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4화 〉 인간이 된 뷰미(1)
* * *
언젠가 상미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상미의 말에 의하면 아주머니의 남편은 동남아로 파견간 뒤 현지 여자와 살림을 차리고는 부쳐주던 생활비마저 끊었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아주머니는 친정집에서 얹혀 살다 도우미를 지원하여 이곳으로 오게 되었다는 것이었고 아들 용석은 시가의 누군가가 와서 뺏다시피 하여 데려갔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더 이상은 알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하여 직접 물어볼 일도 아니었다.
고기가 구워지자 아줌마는 잘 익은 고기부터 골라 상준의 앞 접시에 올려주었다.
“아줌마도 드세요.”
생일이라는 말에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거실에 나와 봉투를 만들어 아주머니께 드렸다.
생일이라는데 뭔가는 해야 할 것 같았다.
“생일이란 걸 몰라 조금 넣었습니다.”
“봉투보다 사장님?"
".....?"
"아, 아아니에요. 고맙습니다.”
상준은 식사를 하고 거실로 나왔다.
거실에 앉아 뉴스를 보다 식곤증이 밀려와 방으로 올라가 침대에 누웠다.
얼마나 지났을까?
노크 소리에 잠에서 깼다.
아주머니였다.
자리에서 일어나 침대에 걸쳐 앉자 차를 가지고 올라와 그에게 건네주었다.
자다 온 것일까?
야한 잠옷을 입고 있었다.
"사장님?"
"예, 말씀하세요."
그런데 또 망설인다.
찻잔을 가지고 갈 심산인지 돌아가지 않고 가만히 옆에 서 있었다.
“내러가서 주무세요. 좀 있다 마실게요.”
“아니에요. 천천히 마시세요. 다 마시면 찻잔 가지고 갈게요.”
아주머니는 창문 쪽으로 걸어가 창밖을 내다본다.
"밤 풍경이 참 아름 답죠?"
"네."
"저기 보이는게 신항이죠?"
"네."
상준은 얼른 차를 마시고 찻잔을 내어 주었다.
그래도 아주머니는 나가시지 않는다.
"무슨 할말 있어요?"
"아니에요. 조금만 더 있다 갈게요."
아주머니는 침대에 걸터 앉는다.
"사장님은 참 멋진 분 같아요."
"그게 무슨 말씀인지?"
"사장님 같은 분만 만났더라면?"
"힘드시죠?"
"하번만 좀 안아주세요."
".....?"
"제가 너무 가여워서 그래요."
상준은 가볍게 아주머니를 포옹하고 들을 두드려 드렸다.
그제야 아주머니는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날 밤 상준은 야릇한 꿈을 꾸었다.
뷰미가 찾아와서 눈 구경을 가자고 조르고 있었다.
상준을 하는 수없이 뷰미를 데리고 눈이 덮여있는 해자산에 올랐는데 갑자기 뷰미가 상준을 얼싸안고 입 맞춤을 하면서 하소연을 하였다.
“아저씨.”
“너 왜 이래?”
뷰미는 상준을 밀어 눈 속에 넘어뜨린 후 자신의 자신의 몸을 던져 상준을 덮쳐누르며키스를 퍼부었다.
자신도 모르게 뷰미의 허리를 끌어당겨 눈속에서 뒹굴다 깨어난 것이다.
비록 꿈이었지만 아쉬운 것 같았다.
묘한 순간에 잠이 깬 것이 너무 아까웠다.
남자들의 속성일까?
‘어이없게도 이런 꿈을 꾸다니?’
그리고 상준은 다시 꿈속을 헤매게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머리가 좀 어지러운 것 같다.
“잘 잤어요? 대표님.”
아주머니는 상준을 보며 헤실헤실 웃고 있었다.
최근 들어 이렇게 밝은 아주머니를 본 적이 없다.
"네. 아주머니."
일찍 출근하여 결재를 한 후 점심을 먹고 집으로 돌아왔으나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마 시장에 나갔거나 볼일이 있어 집을 비운 모양이었다.
그런데 뜻밖에 뷰미의 전화가 왔다.
‘뷰미 전화를 받으려고 그런 꿈을 꿨나?’
“왜?”
“혼자 심심해서요.”
“심심하면 책을 보던지 공부를 해.”
“아저씨. 나도 취업하면 안돼요?”
“너 아직 공부도 제대로 안했잖아?”
상준은 뷰미의 말을 단호하게 잘랐다.
그렇지 않으면 취업을 하겠다고 고집을 피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먼저 들어서였다.
사실 부미는 호적이 아직 양성화 되어있질 않았다.
그러자면 또다시 뷰리처럼 여러 가지 과정을 밟아야 하고 인간의 문화와 예절을 파악하지 못한 상태라고 간주하고 있었다.
전화를 끊고 얼마되지 않았다.
갑자기 뷰미가 상준의 집 벨을 눌렀다.
뷰미의 눈이 젖어 있는 것 같았다.
“너, 뷰리하고 무슨 일 있었지?”
“아저씨, 나 바다로 돌아갈래?”
“너 지금 물이 얼마나 차가운지 알아?
“그래도 뭐, 전에도 살았는데?”
“무슨 일인데?”
“그냥 바다로 돌아가고 싶어요.”
그리고 뷰미는 무작정 밖으로 나갔다.
상준은 외투를 챙겨입고 뷰미를 따라 밖으로 나왔으나 이미 뷰미는 화암대로 가는 솔밭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뷰미야.”
상준은 재빨리 뷰미를 따라 화암대로 향했다.
“기다려 봐.”
2월의 바람은 아직도 차다.
상준은 신속하게 뷰미를 잡겠다고 갯바위로 가는 계단을 빠르게 내려갔다.
“첨벙.”
파도가 일렁이는 바닷속으로 뷰미는 이미 몸을 날려 버렸다.
“뷰미야!”
상준은 어이가 없었다.
기가차서 그냥 멍하니 바다만 바라보고 앉아 있었다.
갯바위 위에는 뷰미의 스커트와 운동화만 남아있었다.
상준은 바닷물에 손가락을 넣어보았다.
차가운 바닷물이 손끝을 저려왔다.
이런 찬 바다에 뷰미가 있다는 자체가 가슴이 아팠다.
‘괜찮겠지?’
‘본래부터 뷰미는 바다가 고향이잖아?'
'자기 고향으로 갔는데 내가 왜 신경을 쓰지?’
상준은 스스로 자신을 위로하며 잊으려고 하였다.
스커트와 운동화를 챙겼다.
묵직한 운동화 속엔 뷰미의 휴대폰이 들어 있었다.
뷰미의 짐을 챙겨 요트에 넣어두고 집으로 왔으나 마음이 가벼울 리가 없었다.
안절부절 못하여 거실을 돌다 자신의 방에가 침대에 누웠으나 좀처럼 마음이 안정되질 못했다.
결국 낚시를 챙겨 다시 갯바위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낚시를 던져두고 혹시라도 돌아올까 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해는 벌써 서산으로 기울고 바다에는 땅거미가 내리고 있었다.
어쩌다가 올라오는 게르치와 우럭을 건지며 추위를 무릅쓰고 버티고 있었다.
시간은 벌써 저녁 일곱시가 넘어섰다.
‘뷰미야, 지금이라도 돌아와.’
상준은 뷰리와 뷰미가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궁금하였고 두 사람의 갈등이 이정도가 된 줄은 생각도 못했다.
어떻게 보면 같은 동족인데, 서로 이해하고 도우면서 잘 지내고 있으리란 생각 밖에 못했다.
뷰미가 없는데도 뷰리의 전화도 없었다.
뷰미의 전화를 열어보았으나 뷰리가 한 미확인 전화도 없었다.
상준은 뷰리에게 전화를 해보았다.
이 시간이면 퇴근을 한 후라 뷰리도 집에 있을 것이다.
“아저씨.”
“응, 뷰리야. 너 혹시 뷰미 소식 알아?”
“아마, 돌아갔나 봐요.”
“돌아가다니.”
“아침에 출근할 때 자신이 없으면 찾지 말라 했어요.”
“무슨 일이 있었니?”
“아뇨, 요즘 좀 갑갑해 했어요.”
“그래도 물이 이렇게 찬데 상관없겠어?”
“걱정 마세요. 좀 차긴 해도 견딜 수 있을 거예요.”
“넌, 별일 없어?”
“네, 저도 봄이 오면 빨리 바다로 나가고 싶어요.”
상준은 전화를 끊고 뷰리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한결 마음이 놓이는 것 같았다.
그때였다. 상준이 던져둔 낚시찌 옆에 불쑥 크라캔의 머리가 물위로 떠올랐다.
“크라캔.”
크라캔은 거의 실신한 뷰미의 다리로 잡고 그에게로 다가오고 있었다.
“뷰미야.”
상준은 얼른 뷰미를 받아 안았다.
나신의 뷰미는 거의 기절한 상태로 약간씩 숨을 쉬고 있었다.
얼굴은 거의 창백해 보였다.
얼른 상의를 벗어 뷰미의 몸을 감싸 안고 집으로 몇 걸음 발길을 옮기려다 요트 계류장으로 신속하게 뛰었다.
선실에 이불을 깔아 뷰미를 눕혀두고 시동을 켜 히터를 틀었다.
그리고 다시 다른 이불을 꺼내 뷰미의 몸을 덮어 주었다.
곰곰이 생각하던 상준은 이불 속으로 손을 넣어 뷰미의 팔고 다리를 만져 보았다.
뷰미의 몸은 차디찬 얼음덩이 같았다.
그제야 크라캔이 생각이 나서 밖을 내다보았으나 크라캔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자슥, 이렇게 될 때까지 뭐하고 있었어?’
상준은 뷰미의 체온을 높여주기 위하여 팔과 다리를 문지르다 맛사지를 하듯이 그녀의 배도 문질러 주었다.
이마에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귀 바퀴 뒤로 넘겨주고 뷰미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뷰미는 간혹 입맛을 다시듯이 입술을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다시 상준은 이동식 가스버너를 하나 더 켜서 그녀의 머리맡에 놓아두고 그녀의 체온이 정상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상준은 밖으로 나와 멍하니 해수욕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뜨문뜨문 불이 켜진 해수욕장에는 가끔 한, 두 쌍의 커플들이 거닐고 있었다.
“아저씨.”
뷰미의 소리가 들려 얼른 선실 문을 열고 뛰어 들어갔다.
“깨어났어?”
뷰미는 소리내어 울기 시작했다.
“울지마.”
“아저씨. 저는 이제 어떡하면 좋아요?”
“뭘 어떡해?”
“제 모습이 돌아오질 않아요.”
“너 모습이 왜?”
뷰미는 이불 밖으로 한쪽 다리를 들어 올렸다.
“다리가 왜?”
“.....?”
순간 상준은 아연 실색했다.
인간으로 변한 뷰미를 보다 깜박하고 잊은 것이 있었다.
지금 그녀는 완전한 사람이었다.
바다에 뛰어들면 인어의 지느러미로 변하지 않았던가?
‘이게 잘된 건가, 아닌가?’
“넌 이제 완전히 사람이 됐어.”
“.....?”
“차라리 잘 됐지.”
울음을 그친 뷰미는 상체를 일으켜 상준의 품에 안겼다.
이불로 감싸인 그녀의 몸은 서서히 체온이 돌아오고 있었다.
상준은 뷰미를 안고 그녀의 볼에 입맞춤을 해 주었다.
뷰미는 이불 밖으로 두 팔을 뻗어 상준의 앞에 손을 내밀었다.
그녀의 손 안에는 보라색 원석 두 개가 쥐어져 있었다.
“너 참.”
상준은 기가 차다는 듯이 원석을 받아 요트 바닥에 던져 버렸다.
그러자 뷰미는 두팔을 벌려 상준의 머리를 감싸 안으며 고개를 들고 상준의 입에 입맞춤을 하였다.
사나이 상준은 더는 참지 못하고 이불 속으로 손을 넣어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한 손을 뻗어 그녀의 엉덩이를 끌어당겼다.
“아저씨.”
뷰미는 가볍게 몸을 떨며 상준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그리고 손을 풀어 자신의 엉덩이를 만지고 있는 상준의 손을 꼭 쥐었다.
“이렇게 가만히.”
그녀의 손은 상준의 손이 움직이지 못하게 제지하고 있었다.
상준이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자 그녀는 다시 상준의 목에 매달리듯 하며 끌어 당겼다.
“뷰미야 이제 그만.”
“아저씨, 조금만 더 있어줘요.”
그리고 상준은 싱크대 옆에 놓인 냉장고를 열어 먹을 것이 있나 찾아보았으나 당장 뷰미에게 줄 마땅한 음식이 보이지 않았다.
‘지금 뷰미에겐 따뜻한 것이 제일 좋을 텐데.’
일탄 커피를 타서 뷰미에게 주었다.
“고마워요. 아저씨.”
이제와 보니 뷰미는 한층 더 성숙한 것 같았다.
상준은 뷰미를 남겨두고 해수욕장 상가로 발길을 옮겼다.
마트에 들어가서 잣죽을 사고 요트에 넣어둘 여러 가지 통조림과 과일, 빵과 과자를 풍성하게 구입하여 요트로 돌아왔다.
“자, 잣죽.”
그리고 이번엔 호빵을 데워 마주 앉았다.
“이것도 먹어봐.”
상준은 뷰미에게 새 호적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방법은 간단했다. 뷰리가 했던 그 방법이었다.
죽순섬에만 다녀오면 간단할 것이다. 할아버지의 신원보증서먼 받아오면 된다.
“우리 집으로 갈래?”
한 참 후 상준은 뷰미를 보며 그녀의 생각을 물었다.
“여기 좀 더 있을래요.”
이미 선실은 따뜻한 온기가 넘쳐나고 있었다. 간간히 눈에 들어오는 봉긋한 뷰미의 젖가슴은 상준의 마음을 유혹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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