울이 진짜다. 그러나 바람이 세고 파고가 높아 날씨를 잘보고 출조해야 한다. 추워가 심하면 견디기도 어려울 것이다. 그 것만 극복하면 다양한 물고기가 많이 올라온다.
이번엔 다슬의 찌가 물속으로 빨리듯 들어간다.
순간 포착.
낚시도 일종의 순간포착을 잘해야 한다.
다슬은 잽싸게 챔질을 하여 굵직한 쏨뱅이 한 마리를 건져 올렸다.
“이것도 넣어 놓을까요?”
“응, 크네. 매운탕 거리로 제격이지.”
“오빠, 상미 있잖아.”
“상미?”
“상미가 오빠보고 임신했다고 이야기 했어?”
“아니, 민수가 먼저 미안하다고 하더라고, 상미는 옆에서 수긍하고.”
“응, 근대 요즘 어른들 꾸중도 안하고 다들 좋아하시데?”
“그렇지. 결혼 전에는 몰랐거든.”
“그래서 그랬는가 보네. 오빠가 선수처서 서둘렀다며?”
상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참 잘 어울리고 좋아 보이더라?”
“그렇지. 나도 보니 어울리더라고.”
“상미는 좋겠다.”
“왜, 부러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지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좋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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